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2)
조율자의 방에 있는 원탁에 강건우와 김주환 그리고 박태정이 앉아있었다. 초기 각성자에 후보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탁자의 중앙에는 흑백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초기 각성자의 물약이 놓여있었다.
신중한 표정으로 물약을 바라보던 박태정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건우님, 여러모로 생각해도 진호가 가장 적임자입니다.”
“태정이 형,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이 물약은 다시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
강건우의 말에 김주환이 꼬고 있던 다리를 풀며 물었다.
“조율자의 상점에도 안 파는 게 진짜야?”
“응, 이번에 랭크업을 해서 상점의 구매목록도 대폭 늘어났는데 초기 각성물약은 없어.”
“일단, 빠르게 사용해서 전력을 강화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끼다 똥 된다.”
김주환의 말을 들은 카라가 먹던 과자를 내려놓았다.
“주환님, 꼭 그런 식으로 표현해야 하나요? 입맛 다 버렸어요.”
“아···. 미안. 카라. 넌 워낙 가리는 거 없길래 입맛이 있는 줄도 몰랐네.”
“주환님! 너무해요!”
김주환과 카라가 투닥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박태정이 강건우에게 말했다.
“건우님, 제가 그동안 지켜본 진호는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하고 밑의 팀원들을 챙기는 훌륭한 지휘관이었습니다.”
“그건 나도 알지.”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자 박태정의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
“동료를 위해 몸을 던질 줄도 아는 놈입니다. 그리고 1 팀원과 2 팀원들 모두 진호에게 물약을 사용하는 것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사실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고 싶었어. 그런데 다들 동의한다니까 더 고민할 필요 없겠네.”
강건우의 말에 박태정과 김주환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결정하신 겁니까?”
“건우야, 진호라면 걱정 없다니까.”
강건우가 카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카라, 회복실로 가서 진호 좀 데려와 줘.”
“제가요? 저 지금 간식 먹어야 하는데.”
“어?”
강건우가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 전의 랭크 업 이후 카라는 먹을 것을 한시도 내려놓지 않고 있었다. 마치 폭풍 성장기에 접어든 아이와 같은 식성이었다. 강건우가 카라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기로 했다.
“갔다 오면 아이스크림도 잔뜩 사줄게.”
“앗! 정말이죠?”
아이스크림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카라였다. 조율자의 상점에 있는 모든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카라의 작은 소망이었다.
강건우가 카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그러니까 부탁 좀 할게.”
“번개처럼 다녀올게요!”
신이 난 카라가 순식간에 회복실로 떠나갔다. 카라가 출발하는 것을 확인한 강건우가 김주환과 박태정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 물약의 사용 문제는 해결했고. 이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 좀 나누자.”
강건우의 말에 박태정과 김주환이 차례대로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건우님, 일단 아크로폴리스의 방어력을 키우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우야, 나도 같은 생각이야. 아무래도 파괴자 진영뿐만 아니라 수호자 진영에도 우리의 존재가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
강건우가 턱을 만지며 말했다.
“하긴 내가 항상 아크로폴리스만 지키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박태정이 강건우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건우님, 죄송합니다. 아크로폴리스의 관리 담당자인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현재 박태정은 자신의 잠재능력인 B 랭크까지 랭크 업을 마친 상태였다.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한 것이었다. 물론 무기를 강화하고 훈련을 통해 실력의 상을 가져올 수는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랭크의 차이는 극복하기 힘들었다.
‘카라가 잠재능력을 올릴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김주환의 각성 당시, 낮은 랭크의 던전스톤을 사용해 잠재능력 한계치에 손해를 보았었다.
그때 카라는 나중에 만회할 기회가 있을 거라 말했었다. 강건우가 그 기억을 떠올린 것이었다.
“이번 초기 각성 물약도 그렇고 분명히 잠재능력을 올릴 방법이 있을 거야. 너무 기죽지 마.”
“그래. 태정아, 건우의 예상을 믿어보자고. 초기 각성 물약도 있는데 더한 거라고 없겠냐?”
김주환의 위로에 박태정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방법이 없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겠습니다.”
“분명히 방법이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박태정을 위로해준 강건우가 아크로폴리스의 방어대책에 관해 말을 이어갔다.
“방어 시설을 보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강제 각성자 1팀과 2팀의 수준도 끌어올려야겠어.”
“방법이 있겠습니까?”
박태정이 물음에 강건우가 설명을 시작했다.
