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자의 태동(3)
적막한 공기가 흐르는 던전 입구. 카라가 한창 던전스톤에 대해 설명 중이었다.
“던전을 클리어할 경우 봉인이 해제되면서 던전스톤을 조율자의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어요.”
“던전스톤을 구입해서 뭘 하는데?”
강건우의 질문에 카라가 잠시 뜸을 들이다 자랑스러운 표정을 했다.
“던전스톤을 통해서 각성자로 각성을 시킬 수가 있어요.”
“그래? 하지만 수호자나 파괴자들도 포인트를 이용해 일반인들을 강제 각성자로 각성시킬 수 있잖아? 나 같은 양산형 각성자 말이야.”
강건우의 질문에 카라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말했다.
“건우님도 아시다시피 600인의 소환자는 초기 각성자들이에요. 그중에 상위 100명만이 수호자와 파괴자로 선택받죠. 수호자와 파괴자는 자신들의 신에게 포인트를 받치고 강제 각성자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그 정도는 나도 당연히 알지. 그러니까 조율자는 던전스톤을 이용해서 강제 각성자를 만들 수 있다는 거지?”
강건우가 실망한 듯 말하자 카라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알겠어.”
“조율자는 던전스톤을 이용해 초기 각성자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뭐?!”
카라의 폭탄과 같은 발언에 강건우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떠졌다.
초기 각성자는 잠재 랭크에 따라 포인트를 이용한 랭크 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강제 각성자는 절대 C랭크를 벗어나지 못한다. 한마디로 전쟁의 소모품 같은 존재였다. 그마저도 수호자나 파괴자의 눈에 들어야 간신히 얻을 수 있는 축복이었다.
그러니 랭크 업을 통해 성장하는 초기 각성자의 귀중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말도 안 돼!”
강건우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수호자 50인과 파괴자 50인을 제외한 500인의 초기 각성자. 향후 아마겟돈에서의 전세를 결정지을 핵심전력이었다. 고 랭크의 초기 각성자는 수호자나 파괴자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귀한 존재들이었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강건우가 조율자의 상점에 접속했다. 던전스톤의 가격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조율자의 상점]
C 랭크 던전스톤 - 50000P
B 랭크 던전스톤 - ?????????P
A 랭크 던전스톤 - ?????????P
S 랭크 던전스톤 - ?????????P
조율자의 상점에서 가격을 확인한 강건우가 툴툴대며 말했다.
"던전스톤 가격이 만만치가 않은걸?”
뭐랄까 갑자기 김이 빠졌다. 물론 수호자나 파괴자들이 훗날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밸런스 붕괴라며 자신의 신들을 향해 온갖 불평들을 다 할 만큼 조율자란 존재는 사기였다.
지금 강건우는 어떻게 보면 배가 불러 있는 상태였다.
“그나마 각각 초기 구매의 가격이에요. 구매횟수가 올라갈수록 가격이 두 배로 올라요.”
“B 랭크 이상의 가격은 얼마나 될지 상상하기도 싫군.”
“음. 포인트를 열심히 모으세요.”
카라가 강건우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국영수 위주로 공부해서 서울대 가라는 말로 들리는데?”
“네?”
강건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카라에게 물었다.
“카라. 이 던전은 이제 귀속상태인 거 맞지?”
“네. 던전 밖으로 나가서 포인트를 이용해 초기화도 가능하세요.”
“좋았어.”
강건우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이 던전은 자신의 차지였다.
“일단 밖으로 나가자. 집에 있는 가족도 걱정이 되고.”
강건우가 먼저 던전의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
동이 떠오르기 시작하는 아침. 증미산의 초입으로 오타쿠들이나 입을 법한 갑옷을 입은 강건우가 나타났다.
“가족들이 무사해야 할 텐데.”
“건우님. 걱정하지 마세요. 강서구를 벗어나지 않으셨다면 안전하다니까요?”
“그래, 알았어. 그래도 던전 안과 밖의 시간 배율이 달라서 다행이야.”
강건우가 던전의 공략을 완료하고 밖으로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3일이었다. 하지만 던전마다 지구와의 시간 배율이 천차만별로 달랐다.
덕분에 던전에서의 3일 동안 밖의 시간은 겨우 반나절이 흘렀을 뿐이었다.
“가자. 카라.”
“네! 건우님!”
강건우가 집을 향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아파트 현관문에 도착한 강건우에게 가족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아직 오빠한테 연락 없어요?”
“아직 이구나. 건우가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가족들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다. 순간 마음 한 구석이 따듯해졌다. 강건우가 현관 벨을 누르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우니?”
“네, 어머니 저예요.”
“건우야! 여보! 우리 건우가 돌아왔어요!”
벌컥! 아파트의 현관문이 열렸다. 가족들이 강건우를 반기며 질문을 쏟아냈다.
“건우야!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 거니?”
