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43화 (44/99)

파괴신 헬리(2)

울창한 원시림의 나무들 사이로 강건우와 원시 엘프가 대치 중이었다. 원시 엘프의 손에는 처음 보는 서로의 모습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강건우가 손에 쥔 검을 등에 걸쳐 멨다.

그리고 양손을 어깨 위로 살짝 들었다 내렸다.

“난 강건우라고 한다. 곤충들이 나에게 달려들어 막은 것뿐이야.”

강건우의 말에 원시 엘프가 겨누고 있던 활을 내려놓았다. 활에 메겨져 있던 에테르 화살이 빛으로 화해 사라졌다. 그 모습을 강거우가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위대한 어머니의 12번째 자식 ‘엘라 보’라고 한다. 처음 보는 생명체여. 자연을 파괴하는 것을 멈춰라.”

“자연을 파괴한 게 아니라니까? 원시림 자체가 날 잡아먹겠다고 덤벼드는데 그럼 가만히 있나?”

강건우의 말을 들은 엘라 보가 눈을 감고 양손을 미간 앞으로 모았다. 그 일련의 동작들이 마치 성호를 긋는 성직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어머니의 숲이 그대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방인.”

무덤덤하게 말하는 원시 엘프의 반응에 카라가 강건우의 품속에서 속삭였다.

“건우님, 확실히 크리쳐들의 반응이 오크들과 똑같아요.”

“역시 태초의 함성이 효과를 보는군.”

사실 강건우는 원시림에 들어서 직후 태초의 함성을 사용했었다. 그리고 힘에 이끌린 원시 엘프가 나타난 것이었다. 강건우와 카라의 대화를 묵묵히 지켜보던 엘라 보가 입을 열었다.

“돌아가라. 위대한 어머니의 세계를 더 이상 욕보이지 말라.”

“이봐. 난 그 위대한 어머니를 좀 만나야겠어.”

강건우의 말에 엘라 보가 크게 노하며 활을 겨누었다.

“감히! 신성한 어머니를 이방인의 입에 올리는가!”

엘라 보의 활에 에테르 화살이 생겨났다. 싱그러운 녹색의 빛을 띄고 있는 화살에는 무시무시한 힘이 담겨있었다. 강건우가 검을 들어 홍염을 일으켰다. 그리고 엘라 보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내가 말로 풀라고 할 때 듣는 게 좋을 거야. 위대한 어머니인지 뭔지 확 다 불살라 버리는 수가 있어.”

강건우는 화가 났다.

위대한 어머니는 이 던전을 만든 신의 아바타임에 틀림없었다. 원시 엘프는 자신을 만든 신의 정체와 목적을 모른 채 맹목적인 신앙심에 쌓여있었다. 신들은 목적을 위해 피조물들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지구도 인간들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전쟁의 소모품으로 사용하는 거겠지!’

분노에 가득 차 이글거리는 강건우의 눈동자에 엘라 보가 움찔했다. 하지만 자신은 어머니의 자긍심 높은 12번째 자식.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활을 고쳐 잡았다.

“그래, 오늘 그냥 싹 다 뒤집어엎자. 네놈들을 패다 보면 신도 기어 나오겠지!”

강건우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는 인벤토리에서 전투집중[Normal] 스킬스톤을 꺼내 사용했다. 순식간에 온몸에 고양감이 차오르며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했다.

“흐압!”

강건우가 기합을 외치며 땅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믿기 힘든 몸놀림이었다. 당황한 엘라 보가 잡고 있던 활의 시위를 놓았다. 지잉! 하고 활대가 울리는 소리와 함께 에테르의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허접하군. 이래서야 나를 맞출 수 있겠어?”

강건우가 날아오는 화살을 가볍게 피하며 엘라 보를 조롱했다. 전투집중의 효과는 정말 대단했다. 날아오는 에테르 화살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일 정도였다. 강건우가 순식간에 엘라 보의 지척까지 당도했다.

“크흑!”

당황한 엘라 보가 뒷걸음을 쳤다. 하지만 강건우가 한발 앞서 엘라 보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으아악!”

