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SSS급 랭크 조율자-29화 (30/99)

충돌(3)

아크로폴리스의 성벽 앞에 박태정이 적들과 대치중이었다. 그 옆을 긴장한 표정의 이진호가 지키고 서 있었다. 성벽에서 뛰어내린 두 사람을 발견한 주상혁과 부하들이 방어막을 공격하는 것을 잠시 멈춘 것이었다.

박태정을 위아래로 살펴보던 주상혁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까지 숨어만 있더니.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나오셨지? 왜? 보호막이 간당간당하니까 엉덩이에 불이라도 나셨나 봐?”

주상혁의 비아냥거림에 주변의 부하들이 배를 잡고 웃어댔다.

“하하! 옆에 서 있는 놈 얼굴이 하얗게 질린 게 숨넘어가겠습니다!”

“흐흐흐. 겁쟁이 놈들. 난 보호막 뒤에 숨어서 잠이나 쳐 자는 줄 알았지.”

손을 들어 부하들을 침묵시킨 주상혁이 검을 들어 박태정을 가리켰다.

“네가 이 성의 주인이냐?”

박태정의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단지 자신에게 검을 겨눴을 뿐인데 진한 살기가 느껴졌다. 옆에 서 있는 이진호의 얼굴도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쿵! 박태정이 타워 쉴드를 땅에 박아 넣으며 앞으로 나섰다.

“나는 이 성의 주인이신 강건우 님의 소속 각성자다. 당신들은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온 건가?”

“뭐야? 고작 각성자 주제에 그렇게 뻣뻣하게 구는 거야?”

주상혁이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더욱 강렬해진 살기를 애써 버틴 박태정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이진호의 상태를 곁눈질로 확인했다. 역시나 이진호는 강렬해진 살기를 버티지 못했다. 입가에 핏줄기를 흘리며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제길, 이대로는 손 하나 꿈쩍 못하고 당하겠어. 방법을 찾아야 해.’

박태정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보호막에 쏟아지는 공격을 지연시키는 것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강건우가 도착하기 전까지 시간을 더 끌어야 했다. 이진호와 함께 무사히 돌아가는 것도 중요했다.

박태정이 아무런 대응도 못 하고 괴로워할 때였다. 갑자기 주상혁이 살기를 거두었다. 그리고는 부하들을 향해 말했다.

“쳇···. 별거 없는 놈에게 힘을 뺄 이유가 없지. 야! 네놈들이 알아서 처리해 난 보호막 깨러 간다.”

내심 강한 상대를 만날 기대를 했던 주상혁이였다. 상대방이 약한 것을 확인하자 맥이 빠진 것이었다.

주상혁의 명령에 부하들이 박태정의 주변을 에워쌌다. 박태정이 검과 방패를 고쳐 잡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그때 주상혁의 부하들 사이에서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어느 정도 실력인지 한번 볼까?”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몸을 푸는 남자는 A 랭크 초기 각성자 나상천 이었다. 마치 한 마리 곰을 연상시키듯 커다란 덩치와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별다른 무기나 방어구 없이 오직 양손에 낀 금속 장갑도 눈에 띄었다.

“상천 님이 나섰으니 끝났군.”

“챔피언 출신의 주먹을 얼마나 버티려나?”

주상혁의 부하들의 말투는 이미 볼 거 없다는 투였다. 나상천이 주상혁 소속의 초기 각성자들 중에서도 높은 랭크와 최강의 싸움 실력을 갖춘 각성자였기 때문이다.

여유 있게 몸을 푸는 주상혁을 바라보며 박태정이 입을 열었다.

“진호야, 건우님이 올 때까지 버티자.”

박태정이 말이 안 들리는지 이진호가 멍한 눈빛으로 주상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야! 진호! 정신 차려!”

“네?! 아···. 네!”

박태정의 호통에 이진호가 정신을 차렸다.

“잘 들어. 시간을 어느 정도 끈 거 같아. 다행히 파괴자가 우리에게는 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으니까 건우 님이 오실 때까지 잘 버텨보자.”

“네! 알겠습니다. 형님.”

두 사람이 전의를 다지는 모습에 나상천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래. 그래야 사나이지!”

