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자의 태동(1)
“.....”
강건우가 눈을 뜨자 익숙한 풍경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 고시원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돌아왔구나.’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때마침 카라가 강건우를 반기며 날아왔다.
“건우님.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응. 카라 다녀왔어.”
강건우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콜로세움에서의 일을 카라에게 설명했다. 카라는 설명을 듣는 내내 감탄을 하거나 생각에 빠지는 눈치였다.
설명을 끝낸 강건우가 흥분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카라. 난 준비됐어. 전직 퀘스트 완료를 부탁해.”
“네! 건우님. 드디어 이 순간이 오는군요!”
카라가 감격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강건우가 카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조율자 전직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전직 퀘스트 - 완료]
목표 - 수호자의 의지 – 1/1 파괴자의 의지 - 1/1
[축하합니다. 조율자로의 전직을 완료하셨습니다.]
[각성자 ->조율자 전직으로 각성 등급이 B 랭크 -> A랭크 상향됩니다.]
[각성자 ->조율자 전직으로 잠재등급이 S 랭크 -> SSS 랭크 상향됩니다.]
[조율자 특전 조율자의 상점 이용이 가능해집니다.]
[스킬 소켓의 확장이 가능해집니다.]
[획득하는 포인트의 양이 2배가 됩니다.]
[보상 - 고귀한 후계자[Unique], 5000P]
강건우를 휘감던 흑백의 빛도 어느새 사라졌다.
“세상에! 전직만으로 랭크 업을 하다니!”
“축하드려요! 건우님!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당연히 알지.”
강건우의 눈동자로 은은한 흑백의 빛이 흐르고 있었다. 온몸에 넘쳐나는 힘을 느낀 강건우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카라, 정말 엄청 나! 온몸에 힘이 넘쳐흐른다고!”
“건우님. 앞으로 더욱 강해져야 해요. 제가 곁에서 열심히 도와 드릴게요.”
카라가 강건우에게 용기를 주며 말했다. 카라를 향해 미소를 지어준 강건우가 팔짱을 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 뭐야?”
“일단 오늘은 푹 쉬는 게 좋겠어요. 몇 시간 후면 각성자들의 소환이 시작될 거예요.”
아마겟돈을 언급하는 카라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슬퍼 보였다. 강건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이제 진짜로 시작이구나.”
강건우가 문득 생각이 떠올라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일단 가족들에게 연락해야겠어.’
아마겟돈의 준비를 위한 각성자 소환이 시작되면서 지구는 대 격변을 겪게 된다. 지구의 환경은 사람이 살아남기 힘들게 바뀔 것이다. 또한 크리쳐들이 나타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다.
‘군대가 출동하고 정부가 나서겠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지.’
아마겟돈의 기억을 떠올린 강건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핸드폰을 들자 이내 강건우의 귓가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어머니. 저 건우예요.”
“어머? 아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지금 가족들 전부 집에 있어요?”
“응? 아니? 아버지는 뒷산에 텐트 치고 주무신다고 나가셨고. 지우랑 나만 있지.”
“그래요? 일단 제가 집으로 갈게요.”
“아들, 지금 아르바이트 중인 거 아니야?”
의혹 섞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에요. 일단 아버지도 집으로 오시라고 해주세요.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할게요.”
“무슨 일인데 그래?”
“중요한 일이에요. 어머니.”
“일단 알겠어. 조심히 와.”
강건우가 옷을 갈아입었다. 준비를 끝낸 강건우가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이젠 이 좁디좁은 고시원도 안녕이군.’
자신의 젊은 날을 바친 노량진의 고시원이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몇 달 후면 모두 부질없는 일이었다. 감상에 젖어있던 강건우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방문을 닫고 고시원을 나갔다.
***
연말임에도 불구하고 노량진은 학업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공시생들을 바라보던 강건우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일이면 엄청난 혼란이 닥쳐올 텐데···.’
강건우의 마음은 복잡했다. 닥쳐올 재앙을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지금 아마겟돈에 대해 말해보아야 미친놈 취급을 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 일단 내 가족부터 챙기자.’
생각을 마친 강건우가 택시를 잡아탔다.
“아저씨, 가양동 임마트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강건우의 가족은 임마트 뒤쪽에 위치하는 작은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강건우가 카라에게 물었다.
“카라, 내일 일어날 대 격변 속에서 가족을 지킬 방법이 없을까?”
카라가 강건우의 어깨에 앉은 채로 말했다.
