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41화 (42/99)

수호신 콰라(2)

그리핀의 협곡에 있는 암컷 우두머리의 둥지를 이진호가 지켜보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암석봉우리 아래쪽의 평지에 이진호가 누워있었다.

“그것참. 구름 한 점 없이 어쩜 이리 하늘이 맑은 걸까? 미세먼지도 없고 최고네.”

마나 런처를 베게 삼아 누워있는 모습에서 둥지를 지키던 초반의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던 이진호가 갑자기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아.. 배고픈데.. 오늘 저녁은 컵라면에 볶음김치나 먹어야겠다.”

던전 안에 있는 상태라고는 볼 수 없는 느긋함이었다. 그때였다. 돌연 하늘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맙소사! 던전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거대한 빛이 그리핀의 협곡으로 쏟아졌다.

“윽! 뭐야?!”

너무나도 강렬한 빛에 이진호가 눈을 찌푸렸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진 자리에 순백의 아우라를 뿜어내는 한 명의 여성이 나타났다.

“C 랭크 – 그리핀의 협곡. 판 행성의 신 콰라의 소유.”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여성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흠.. 콰라가 여기에 쏟아부은 포인트가 제법이던데. 던전 삭제라니.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말을 마친 여성이 한 손을 앞으로 뻗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여성의 주변으로 엄청난 기운이 일어나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한쪽 편에 숨어 그 장면을 지켜보던 이진호가 밀려오는 고통에 신음성을 뱉었다.

“큭!”

순백의 빛이 그리핀의 협곡을 휩쓸고 지나갔다. 빛이 사라지자 그리핀의 협곡은 물론이고 이진호의 모습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완벽하게 지워진 백지장 같은 공간에 홀로 떠 있던 여성이 입을 열었다.

“흠······. 던전 정리는 이 정도면 됐고. 이제 조율자가 돌아갈 포탈만 열어두면 끝이군.”

말을 마친 여성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포탈이 생겨났다.

“강건우. 다음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으면 좋겠군.”

여성의 몸에서 하얀빛이 쏟아져 나오며 사라졌다.

***

그리핀의 협곡이 사라진 경계선에 강건우와 김주환이 나타났다. 그리핀의 협곡이 사라졌다는 소식에 곧바로 달려온 것이었다. 협곡을 바라보던 강건우가 퀘스트를 떠올렸다.

[조율자 퀘스트]

목표 – 카라와 만신전의 연결 (수호자 진영 – 완료), (파괴자 진영 – 미연결)

내용: 조율자는 아마겟돈을 심판하는 존재이다.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만신전의 기운이 담긴 결정석을 카라에게 흡수시켜라.

보상 : 10000000P

퀘스트를 확인한 강건우가 얼마 전 라헬과의 일을 떠올렸다. 아마겟돈의 관리와 조율을 위해 카라를 통해 만신전과의 직접적인 링크가 가능했다. 연결을 통해 조율자의 방에는 수호진영의 만신전과 연결할 수 있는 비석이 생겨났다. 그 비석을 통해 각 진영 신들이 내리는 퀘스트를 삭제하거나 수행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생각에서 빠져나온 강건우가 카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카라, 무전기의 신호는 잡혀?”

강건우가 이진호가 가지고 있는 무전기에 대해서 물었다. 카라가 강건우의 품에서 고개를 내밀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가리켰다.

“저 안쪽에서 희미하게 기운이 느껴져요.”

“그래? 그럼 안으로 들어가 보자.”

김주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건우야, 진호는 무사하겠지?”

“그러길 바라야지. 어서 가보자.”

강건우가 김주환을 안심시키며 발걸음을 옮겼다. 앞서가는 강건우의 등을 바라보던 김주환이 표정에 안도감이 서렸다.

‘참.. 의지가 되는 스타일이야.’

앞장서 걸어가던 강건우가 알레르리 초원과 사라진 협곡의 경계선에 멈춰섰다. 그리고 손을 뻗어 보았다.

