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40화 (41/99)

수호신 콰라(1)

천막 안의 풍경은 놀라웠다. 타쿠가와 침상에 누워있는 족장 카할은 미동도 없었다. 내부를 밝혀주던 횃불도 얼어버린 듯 멈춰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모습이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강건우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제길···.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더니.’

그때 천막 안에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구나. 최근에 던전에 문제를 일으키고 다닌다던 각성자가.”

사람이 목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기품이 있었다. 흩어지려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으려는 듯 강건우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으윽! 이게 무슨 일이야? 넌 누구야?!”

“호호호! 이거 보통내기가 아닌데? 신의 목소리를 듣고도 정신을 유지한단 말이야?”

강건우가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는 온몸에 화려한 문신을 새긴 여성 오크가 서 있었다. 오크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강건우를 바라보던 여성 오크가 강건우를 향해 다가왔다.

“안녕? 난 오크들의 신 콰라야. 그리고 이 모습은 주술사 쿠랄이기도 하지.”

“어째서 신이 그런 모습으로 여기 있는 거지?”

강건우가 인벤토리에서 한손검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오크의 신 콰라가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성격이 그렇게 급해서야 어디 제대로 된 대화가 되겠어?”

콰라가 강건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얀색 빛줄기가 강건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당황한 강건우가 방패를 들어 막으려 했다.

“제길!”

흰색의 빛줄기가 방패에 부딪히려는 순간이었다. 강건우의 몸에서 흑백이 섞인 빛이 터져 나와 흰색의 빛줄기를 소멸시켰다.

“이익! 이 빌어먹을 제약 같으니라고! 역시, 넌 그분의 후계자였구나!”

자신의 힘이 소멸하자 콰라가 잔뜩 열이 받은 듯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오크들의 신다운 성격이었다. 강건우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젠장. 카라가 없으니 너무 답답해.’

새로운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명쾌하게 설명해주던 카라의 존재가 그리웠다. 강건우가 빠르게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은 확실해. 하지만 저놈의 힘도 나에게 해를 줄 수는 없는 것 같군.’

강건우가 생각에서 빠져 나왔다. 한결 여유를 되찾아 표정도 훨씬 좋아졌다. 강건우가 특유의 건방진 말투로 신을 향해 말했다.

“통하지도 않는데, 괜히 힘만 빼지 말고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봐.”

신을 향한 인간의 도발에 콰라의 얼굴이 더욱 벌게졌다. 하지만 강건우를 어찌할 수 없었다. 콰라가 흥분을 가라앉히며 입을 열었다.

“흥! 너도 조율자의 힘을 완벽히 갖춘 상태는 아닌 것 같은데? 역시 그분이 힘을 잃고 잠들었다는 게 사실이었어.”

강건우는 속으로 뜨끔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

“대답해.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거야?!”

“네놈이 내 던전을 뺏어 가지 못하게 막으러 왔지!”

강건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리 네가 그분의 후계자라 해도 너무 막 나가지는 않는 게 좋아.”

“좀 이해할 수 있게 말해줘!”

강건우의 질문에 콰라가 흰색의 오라를 뿜어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 너의 존재를 확인했으니 앞으로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알 수 없는 콰라의 말에 강건우가 이마를 찌푸렸다. 카라의 존재가 간절해지는 순간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네.”

“일단 이 던전에서 빨리 나가! 네가 들어오는 바람에 오크들의 설정이 어그러졌어.”

“설정?”

“내가 간신히 세뇌해놓은 내 오크들이 너 때문에 본래의 기억을 찾아가고 있다고.”

“타쿠가 같은 경우를 말하는 건가?”

강건우의 날카로운 질문에 콰라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강대한 힘이 느껴졌다. 강건우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네가 아무리 조율자라고 하지만 아직 필멸자의 몸이라는 걸 잊지 마."

“발끈하는 걸 보니 큰 비밀이라도 숨겨놓았나 보군."

콰라의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 강건우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여기 있는 오크 중에 자의식이 존재하는 오크들을 조사했어.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모두 달랐지만, 한 가지는 공통으로 기억하더군.”

“자신들의 행성 이름. 그리고 나의 이름.”

콰라가 자조하듯 말했다. 어느덧 차가웠던 표정도 변해있었다. 순식간에 변하는 여신의 감정에 강건우는 적응할 수 없었다.

‘신이라는 존재가 감정이 저리 변덕스러워?’

