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2)
강서구에 있는 C 랭크 던전 [루난 마을]의 대기실. 던전 제어석이 빛나며 포털이 생겨났다. 일순간 포털이 출렁거리더니 강건우와 김주환이 대기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주환이 던전 대기실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그동안의 강행군을 보여주고 있었다.
“으아! 이제 끝이다. 당분간 던전은 거들떠보기도 싫어.”
“형, 벌써 던전이 지겨워? 이제 겨우 C 랭크 던전 공략이 끝났어.”
팔크람의 연구소를 클리어 한 이후 강건우와 김주환은 강서구에 위치한 C 랭크 던전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그리고 오늘의 공략을 끝으로 그동안의 강행군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형, 일단 완료보상 챙기고 집으로 돌아가자.”
강건우가 김주환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제어석을 향해 걸어갔다.
[C 랭크 던전 - 루난 마을]
크리쳐 정보 – 반군 보병(D 랭크), 반군 기마병(C 랭크), 반군 지휘관(C 랭크 BOSS).
최초 발견 보상 : 20000P
[공략 완료- 다음 리스폰까지 남은 시간 : 148시간]
[축하합니다. C 랭크 던전 –루난 마을의 최초 공략에 성공하셨습니다.]
[최초 공략 보상으로 40000P를 지급합니다.]
[C 랭크 던전 –루난 마을이 강건우님에게 귀속됩니다.]
[조율자의 상점- C 랭크 던전 – 루난 마을의 봉인을 해제하셨습니다.]
[조율자의 상점 – 루난 마을의 던전스톤 구매가 가능합니다.]
강건우가 공략 보상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건우님, 큰일 났어요!”
잠시 무언가를 확인하던 카라가 다급한 표정으로 날아왔다.
“카라, 왜 그래?”
“아크로폴리스가 파괴자의 공격을 받고 있다고 메시지가 왔어요!”
강건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파괴자? 아직은 자리 잡느라 정신없을 텐데?”
“건우야, 빨리 성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
카라의 말을 들은 김주환이 어느새 강건우 곁으로 다가왔다. 강건우가 카라를 바라보았다.
“카라, 지금 성으로 복귀하겠다고 연락을 취해줘. 그리고 형은 돌아가자마자 랭크 업부터 하고 있어.”
“건우, 너는? 너도 랭크 업을 해야지.”
강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태정이 형을 만나보고 바로 랭크 업부터 할 거야.”
“오케이. 그럼 출발하자.”
대화를 마친 강건우와 김주환이 조율자의 성을 향해 달려갔다. 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카라가 입을 열었다.
“건우님, 혹시 팔크람의 연구소에서 있던 일이 원인이 아닐까요?”
강건우의 품속에 안겨있는 카라의 표정이 심각했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강건우가 카라를 슬쩍 바라보았다.
“신의 파편···.”
“네, 맞아요. 신의 파편에서 나온 힘을 신들이 느낀 거예요.”
나란히 달리고 있는 김주환이 입을 열었다.
“신들이 어떻게? 팔크람의 던전은 아크로폴리스의 영역에 있잖아?”
“던전 교란 장치에 사용된 신의 파편이 불안정해지면서 던전의 본래 정체가 드러나서 일거예요.”
“파괴신의 힘을 이용해 던전을 위장했던 게 풀리면서 눈치를 챈 거 아닐까?”
“네, 맞아요.”
김주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큰일이잖아?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아크로폴리스가 드러났어.”
“예상보다 빨리 발각되긴 했지만. 상관없어, 어차피 지금 저들의 수준으로는 보호막조차 어찌하지 못할걸?”
강건우의 말에 김주환이 안도했다.
“그럼, 다행이고.”
강건우와 김주환이 봉제산을 벗어나 도심을 달리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강건우가 텅 빈 거리를 바라보았다.
“시민들은 모두 대피시켰나 보네.”
“건우님, 태정님에게서 연락이에요. 성벽에 파괴자와 각성자들이 나타나 보호막을 공격 중이라고 해요.”
카라의 말을 들은 강건우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태정이 형은?”
“진호님과 강제 각성자 1팀을 이끌고 성벽에서 대기 중이라고 하셨어요.”
