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파편(2)
폐허가 된 왕국의 옛 수도로 강건우 일행이 포탈을 통해 나타났다.
멀리 보이는 웅장한 모습의 왕성은 찬란했던 왕국의 과거를 보여주고 있었다.
강건우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카라, 우리가 공략할 던전이 하늘 요새라고 하지 않았어?”
“네. 맞아요. 아마도 여기서부터 단서를 찾아 하늘 요새로 가야 하는 것 같아요.”
김주환이 강건우에게 다가왔다. 박태정은 처음 겪는 던전의 풍경에 넋이 나가 있었다. 강건우의 곁에 다가온 김주환이 물었다.
“건우야, 일단 주변을 좀 탐색해 보는 게 어떨까?”
강건우가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응, 일단 왕성으로 가보자고. 거기를 중심으로 해서 탐색을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오케이. 가자고.”
“태정이 형, 뭐해? 정신 차려.”
강건우가 넋 놓고 있는 박태정의 등을 때리며 왕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왕성으로 향하는 길은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사람은 물론 그 어떤 생명체의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김주환이 소름 끼친다는 듯 몸을 떨며 말했다.
“여기 너무 으스스한데? 어째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이는 거 같아.”
박태정이 현직경찰의 능력을 발휘해 날카롭게 현장을 분석했다.
“건물 안의 상황들이 마치 한순간에 모든 사람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강건우가 두 사람에게 던전이 생성되는 원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던전은 신들이 자신들의 세상을 본뜨거나 자신의 성향을 반영해 만든다고 들었어. 아마 진짜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이 없는 걸 거야.”
강건우의 설명을 들은 카라가 왠지 모를 슬픈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김주환이 그런 카라의 기색을 눈치챘지만,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잠시 후. 왕성의 입구에 강건우와 일행이 도착했다.
멸망한 왕국의 건축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태였다. 굳게 닫힌 왕궁의 입구를 바라보던 강건우가 카라에게 물었다.
“카라. 그냥 열고 들어가면 되는 걸까?”
“건우님, 잠시만요! 제가 살펴볼게요.”
카라가 날개를 힘차게 펼치며 입구를 향해 날아갔다. 아까의 슬픈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흑백의 신비로운 빛을 뿌리며 이곳저곳을 살피던 카라가 소리쳤다.
“찾았다! 건우님, 여기에요!”
강건우와 일행이 카라가 가리킨 곳으로 급히 다가갔다.
거대한 입구의 한쪽에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쪽문이 정교하게 숨겨져 있었다.
“잘했어. 역시 카라야.”
강건우가 카라를 칭찬했다. 카라가 배를 내밀며 우쭐해 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다들 조심해.”
강건우가 일행에게 주의를 시키며 장비를 점검했다. 김주환과 박태정도 무기를 고쳐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다.”
일행이 준비를 마치자 강건우가 문을 힘껏 밀었다.
스르륵. 부드러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들어가자.”
강건우가 정면으로 방패를 세우며 조심스럽게 문 안으로 들어갔다.
왕궁 내부는 어둡고 황량한 모습이었다. 강건우가 손짓으로 안전한 것을 알리자 나머지 일행이 문안으로 들어섰다.
강건우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카라, 안쪽에서 느껴지는 것은 없어?”
카라가 대답했다.
“왕궁 중심부에 어떤 존재의 힘이 희미하게 느껴져요.”
“좋아. 그쪽으로 가자. 안내 부탁해.”
“네, 따라오세요.”
카라가 앞장서자 강건우와 일행이 뒤따라갔다.
잠시 후 강건우 일행이 왕궁의 중심부에 있는 대전에 도착했다. 대전의 끝쪽에는 근엄한 표정의 남성이 왕좌에 앉아 있었다.
강건우 일행을 발견한 남성이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시오. 정해진 인과를 벗어난 존재여. 나는 플레인 왕국의 마지막 왕 빌럼 3세라고 하오. 나의 한 맺힌 이야기를 들어주시겠소?”