“카라, 이상해 이 초원과 이 안쪽의 느낌이 너무 달라.”

“네, 협곡이 있던 자리는 지금 던전의 설정이 초기화 된 상태에요. 말 그대로 무의 공간이죠.”

강건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카라를 바라보았다.

“초기화? 그럼 콰라가 벌인 일인가?”

“아닐거에요. 콰라님이 남은 포인트가 얼마 없다고 하셨잖아요?”

“응, 그렇게 말했지.”

카라가 강건우의 어깨 위로 날아와 앉았다.

“신이 포인트를 이용해서 던전을 만들고. 각성자들은 그 던전을 공략해 힘을 키우죠. 수호자와 파괴자는 던전공략을 해 포인트를 모아요. 그리고 자신이 속한 진영의 신에게 포인트를 바쳐 랭크 업을 하고 무기와 스킬을 사고 자신의 본거지를 성장시키죠.”

카라의 설명에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들에게서 신앙심을 모으거나 반대로 죽이고 파괴해서 모은 포인트를 바치지. 한마디로 신들은 던전에 투자를 한거군.”

“그런 셈이죠. 그렇게 각성자들로부터 모인 포인트는 신들에게 분배되죠. 결국 많은 포인트를 모은 진영의 신들이 승리하는 거예요.”

강건우와 카라의 말을 듣던 김주환이 물었다.

“그러니까, 결국 이 던전의 주인이 저렇게 자신이 투자한 곳을 망쳐 놀 리가 없다는 거지?”

“그렇죠, 아마 수호신의 진영에서 콰라님에게 벌을 내린 것 같아요.”

카라의 설명에 강건우와 김주환이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특히 강건우는 마음이 불편했다. 자신에게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 대가로 벌을 받은 것이 확실했다. 처음 만난 자신에게 왜 그런 호의를 베풀었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차갑게 굴더니.. 왜 그런 걸까?’

그때, 눈을 감고 안쪽의 기운을 자세히 살펴보던 카라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건우 님, 안쪽에서 던전을 나갈 수 있는 포탈의 기운이 느껴져요.”

“건우야, 안쪽으로 들어가도 안전할까? 혹시 수호신 쪽에서 무슨 장난을 쳤을지 모르잖아?”

김주환의 질문에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라가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건우님, 신들은 제약에 의해 조율자를 직접적으로 해칠 수 없어요.”

“맞아, 콰라의 공격도 나한테는 아무런 피해가 없었지. 그럼 주환이 형은?”

강건우의 질문에 카라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김주환의 어깨에 날아가 앉았다.

“주환 님은 장담할 수 없어요. 하지만 별일이야 있겠어요?”

장난스러운 카라의 말에 김주환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카라를 쳐다보았다.

“카라, 너 사람 차별하는 거 아니다?”

“헤헤. 장난이에요. 물론 신들이 각성자들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어요. 하지만 많은 포인트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아마겟돈의 초기인 지금은 그럴 여유는 없지 않을까요?”

카라가 김주환에게 설명을 끝냈다. 그리고는 멍한 표정의 김주환에게 혀를 내밀며 강건우에게로 돌아갔다. 김주환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귀여웠다.

자신에게 돌아온 카라를 한차례 쓰다듬어준 강건우가 김주환을 바라보았다.

“안쪽에 들어가면 우선 진호부터 찾아보자. 그리고 나서 포탈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오케이. 빨리 들어가자 진호 걱정돼 죽겠다.”

“제가 앞장설게요.”

카라가 힘차게 말하며 경계선을 넘어섰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보던 강건우와 김주환이 긴장이 풀렸는지 한숨을 쉬었다.

“후······. 진짜 각성자가 되고 나서는 긴장의 연속이다.”

“앞으로 더 긴장해야 할 걸?”

강건우가 김주환의 등을 툭 하고 쳐주고는 경계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주환이 자신의 양 볼을 힘차게 때린 후 뒤따랐다.

