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를 하다(1)
아크로폴리스의 내부에 위치한 조율자의 방. 강건우가 중앙의 원탁에 앉아있었다.
“.....”
박태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강건우의 배려로 돌아오자마자 가족을 만나러 갔기 때문이었다. 카라와 김주환도 동사무소로 떠난 상태였다.
‘정신없는 하루였어. 이제 내부정비를 끝내고 아크로폴리스 확장을 위해서 포인트 작업을 해야겠어.’
각성자들의 귀환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전에 본거지 확장을 마무리 짓고 방어를 탄탄히 해야 했다. 자신을 비롯한 소속 각성자들의 성장도 해야만 했다.
그렇게 강건우가 앞으로의 계획을 짜고 있을 때였다. 조율자의 방으로 박태정이 도착했다. 가족들을 만나고 와서인지 한결 편해진 얼굴이었다.
“건우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 형, 그냥 편하게 말하라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확실히 마음을 먹었습니다. 앞으로 제 상관으로 모시겠습니다.”
우직한 박태정의 표현에 강건우가 한숨을 쉬었다.
“후우···. 알았어. 형 좋을 대로 해.”
“감사합니다.”
“가족들은 잘 만나고 왔어?”
“네, 배려해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조만간 아크로폴리스에 일부 주민들을 받아들일 계획이야. 그래서 말인데.”
“네, 말씀하십시오.”
“태정이 형이 내부 치안과 방어를 담당해 주었으면 좋겠어.”
박태정이 눈을 크게 떴다.
“제가요? 그런 막중한 책임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강건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형의 스킬인 집단의 힘도 그렇고 경찰 출신인 형이 제격이야.”
잠시 고민하던 박태정이 입을 열었다.
“저 혼자서 감당할 수 있을지도 걱정입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사람을 구해 줄 테니까.”
“건우님, 사람이 필요하다면 제가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 어떤 부탁을 말하는 거야?”
박태정이 망설이듯 말했다.
“이번에 서에 구금되기 전에 때 저를 도망시키려다 정직처리 된 제 동료들이 있습니다.”
“그래? 고마운 사람들이네.”
“네, 정직하고 올바른 경찰들입니다.”
“형, 동기들답네.”
“그 친구들을 제가 데려오고 싶습니다.”
박태정의 부탁에 강건우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본래는 이진호 중위를 비롯한 군인들을 필두로 치안대를 만들려던 생각이었다.
‘군인들보다는 경찰 출신들이 이런 쪽의 경험이 다양하겠지?’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음···. 나쁜 생각은 아닌데. 몇 명이나 돼?”
“제 동기 2명을 비롯해 총 8명입니다.”
강건우가 의자의 손잡이를 툭툭 치며 고민했다. 잠시 고민하던 강건우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좋아. 대신에 간단한 조사를 거친 후에 결정하자고.”
박태정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믿을 수 있는 친구들입니다.”
대화를 끝낸 강건우와 박태정이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기 시작했다.
“일단. 수도와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대체건물을 상점에서 구입 후 설치할 거야. 그리고 C급 강제 각성 물약을 통해 내부 방어를 담당할 치안대도 만들 거고.
“포인트가 제법 많이 들어가겠군요.”
“응. 하지만 필요한 일이니까.”
박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아. 그런데 주민들은 얼마나 받아들일 생각입니까?”
강건우가 대답했다.
“딱히 정해 놓은 숫자는 없어. 카라가 개인정보를 통해 받아들일 만한 사람을 선별해 줄 거야.”
“역시, 카라님이십니다.”
카라의 능력에 감탄하는 박태정이었다. 그때 카라와 김주환이 조율자의 방에 나타났다.
“네! 그 대단한 카라가 돌아왔어요!”
“건우야, 다녀왔다.”
강건우가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빨리 왔네. 수고했어. 둘 다.”
“건우야, 카라가 정말 무서운 존재였다. 동사무소 기록보관실을 한번 스캔하더니 그 많은 정보를 한방에 그냥!”
김주환의 과장된 몸짓에 카라가 부끄러운 듯 강건우의 품으로 숨어들었다. 강건우가 카라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카라. 확보한 개인정보들로 어떻게 하려고 그래?”
카라가 고개를 슬쩍 내밀며 말했다.
“이 정보들을 정보석에 등록할 거예요. 그러면 정보석에서 개개인의 성향을 분석할 수 있어요.”
“그런 다음 우리가 받아들일 만한 사람을 선별하면 된다는 거지?”
“네, 맞아요.”
이야기를 듣던 박태정이 강건우에게 말했다.
“건우님, 사람들을 살펴보고, 내부 치안을 점검하기 위해서는 통합관제센터 같은 곳이 필요합니다.”