“오빠! 정말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두 모녀가 동시에 강건우를 나무랐다. 하지만 두 모녀의 눈동자가 붉어져 있었다. 회귀 전이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가족의 사랑에 강건우는 괜히 코끝이 찡했다.
“여보, 지우야. 그만해라! 무사히 왔으니 된 거다.”
아버지 강경식도 얼굴이 상해 있었다.
강건우가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사과를 했다.
“죄송해요. 중요한 일이 있어 잠시 어디 좀 다녀왔어요.”
“알았다. 그보다 건우야. 이리 좀 와 보거라.”
강경식이 강건우의 손을 끌어당기며 텔레비전 앞으로 향했다. 화면에는 새벽 뉴스 대신 재난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현재 전국에 재난경보가 내려졌습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집 밖으로의 외출을 자제해주십시오. 또한, 외부에 계신 시민분들께서는 가까운 대피소로 신속히 이동해 주시길 바랍니다!-
강건우는 재난방송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아마겟돈이 시작되면서 크리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크리쳐들은 늘어날 것이고 지구는 커다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제 시작이야. 정부가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어. 일단 가족들을 진정시킨 다음 본거지를 점검해야겠구나.’
그때 핸드폰을 보고 있던 강지우가 강건우의 팔을 흔들었다.
“오빠! 지금 SNS에 난리 났어! 거리에 괴물들이 나타나 건물들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데!”
뉴스를 보던 강경식과 설현숙이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말이냐? 지우야?
“얘는?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라. 멀쩡한 세상에 괴물이 무슨 말이니? 영화도 아니고.”
억울한 표정으로 강지우가 가족들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진짜야. 지금 대학 동기 SNS 계정에 직접 찍은 동영상도 올라왔다니까요?!”
강지우가 가족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크기의 벌레가 건물들과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삼키는 모습을 본 가족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강건우가 흥분한 가족들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지우야. 일단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꼭 믿어주세요. 절대 농담도 아니고 장난도 아니에요.”
강건우가 지금의 현상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오빠. 미친 거 아니지? 이제 공부하라고 잔소리 안할게. 응?”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은 믿을 수 없다며 부정했다.
“후우. 어쩔 수 없나.”
강건우가 결국 조율자의 상점에서 아이템을 구매하는 모습과 카라의 존재를 보여주었다.
“아, 안녕하세요? 건우님의 가족 여러분? 저는 카라입니다! 치킨을 좋아하는 카라에요!”
“에구머니나.”
설현숙은 놀라 의식을 잃었다. 강지우는 제법 강단 있게 카라를 살펴보았다. 한참을 침묵하던 강경식이 강건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건우야, 솔직히 뭐가 뭔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아비는 너를 믿는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코끝이 또 찡했다. 노량진에서 기약 없이 공무원 공부를 할 때도 늘 믿는다고 말을 해주었던 사람이 아버지였다.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다오.”
“네. 말씀하세요.”
“무슨 일이 있어도 위험한 일은 피하겠다고 약속해주겠니?”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낀 강건우가 코끝을 붉히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설현숙이 의식을 찾았다.
강건우는 부모님에게 자신의 권역 밖으로 벗어나지 말 것을 여러 번 당부했다.
“다녀올게요. 지우야.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절대 나가지 말고. 알았지?”
“응. 오빠.”
가족을 설득하는 것에 성공한 강건우가 집을 나섰다. 초기 설정의 중심지였던 임마트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
“카라, 아크로폴리스가 어떤 모습일지 너무 궁금해,”
아크로폴리스. 조율자가 된 강건우의 본거지였다. 수호자나 파괴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본거지가 생겼다는 생각에 강건우는 감회가 남달랐다.
카라가 강지우가 챙겨준 간식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음. 아직은 외관적으로 크게 변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근데 이 과자 맛있네요? 치킨도 맛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래? 그럼 어떤 변화가 있는 거야?”
“일단 임마트 내부에 조율자의 방이 생겼어요.”
“조율자의 방?”
“네, 일종의 중앙관제실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중앙관제실이라, 정확히 무슨 역할을 하는 건데?”
“조율자의 방 안에 존재하는 정보석을 이용해서 본거지의 확장 및 각종 구조물의 건설, 구성원 등록 등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어요!”
설명을 들은 강건우가 짝 두 손을 마주쳤다.
“아! 생츄어리와 스트롱홀드의 대신전 같은 기능이구나.”
“네, 바로 그거예요!”
대화를 마친 강건우가 임마트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조율자의 본거지가 될 임마트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임마트 주변에는 벌써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박 팀장! 이게 무슨 일이야? 세상에 매장에 들어갈 수가 없다니!”
“점장님. 매장에 들어가려던 직원들 모두 밖으로 튕겨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뭐냐고?! 아직 직원들은 출근 전이지?”