“강제 각성자들은 랭크 업을 못 하니 장비라도 충실히 지급해야지.”
“건우야, 앞으로 강제 각성자들이 대폭 늘어날 거야. 혼자서 감당이 되겠어?”
김주환이 강건우를 걱정하며 말했다. 강건우가 조율자의 상점에서 장비를 구입 해 지급하려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김주환의 걱정에 강건우가 자신감이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형, 걱정하지 마. 이번에 본거지의 랭크가 오르면서 상점에 중요한 기능이 생겼어.”
“그래? 무슨 기능인데 그렇게 자신만만한 거야?”
“저도 궁금합니다.”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의 두 사람을 보며 뜸을 들이던 강건우가 말했다.
“아크로 폴리스에 필요한 각종 생산건물이 생겼어.”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생산건물?”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강건우가 설명을 이어 갔다.
“응, 생산건물. 그중에서 무기와 방어구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 제작소를 설치하려고 해.”
장비 제작소라는 말에 김주환과 박태정이 깜짝 놀랐다.
“헐. 대박이네. 넌 도대체 없는 게 뭐냐?”
“혹시 게임에 나오는 대장간 같은 겁니까?”
강건우가 설명을 이어갔다.
“대장간은 맞는데. 막 모루에 망치질하고 그런 느낌은 아니지. 건물 설명에는 [각종 무기와 방어구를 연구, 제작할 수 있는 최첨단 장비 제작소]라고 되어있거든.”
“그럼 시설의 운영은 누구에게 맡기실 겁니까?”
박태정의 질문에 강건우가 대답했다.
“일단 시민들 중에서 관련 직종에 종사했던 사람들 중에 지원을 받아야지.”
“무기나 방어구 같은 것들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어도 말입니까?”
“응, 일단은.”
김주환이 강건우를 향해 입을 열었다.
“건우야, 사람들이 자원 하려고 할까?”
아크로폴리스로의 시민들은 아마겟돈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식량은 풍부하게 배급받고 있었으며 주거시설과 각종 편의 시설도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자원할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었다.
김주환의 말에 강건우가 신중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지금까지는 그랬지. 하지만 앞으로 기존의 시설들을 조율자의 상점에 있는 시설들로 교체해 나갈 거야. 그리고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운영해야지.”
박태정과 김주환이 감탄성을 뱉어냈다.
“애초에 그 부분을 염두에 두시고 사람들을 받아들이셨군요?”
“건우 너 대단하다. 언제 그런 그것까지 생각한 거야?”
대화가 길어질 것 같자 강건우가 조율자의 상점에서 시원한 맥주를 구매했다. 그리고 김주환과 박태정에게 한 캔씩 건넸다.
“목도 칼칼한데 맥주 한 캔 하면서 말하자고.”
“맥주! 좋지!”
“감사합니다. 건우님.”
세 사람이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역시 남자들의 대화에는 술이 빠질 수 없었다.
“캬! 좋네. 건우야, 사람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을까? 그동안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었잖아.”
강건우가 맥주를 내려놓고 입가에 묻은 거품을 닦았다.
“크···. 역시 맥주다. 언제까지 사람들을 놀고먹게 놔둘 수는 없지. 내가 자선 사업가는 아니잖아?”
“맞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건우님이 비축해 놓은 식량이 떨어져 가던 참입니다.”
박태정의 말에 강건우가 팔짱을 꼈다.
“앞으로는 배정된 시설에서 일하는 만큼 포인트를 지급할 생각이야.”
“응? 건우 네 포인트로 지급한다면 식량을 공급하는 거랑 별반 차이가 없을 텐데?”
“내 포인트를 왜 줘?”
박태정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그럼 포인트는 어디서 수급하실 생각입니까?”
“간단해. 앞으로 늘어날 폴리스 소속의 각성자들에게서 나올 거야.”
김주환이 강건우의 의도를 깨달았는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그러니까, 각성자들이 사냥을 통해 얻은 포인트를 각종 시설에 사용하고 그렇게 모인 포인트를 월급처럼 지급하겠다는 거지?”
“맞아. 각성자들이 무기나 방어구 그리고 사냥이나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면 본거지 정보석에 포인트가 쌓여. 그걸 시민들에게 지급하고 생활을 하는 데 사용하게 할 거야.”
김주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새로운 자본주의의 탄생이군.”
“건우님,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강건우가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뿐만 아니라 수호자의 생츄어리나 파괴자의 스트롱홀드도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될걸?.”
