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를 얻다(1)
집 문을 열자마자 강건우의 가족들이 뛰쳐나왔다.
“왔구나. 건우야.”
“아버지. 저 왔어요.”
“일주일 동안 대체 뭘 하고 온 거야? 아들? 응?”
담담한 척 하는 아버지 강경식과 달리 어머니 설현숙은 걱정이 가득이었다.
“걱정 끼쳐 드려 죄송해요. 저 일단 씻고 올 게요.”
“그래. 아들.”
그동안 씻지 못해 찝찝했던 강건우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그리고 식사를 위해 가족들과 식탁으로 둘러앉았다.
“아버지. 저 없는 동안 집에 별일은 없었죠?”
강건우의 질문에 강경식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별 일 없었다. 건우, 네가 먹을거리하며 집에 필요한 물품들을 잔뜩 챙겨주고 가서 편안하게 있었다.”
여동생 강지우가 입을 삐죽였다.
“오빠! 일주일이나 소식도 없이 어딜 다녀온 거야? 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고!”
툴툴거리는 여동생을 보며 강건우는 그저 웃기만 했다. 설현숙은 그저 강건우를 따듯하게 안아줄 뿐이었다.
“우리 아들.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어. 지우야. 오빠 밥 좀 먹게 조용히 좀 해. 건우야. 어서 밥 먹자 ”
그렇게 시작된 저녁 식사는 정말 푸짐했다.
아마겟돈 이후 식량난에 시달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 미안할 정도였다. 식사 후 디저트까지 화려하게 챙겨 먹은 강건우가 TV 앞에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강서뉴스 앵커 박성재입니다. 오늘은 강서구의 치안상태를 둘러보고 계시는 김선태 구청장님과 연결해 보겠습니다. 정예지 앵커 나와 주세요.”
“네! 정예지 앵커입니다. 오늘은 강서구를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계시는 김선태 구청장님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TV 뉴스에서는 경찰서에서 마주쳤던 김선태 구청장의 얼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상을 찌푸린 강건우가 강경식에게 물었다.
“아버지. 여기 MCC 채널 아니에요? 왜 갑자기 강서방송이 나오는 거예요?”
강경식이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강건우에게 내밀며 말했다.
“그게 말이다. 며칠 전부터 갑자기 다른 방송들의 송출이 끊기더니 이제는 채널마다 나오는 게 강서방송뿐이구나.”
강건우의 맥주를 가볍게 가로챈 강지우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후우 시원해. 오빠. 내가 SNS에서 확인해 봤는데 지금 다른 지역에 있는 방송국들이 괴물들한테 전부 파괴돼서 마비 상태래.”
강건우가 생각에 잠겼다.
‘뭔가 이상해. 아직은 정부가 그럭저럭 버틸 만할 텐데?’
생각을 마친 강건우가 강지우에게 물었다.
“그래? 그런데 아직 전기도 들어오고 수도도 나오는데?”
강지우가 마시던 맥주 캔을 내려놓고 대답했다.
“흠흠. 이 정보통께서 SNS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정부가 군 부대를 대거 투입해서 국가 기반시설들은 지켜내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오호? 그렇단 말이지?”
“응. 그런데 이상하게 방송국만 집중적으로 공격을 해서 정부에서도 포기한 모양이야.”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셨다.
‘음···. 아직까진 정부가 무너질 때는 아니야. 아마 2달 정도는 버틸 만할 거야.’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강건우가 카라에게 물었다.
“카라. 조율자의 상점에는 없는 게 없다고 했었지?”
“정답입니다! 원하시는 물품을 떠올리시면 검색하실 수 있을 거예요.”
“겸사겸사 재정비도 하고 본거지를 키워나갈 계획도 짜고 해야겠어.”
강건우가 강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네 방에서 좀 쉰다.”
강지우가 SNS에 열중한 채 손을 휘휘 저었다.
“어지럽히지 말고, 이것저것 뒤지지 말고.”
“내가 너냐?”
경고를 받은 강건우가 피식 웃으며 강지우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동생의 취향이 한껏 반영된 핑크빛 침대에 몸을 뉘었다.
“후우. 얼마 만에 휴식이냐. 일단 확인 좀 해볼까나?”
현재 보유하고 있는 포인트를 점검한 뒤 조율자의 상점에 접속했다.
‘36만 포인트라. 일단 장비부터 싹 바꾸고. 스킬도 바꾸고, 아크로폴리스 정비에 쓰일 물품들을 검색해 봐야겠어.’
포인트를 잔뜩 모은 강건우의 폭풍 쇼핑이 시작됐다. 일단 15만 포인트를 이용해 C 랭크 던전 스톤 두 개를 샀다.