말을 마친 나상천이 총알과 같은 속도로 퉁겨져 나왔다. 쿵! 박태정이 방패를 들어 간신히 나상천의 주먹을 막아냈다. 한 번의 공격으로 적의 실력을 가늠한 나상천이 양 주먹을 부딪치며 입을 열었다.

“근데. 그거 알아? 이런 말이 있지.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처맞기 전까진!”

나상천이 유명한 권투선수의 말을 인용하며 공격을 시작했다. 쾅! 쾅!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박태정의 방패가 들썩거렸다.

‘큭! 어마어마한 힘이군.’

박태정이 상대방의 강력한 힘에 속절없이 방어만 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저항하지 못하자 더욱 흥분한 나상천의 공격이 더욱 빨라졌다.

“하하하! 어떠냐? 나는 일반인으로 살다가 각성한 놈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고!”

자아도취에 빠져 큰 소리로 말하는 나상천이었다. 박태정이 간신히 공격을 막아내며 말했다.

“좋겠네. 이 근육 바보 새끼야.”

“뭐?! 이 새끼가!”

박태정의 도발에 화가 난 나상천이 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이진호를 가리켰다.

“야! 이놈은 내가 찜했어! 너희는 저놈이나 가지고 놀든지 해라.”

자신을 가리키며 무시하는 말에 이진호의 얼굴에 수치심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은 고작 C 랭크 강제 각성자였으니까. 나상천의 말에 다른 각성자들이 실실 웃으며 나섰다.

“흐흐. 간식거리도 안 되는 놈하고 뭘 하라고,”

“그냥 빨리 죽이자.”

이진호를 바라보는 적들의 표정에는 지루함이 가득했다. 이진호가 자신의 무기를 고쳐 잡으며 자세를 다듬었다. 얼굴에는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떼거리로 덤비는 주제에 잘난 척은.”

이진호의 혼잣말에 주상혁의 부하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 너 딱 보니까 강제 각성자 같은데. 우리가 한 명씩 덤비면 상대는 가능하고?”

“살다 살다. 강제 각성자 찌끄러기한테 이런 말을 다 듣네.”

“......큭!”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이진호가 신음을 뱉으며 무릎을 꿇었다. 적 중 한 명이 힘을 실어 던진 돌멩이에 가슴을 명중 당해 쓰러진 것이었다. 이진호가 가슴을 부여잡고 있을 때였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박태정이 이진호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나뒹굴었다.

“이야! 그래도 나를 상대로 제법 버틴다? 아주 맹물은 아닌데?”

나상천이 강력한 펀치를 날려 박태정을 방패째 날려 버린 것이었다. 나뒹굴던 박태정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일어났다. 방패는 움푹 파여 찌그러져 있었고 온몸에는 흙투성이였다.

“아직 이다!”

“태정이 형님!”

이진호가 박태정의 강한 정신력에 감동했다. 무엇이 저 사람을 이렇게까지 버티게 하는지 궁금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박태정만큼은 살려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혁님이 김빠진 이유가 있었어. 시시해. 놀아주는 것도 마지막이다.”

나상천이 온몸의 힘을 주먹에 집중했다. 터질 듯이 붉게 타오르는 주먹이 엄청난 기술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이진호가 박태정을 바라보았다. 찌그러진 방패. 너덜너덜해진 방어구. 위태로워 보이는 몸의 흔들림.

‘저 주먹에 맞는다면 태정 형님은 죽을 거야.’

그 순간 나상천이 휘두른 주먹에서 거대한 에너지파가 쏟아져 나왔다. 박태정이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방패를 부여잡은 손의 핏줄이 터져 나갈 듯 부풀어 올랐다. 마지막을 예감한 듯 두 눈을 감은 채였다.

“제기랄!”

위기의 순간이었다. 이진호는 더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무슨 용기가 생겨서였을까. 이진호가 박태정의 방패 앞으로 몸을 날렸다.

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이진호의 몸이 끈 떨어진 연처럼 날아갔다.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참극에 박태정이 절규했다.

“안 돼!! 진호야!!”

박태정이 이진호가 떨어진 곳으로 가려 했지만 갈 수 없었다. 나상천이 빠른 속도로 다가와 공격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약해 빠진 놈이. 그래도 의리는 있다. 이건가?!”

박태정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렀다. 이진호의 상태를 살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나상천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시선조차 돌릴 수 없었다.