김주환과 박태정이 멍한 표정으로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우주의 절대자를 가리는 전쟁이라는 스케일이 실감 되기 시작한 것이다.
“포인트를 이용한 경제시스템이 안정되면, 단계적으로 사람들을 더 받아들일 생각이야. 태정이 형이 바빠지겠네.”
강건우의 말을 들은 박태정의 얼굴이 눈에 띄게 좋아지며 기뻐했다. 평소 아크로폴리스 밖의 사람들에 대한 걱정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저는 얼마든지 바빠져도 좋습니다. 빨리 사람들을 더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였다. 조율자의 방으로 카라와 이진호가 도착했다. 강건우의 부름을 받고 온 이진호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여기까지 오는 동안 카라에게 무언가를 언질 받은 것 같았다.
강건우가 이진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진호야, 이리 와서 앉아.”
“네, 건우님.”
이진호가 자리에 앉자 카라가 강건우의 어깨 위로 날아왔다.
“건우 님, 다녀왔어요. 이제 아이스크림 주세요.”
“수고했어. 잠깐만 금방 사줄게.”
강건우가 카라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자신의 몸통만 한 아이스크림을 받은 카라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카라에게는 마성의 아이스크림이었다.
“잘 먹을게요.”
“천천히 먹어. 다 먹으면 또 줄게.”
“야호! 건우님 최고예요.”
강건우가 피식 웃으며 카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진호에게로 시선을 옮긴 강건우가 초기 각성 물약을 가리키며 말했다.
“형들이랑 상의한 결과. 진호 네가 저 물약의 주인으로 결정됐어.”
이진호의 몸이 흥분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밀려드는 기쁨을 참을 수 없는지 연신 입가가 씰룩거렸다.
“정···. 정말입니까? 제가 초기 각성자가 될 수 있는 겁니까?”
박태정이 흥분한 이진호의 등을 두들겨 주며 말했다.
“그래. 진호, 네 거다. 진정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이진호를 바라보던 김주환이 입을 열었다.
“진호야, 흥분을 진정해. 초기 각성할 때의 고통은 강제 각성이랑 비교할 수 없을걸?”
“고통 따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
어느새 붉어진 눈시울을 소매로 닦으며 이진호가 씩씩하게 말했다. 강건우가 초기 각성물약을 이진호에게 건넸다.
“지체할 이유가 없지. 빨리 마셔.”
이진호가 조심스럽게 물약을 받아 마셨다. 그러자 흑백의 빛이 한차례 이진호를 감싸고 난 후 사라졌다.
“끝난 겁니까?”
이진호가 자신의 몸을 살펴보고 주먹을 폈다 쥐었다 하며 말했다. 카라가 아이스크림으로 가득 찬 볼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건우님, 이제 던전스톤을 이용해 각성을 마무리하세요.”
“응. 알겠어. 카라. 진호야, 이제 고통스러울 거야. 잘 참아.”
강건우가 인벤토리에서 [B 랭크 하늘 요새 던전스톤]을 꺼내 사용했다.
[B 랭크 하늘 요새 던전스톤]을 이용한 각성을 시작합니다. 대상을 지정해 주세요.
“이진호.”
던전스톤이 엄청난 빛을 내뿜으며 사라졌다. 그리고 이진호의 각성이 시작되었다. 밝은 빛에 휩싸인 이진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평안해 보였다.
“저걸 참아? 무서운 놈!”
김주환이 각성의 고통을 아무렇지 않게 참는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잠시 후 이진호의 각성이 끝났다.
“드···. 드디어! 건우 님, 감사합니다. 아크로폴리스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으으···. 친구끼리 그러지 말자니까.”
강건우가 이진호의 충성맹세에 닭살이 돋은 듯 몸서리를 쳤다. 그 모습에 이진호가 미소를 지었다. 강건우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이 정말 천운이라 생각했다.
‘얼마나 강해졌을까?’
김주환이 설레는 마음으로 상태창을 호출했다.
이 름 : 이진호
진 영 : 조율자
직 업 : 창공의 사수
각성등급 / 잠재등급 : B 랭크 / A 랭크
보유 포인트 : 518800P
보유 능력 (1 / 1) : 정밀 조준[Unique]
정밀 조준[Unique] - 모든 원거리 무기의 파괴력과 명중률이 대폭 상승한다.
상태창을 확인한 이진호의 얼굴에 엄청난 희열이 차올랐다.
“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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