콰라가 강건우를 지긋이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실로 변화무쌍한 감정을 소유한 신이었다.

“그래, 어차피 너라면 나중에는 다 알게 될 사실이니까···.”

콰라가 손짓을 하자 주변의 풍경이 변했다. 싱그러운 풀들이 바람에 일렁이는 초원을 배경으로 강건우의 눈앞에 탁자와 의자가 나타났다.

“앉아, 긴 이야기가 될 거야.”

“그러지.”

강건우가 의자에 앉자 콰라가 손짓으로 따듯한 차를 만들어 냈다. 향긋한 냄새에 강건우의 손이 자연스럽게 찻잔을 들었다.

“판 대륙. 오크들의 고향이야. 그리고 난 판 행성의 신들 중 오크들의 신이지.”

“판 행성은 신이 여럿, 존재하는가 보네?”

“나 말고도 3명의 신이 더 존재해. 우리는 서로 행성 주신의 자리를 놓고 수만 년을 싸워왔지.”

강건우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수만 년이라니 상상할 수 없는 세월이었다.

“하···. 수만 년이라니 현실감이 안 드네.”

“그 긴 전쟁에서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어. 그때 수호신의 만신전 측에서 내게 접근했지. 곧 있을 아마겟돈에 관한 이야기였어.

강건우가 깜짝 놀라 찻잔을 내려놓았다. 아마겟돈은 즉흥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콰라가 강건우에게 싱긋 웃어 준 뒤 설명을 이어갔다.

“놀라지 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아마겟돈의 예정되어 있었어.”

“음······.”

“단지 그분이 자신의 힘을 이렇게까지 소진하면서 제약을 크게 걸어둘지는 몰랐어.”

강건우가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너희들이 말하는 ‘그분’은 도대체 뭐를 지칭하는 거야?”

“그건 내 입으로 말할 수 없어. 그분을 모욕하는 행위야.”

고개를 저으며 말을 하는 콰라의 얼굴에는 경외감이 서려 있었다.

‘쳇···.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존재 이길래···.’

강건우가 속으로 투덜거렸다. 콰라가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제 내 이야기로 돌아와서. 난 만신전의 제의를 받아들였어. 나를 향한 오크들의 신앙심을 포인트로 바꾸었지.”

콰라의 얼굴에 짖은 회한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포인트를 만신전에 바치고 수호신의 일부가 되었어. 그리고 남은 포인트로 던전을 만들었지.”

강건우가 눈이 크게 찢어졌다. 콰라의 말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그럼 신들이 던전을 만드는 과정에 포인트가 들어간다는 거야?”

“신들이 던전을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지.”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아. 자신의 행성을 본 따거나 자신의 취향을 반영해 창조한다고 했지.”

“호오? 어느 정도 알고 있네? 맞아.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행성에서 권속들을 데려다 던전을 만들거나 아예 창조하는 거지. 전자는 포인트가 적게 들고 후자는 엄청난 양의 포인트가 필요해.”

강건우가 어이없는 듯 피식 웃었다.

“신들의 세계에서도 수저가 갈리는 거냐?”

“호호. 인간들이 흔히 쓰는 수저론? 아주 완벽히 틀린 비유는 아니네. 그래 판 행성에서 점점 존재감을 잃어가던 난 적은 포인트로 던전을 만들 수밖에 없었어.”

콰라의 눈빛에서 슬픔을 느낀 강건우가 한숨을 쉬었다.

“하···. 그래서 타쿠가를 비롯한 일부 권속들을 이용해 이 던전을 만든 거구나?”

“맞아. 그리고 내 권속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리핀을 이 던전의 보스 크리쳐로 설정했지.”

강건우가 던전에 처음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던전의 주 타겟을 그리핀으로 돌리고 오크들은 의도적으로 외곽에 배치했어.’

강건우가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콰라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만 나가야겠어. 만신전에서 경고가 날라왔어. 강건우, 부탁이야 나의 존재에 대해 모른 척해줘. 나의 아이들이 진실을 아는 것을 원치 않아.”

강건우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네가 나에게 알려준 것도 있고 하니 약속하지.”

콰라가 기쁨에 찬 얼굴로 일어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내 던전을 뺏어 가지 말아줘!”

“뺏는다고? 내가?”

“그래. 조율자는 아마겟돈을 조율하는 심판관 같은 존재. 너에게 귀속된 던전은 신들에게는 압류나 다름없다고.”