박태정의 말을 들은 카라가 자신 있는 말투로 말했다.
“상점을 이용해서 조율자의 방에 통합관제 시스템을 설치하면 돼요.”
박태정과 김주환이 동시에 놀랐다.
“역시, 카라님. 대단하십니다.”
“그 상점이라는 거 진짜 대단하네.”
두 사람의 칭찬에 신이 난 카라가 강건우의 품에서 뛰쳐나왔다.
“이왕 시작한 거, 임마트의 외관도 바꾸고 이름도 새로 지어요. 아크로폴리스의 핵심건물답게 바꾸는 거예요!”
“일단, 급한 기초시설부터 만들고.”
강건우가 카라를 진정시키며 조율자의 상점에 접속했다.
‘지금 있는 포인트가 50만. 일단은 수도와 전기를 해결하고 그다음 관제센터. 마지막으로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외관을 바꾸면 되겠군.’
꼼꼼하게 구매 계획을 세우는 강건우였다. 수도와 전기를 해결하기 위해 상점을 살피던 강건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최첨단 에너지공학 큐브가 10만, 정령공학 정수 수정이 15만, 더 좋은 건 가격이 비싸네.”
카라가 강건우를 위로했다.
“일단 그 정도면 당분간 강서구는 커버 할 수 있을 거예요.”
“알겠어. 근데 구매를 해도 어떻게 사용을 해야 하는 거야?”
“그건 저한테 맡겨 주세요.”
“고마워, 카라.”
다음으로 관제 시스템을 위해 대마법사의 눈을 20만 포인트를 이용해 구매했다. 그러자 조율자의 방이 영화에서나 볼법한 중앙관제실로 바뀌었다. 비현실적인 광경에 강건우와 박태정, 김주환이 입을 벌린 채 바라보았다.
“건우야, 이제 와서 뭘 놀라겠나 싶다만, 이건 정말 판타지 그 자체다.”
“건우님, 조율자의 상점은 정말 만능입니다.”
강건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상점을 살피기 시작했다.
‘음···. 포인트가 아깝긴 하지만. 이왕이면 모습도 간지 있는 게 좋겠지?’
한참을 고민하던 강건우가 적당한 외관을 찾은 듯했다. 매우 마음에 드는지 입가를 씰룩이며 웃었다.
잠시 후 임마트가 환한 빛을 내뿜었다.
빛이 사라진 자리엔 임마트를 대신해 멋들어진 모습의 성이 나타났다. 외관을 확인하기 위해 나온 강건우와 일행이 순식간에 바뀐 모습에 입을 벌린 채로 서 있었다.
일행이 안으로 들어서자 하얀 벽돌에 붉은색 융단이 깔린 긴 복도가 있었다.
복도의 좌우로는 여러 개의 방이 존재했다.
복도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자 멋들어지게 바뀐 조율자의 방이 나타났다. 중앙에는 커다란 원탁이 놓여있었다. 원탁의 뒤쪽으로는 중앙관제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황홀한 표정으로 내부를 구경하는 일행에게 카라가 말했다.
“1층 복도의 양쪽으로 생긴 방은 각각 아이템창고, 각성자 대기실, 훈련실 등으로 사용하면 되겠어요. 그리고 2층은 조율자의 방을 비롯해 건우님의 개인 공간으로 사용하시면 좋겠네요.”
카라의 설명을 들으며 한참을 바라보던 김주환이 강건우에게 물었다.
“근데. 이거 어째 낯이 익다?”
강건우가 대답했다.
“형도 눈치 챘구나? 그래 맞아. 내가 본 가장 멋진 성이지.”
“하하! 이것이 바로 성덕인가?”
“이름도 결정했어. 조율자의 성!”
“왜? 아예 그걸로 짓지.”
“그건 게임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그랬다. 강건우와 김주환은 게임덕후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이해 못 한 박태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왠지 자세히 물을 수는 없었다.
한바탕 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감탄하던 강건우가 조율자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제 각성자 귀환까지 1달이 남았어. 최대한 빨리 강서구 전체로 확장을 마무리 짓고 아마겟돈에 대비해야겠어.”
박태정이 입을 열었다.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던전에 다녀오십시오. 돌아오기 전까지 기초체계를 완성해 놓겠습니다.”
“고마워, 형만 믿을게.”
던전으로 가기 전 해야 할 일들을 끝낸 강건우와 일행이 조촐한 술자리를 가졌다. 진솔한 대화가 오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렇게 한동안 마음껏 먹고 마시던 세 사람이 각자의 임무를 위해 자리를 끝냈다.
***
다음 날. 강건우와 김주환이 던전으로 향했다. 기초시설의 설치를 위해 카라는 남기로 했다.
그렇게 강건우와 김주환이 C랭크 던전에서의 포인트 작업을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몰이사냥을 시작한 것이었다.