엘라 보가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격통에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원시림에서 엘프들의 위치는 절대적인 강자였다. 모든 것이 사냥감들이었고. 숲은 자신들에게 관대했다.

“엄살은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인마.”

강건우의 무자비한 폭행이 시작되었다. 강력한 힘이 실린 주먹이 엘레 보의 몸에 계속해서 꽂혔다. 엘라 보가 몸을 웅크린 채 비명을 질렀다.

“그···. 그만! 어머니의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개소리 하는 거 보니 덜 맞았네.”

그렇게 한동안 무자비한 구타가 이어졌다. 엘라 보가 의식을 잃고 쓰려졌다.

“생각보다 맷집이 약한데?”

그때 강건우가 황급히 몸을 피했다. 그러자 땅이 파이는 소리와 함께 붉은색의 에테르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빨리도 온다.”

“이방인. 나의 형제에게 무슨 짓을 한 건가?”

숲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강건우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숨어있지 말고 나와. 아니면 내가 갈까?”

“오만하군. 혼자의 몸으로 원시림의 분노를 감당하려 하는가?”

말이 끝남과 동시에 또 한 명의 원시 엘프가 나타났다. 엘라 보와 같은 생김새에 덩치가 더 큰 엘프였다. 또한, 이마에 찍혀있는 문신에서 밝은 빛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난 어머니의 두 번째 자식 ‘엘라 레’다.”

강건우에게 자신을 소개한 엘라 레가 엘라 보를 쳐다보았다. 무심한 눈빛에는 어떤 감정도 존재하지 않았다.

“형제가 저 꼴인데 화도 나지 않는가 봐?”

“약한 자는 도태될 뿐. 그것이 숲의 법칙이다.”

엘라 레의 차가운 말에 강건우가 실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카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카라,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네?”

“네, 아무래도 이 던전이 주인은 파괴신의 진영인가 봐요.”

“번지수가 약간 틀렸네. 뭐. 상관은 없지만.”

강건우가 검을 땅에 박아넣었다. 그리고 엘라 레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를 너희들의 어머니에게 인도해.”

강건우의 오만한 말에 엘라 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싸움을 걸어올 기세였다. 강건우가 검을 땅에서 뽑아 들었다. 그리고 검에 홍염을 일으켰다. 그 순간이었다. 엘라 레가 갑자기 성호를 그으며 멍한 얼굴을 했다.

“카라, 재 왜 저래?”

“아마, 신탁을 받나 봐요. 신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져요.”

카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엘라 레가 활을 거두며 말했다.

“따라와라. 어머니께서 보자신다.”

엘라 레가 등을 돌려 숲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쓰러져 있는 엘라 보를 힐끗 바라보았지만, 그뿐이었다. 강건우가 쓰러진 형제를 무시한 채 떠나는 엘라 레의 뒤를 따라갔다.

“형제라며? 그냥 버리고 갈 건가?”

강건우의 말에 엘라 레가 멈춰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 엘라 보를 가리켰다.

“약자는 도태된다. 그게 내 형제일지라도. 이제 엘라 보의 생사는 숲의 섭리가 결정한다.”

무심한 말투로 강건우에게 말한 엘라 레가 다시 숲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엘라 레가 향한 숲 방향을 잠시 바라보던 강건우가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냈다.

“카라, 이거 가지고 가서 먹이고 와.”

“건우님, 크리쳐들한테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어요.”

깜짝 놀라 말하는 카라를 쓰다듬어 준 강건우가 엘라 보를 가리켰다.

“아직 숨은 붙어있는 것 같으니까. 어떤 반응이 나타날지 궁금해서 그래.”

“네, 알겠어요.”

카라가 고개를 자신이 몸만 한 포션을 낑낑거리며 받아 들었다. 엘라 보의 곁에 도착한 카라가 포션을 입안으로 부었다.

그러자 은은한 빛이 엘라 보를 감쌌다.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어? 건우님, 효과가 있어요.”

“그치? 엘라 보라는 엘프 분명히 단순 크리쳐는 아닐 거야.”