강건우가 망치로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콰라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리고 조심해. 이제 조율자의 존재가 모든 신에게 알려질 거야. 나 같이 약한 신이 아닌 강력한 존재가 너를 노릴 거야. 특히 파괴신들을 조심해. 그들은···.”

콰라가 파괴신에 대해 언급하려 했다. 그 순간 콰라의 몸이 흐릿해지며 초원의 모습도 사라져갔다.

“으으···. 강건우 잊지 마. 귀속은 안 돼!”

안타까운 외침을 마지막으로 주변이 풍경이 변하며 족장의 천막으로 돌아왔다.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는 강건우의 귓가에 타쿠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건우, 뭐하고 서 있나? 여기 우리 부족의 주술사 쿠랄님이다.”

강건우가 황급히 시선을 돌려 쿠랄을 쳐다보았다. 쿠랄의 얼굴은 조금 전과는 달랐다. 같은 얼굴이지만 신비로운 느낌은 사라진 상태였다.

“반갑다. 나는 콰라님을 모시는 주술사 쿠랄이라 한다.”

“아···. 반갑습니다. 쿠랄님.”

강건우와 인사를 나눈 쿠랄이 지팡이로 족장을 가리켰다.

“족장님을 치료하느라 매우 피곤하다. 그대가 나를 만나려 한 이유가 뭐지?”

강건우가 시선을 돌려 족장을 바라보았다. 창백한 얼굴이 병색이 가득했다. 콰라의 당부가 떠오른 강건우가 잠시 망설였다.

‘이대로 넘어가는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군. 일단 카라를 만나서 상의해 봐야겠어.’

생각을 마친 강건우가 결심을 내렸다. 타쿠가와 다른 오크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콰라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닙니다. 그저 머물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강건우! 그게 무슨 말인가!”

의외의 말에 놀란 타쿠가가 크게 소리치며 강건우의 어깨를 잡았다. 강건우가 어깨에 올라온 손을 내려놓으며 타쿠가를 바라보았다.

“강건우?”

“.....”

타쿠가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강건우의 눈에서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낀 것이었다. 심오하게 빛나는 흑백의 눈동자를 바라보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타쿠가 나중에 다 이야기해줄게.”

“······.알겠다. 강건우 너라면 이유가 있겠지.”

주술사 쿠랄이 지팡이로 땅을 내리치며 몸을 돌렸다.

“더 할 말이 없으면 나는 휴식을 취하러 가겠다. 머무는 동안 콰라 님의 평안함이 함께하길.”

주술사가 족장의 옆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강건우가 그 모습을 잠시 주시했다.

‘확실히. 지금은 콰라가 아닌 것 같군. 주술사의 몸은 아바타 같은 역할인가?’

강건우가 타쿠가와 함께 천막을 나섰다. 그리고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타쿠가가 계속 말을 걸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강건우의 심각한 표정에 섣불리 말을 걸지 못했다.

그때였다. 멀리서 카라가 강건우를 발견하고 다급하게 날아왔다.

“건우 님! 도대체 어디를 다녀오신 거예요? 지금 큰일 났어요!”

“카라, 왜 그래? 또 무슨 일이야?”

카라가 강건우의 어깨에 앉았다.

“건우 님, 비석관리자 라헬님이 찾아왔어요!”

카라의 말에 강건우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비석을 관리하는 라헬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잠시 후 푸른늑대 부족 안쪽의 공터에 강건우와 라헬이 마주 섰다.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강건우를 바라보던 라헬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에요. 건우 님.”

“그러게. 다시는 볼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퉁명스럽게 말하는 강건우를 향해 눈웃음을 지은 라헬이 이곳에 나타난 목적을 밝혔다.

“콰라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적당한 선에서 징계를 받고 끝날 거예요.”

“누가 걱정했다고 그래?”

“그리고 이번 던전을 통해 조율자의 존재가 양쪽 진영의 만신전에 알려졌어요.”

라헬의 말에 강건우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너나 가헨이 이미 말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호호.”

라헬이 의미를 입가를 가리며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카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카라님, 이제 때가 된 것 같아요. 준비되셨나요?”

기묘한 힘이 실린 라헬의 목소리에 카라의 눈에서 백색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백색의 기운이 갈무리되자 카라가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됐어요.”

카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라헬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백색으로 빛나는 결정체가 카라를 향해 날아들었다. 온몸이 하얗게 빛나는 카라의 모습에 강건우가 당황했다.

“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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