대전을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얼굴을 찌푸린 강건우가 카라를 돌아보았다.
“건우님, 아마 아직 각성자들이 찾아올 때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아요.”
카라의 말에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 아직 각성자들이 돌아오려면 2달 남짓 시간이 남았다. 강건우가 정해진 인과를 벗어난 존재라는 말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건 마치 게임에서 퀘스트 받는 것 같은 느낌이군.’
강건우가 빌럼 3세에게 말했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빠르게 설명 부탁합니다.”
한나라의 국왕에게 다소 건방진 말투였다. 하지만 빌럼 3세는 괘의치 않는 듯 말을 이어갔다.
“고맙소. 오래전 우리 대륙에 파괴신의 사도들이 강림했소. 그들은 대륙을 부수고 파괴를 시작했소. 대륙의 위기에 유일신이었던 칼라 님의 사도들이 그들을 막기 위해 강림했지만 역부족이었소. 대륙은 파괴되어서 갔고 우리 왕국 또한 마찬가지였소. 대륙의 인간을 불쌍히 여긴 칼라 님께서 남은 힘으로 하늘 요새를 만들어 우리를 다른 차원으로 대피시키려 했지만···.”
이어지는 빌럼 3세의 말이 끝나자 강건우에게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던전 퀘스트]
목표 - 하늘 요새에 존재하는 플레인 왕국의 조던 왕자 처치.
내용: 최후의 순간 파괴신의 유혹에 빠져 타락한 왕국의 조던 왕자가 하늘 요새에 깊은 곳에 봉인되어있다. 멸망한 세계의 신의 힘이 약해져 가는 지금 봉인이 위태롭다. 왕자를 처치하고 타락해버린 요새의 병력을 처치해 요새를 정상화해라.
보상 : ???????, 100000P
강건우가 크게 놀라며 카라에게 물었다.
“카라, 던전 정보에 물음표로 표시되어있던 부분이 바로 이거 같은데?”
“건우님, 조율자에게만 주어지는 히든 퀘스트에요.”
“히든 퀘스트?”
강건우가 놀라며 묻자 카라가 대답했다.
“네, 던전 클리어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클리어할 경우 커다란 보상을 기대할 수 있어요.”
“대단해! 근데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어?”
카라의 두 눈에 흑백의 기운이 서리며 대답했다.
“제힘이 부족해서 그랬어요. 말해드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어요.”
“힘이 부족해?”
“네, 건우님이 조율자로 선택받은 순간 저도 탄생했어요. 건우님이 성장하고 비밀에 다가갈수록 저도 성장하는 것 같아요.”
카라의 말에 강건우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자신을 조율자로 만든 존재에 대한 것이었다. 콜로세움에서 만난 블랙과 화이트 또한 ‘그분’이라고 지칭한 존재가 있었다.
‘나를 선택한 어떤 존재가 힘을 잃은 상태고 내가 성장할수록 힘을 되찾는다. 대충 이런 건가?’
그 존재가 자신을 이용하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평범한 자신을 이용할 이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주어진 막강한 힘을 주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강해지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강건우가 퀘스트를 수락했다. 빌럼 3세가 환한 웃음과 함께 말을 하며 사라져갔다.
“고맙소. 부디 내 아들을 영원한 고통에서 해방해 주시오.”
빌럼 3세가 사라지자 왕좌에 포탈이 나타났다. 하늘 요새로 향하는 포탈이었다.
“가볼까?”
강건우가 희미하게 웃으며 일행에게 돌아갔다. 김주환은 심각한 표정으로 강건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강건우가 돌아오자 박태정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세상을 파괴하다니! 지구에도 곧 이런 일이 닥쳐오는 것입니까?”
강건우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맞아요. 이제 두 달 남짓 남았네요.”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박태정의 얼굴이 분노로 더욱 달아올랐다. 강건우에게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김주환이 고개를 저으며 말렸다.
박태정을 진정시킨 김주환이 말했다.
“건우야, 일단은 던전을 클리어하는 게 우선인 것 같아.”