“음···. 타쿠가 님처럼 신의 권속이었나 봐요.”

“아마도. 그렇겠지?”

강건우가 품으로 날아든 카라와 함께 사라진 엘라 레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

엘라 레와 함께 걷는 강건우가 주변을 살피며 감탄했다. 엘프와 동행해서였을까 자신을 죽일 듯이 덤벼들던 원시림 생물들의 행동이 달라졌다. 마치 포식자를 만난 먹잇감처럼 황급히 자리를 뜨거나 숨기 바빴다.

‘귀찮게 구는 놈들이 없으니 참 풍경은 좋은 곳이네.;

여유가 생긴 강건우가 신비한 풍경의 원시림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었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외계 행성의 자연환경 같았다. 묵묵히 길을 걷던 엘라 레가 강건우를 힐끗 바라보았다.

“인간이라고 했나? 어머니를 만나면 예를 갖추는 게 좋을 거다.”

“일단 만나보고 결정하지.”

시종일관 오만한 강건우의 태도에 엘라 레의 심기가 더욱 안 좋아졌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만나자 하는 손님이었다. 만나고자 하는 의도를 알 수 없는 지금은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왜 이런 하등한 생명체를 만나려 하시는 건가.‘

강건우는 엘라 레의 불편한 심기를 신경 쓰지 않았다.

연신 감탄성을 뱉으며 관광을 나온 듯 여유롭게 행동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걷자 주변의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수목이 우거진 숲의 모습은 사라지고 거대한 분지가 나타났다.

“건우 님, 저기 보세요.”

“와우! 진짜 큰데?”

분지의 중앙에는 투명한 장막에 둘러싸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나무가 서 있었다. 엄청난 크기에 강건우가 지구의 건물을 떠올렸다.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롯데타워 몇 개는 합쳐놓은 것 같은 크기네.”

“건우님, 신의 파동이 강렬하게 흘러나오고 있어요.”

두 사람이 대화를 마치고 엘라 레를 바라보았다. 무릎을 꿇은 경건한 자세로 양손을 이마게 가져다 댄 채 의식을 치르는 중이었다.

“위대한 어머니의 땅에 무사히 돌아옴에 감사드립니다.”

의식을 마친 엘라 레가 벌떡 일어나 강건우를 향해 경고했다.

“지금부터 어머니의 땅이다. 이방인은 불경한 행동을 하지 말라.”

“얼른 가기나 하자.”

강건우의 행동에 엘라 레가 무엇인가 말하려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그리고 등을 돌려 나무를 향해 나아갔다.

잠시 후, 강건우가 엘프들의 서식처인 거대한 나무에 도착했다. 강건우가 나무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 큰 나무안에 엘프들이 산다면 숫자는 엄청나겠는걸?’

거대한 나무는 속이 비어있었다. 그 안으로는 원시 엘프들의 거처가 늘어서 있었다. 나뭇잎을 엮어 만든 집들이 나무줄기를 이용한 밧줄로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무의 최상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었다. 그 계단의 초입에 원시 엘프 장로를 비롯한 10명의 원시 엘프들이 강건우를 맞이해 주었다.

”어머니의 품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대가 이곳을 방문하는 첫 번째 이방인이다.“

근엄한 목소리로 말하는 원시 엘프 장로를 강건우가 살펴보았다. 검은색 로브를 입고 커다란 지팡이를 집고 있었다. 이마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칠흑 같은 검은색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문양이었다. 강건우가 태초의 힘을 실어 인사를 건냈다.

”난, 던전을 귀속하러 온 조율자 강건우다. 너희들의 신을 만나러 왔다.“

”무···. 무슨···. 말···. 신이라면···.“

”크윽···. 이놈 무슨 짓을 한 건가?“

태초의 함성에 영향을 받은 것일까. 원시 엘프들이 괴로워하며 횡설수설했다. 그때 나무의 최상층에서 검은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강건우! 나의 권속들을 건드리지 마라!“

강건우가 진탕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차갑게 웃었다.

”드디어 나타나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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