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39화 (40/99)

그리핀 협곡(3)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를 거대한 알을 싫은 수레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 주변을 호위하듯 오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수레의 바로 뒤쪽에 타쿠가와 강건우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러니까. 며칠 전 갑자기 그리핀을 공격하기로 결정 났다는 거지?”

“그렇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리핀이 오크들을 사냥해 가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당연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핀의 협곡을 떠나 푸른늑대 부족이 있는 곳으로 떠난 강건우는 타쿠가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핀과의 관계, 푸른늑대 부족의 역사, 타쿠가의 어린시절 등등이었다. 하지만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빌어먹을 그리핀놈들이 부족의 주요인물을 사냥했다. 우리는 분노했다. 그러자 주술사의 명령이 떨어졌다.”

타쿠가에게는 타랄의 복수를 위해 그리핀과의 전쟁을 결정하던 순간부터의 기억만 있었다. 주술사의 후계자인 타랄이 그리핀에게 사냥을 당하자 분노한 주술사가 그리핀과의 전쟁을 명령했다는 것이었다.

‘다른 질문들에는 마치 고장난 컴퓨터마냥 멍해지고는 했지.’

타쿠가 자신도 이러한 현상에 당황했는지 잠시 강건우를 피해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강건우가 끈질기게 달라 붙은지 며칠이 지난 오늘. 타쿠가 역시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팔짱을 끼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건우에게 타쿠가가 말했다.

“강건우, 내 부하들에게도 너에게 받은 질문을 해봤다.”

“그래? 반응이 어땠어?”

“내 질문과는 상관없는 대답을 하거나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카라가 강건우의 품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건우님, 팔크람의 연구소에서 겪은 일과 매우 흡사해요.”“응, 나도 그렇게 생각 중이야.”

강건우와 카라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오크 행렬의 뒤쪽에서 김주환이 다가왔다.

“건우야, 진호한테서 연락이다.”

김주환이 무전기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진호는 현재 그리핀 협곡에 남아서 우두머리 암컷이 있던 둥지를 감시하는 중이었다.

“진호야, 나다 건우. 무슨 일 있어?”

-건우 님, 이 던전용 무전기 진짜 끝내줍니다. 거리가 이만큼이나 떨어져 있는데도 잘 들립니다.

이진호가 조율자의 상점에서 구매한 던전용 무전기의 성능에 감탄했다. 강건우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누가 군인 출신 아니랄까봐 그런다. 무전은 왜 친 거야?”

-아.. 그게 방금 전에 그리핀들의 사체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강건우가 깜짝 놀랐다.

협곡을 떠나오기 전 그리핀의 사체를 정리하는 오크들에게 부탁해 몇 마리의 사체를 남겨 두고 왔었다. 던전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장치로 남겨 둔 것이었다.

-그게, 마치 신기루처럼 흩어지더니 모습을 감췄습니다. 심지어 바닥에 묻었던 혈흔까지 사라졌습니다.

“그래? 알겠어. 혹시 위험한 일 생기면 바로 협곡 밖으로 나와야 해.”

-알겠습니다.

강건우가 위험한 일을 피하라는 말을 당부하며 무전을 끊었다. 옆에서 무전을 듣고 있던 김주환이 강건우에게 말했다.

“건우야, 이러다가 우리 던전에 영영 갇히는 건 아니겠지?”

“음.. 나도 장담은 못 해. 하지만 방법은 있을 거야.”

강건우의 대답에 김주환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오크들의 행렬 뒤쪽으로 돌아갔다.

“강건우, 왜 너의 동료와 함께 가지 않는 것이냐?”

“주환이 형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거든.”

타쿠가가 궁금한 듯 솥뚜껑 같은 손으로 머리를 긁었다.

“무슨 일인지 알려 줄 수 없는 건가?”

강건우의 품속에 있던 카라가 날개 짓을 하며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본 강건우가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설명이라면 저 카라가 해드릴게요.”

“하하. 또 시작이야?”