“건우님. 그 문제라면 퀘스트를 통해서 해결하실 수 있어요.”
“그래? 그럼 진작 말해주지 그랬어.”
괜스레 맥이 빠졌다.
“안 물어보셨잖아요. 앞으로 성장 방향은 건우님의 선택에 달린 거예요.”
강건우의 질책에 살짝 토라진 카라가 새침하게 말했다.
“미안. 그럼 퀘스트를 부탁해.”
“네. 건우님. 앞으로 키워드를 알려주시면 제가 관련 퀘스트를 부여해 드릴게요.”
카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퀘스트 창이 나타났다.
[본거지 퀘스트]
목표 - 인벤토리 내의 본거지 지정석을 통해 아크로폴리스를 지정하자.
내용: 아마겟돈으로 황폐해지는 지구. 자신만의 본거지를 설정하여 자신의 힘을 키워나가자.
보상 : 아크로폴리스 획득, 5000P
퀘스트 창을 읽은 강건우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카라. 이건···. 수호자의 생츄어리와 파괴자의 스트롱홀드와 같은 거지?”
생츄어리와 스트롱홀드라면 각각 수호자의 파괴자들의 진영, 즉 본거지였다.
“맞아요. 하지만 약간 다른 부분이 존재해요. 수호자의 본거지는 생츄어리와 스트롱홀드의 모든 기능을 합쳐 놓았어요.
“엄청난데?”
강건우가 감탄을 내뱉었다. 카라가 우쭐해 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권역 범위 안의 던전 귀속이 가능해요.”
“던전 귀속?”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던전은 공략이 끝나면 사라지고 만다.
“수호자나 파괴자가 던전의 공략을 완료할 경우 던전은 사라져요. 그리고 일주일 후 무작위 장소에 다시 재생성 돼요.”
“맞아. 그랬었지.”
강건우가 회귀 전의 일상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던전을 차지하려는 양쪽의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자신 또한 무리한 경쟁으로 성급히 투입된 던전에서 죽지 않았던가.
“하지만 조율자는 권역 범위 내의 던전을 귀속시켜 무한히 사용할 수 있어요.”
강건우가 충격을 받은 듯 말을 했다.
“뭐?!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남는다는 말이야?”
“네, 맞아요. 재생성 대기시간이 남은 던전을 포인트로 빠르게 초기화시킬 수도 있어요.”
강건우는 카라의 설명을 들을수록 조율자란 직업에 빠져들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조율자의 상점 사용이 가능해져요.”
“조율자의 상점?”
“네. 조율자의 상점은 포인트로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무한한 물건들이 존재하는 상점이에요.”
“미친! 그건 사기잖아! 사기!”
입이 떡 벌어졌다. 조율자의 상점 같은 건 베테랑 강제 각성자였을 때도 듣도 보도 못했던 것이었다.
강건우는 자신이 택시에 탄 것조차 잊을 정도로 대화에 몰입해 있었다. 택시기사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강건우를 룸미러 너머로 힐끗 쳐다보며 생각했다.
‘젊은 사람이···. 노량진에서 탄 것 보니 공시생인가 본데. 안 됐군.’
택시기사의 안타까운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건우와 카라의 대화는 한참을 이어졌다.
잠시 후 택시가 목적지인 가양동 주공아파트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부모님의 집이었다.
‘여긴 변한 게 없네.’
아파트 단지 안쪽을 바라보던 강건우가 발걸음을 옮겼다. 집 앞에 도착한 강건우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던전 브레이크로 가족을 잃은 후 다시 만나게 되는 가족들이었다. 지금 이 순간 강건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떨렸다.
이윽고 안쪽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건우니?”
“어머니, 저예요. 건우.”
강건우가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억눌렀다. 아파트의 현관문이 열리며 설현숙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춥다. 어서 들어와.”
“네.”
집으로 들어서자 설현숙의 연락을 받고 급하게 돌아온 아버지 강경식과 여동생 강지우가 반겨 주었다.
“어서 와라. 건우야. 갑자기 다 불러 모으고 무슨 일이냐?”
“오빠! 혹시 공시 준비 그만하겠다는 말을 하러 온 건 아니지?”
“지우야. 오빠 말을 먼저 들어보자.”
가족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강건우가 마음을 추슬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족애였다. 감정을 추스른 강건우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지우야. 지금부터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 데도 나가지 말고 집에 있어 줬으면 해요.”
강건우의 심각한 표정에 강경식이 물었다.