“알겠어. 주환이 형, 난 성벽으로 갈 테니, 형은 예정대로 부탁해.”
말을 마친 강건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여태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차가운 모습에 김주환이 묵묵히 말했다.
“알았다. 나도 빨리 랭크 업을 마치고 성벽으로 합류할게,”
“알겠어.”
짧게 대답한 강건우가 성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김주환도 조율자의 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쾅! 쾅! 아크로폴리스를 감싸고 있는 황금빛 보호막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파괴자 주상혁과 초기 각성자들은 물론 트롤들의 공격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하하! 이거 손맛 끝내주는데?”
“힘내자고! 이것만 벗겨내면 안쪽에는 별거 없는 것 같으니까.”
주상혁이 휘하 각성자들을 다그치며 말했다.
“방심하지 말라고 했지? 신의 파편을 찾기 전까지는 약탈 금지야!”
부하들에게 경고한 주상혁이 보호막을 바라보았다.
“제길! 이 정도 능력의 보호막이라니···.”
얼마 전 주상혁은 휘하의 크리쳐들을 이끌고 수호자 김한나의 생츄어리를 공격했었다. 생츄어리의 방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반나절의 공격 끝에 생츄어리의 보호막은 벗겨졌었다. 파죽지세로 생츄어리로 돌입한 주상혁은 결국 후퇴해야만 했다. 죽기 살기로 방어에 나선 김한나와 휘하 초기 각성자들의 저항을 뚫지 못한 것이었다.
‘김한나의 보호막에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방어력이야. 도대체 짧은 시간에 이 정도 힘을 키울 수 있는 자의 정체가 뭐지?’
주상혁이 불길한 느낌을 털어 버리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보호막을 향한 공격을 이어갔다.
한편, 박태정은 성벽 위에서 적들의 공격을 지켜보고 있었다.
“.....”
이를 악문 표정에 검을 든 손은 분노로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적들을 향해 뛰쳐나가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태정 형님, 절대 혼자 나가시면 안 됩니다.”
“.....”
이진호가 안절부절못하며 박태정을 말렸다. 그때 각성자들의 중심에서 보호막을 공격하던 주상혁이 돌연 공격을 멈췄다. 그리고는 들고 있는 대검으로 성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겁쟁이 놈들아! 보호막이 벗겨지는 순간 네놈들의 목숨도 끝날 줄 알아!”
말을 하는 주상혁의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한참을 공격해도 깨지지 않는 보호막에 잔뜩 열이 받은 것이었다. 박태정이 인상을 찌푸리며 이진호를 바라보았다.
“진호, 보호막의 내구도는 얼마나 남았지?”
이진호가 대답했다.
“지휘통제실의 보고에 따르면 50프로 정도 남았다고 합니다.”
“보호막의 내구도가 20프로 미만으로 떨어지면 다시 보고하라고 해줘.”
“네, 알겠습니다.”
박태정이 고개를 돌려 적들을 바라보았다.
파괴자 주상혁과 각성자들이 공격에 가담한 순간부터 방어막의 내구도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아크로폴리스의 핵심전력인 강건우와 김주환이 자리를 비운 것이 타격이 컸다.
“제길, 이렇게 무기력한 기분은 정말 별로야···.”
박태정이 자신의 한계를 원망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이진호의 얼굴이 환해지며 소리쳤다.
“태정 형님! 주환 형님이 조율자의 성에 도착하셨다는 연락입니다.”
박태정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주환이가? 그럼 건우님은?”
“지금 성벽으로 오고 계시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진호의 말에 박태정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까지의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만큼 강건우에 대한 신뢰가 강한 박태정이었다.
“진호야, 강제 각성자 2팀에 연락해. 건우님이 도착하시면 언제든지 전투가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으라고 해.”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벌써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박태정이 씩씩하게 대답하는 이진호를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군인 장교 출신의 이진호는 눈치가 빠르고 꼼꼼한 성격이었다. 무기를 다루는 실력은 물론이고 전투 센스도 발군이었다. 강제 각성자로 남기에는 아까운 인재였다.
“진호야, 희망을 잃지 말고 힘을 키워야 한다.”
“혀···. 형님···.”