자신을 약 올리는 강건우의 콧등을 때려준 카라가 새침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지난 번 그리핀과의 전투 이후 오크들에게서 이상한 행동이 발견 됐어요. 건우님과 저희를 처음 보는듯한 행동이었죠.”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전투가 끝난 직후에 승리의 함성을 지르고 우릴 향해 말을 건넨 건 오크들이었지.”

“그 사건 이후 저희는 한가지 실험을 시작했어요. 타쿠가님의 권위를 상징하는 뼈목걸이를 이용해 간단한 명령을 내리기 시작한 거죠.”

타쿠가가 허전한 듯 목덜미를 만졌다.

“음.. 그래서 내 목걸이가 필요하다고 했군.”

“그 실험을 통해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게 뭐지?”

카라가 타쿠가의 눈앞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흑백의 빛가루를 뿌리며 입을 열었다.

“대부분의 오크들은 명령이 내려지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만 저희들을 인식했어요. 그리고 명령을 완수하고 나서는 마치 저희를 처음 보는듯한 행동을 보였죠.”

카라의 설명에 타쿠가가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그러다가 돌연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복잡한 건 질색이다. 간단하게 설명해다오.”

타쿠가의 모습에 강건우가 미소를 지었다.

“하하. 간단하게 말해서. 주환이형은 지금 너처럼 기억을 유지하고있는 오크와 그렇지 않은 오크를 구분해서 기록 중이야.”

“맞아요. 타쿠가님처럼 그리핀과의 전투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을 유지하고 있는 오크들을 구별해내고 있어요.”

두 사람의 말에 타쿠가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으으.. 너무 어렵다. 너희 인간들은 항상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강건우가 타쿠가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수레에 올라탔다.

“하하. 그럼 우리가 하는 일을 지켜만 봐. 오크들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을거야.”

“알겠다. 건우. 너희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은 믿고 있다.”

강건우가 타쿠가를 향해 기분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핀과의 전투 이후 행렬을 위해 먹을 것을 나누어준 것이 오크들과의 신뢰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강건우가 대량으로 베푼 맥주는 오크들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크리쳐들이 먹을 것이 없으면 굶어 죽는다는 설정도 이상하지... 여기는 던전인데 말이지.. 뭐,. 던전이라도 나름의 생태계는 존재한다라고 생각해야 하는걸까.’

수레 위에 몸을 눕힌 강건우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오크들의 행렬은 부족의 본거지를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

드넓은 초원에 거대한 목책이 둘러 싸고 있는 푸른늑대 부족의 본거지가 나타났다. 하루를 꼬박걸어 도착한 본거지의 규모에 강건우가 수레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와우. 생각보다 훨씬 규모가 큰걸?”

“흐흐. 우리 푸른늑대 부족은 이 초원에서 가장 강력한 부족이다.”

타쿠가의 자부심 섞인말에 강건우가 피식 웃었다.

“다른 부족이 존재하기는 하고?”

“음... 그건 모르겠다.”

강건우와 타쿠가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푸른늑대 부족의 본거지의 정문에서 일단의 오크들이 쏟아져 나왔다.

“록타! 승자들이 돌아왔다.”

“타랄의 복수를 끝낸 그대들에게 콰라님의 축복이!”

순식간에 타쿠가 행렬을 둘러싼 오크들이 무기를 부딪히며 함성을 질렀다. 그때 오크들의 무리에서 타쿠가와 비슷한 덩치의 오크가 나섰다.

“타쿠가, 해냈군.”

“토르가, 네놈 면상을 다시 보니 살아 돌아왔다는 게 실감나는군.”

“크크. 나 역시 네놈이 무사히 돌아올 줄은 몰랐다.”

서로를 쳐다보며 거친 말을 주고받던 두 오크가 돌연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잘 있었나 형제여.”

“크크크. 무사히 돌아와서 기쁘군!”

서로를 껴안으며 말을 하는 두 오크는 매우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타쿠가가 포옹을 풀고 오크들에게 강건우 일행을 소개했다.

