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크람 지하광산(1)
조율자의 방에 강건우와 김주환 그리고 박태정이 모여 있었다. 조금 전까지 술판을 벌이던 사람들이라고는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강건우가 무거운 분위기 속에 입을 열었다.
“내일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 각성자들이 돌아올 거야.”
김주환과 박태정의 표정이 더욱 무거워졌다. 강건우가 말을 이어갔다.
“총 600명. 그중에 수호자와 파괴자로 선택받은 각성자가 각각 50명, 그리고 나머지 500명의 각성자들은 수호자와 파괴자 중 한 명을 선택해 소속되어 있을 거야.”
김주환이 입을 열었다.
“귀환하는 장소는 어떻게 결정되는 거야?”
강건우가 대답했다.
“자신이 직접 선택한 곳으로 귀환해. 대부분 자신의 나라로 귀환하겠지. 그리고 자신들의 본거지를 설정하고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할 거야.”
“많은 사람이 죽겠군요.”
박태정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 때문에 죽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지구의 환경이 변해 죽는 사람이 더 많을 거야.”
“맞아요. 당장 내일부터 식물들이 말라가고 물은 오염되기 시작할 거예요. 식량난의 시작이죠. 그리고 크리쳐들도 지금보다 더 많이 나타날 거고요.”
카라가 무거운 표정을 했다.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박태정이 담담히 말했다.
“최대한 빠르게 주민들의 수용을 끝내야 하겠군요.”
“태정이 형이 각성자들을 인솔해서 주민들이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게 조치해줘.”
“네, 알겠습니다.”
그 뒤로도 한동안 세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잠시 후 김주환과 박태정이 돌아갔다. 혼자 남은 강건우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잠이 오지 않았다.
자신을 죽인 김한나. 자신을 위해 죽은 오민석. 전생의 인연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김한나! 너는 꼭 내가 죽인다. 그리고 민석이 형을 꼭 데리고 오겠어.’
강건우가 복잡한 마음을 달래며 잠자리에 들었다.
***
2021년 4월 1일.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사람들은 아직 잠에 빠져있었다. 해가 떠오르자 전 세계에 웅장한 소리가 울려 펴졌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내용이 들려왔다.
『지금부터 우주의 절대자를 뽑기 위한 아마겟돈을 시작한다.』
『수호자 진영의 만신들. 파괴자 진영의 만신들.』
『선택받은 50명의 수호자와 50명의 파괴자.』
『그리고 500명의 각성자들의 전쟁이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이런 현상을 겪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끝나고 신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우주의 질서를 존중하고 생명의 가치를 지키는 수호신. 인간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에게 믿음을 바치면 그대들의 삶은 평안할 것이다.』
『우주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너무 많은 신과 생명체들로 인해 죽어가고 있다. 파괴하고 정화하여 모든 것을 무로 돌릴 것이다. 그것이 우리 파괴신의 신념이다. 인간들아 우리를 따르라 재탄생을 위한 파괴의 대업에 동참하라.』
신들의 말이 끝나자 하늘에서 유성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각성자들이 귀환하는 것이었다.
강건우가 조율자의 성 최상층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생과 똑같아. 신들은 아직 나의 존재를 모르는 것일까?’
강건우가 상념에 빠져있을 때였다. 카라가 강건우의 어깨로 날아들었다.
“건우님, 다녀왔어요.”
“수고했어. 주민들의 이동은 끝났어?”
“네, 태정 님이 각성자들을 이끌고 마무리 중이세요.”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관리하게 편하게 한곳으로 사람들을 배치해야겠어.”
“네, 그렇지 않아도 태정 님이 적당한 위치에 거주지를 배정해 놓았어요.”
“강제 각성자는 보유정원이 없으니까. 적당한 사람들을 뽑아서 충원하도록 해.”
“네, 건우님. 그럼 저도 태정 님에게 가볼게요.”
카라가 흑백의 빛 가루를 날리며 허공을 날아갔다. 혼자 남은 강건우가 팔짱을 낀 채로 연이어 떨어지고 있는 유성우를 바라보았다.
‘아크로폴리스가 안정되는 대로 던전공략을 시작해야겠어. 각성자들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A 랭크로는 부족해.’
귀환하고 있는 각성자들의 랭크는 B~A였다. 수호자와 파괴자로 선택받은 각성자는 A~SS까지였다. 조율자는 동일 랭크의 수호자와 파괴자보다 강력한 힘을 가졌다. 하지만 A 랭크로는 부족함을 느끼는 강건우였다. 랭크의 차이에 따라 스킬의 개수 차이뿐만 아니라 기본능력치의 차이도 심하기 때문이었다.
***
각성자들이 귀환한 지 3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수호자와 파괴자들은 빠르게 자신의 본거지를 정하고 본격적으로 세를 불려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제 기능을 잃어갔다. 사람들은 무능한 정부를 버리고 수호자에 보호받기 위해 생츄어리로 모여들었다. 일부 과격한 집단들은 파괴자의 조력자를 자처하며 파괴와 살육을 일삼았다.
세상이 점점 혼돈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상황과는 다르게 고요하고 평안한 장소가 있었다. 바로 강건우가 이끄는 아크로폴리스였다.
조율자의 성 내부의 원탁 회의실에 강건우와 주요 각성자들이 모여 있었다. 심각한 분위기 속에 박태정이 강건우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건우님, 받아들인 5천 명의 주민 중 젊은 층을 상대로 각성자 자격 심사를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자연 각성의 재능 여부도 판별 중입니다.”
“태정이 형, 수고했어. 치안은 문제없는 거지?”
“네, 시민들이 스스로 규칙을 잘 지키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쫓겨나면 어떤 상황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박태정의 보고를 받던 강건우가 담담히 말했다.