이진호는 강제 각성자의 한계를 느끼고 슬럼프에 빠져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봐 온 박태정이 위로를 건넨 것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질 때였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보호막이 크게 흔들렸다. 보호막이 흔들리며 생기 여파에 휘청 이던 박태정이 성벽 밖을 바라보았다. 주상혁의 양손에서 검은색 구체들이 보호막에 쏟아지고 있었다.
“크하하! 굳이 힘을 숨길 필요도 없겠군!”
주상혁은 자신의 모든 힘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상대방의 각성자를 상대하기 위해 힘을 아끼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자신들의 공격에도 상대방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적에게 강한 각성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진호 님, 단숨에 부숴버리죠!”
“역시! 진호 님! S 랭크의 힘은 대단합니다!”
주상혁의 강력한 공격에 주변의 각성자들이 흥분하며 떠들어 댔다. 분위기에 한껏 심취한 주상혁이 공격에 기세를 올렸다.
쿵! 쿵! 연신 보호막을 때리는 공격에 보호막의 내구도가 급속히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위태롭게 출렁거리는 보호막을 바라보는 박태정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진호, 보호막의 내구도는?”
이진호가 중앙관제실과 연락을 취하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현재 30프로 남았다고 합니다. 파괴자의 공격이 시작되고 나서 빠르게 깎여 나가고 있습니다.”
박태정이 팔짱을 끼며 성벽 밖을 주시했다.
“건우님이 도착하시면 파괴자의 처리는 문제가 되지 않아. 문제는 아크로폴리스 안으로 난입할 저 각성자들일 텐데···.”
강건우가 아무리 강력하다 하지만 넓은 범위로 숨어드는 각성자들을 일일이 막아낼 수는 없었다. 박태정의 걱정은 난입해온 각성자들로 인해 발생한 시민들과 구조물의 피해였다.
“진호야, 건우님이 오시기 전까지 내가 시간을 끌어야겠어,”
박태정이 말에 이진호가 펄쩍 뛰며 말렸다.
“네?! 안됩니다! 형님 혼자서 저 많은 각성자를 어떻게 상대 하시려고요?”
“이대로 지켜만 보다 보호막이 깨지면? 저놈들 분명히 강서구 안으로 난입할 거야.”
이진호는 박태정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지금도 공공연히 약탈을 운운하며 거친 행사를 보여주고 있는 적들이었다.
“물론, 건우님이 파괴자를 상대하고 나서 나머지 각성자들을 처리하면 되겠지.”
“그러니까요, 태정 형님. 건우님이 다 해결해 주실 겁니다.”
이진호가 자신 없는 듯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박태정이 그런 이진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래, 건우님이 다 해결해 주시겠지. 하지만, 그사이 발생하는 시민들과 아크로폴리스의 피해는 누가 해결해 줄까?”
“그···. 그것도···.”
건우님이라고 대답하려던 이진호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붉어졌다.
힘이 없다는 이유로 그저 강건우에게만 의지하려는 자신의 모습이 싫었다. C랭크에 불과하다고 낙심했다. 랭크 업이 불가능한 자신의 처지에 좌절도 했다. 하지만 박태정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았다. 약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형님, 저도 가겠습니다.”
박태정의 눈동자가 커지며 말했다. 조금 전의 이진호와는 너무 다른 얼굴과 표정이었다.
“안돼! 나 혼자 간다. 너는 여기서 건우님이 도착하는 걸 기다려.”
“싫습니다! 제가 C랭크라고 무시하는 겁니까? 저도 아크로폴리스를 지키고 싶습니다!”
박태정이 입술이 굳게 다물어졌다. 이진호의 얼굴에 꺾을 수 없는 의지가 보였다. 박태정과 이진호의 눈빛이 허공에서 거칠게 부딪혔다. 결국, 박태정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여간 고집하고는. 좋아, 대신에 위험해지면 바로 성벽으로 도망치는 거다. 알겠지?”
“네.”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하는 이진호의 얼굴에서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박태정이 이진호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등으로 돌려 성벽 밖을 바라보았다.
“가자.”
“네.”
박태정이 타워 쉴드로 정면을 가린 채 성벽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이진호가 그 뒤를 바싹 붙어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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