던전 밖의 상황도 바쁘게 돌아갔다.
박태정은 이진호와 협력하여 내부 치안을 위한 기초를 쌓아갔다. 경찰 출신의 동료들이 치안을 담당하기로 했다. 이진호를 비롯한 군인 출신들은 성벽의 방어를 담당하기로 했다. 아직 각성하기 전이었지만 의욕만큼은 열정이 넘쳐 났다.
카라는 적당한 위치를 찾아 에너지 공학 큐브와 정령 공학 크리스탈을 설치했다. 전기와 수도가 복구되자 강건우의 가족과 다른 가족들이 매우 기뻐했다.
***
달빛이 비치는 성의 중심부에 강건우와 김주환이 있었다. 두 사람의 뒤로는 재로 변해버린 뱀파이어들의 시체가 가득했다. 김주환이 옷에 묻은 재를 툭툭 털어내며 말했다.
“개미들이 너무 지겨워서 여기로 오긴 했다만, 진짜 여기는 밥맛도 안 생기는 곳이네.”
강건우가 김주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형, 그래도 시간 배율까지 따져보면 여기가 포인트 벌기에는 효율이 더 좋은 것 같아.”
“그건 그렇지.”
“아직 포인트 모으려면 한참 남았어. 힘내자고.”
강건우가 포탈을 통해 밖으로 사라졌다.
그 뒤를 김주환이 뒤따랐다. 던전을 초기화시킨 후 재입장한 두 사람이 말 그대로 폭풍과 같은 사냥을 시작했다.
강건우가 태초의 함성을 외쳐 모든 능력치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숲에 존재하는 수인형 크리쳐들을 몰이하기 시작했다.
스킬스톤을 사용해 광역 도발[Normal]을 시전 한 것이었다. 맹렬히 따라오는 수인들을 바라보는 강건우가 웃음을 흘렸다.
“이것 참. 개통령이 따로 없네.”
잠시 후 숲의 입구에 도착한 강건우가 제자리에 서며 방패를 끌어 올렸다. 수인형 크리쳐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었다.
그 순간 크리쳐들의 중심부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크리쳐들을 집어삼킨 폭발은 강건우를 덮치고 나서야 사라졌다.
“형! 힘 조절 좀 잘하라고!”
폭발이 걷히며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강건우가 툴툴거리며 말했다. 한편에 숨어있던 김주환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미안.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후···. 알겠어.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숲의 크리쳐들을 한방에 정리한 강건우와 김주환이 향한 곳은 뱀파이어들이 있는 성 부근이었다.
“형, 이젠 내 차례니까 구경이나 해.”
“알겠어.”
강건우가 뱀파이어 장로가 있는 성을 향해 돌진했다. 사방에서 뱀파이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강건우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을 무시하며 성을 향해 달려 나갔다.
장로의 친위대장인 뱀파이어가 다급하게 외쳤다.
“절대로, 장로님이 계신 곳까지 보내서는 안 된다.”
성으로 향하던 강건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 매크로도 아니고. 대사에 개성이 없어.”
잠시 후 강건우가 성의 중심부에 있는 장로의 방에 도착했다. 강건우가 나타나자 화려한 의자에 앉아있던 뱀파이어 장로가 음침한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어떻게 네놈들이 벌써 이곳에 나타난 것이냐!?”
“아 진짜 지긋지긋해. 개미들은 말이라도 안 통하지.”
강건우가 반복되는 사냥과 크리쳐들의 행동에 짜증이 났다.
“빨리 죽어. 그냥!”
강건우가 양손검을 들어 홍염의 칼날을 발동시켰다. 그리고 뱀파이어 장로를 향해 쏟아져 나갔다. 강건우의 검이 뱀파이어 장로의 심장을 꿰뚫었다.
“분하다. 힘을 회복할 시간만 충분했어도.”
끝까지 반복되는 대사에 강건우가 고개를 저으며 심장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강건우가 뒤늦게 도착한 뱀파이어들도 순식간에 포인트로 만들어 주었다.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나타난 김주환이 말했다.
“아아. 동족학살의 비참한 광경이여.”
강건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라는 거야? 빨리 나가서 초기화하자 갈 길이 멀어.”
“건우야, 그냥 하늘 요새에서 작업하는 것은 어때?”
김주환의 제안에 강건우가 대답했다.
“하늘 요새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 자칫 시간이 지체되면 큰일 나.”
“으으···. 진짜 C 랭크 던전들은 너무 지겹다.”
대화를 마친 강건우와 김주환이 포탈을 통해 사라졌다.
시간이 흘러 각성자들의 귀환이 일주일 남은 시점이었다. 웅장한 모습의 조율자의 성에 강건우와 김주환이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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