“건우야. 혹시 사고라도 친 거냐?”
강건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버지 제 부탁을 한 번만 들어주세요.”
“알았다···.”
강건우의 간절한 부탁에 강경식이 담담히 대답했다.
“아들 왜 그래?”
“뭔데? 오빠? 응?”
설현숙과 강지우가 무슨 일이냐며 다그쳐 왔다. 하지만 설명을 하려고 해도 과연 믿어줄지가 걱정이었다. 일단은 무조건 가족들을 집에 머물게 해야 했다.
그 후로도 한참을 설득한 끝에 설현숙과 강지우가 강건우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가족이 잠자리에 드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강건우가 집을 나섰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무사해야 할 텐데.’
전생의 강건우는 각성자라는 우월감에 도취해 가족을 무시하며 살아왔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은 던전 브레이크로 가족을 모두 잃은 후였다.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는 않겠어.’
이번 생에서만큼은 가족을 지키겠다는 생각이었다.
***
집을 나선 강건우가 퀘스트를 떠올리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여기 있네. 본거지 지정석.’
강건우가 본거지 지정석을 꺼내 아이템의 능력을 확인했다.
아이템- 본거지 지정석 / 상점 구입 및 판매 가능.
사용 즉시 한 개의 ‘구’를 자신의 본거지로 설정 가능. 초기 설정 시 본거지 내의 권역 범위는 지정석을 중심으로 반경 10㎞.
아이템의 능력을 확인한 강건우가 카라에게 물었다.
“카라. 권역 범위는 무슨 의미야?”
카라가 대답했다.
“예를 들어 지금 계신 강서구를 본거지로 지정할 경우 조율자의 권능이 미치는 범위를 권역 범위라고 해요.”
“그렇다면 본거지외 나머지 지역은 어떻게 되는 거야?”
“본거지로 지정된 지역 전체는 아마겟돈의 파괴를 피해갈 수는 있어요.”
반대로 본거지외의 지역은 아마겟돈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란 말이었다.
“그럼 권역 범위는 어떻게 넓히는 거야?”
“나중에 포인트를 이용해 아크로폴리스를 확장해 나가시면 돼요.”
“게임이랑 비슷하네. 이해했어. 일단 이곳에 사용하면 가족의 안전은 확보할 수 있겠군.”
강건우가 아이템을 사용하려 했다. 카라가 다급하게 말리며 소리쳤다.
“잠시 만요, 건우님! 초기 설정이 정말 중요해요. 모든 조건을 고려한 후에 사용하세요.”
“알겠어. 적당한 위치를 추천해 줘. 카라.”
강건우의 부탁에 카라가 은은한 빛을 발산하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카라가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운이 좋았어요! 바로 앞의 임마트를 기준으로 지정하는 것이 좋겠어요. 그곳을 중심으로 건우님이 공략할만한 던전이 다수 존재하네요.”
“알겠어, 카라. 임마트로 가자.”
집에서 멀지 않은 대형마트 임마트에 도착한 강건우가 지정석을 꺼내 높게 들었다.
주변의 행인들이 강건우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입고 있는 갑옷도 꼭 오타쿠들이나 입을 뻔했고, 포즈도 이상했다. 강건우가 주변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외쳤다.
“본거지 지정!”
커다란 외침과 함께 지정석이 빛나며 사라졌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강건우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엄마. 저 아저씨 이상해.”
“쳐다보지 마. 불쌍한 아저씨야.”
젊은 엄마가 어린 딸의 눈을 가리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오빠 저 사람 왜 저래?”
“몰라. 미 튜브 크리에이터인가 본데?”
한 쌍의 연인이 강건우를 한심한 바라보며 듯 지나갔다.
“쿨럭!”
부끄러움에 터질 듯이 붉어진 얼굴로 강건우가 카라에게 말했다.
“카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카라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하아···. 건우님. 속으로만 외쳐도 되는 일인데···. 관심 받고 싶으셨나 봐요?”
“어, 어?”
“일단 본거지 설정은 완료됐어요.”
“그런데 왜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거야?”
“아직 아마겟돈이 시작되지 않았어요. 변화는 오늘 밤 자정! 각성자 소환이 끝난 후부터 일어날 거예요.”
“진작에 말을 했어야지! 창피하게 이게 뭐야?”
“이런 거 좋아하시는 거 같아서 그랬어요.”
카라의 말을 들은 강건우가 부끄러움에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 시각 지구는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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