***

온통 하얀색으로 도배된 공간에 반투명한 구체가 떠 있었다. 구체의 크기는 성인남성 열 댓명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컸다. 그리고 그 안에 이진호가 팔짱을 끼고 앉아있었다.

“주환이 형님 들리십니까? 건우님, 응답하십시오. 젠장!”

이진호가 손에 들고 있던 무전기를 집어 던졌다. 며칠째 응답이 없는 무전기를 쳐다보는 것도 이제는 지겨웠다. 뒤로 벌러덩 누워버린 이진호가 기억을 더듬었다.

‘도대체 이 구체는 뭐야? 힘으로도 깨지지 않고. 벌써 며칠째 가둬두는 이유가 뭔데!’

의식을 잃었던 이진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구체안이었다. 그 뒤로 구체를 나오기 위해 온갖 방법을 사용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이진호가 몸을 일으켜 품속에서 에너지바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아..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식량은 떨어져 가고. 이걸 어쩐다?’

이진호는 각성자의 초인적인 신체 능력으로 생리 현상과 배고픔을 참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장기화 된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진호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한쪽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무전기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 호... 응... 지직-

“건우?!”

이진호가 황급히 다가가 무전기를 들었다. 하지만 방금 전의 소리를 끝으로 아무런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건우가 나를 찾고 있는 게 확실해! 아마도 여기는 던전 안인가 보군!’

같은 던전 안에서만 송수신이 가능한 무전기였다. 이진호가 희망에 차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기약은 없었지만 버티기만 한다며 반드시 자신을 찾아낼 거라 믿었다.

‘일단 최대한 힘을 아껴야겠군.’

이진호가 반쯤 남은 에너지바를 소중히 품속에 넣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힘을 아껴 구조되기를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바람 소리 한 점 없는 공간에 이진호의 노래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숨 막히는 고통도 뼈를 깎는 아픔도 승리의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라!”

목청이 터져라 부르는 노래는 군가인 최후의 5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노래하던 이진호가 허탈한 표정으로 노래를 멈췄다.

“야! 강건우! 빨리 좀 찾아내라고!”

백색의 공간에 반투명한 구체 속에서 지낸 지 한참. 이진호의 평정심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답답함을 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초인이 된 육체와 달리 정신력은 아직 평범한 인간이었다.

“하... 이러다 여기서 늙어 죽거나 굶어 죽거나 둘 중에 하나겠어.”

이진호가 자포자기 한 심정으로 멍하니 누워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숨 막히는 침묵과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이진호가 벌떡 일어나며 구체의 한쪽 벽으로 다가가 귀를 댔다.

저벅. 저벅.

침묵을 깨는 발자국소리가 들려왔다. 이진호의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어. 건우가 온 건가?’

하지만 기대를 깨고 나타난 인물은 여신 콰라였다. 은은한 빛을 발산하는 여신의 자태에 이진호의 입이 벌어졌다.

“누.. 누구십니까?”

“시간이 없어요. 요점만 간단히 말할게요. 제가 무전기에 제 힘을 조금 심어놓을게요. 그 힘을 이용하면 강건우에게 위치가 전달될 거에요.”

콰라의 말에 이진호가 고개를 돌려 무전기를 찾았다.

“무전기가 빛나고 있어?”

구체의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무전기가 옅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무전기를 확인한 이진호가 고개를 돌렸다.

“어? 어디 갔어?”

방금 전까지 콰라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진호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멍해졌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이진호가 황급히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확인이나 해보자.”

혹시 모를 불안감이 생겼지만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무전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무전기에서 나오던 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와.. 이젠 헛것이 보이는 건가?”

이진호가 허탈한 심정으로 자조 섞인 말을 하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으악! 카..카라?”

하늘을 바라보던 이진호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구체의 윗부분으로 흑백의 빛을 뿌리는 카라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었다. 구체에 부딪힌 충격을 털어내려 머리를 흔든 카라가 이진호를 발견했다. 얼굴 가득 득의양양한 표정인 카라가 입을 열었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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