[C랭크 문라이트 필드 던전스톤]- C 랭크 초기각성자로 각성시켜준다. 잠재랭크는 각성자의 능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C랭크 다난 사막 던전스톤]- C 랭크 초기각성자로 각성시켜준다. 잠재랭크는 각성자의 능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10만 포인트를 이용해 무기와 방어구를 사기 시작했다.
‘10만 포인트로 살만한 것들은 B 랭크 장비들이려나? 흐흐. 내가 B 랭크 장비들을 사용하게 되다니!’’
상점을 검색하던 강건우가 적당한 가격의 장비를 찾았다.
B 랭크의 데몬 계열 크리쳐들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장비였다. 다른 각성자들은 제작에 필요한 부산물을 모아 포인트를 사용해 장비를 만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강건우에게는 조율자의 상점이라는 치트 키가 있었다.
[데모닉 원핸드 블레이드] - B 랭크
[데모닉 투핸드 블레이드] - B 랭크
[데모닉 라운드 쉴드] - B 랭크
[데모닉 미디엄 아머 셋트] - B 랭크
‘고귀한 후계자의 보정을 믿고 공격력 위주로 세팅하는 게 좋겠어.’
물론 조율자의 상점에는 총을 비롯한 각종 현대무기도 존재했다.
하지만 현대무기를 구매 목록에서 제외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크리쳐에게 현대무기가 통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잘 버티던 정부가 급격히 밀리기 시작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두 달 안에 무용지물이 될 무기를 살 이유가 없지. 그나저나 진짜 좋은데?’
강건우가 B 랭크 장비들을 점검하며 성능에 감탄했다. 전생에서는 일괄적으로 지급된 낮은 품질의 C 랭크 장비들을 사용해봤던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장비구입을 마친 강건우가 스킬 화염 베기[Normal]를 홍염의 칼날[Epic]로 교체했다. 기존의 스킬을 삭제하는데 들어간 포인트가 아까웠다. 하지만 B 랭크 던전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스킬의 업그레이드는 필수였다.
‘A 랭크 이상의 장비들과 랭크가 높은 스킬들은 위력이 어마어마하겠군. 빨리 포인트를 모아서 랭크 업도하고 장비랑 스킬도 바꾸고. 흐흐. 정말 할 일이 산더미군.’
강건우가 장밋빛의 미래를 그리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라가 강건우의 볼을 툭툭 찌르며 말했다.
“건우님!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샴페인은 나중에 터트리시죠.”
강건우가 카라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알아. 그냥 기분이 좋아서 그래.”
카라를 마구 쓰다듬어준 강건우가 아크로폴리스를 위한 물품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조율자의 상점에는 기반시설을 대체할 다양한 시설들이 있었다. 발전소, 수도정화시설, 각종 건설 장비, 건설 자재들 등을 대체할 수많은 구조물과 물품들이 존재했다.
“이건 뭐 거의 심시티 아냐?”
“그게 뭔데요? 건우님?”
“있어. 게임.”
상점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다시 한번 감탄한 강건우가 카라에게 물었다.
“카라, 상점에 있는 물품들 말이야.”
“네. 건우님.”
강건우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차피 아마겟돈이 본격화되면 지구의 문명이 필요할 일이 있을까?”
3개월 후 각성자들이 돌아온다. 그 날을 시점으로 크리쳐들의 공격이 격해지기 시작한다. 또한, 수호자와 파괴자의 전쟁으로 문명은 파괴되어 갈 것이다.
지구의 자연환경은 사람이 살기 힘들게 변해갈 것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조율자지만 혼자 힘으로 지구의 문명을 지키는 것은 어렵다.
물론 강건우는 그럴 마음도 없었다.
“모든 것은 건우님의 선택에 달렸어요. 저는 건우님이 어떤 선택을 하시던 열심히 도와드릴 뿐이고요.”
카라의 대답에 강건우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나. 아무튼, 복잡한 건 딱 질색이야. 일단은 현재에 집중하고 싶어.
“네, 맞는 말이에요. 건우님은 잘 해내실 거예요”
강건우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물품마다 봉인을 해제하는 조건들이 다르네?”
카라가 특유의 날갯짓과 함께 입을 열었다.
“네. 건우님! 어떤 물품은 일정량의 마정석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관련 퀘스트를 완수해야만 하는 것도 있어요.”
“마정석이라면 A 랭크 이상의 던전 보스에게서 얻을 수 있잖아?”
“네. 맞아요.”
강건우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은 먼 훗날 이야기군.”
“A 랭크 던전은 혼자 공략할 수도 없을걸요?”
“그렇겠지. 이제 복잡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각성퀘스트나 완료하러 가야겠어.”
강건우가 방을 나왔다. 집 밖으로 나가려는 강건우를 가족들이 붙잡았다.
“오빠! 또 나가는 거야? 이번엔 얼마나 안 들어 올 거야?”