“예. 재난방송 영향인지 출근하지 않은 직원들이 많습니다.”
점장과 팀장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해하고 있었다.
임마트 직원들의 소란을 바라보던 강건우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카라,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라면 마트 주변으로 황금빛 장막이 둘려 있는 것 같은데?”
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보호막이에요.”
“그럼 나도 못 들어가는 건가?”
강건우의 질문에 카라가 웃으며 말했다.
“헤헤. 설마요. 건우님의 본거지예요. 들어가시죠.”
“알겠어. 들어가 보자.”
강건우가 임마트 직원들 사이를 지나 정문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발견한 임마트 직원들이 소리를 치며 강건우를 불렀다.
“어···. 어? 저 사람은 들어가네?”
“박 팀장! 저 사람 잡아!”
“네? 네! 점장님!”
박 팀장의 지시에 남자 직원들이 임마트로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모두 빛의 장막에 부딪혀 나가떨어졌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빛의 장막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소란을 뒤로하고 조율자의 방에 도착한 강건우가 정보창을 호출했다.
[아크로폴리스-강서구]
진영 : 조율자
소속: 강건우
본거지 랭크 - C 랭크
소속 각성자 - 0 / 2
랭크 업 필요 포인트 - [0/5000000]
랭크 업 필요조건 - [권역 내의 모든 던전의 귀속.]
정보창을 확인하고 있는 강건우에게 카라가 날아들었다.
“아크로폴리스는 수호자의 생츄어리나 파괴자의 스트롱홀드와는 다른 부분이 있어요.”
전생에서 생츄어리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 비교해본 강건우가 입을 열었다.
“그러게. 생츄어리나 스트롱홀드는 해당 신들의 성향에 맞는 모습이었었지.”
수호자 김한나의 경우 여신을 모시고 있었고, 여신의 취향대로 생츄어리도 우아했으며 아름다운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다.
“네. 아크로폴리스는 건우님이 원하는 대로 성장시킬 수 있어요”
“나만의 왕국을 건설하라는 건가?”
“바로 그거예요! 대신 어마어마한 포인트가 필요할 거예요.”
“알겠어. 던전을 열심히 돌아야겠구나.”
강건우가 머리를 긁적였다.
조율자의 방을 나선 강건우가 매장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대형마트에는 정말 많은 물품이 있었다. 한참을 둘러보던 강건우가 카라에게 말했다.
“마트에 있는 물품들을 두고두고 사용한다면 포인트도 아끼고 좋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마트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가지러 오기에는 불편하겠죠?”
“그렇지. 음식들 같은 경우는 유통기한이 문제가 될 거고.”
강건우가 턱을 만지며 고민을 했다.
‘인벤토리에 담기는 너무 양이 많아. 귀찮기도 하고.’
강건우의 고민을 눈치챈 카라가 힘찬 날갯짓과 함께 입을 열었다.
“건우님, 방법이 있어요.”
강건우가 반색하며 물었다.
“그래? 어떤 방법이야? 빨리 말해봐!”
“담으세요.”
카라는 단호했다.
“담으라고? 어디에?”
카라가 헤헤 웃으며 강건우의 머리로 앉았다.
“조율자의 상점에 담으세요. 물품등록을 하면 장기간 보관이 가능해요.”
강건우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방법이 있었어?”
“네. 그리고 필요하실 때 구매해서 사용하시면 돼요. 물론 본인이 등록한 물품은 공짜입니다.”
강건우가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 조율자의 상점은 정말이지 만능이었다.
카라를 마구 쓰다듬어준 강건우가 임마트에 있는 물건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얼마나 양이 많은지 한참이 지나서야 다 담을 수 있었다. 썰렁해진 마트 안을 뿌듯한 표정으로 둘러본 강건우가 마트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와! 부자 된 느낌이야. 한동안은 아무 걱정 없겠네.”
“건우님, 걱정이 없으시면 안 돼요! 포인트 열심히 모으셔야 해요!”
“알겠어. 그냥 해본 말이야.”
포인트를 모을 생각에 강건우가 시무룩해졌다.
볼일을 끝낸 강건우가 마트 밖으로 나왔다.
강건우가 나타나자 주변이 시끄러워지며 일단의 무리가 다가왔다. 바로 임마트 점장과 직원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었다.
“저, 저 사람입니다!”
“저 사람이 들어가고 난 후부터 매장의 물건들이 싹 사라졌습니다!”
“예?”
점장과 박 팀장의 말에 경찰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저기서 괴물이 나타나 나라가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강서구는 이상할 정도로 잠잠했다. 강서구의 경찰들은 다른 지역에 지원을 나가고 남은 인원이 얼마 없었다. 신고내용이 너무 터무니없었지만 신고가 들어온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영업장 불법 침입으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잠시 서까지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
강건우가 멍한 표정을 했다. 카라는 그저 신기하다는 듯 과자를 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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