Good girl Bad girl(1)
커다란 원탁에 갖가지 음식들이 풍성하게 놓여있었다. 던전에서 귀환한 강건우가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먹자고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음식과 더불어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는 강건우의 표정은 어느 때 보다 밝아 보였다.
식사하면서 아크로폴리스의 현황에 대한 보고를 받은 강건우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태정이 형 수고했어. 역시 형한테 관리를 맡긴 건 신의 한 수였어.”
“아닙니다. 저도 이렇게 적성에 맞을 줄은 몰랐습니다.”
박태정이 쑥스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바라본 김주환이 크게 웃었다.
“푸하하. 너한테 갈굼 당한 사람들이 이 장면을 봐야 하는데.”
“....”
박태정은 아크로폴리스에서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로 정평이나 있었다. 원칙과 절차를 중요시하며 어떠한 부정도 용납하지 않았다.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의 구별도 귀신 같았다. 처음 겪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성격 덕에 아크로폴리스를 빠르게 정상궤도로 올려놓을 수 있었다.
“그래도 지금 같은 시기에는 형 같은 사람도 꼭 필요하지.”
“그건 나도 인정.”
강건우의 말에 김주환이 동의했다. 아크로폴리스는 현재 완벽한 치안상태와 유기적인 업무의 구조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나가고 있었다.
“건우 님도 돌아오셨으니 이제 다시 사람들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응, 믿고 맡길게.”
그때 김주환이 김한나에 관한 일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건우야. 수호자 중에 김한나라고 있는데.”
“....”
김한나라는 말을 들은 강건우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 모습에 김주환이 물었다.
“응? 왜 그래? 건우야 아는 사이야?”
강건우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회귀한 후 시간이 많이 지났다. 하지만 김한나에 대한 증오는 사그라질 줄을 몰랐다. 자신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김주환과 박태정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이유는 모르지만, 오민석이 생각났다.
‘주환이 형도 태정이 형도 나에게는 중요한 사람들이야. 이제 말해 줄 때가 된 것 같군.’
간신히 마음을 추스른 강건우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회귀한 회귀자라는 것. 전생에서 강제 각성자로 살았던 이야기. 시간이 지나며 심해질 지구의 모습. 그리고 자신을 비참하게 죽인 김한나와의 관계였다.
김주환과 박태정이 충격을 받은 얼굴로 강건우에게 말했다.
“마···. 말도 안 돼! 회귀라니 그런 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런 일이”
강건우의 품에 있던 카라가 원탁의 중앙으로 날아갔다.
“이런 세상에 회귀자 한 명쯤 추가된다고 이상할 거 없잖아요?”
“.....”
김주환과 박태정이 묵묵히 자신들을 바라보는 강건우의 시선을 마주 보았다. 신과 각성자가 날뛰는 세상이었다. 회귀자가 존재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래···. 따지고 보면 지금 상황 자체가 상식 밖이지···.”
“건우 님의 말이니 믿겠습니다.”
강건우가 두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회귀한 이후 어디에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 그동안 억눌렸던 답답함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제는 앞으로의 일에 비밀 없이 고민을 나눌 사람이 생긴 것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건데?”
“저도 궁금합니다.”
어느새 강건우의 회귀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질문을 해오는 두 사람이었다.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었다. 자신은 C 랭크의 강제 각성자였을 뿐이었다. 지구에 일어난 큰 사건들은 기억하고 있지만 세세한 사건들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도 세세한 부분까지는 몰라. 다만 아마겟돈이 치열해지면서 인간들이 더욱 살기 힘들어진다는 점과 수호자나 파괴자나 방법만 다르지 그놈이 그놈이라는 정도?”
“그래도 수호자는 파괴자의 학살과 파괴로부터 지구를 지키려고 하는 세력 아닙니까?”
박태정은 내심 수호자 진영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생츄어리로 인간을 보호하고 문명을 수호한다고 생각했다.