“자, 인사해. 그리핀과의 전투에 큰 도움을 준 인간들이다.”

타쿠가의 소개에 강건우가 앞으로 나서며 토르가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조율자 강건우라고 한다. 타쿠가와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됐지.”

“크크. 저 긍지 높은 타쿠가가 친구로 삼다니. 꽤나 강자인 모양이군. 반갑다. 푸른늑대 부족의 대전사 토르가다.”

강건우의 손을 마주 잡은 토르가가 미소를 지었다. 마주잡은 손에 느껴지는 힘이 토르가 역시 만만치 않은 실력자인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타쿠가가 인사를 나누는 강건우와 토르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토르가, 족장님은 어떠신가?”

“상태가 안 좋으시다. 주술사 쿠랄님께서 밤낮으로 돌보고 계신다.”

타쿠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푸른늑대 부족의 족장은 얼마 전부터 알수 없는 병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일단 족장님이 계신 곳으로 가야겠다.“

타쿠가가 강건우를 향해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카라, 주환이형한테 족장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전해줘.”

“네, 알겠어요.”

카라가 강건우의 품속에서 나와 김주환이 있는 행렬의 뒤쪽으로 날아갔다. 강건우가 타쿠가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때 옆에 있던 토르가가 강건우를 제지하며 말했다.

“타쿠가, 인간이 부족 안에 들어오는 것은 괜찮지만, 족장님이 계신 곳까지 동행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

강건우가 무심한 눈으로 토르가를 바라보았다. 족장은 푸른늑대 부족의 기둥과 같은 존재였다. 토르가의 의심이 이해는 갔다.

“걱정하지마, 내가 나쁜 마음을 먹었으면 벌써 일이 나도 큰일이 났을 거니까.”

강건우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타쿠가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강건우, 너의 자신감이 맘에 든다.”

타쿠가가 강건우의 어깨를 탕탕 쳐주었다. 그리고 토르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토르가, 작다고 인간을 무시하지 마라. 여기있는 우리들 중 그 누구보다 강한 전사다.”

“크르.. 그런가? 타쿠가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이해하겠다.”

토르가가 강건우에게서 물러났다. 그렇게 타쿠가와 강건우가 족장이 있는 천막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강건우, 족장님이 계신 천막에는 주술사님께서도 계신다. 행동을 조심해 주길 바란다.”

“알겠어.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고.”

족장이 있는 천막을 향해 가는 길에 주변을 둘러본 강건우가 생각에 빠졌다.

‘이렇게만 봐서는 여기가 던전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겠는 걸.’

푸른늑대 부족의 본거지는 평범했다. 여기저기 늘어서 있는 천막들 안에서는 어린 오크들이 고개를 내밀어 강건우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거대한 공터에서는 오크들이 서로 힘을 겨루고 있었다.

‘신들은 무슨 생각으로 던전을 이런 식으로 만든 것일까.’

족장의 천막을 향해 가는 동안 강건우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때 타쿠가의 목소리가 강건우의 상념을 뚫고 들어왔다.

“강건우, 도착했다. 여기가 푸른늑대 부족의 족장 카할님의 거처다.”

족장의 천막은 다른 천막보다 크고 화려했다. 주변을 호위하는 오크들의 기세도 강렬했다. 족장의 거처다운 분위기였다. 타쿠가가 천막의 입구를 지키는 오크에게 무언가 말을 했다. 그리고 강건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들어가자. 쿠랄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다는군.”

천막을 흩어보던 강건우가 살짝 놀란 눈으로 타쿠가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거야?”

“쿠랄님은 우리가 알수 없는 힘을 가지신 분이다.”

타쿠가가 주술사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리고 등을 돌려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왠지 카라가 없는 게 불안 한데...”

강건우가 천막의 문을 걷고 들어갔다.

“뭐... 뭐야?!”

찬막 안을 들어선 강건우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떠졌다.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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