쾅! 쾅! 나상천의 폭발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연이은 공격에 박태정의 몸이 점점 땅을 향해 쓰러져 갔다. 방패의 모습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찌그러졌다. 땅에 누워 거친 숨을 내뱉는 박태정의 몸에 나상천의 발이 올라왔다.

“크윽!”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에 박태정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나성천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시 태어나면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고.”

나성천의 주먹에 조금 전과 같은 붉은빛이 뭉치기 시작했다. 웅! 웅! 거리는 소리에서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나상천이 박태정의 얼굴로 주먹을 들이밀었다. 박태정의 눈이 질끈 감겼다.

‘끝인가.’

박태정이 죽음을 직감하고 체념했을 때였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로 파고들었다.

“태정이 형!”

눈을 떠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박태정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건우님, 오셨군요.”

“왜 이리 무리한 거야! 그냥 성벽에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지!”

강건우의 걱정 섞인 질책에 박태정이 말했다.

“보호막이 깨지면 시민들은 물론 아크로폴리스에도 엄청난 피해가 생겼을 겁니다.”

강건우가 박태정의 말에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자신의 공격으로 나가떨어진 나상천은 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져 있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각성자들은 엄청난 신위에 입을 벌린 채 꼼짝 못 하고 있었다.

강건우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파괴자 소속의 각성자들을 바라보았다.

“나 없는 사이에 재미들이 좋으셨나 보네? 그치?”

강건우의 섬뜩한 표정에 각성자들이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포식자를 만난 동물 같았다.

“어딜 가려고?”

강건우가 물러서는 각성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홍염에 불타는 양손검을 손에 쥔 강건우의 공격이 시작됐다. 주진호의 부하들은 사력을 다해 막으려 했다.

“막아!”

“새끼가!”

하지만 힘의 차이는 뚜렷했다. 강건우의 공격을 막아서는 각성자들의 무기가 박살 났다. 박살 난 무기를 뚫고 들어 온 힘의 여파에 각성자들이 나가떨어졌다.

“으악!”

“컥!!”

순식간에 여러 명의 각성자들을 때려눕힌 강건우가 반대편의 각성자들을 향해 등을 돌렸다. 그리고 몸을 날려 각성자들에게 향했다.

“거기까지다!”

캉! 하고 검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주상혁이 강건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방어막을 공격하던 중 자신의 각성자들이 공격을 받자 급히 몸을 날린 것이었다.

“파괴자?”

어느새 박태정의 곁으로 돌아온 강건우가 주상혁에게 물었다. 하지만 주상혁은 노려만 볼뿐 대답해주지 않았다. 품속에 있던 카라가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건우님, 저 사람에게서 파괴신의 힘이 느껴져요. 파괴자가 분명해요.”

“알겠어. 고마워 카라.”

강건우가 카라를 쓰다듬어준 후 박태정의 상태를 살폈다. 강건우의 등장을 확인한 후 안심했는지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포션을 입에 부어준 강건우가 고개를 돌려 이진호가 쓰러져 있는 곳을 확인했다.

“진호······.”

이진호는 죽은 듯 꼼짝 않고 있었다. 강건우가 상태를 살펴보러 가려는 순간이었다. 주상혁이 강건우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새끼가!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냐?”

강건우가 이진호가 쓰러진 곳을 슬쩍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앞을 가로막는 적들을 처리하는 것이 먼저인 것 같았다.

“죽는 게 소원이라면 뜻대로 해줄게.”

무기를 잡은 강건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카라가 그런 강건우에게 충고했다.

“건우님, 느껴지는 힘이 S 랭크 이상이에요.”

“그래? 알겠어.”

강건우는 카라의 말에도 긴장감이 생기지 않았다. 자신은 A 랭크였지만 질 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터질 것 같았던 분노가 가라앉았다. 그러자 마음이 차분해지며 집중력이 올라갔다.

‘회귀하고 처음 만나는 파괴자인데···. 긴장감이 전혀 안 드는군.’

전생에서의 찌질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강한 자신감과 전투를 앞둔 고양감만이 강건우를 지배했다.

“흐아압!”

강건우가 기합을 뱉으며 주상혁에게 달려들었다. 폭발적인 기세에 주상혁의 몸이 움찔했다. 회귀 후 4개월이 지나는 시점. 아마겟돈의 거대한 변곡점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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