“좋아. 그럼 내부의 일은 태정이 형에게 일임하고, 나랑 주환이 형은 던전공략을 시작할게.”
박태정이 아쉬운 듯 말했다.
“함께 가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강건우가 박태정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형이 아니면 믿고 맡길 사람이 없어. 잘 부탁할게.”
“네,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응, 그리고 내가 없는 사이 각성자들이 접촉해 오면 중앙관제 시스템을 통해 카라에게 알려줘.”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강건우가 김주환을 제외한 각성자들을 해산시켰다. 모두가 떠나고 둘만 남게 되자 강건우가 카라에게 물었다.
“카라, 이번에 공략할 던전의 위치가 어디지?”
“네, 여기서 멀지 않은 봉제산이에요.”
“C 랭크 던전이지?”
“네, 맞아요.”
카라의 대답에 강건우가 툴툴대며 말했다,
“C 랭크 던전은 걸리는 시간에 비교해 너무 얻는 게 없어. B 랭크 이상을 공략해야 하는데.”
카라가 빠르게 날갯짓을 하며 말했다.
“그래도 최초 공략 보상은 챙기셔야죠. 나중에 초기 각성자들의 수가 늘어나면 굳이 건우님까지 공략에 참여하지 않으셔도 돼요.”
“빨리 각성의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겠군.”
카라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단 던전 공략에 집중하세요.”
“알았어. 주환이 형, 준비를 마치는 대로 바로 출발하자.”
“알겠어, 건우야.”
강건우가 조율자의 상점에 접속해 던전공략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김주환도 강건우에게 포인트를 건네주며 필요한 물품을 부탁했다.
잠시 후 준비를 끝낸 강건우가 상태창을 호출했다.
“상태 창.”
이름 : 강건우
진 영 : 중 립
직 업 : 조율자
각성등급 / 잠재등급 : A 랭크 / SSS 랭크
보유 포인트 : 513280P
보유 스킬(5 / 5) : 홍염의 칼날[Epic], 고귀한 후계자[Unique], 태초의 함성[Unique], 수호의 힘[Unique], 파괴의 힘[Unique]
‘랭크 업까지 필요한 포인트는 1450만. 까마득하군.’
강건우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봉제산으로 향하기 위해 조율자의 성을 나섰다.
성 밖으로 나론 강건우가 크게 놀라며 당황했다. 수천 명의 사람이 성 앞에 모여 있었다. 강건우를 발견한 사람들이 큰 함성을 지르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와아아! 건우님이다!”
“저희를 받아주셔서 고마워요!”
어린아이들은 선망의 눈빛으로 강건우를 바라보았다.
“아빠. 나도 커서 건우님처럼 되고 싶어요.”
“난, 커서 꼭 건우님한테 시집갈래요.”
강건우에게 사람들의 환호성과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마치 슈퍼스타를 보러온 팬들 같은 모습이었다. 밀려오는 부끄러움과 당혹감에 강건우의 얼굴이 타오를 듯 붉어졌다. 그 모습에 김주환이 강건우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이야! 이거 인기가 장난 아닌데? 부러운걸?”
“형, 빨리 떠나자.”
“왜? 손도 좀 흔들어 주고. 사진도 같이 찍어주고.”
김주환이 킥킥거리며 강건우를 놀렸다. 그때 김주환을 알아본 일부 시민들이 소리쳤다.
“어! 저기 주환 님도 있다!”
“피의 마법사! 건우님의 오른팔!”
“잘 생겼다! 멋지다!”
“꺄악! 주환 님, 사랑해요.”
강건우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평소 자주 볼 기회가 없는 강건우였다 하지만 시민들의 이주 작업을 지휘하면서 자주 만난 김주환을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김주환이 손을 흔들어 주고 손가락 하트를 날려댔다.
강건우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주 체질이신데? 이 기회에 연예인으로 직업을 바꾸는 게 어때?”
“세상이 망해가는 마당에 연예인은 무슨.”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다. 강건우와 김주환이 사라지자 사람들이 아쉬운 탄성을 뱉어냈다. 하지만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조율자의 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근처의 벤치에서 휴식을 취했다. 아크로폴리스로 이주한 지 3일째였다. 사람들은 안전을 보장받고 풍족한 식량을 공급받으며 안정을 찾은 듯 보였다.
사람들을 피해 던전으로 향하던 강건우가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그저 내 필요 때문에 받아들일 사람들인데 말이지···.’
그렇게 한참을 달린 강건우가 봉제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카라의 안내를 받아 던전의 입구에 도착했다. 망설임 없이 포털에 뛰어든 강건우가 대기실에 도착했다. 김주환도 곧이어 도착했다.
“형, 기다려봐 던전 정보부터 확인하자.”
강건우가 던전의 정보를 확인했다.
[C 랭크 던전 - 팔크람의 지하광산]
크리쳐 정보 - 타락한 드워프 연구원(D 랭크), 타락한 드워프 강습 전사(D 랭크)
타락한 드워프 대장장이(D 랭크), 팔크람(B 랭크 BOSS),
최초발견 보상 : 40000P , ???(히든 보상)
정보를 확인한 강건우가 살짝 놀라며 말했다.
“응? 이상하네. C 랭크 던전에 히든 보상이 있네?”
“건우야, 무슨 일이야?”
김주환이 강건우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강건우가 히든 보상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강건우의 말에 김주환이 물었다.
“이거 심각한 일이야?”
카라가 대답했다.
“심각한 일은 아니에요. 특이한 일인 거죠.”
강건우가 입을 열었다.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이라···.”
“건우님, 주환 님, 그래 봐야 C 랭크에요. 클리어하는 데에는 문제없잖아요.”
카라의 지적에 강건우와 김주환이 동의했다. 그리고 던전으로 통하는 포털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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