“건우야. 좀만 기다려 엄마가 먹을 것 좀 챙겨줄게.”
“몸 조심히 돌아오거라.”
가족들의 폭풍과도 같은 관심이 쏟아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무사히 돌아올 테니까요. 지우, 너는 SNS 잘 들여다보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연락이나 씹지 마. 오빠.”
“오케이.”
강건우가 금세 돌아오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큰일을 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며 설현숙이 싸준 간식도 챙겼다.
***
아파트 단지를 벗어난 강건우가 발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긁적였다.
“으아. 일단 나오기는 했는데.”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나왔다.
하지만 퀘스트를 완료하기에는 상황이 어려웠다. 각성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유력한 두 명의 사람이 존재하긴 했다.
첫 번째 인물은 증미산에서 마주쳤던 남성이었다. 하지만 도통 신원을 알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인물은 경찰서까지 동행했던 우직한 스타일의 경찰이었다.
박태정 경장 역시 지금으로서는 찾아갈 수가 없었다.
아직 임마트 사건이 처리가 안 된 채로 남은 상태였다. 가장 결정적인 건 퀘스트와 조율자에 관해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 설명을 하다 보면 분명 임마트 사건에 대해서 눈치를 챌 거고, 박태정 경장 성격상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지? 일단 증미산에서 마주친 남자부터 찾아보자.’
퀘스트의 진행 방향을 결정한 강건우가 카라를 쳐다보았다.
“카라, 증미산에서 마주쳤던 남자 기억나?”
“네 물론이죠.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요.”
“그럼 찾을 방법도 알고 있어?”
“음···. 확실하지는 않지만 일단 증미산으로 가보죠.”
카라가 앞 장서 증미산을 향해 날아갔다. 그 뒤를 강건우가 쫓아갔다.
***
증미산에 도착한 강건우가 곧바로 던전의 입구가 있는 통신탑으로 향했다. 던전 입구 앞으로 도착한 강건우가 카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무슨 방법이 있는지 말해줘.”
카라가 통신탑 주변을 한참이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몇십 분 정도 흘렀을까. 카라가 반색하며 외쳤다.
“찾았다! 건우님! 제가 찾았어요!”
카라의 외침에 강건우가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했어! 역시 카라야!”
카라의 외침에 강건우가 이유도 모른 채 흥분했다. 카라가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우쭐대며 말했다.
“엣헴. 그걸 이제야 아셨어요?”
“그런데 뭘 찾았다는 거야?”
“그게 말이죠.”
카라가 설명을 시작했다.
던전에 온 각성자들은 개인 고유의 흔적을 남긴다. 일종의 지문 같은 개념이었다. 각성자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시스템에 연결된 카라는 구분을 할 수가 있었다. 아직 던전을 찾은 사람이 강건우와 그 남자뿐이라는 걸 착안한 카라가 기막힌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이제 임마트로 돌아가시죠.”
“임마트로?”
강건우가 의아한 듯 물었다.
“네. 본거지 정보석에 이 남자의 흔적을 입력해야 해요.”
“그러면 찾을 수 있는 거야?”
“강서구 안에 있다면 대략적인 위치는 알 수 있어요.”
“빨리 가자!”
강건우가 임마트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임마트의 입구에 강건우가 도착했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임마트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진짜 아무도 없네.”
고개를 돌려 주변을 확인한 강건우가 임마트로 들어갔다.
조율자의 방에 도착한 카라가 정보석에게 다가가 말했다.
“자. 이제 정보를 입력할게요.”
“으아. 떨린다. 제발 강서구 안에 있어라.”
카라가 정보석에 접속한 채 두 눈을 감았다. 몇 분 후 카라가 두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
“찾았어요. 다행히 강서구 안에 머물고 있네요.”
“만세! 어디야? 어딘데?”
“강서구 보건소에 있는 거로 나타나네요.”
강건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가자! 나도 얼굴은 대충 기억나! 가서 찾아보자고.”
강건우와 카라가 강서보건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강서구 염창동에 있는 강서보건소.
한때는 평화롭던 강서보건소는 부상을 당한 사람들과 응급처치를 하는 의사들로 가득했다.
아수라장 같은 보건소의 입구에 젊은 공중보건의가 확성기를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여러분! 질서를 지키셔야 합니다! 순서를 지켜주세요!”
익숙한 얼굴의 남성이었다. 강건우가 증미산에서 마주쳤던 그 남성, 바로 공중보건의 김주환이었다.
“카라. 찾았다! 증미산의 그 남자!”
“이번에도 운이 좋네요. 건우님!”
카라의 말에 강건우가 웃으며 말했다.
“말을 걸긴 해야 할 텐데.”
“뭐라고 하시려고요?”
강건우가 손가락으로 김주환을 가리키며 호기롭게 외쳤다.
“너! 내 동료가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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