“그렇지. 출발하자.”
***
하늘을 나는 거대한 요새는 마치 거대한 항공모함을 연상시켰다.
신이 마지막 힘을 쏟아부어 만든 요새다웠다.
총 10층 부로 이루어져 있는 요새는 지하로 내려갈수록 강한 크리쳐가 나오는 구조였다. 한 층의 크기도 매우 넓어서 구석구석을 찾아 클리어한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늘 요새의 최상층부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강건우를 포함한 일행을 수많은 병사가 둘러싼 채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일행의 뒤쪽으로는 병사들의 시체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정말이지 이런 곳을 3명이 클리어할 생각을 했다니!”
사방에서 날아드는 창과 검을 방패로 막아내며 강건우가 말했다.
“건우 씨! 조금만 더 버티면 됩니다! 주환이의 회복이 끝나갑니다!”
박태정이 강건우의 반대쪽을 막으며 말했다. 일행의 중간에는 김주환이 눈을 감고 체력을 회복 중이었다.
잠시 후 회복을 마친 김주환이 눈을 번쩍 뜨며 외쳤다.
“오케이. 나 준비됐어.”
강건우가 다급하게 말했다.
“빨리! 빨리! 말할 시간도 아깝다고!”
강건우의 재촉에 김주환이 정면의 병사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외쳤다.
“블러드 익스플로젼!”
김주환의 몸에서 짙은 핏빛이 터져 나오며 멸망한 병사들의 중심부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쾅! 쾅! 쾅!
“크악!!”
멸망한 병사들이 인간 같지 않은 괴성과 함께 터져나갔다. 블러드 익스플로젼의 위력은 대단했다. 한 번의 사용으로 정면에 존재하던 병사들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스킬을 사용한 김주환이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으아···. 진짜 한번 쓸 때마다 죽을 맛이네.”
강건우가 김주환을 부축했다.
“이 정도 위력인데 리스크가 큰 게 당연하지.”
“내가 상상한 마법사는 화려하게 불을 뿜고 막 사라지고, 하늘을 날고···.”
박태정이 김주환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가진 거라고는 무식한 힘밖에 없는 개미 전사 앞에서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박태정의 농담에 일행이 웃음을 터트렸다. 카라가 웃고 있는 일행에게 말했다.
“이제 최상층의 시작 부분일 뿐이에요. 여기에 베이스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공략을 시작해야죠.”
강건우가 카라의 말에 입을 열었다.
“알겠어. 주환 형이랑 태정 형은 부산물 정리를 부탁해. 난 상점에 접속해 필요한 것들을 좀 살게.”
“오케이!”
“네, 건우 씨.”
두 사람이 힘차게 대답하며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강건우가 조율자의 상점에 접속해 베이스캠프 설치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했다.
세 사람이 들어가도 넉넉할 텐트와 각종 요리기구 그리고 베이스 주변에 설치할 간이 보호막 등이었다.
구매를 마친 강건우가 베이스캠프 설치를 시작했다. 그때 부산물 정리를 하던 김주환이 강건우를 향해 말했다.
“건우야, 텐트 말고 더 좋은 집은 없는 거야?”
강건우가 텐트를 설치하며 말했다.
“있지. 근데 비싸.”
“그, 그래?”
비싸다는 강건우의 대답에 할 말이 없어진 김주환이 다시 부산물 정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부산물 설치와 베이스캠프 설치를 마친 일행이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맛있는 음식과 약간의 음주를 곁들인 훌륭한 저녁 식사였다.
저녁 식사를 마친 일행이 잠자리에 들었다. 불침번은 필요 없었다. 보호막을 설치했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 새벽같이 기상한 일행이 베이스캠프를 떠나 최상층 공략을 시작했다.
최상층에는 멸망한 문명의 병사(C 랭크)들만 출현했다. 사냥이 이어질수록 세 명의 호흡은 완벽해져 갔다. 사냥속도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최상층을 정리한 일행이 다음 층을 향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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