박태정의 말을 들은 강건우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수호자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을 포장했었다. 결국,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인류를 지킨다는 기치를 걸었을 뿐이었다.
“형, 겉으로는 인류를 지키는 척하지만 결국 다 이용해 먹는 것뿐이야.”
“그래, 애초에 지구를 이용해 자신들이 우주를 먹겠다는 건 둘 진영 다 똑같아.”
강건우와 김주환의 말에 박태정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수호자의 목적이 정말 그런 것이라면 인류가 처한 상황이 너무 비참하다고 생각했다.
“건우님, 제가···. 아니 우리가 힘을 길러 그들을 막아야 합니다.”
“내 가족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만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했어.”
“건우야, 그건 나도 동의한다.”
강건우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가만히 있어도 저들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 같네.”
“맞아요. 이번 던전공략을 통해 수호신들과 파괴신들의 진영에 저희의 존재가 완벽하게 노출됐어요.”
카라의 심각한 표정에 강건우가 미소를 지으며 쓰다듬어 주었다.
“걱정 하지 마. 우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닐걸? 수호자든 간에 파괴자든 간에 다 오라고 해.”
“멋있다. 강건우!”
“제가 목숨을 바쳐 돕겠습니다.”
패기 넘치는 강건우의 말에 두 사람이 호응해주었다. 원탁회의실이 남자들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그런 세 사람을 카라가 진정시키려 나섰다.
“화이팅은 좋지만. 할 일은 해야겠죠?”
강건우와 두 사람이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한참을 상의했다. 오랜 상의 끝에 세 가지 안건을 가장 먼저 처리하기로 했다.
첫째. 팔크람의 연구소를 소환하여 아크로 폴리스 내부의 발전에 힘쓴다.
둘째. 부족한 초기 각성자의 수를 늘리기 위해 각성의 재능이 있는 인재를 찾는다.
셋째. 한국에 자리 잡은 수호자와 파괴자의 현재 상황을 조사하고 방어 대책을 세운다.
방향을 정하자 해야 할 일들이 넘쳐났다. 강건우가 상태창을 호출했다.
“상태창.”
이름 : 강건우
진 영 : 중 립
직 업 : 조율자
각성등급 / 잠재등급 : S 랭크 / SSS 랭크
보유 포인트 : 13535200P
보유 스킬 ( 6 / 6 ) : 홍염의 칼날[Epic], 고귀한 후계자[Unique], 태초의 함성[Legend], 수호의 힘[Unique], 파괴의 힘[Unique], 전역 도발[Epic]
만신전 퀘스트를 완료하고 받은 포인트로 지갑이 두둑해진 느낌이었다. 먼저 본거지 정보석에 100만 포인트를 저장했다. 아크로폴리스의 관리유지에 쓰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생긴 대량의 포인트에 박태정의 입이 귓가에 걸렸다.
“감사합니다. 건우님.”
“뭐... 이 정도 가지고.”
조율자의 방에서 할 일이 끝났다. 강건우가 팔크람의 연구소를 소환할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주환이 형, 같이 가자. 팔크람 만나야지.”
“오케이. 드디어 그 드워프 아가씨를 다시 만나는구먼.”
강건우와 김주환이 조율자의 성 밖으로 나왔다. 다시 괴상한 복장을 착용하려는 강건우를 카라와 김주환이 뜯어말렸다.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 벌이며 강건우의 애마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강건우가 자신의 애마 롤스로이스 팬텀을 만지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오오! 얼마 만이냐 팬텀이. 너 타고 싶어 죽는 줄 알았다.”
“무슨 애칭이 그따위야?”
어이없는 모습에 김주환이 퉁명스럽게 말하며 차에 탑승했다. 핀잔을 들은 강건우가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운전석에 앉았다.
“건우님, 역시 장비 제작소 근처에 소환 하실 거죠?”
“응, 그게 효율적이지 않을까?”
“일단 빨리 가자. 빨리 소환하는 거 보고 싶다고.”
김주환의 재촉에 강건우가 시동을 걸었다. 부드럽지만 강력한 엔진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건우가 설레는 마음으로 차를 출발시켰다.
“어라? 이젠 제법 차들이 다니네?”
지난번의 도로상황과는 달리 적지 않은 수의 차들이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아크로폴리스가 그만큼 안전하다는 증거였다.
“그게···. 이제 사람들이 출퇴근도 하고. 일상생활이 어느 정도 회복된 거 같아.”
김주환의 설명을 들은 강건우가 묘한 기분을 느꼈다. 거대한 생츄어리라 해도 이 정도의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안전을 보장받고 근대사회의 생활 수준만을 누릴 뿐이었다.
‘차는 말할 것도 없고. 현대적인 생활 자체가 불가능했지.’
팔크람의 연구소를 소환할 장소로 직행하려던 강건우의 마음이 바뀌었다. 아크로폴리스의 변화를 직접 눈에 담고 싶었다. 차를 돌려 강서구 전체를 돌아보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시간 내기 더 힘들 테니까 지금 확인해보자고.”
“그래, 눈으로 확인하면 제법 놀랄 거다.”
“저도 기대돼요 건우님!”
그렇게 강서구 전체를 돌기 시작했다. 몇몇 상점들은 영업을 시작한 곳이 있었다. 부서진 건물과 시설물들을 정비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강건우가 돌아다니는 곳곳에 맡은 바 일을 하고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생기가 가득한 표정들이었다.
‘이게···. 우리가 만들어 낸 삶의 터전인가···.’
도시의 중심을 벗어나 외곽에 도착했다. 성벽의 위쪽에는 경계를 서고 있는 강제 각성자들이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성벽 밖을 바라보는 모습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다들 잘하고 있네.”
“건우야, 솔직히 밖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할 지경이다.”
김주환의 말을 들은 강건우의 표정이 묘했다. 그런 강건우의 표정을 읽은 김주환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
“.....”
한동안 차 안에 어색한 적막이 흘렀다. 그렇게 강서구를 둘러보던 강건우가 차를 돌려 장비 제작소로 향했다. 장비 제작소에 도착한 강건우가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의 모습을 확인한 강건우가 감탄성을 내뱉었다.
“대단한데? 벌써 저렇게나 활성화시켰단 말이야?”
“그게···. 인간의 능력은 생각보다 위대하더라고. 밤낮없이 작업에 몰두하더니 이젠 제법 그럴싸한 장비들을 만들어 낸다.”
거대한 공방 안에서 수많은 사람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직 고차원적인 장비들을 다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기본 장비를 통해 쓸만한 장비들을 생산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기초단계가 잘 잡혀있네.”
“그렇지. 이젠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할 때인 거 같다.”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팔크람을 소환해야겠어.”
“건우님, 어서 가요!”
강건우가 장비 제작소를 나와 공터로 향했다. 엄청난 넓이의 공터에 도착한 강건우가 조율자의 상점에 접속했다. 그리고 팔크람의 연구소를 구매했다.
[시설물 설치 모드 시작합니다.]
눈앞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강건우가 팔크람의 연구소를 클릭했다. 그리고 공터 위로 올려놓았다.
“시설물 설치.”
[주의 – 정말 이 장소에 팔크람의 연구소를 설치 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강건우가 설치 버튼을 눌렀다. 공터에 흑백의 빛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지자 공터는 사라지고 웅장한 모습의 건물이 나타났다. 강건우와 김주환이 멍한 얼굴로 건물을 바라보았다. 마치 애니메이션 속 미래의 최첨단 건물 같은 자태였다.
두 사람이 멍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팔크람 연구소의 정문이 벌컥 열리며 익숙한 모습의 드워프가 뛰어나왔다.
“강건우! 너 이 새끼!”
멸망한 제국의 공주 팔크람. 여전히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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