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힘(2)
동굴의 거대한 입구 앞으로 강건우가 나타났다. 흉악한 악마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의 입구에서는 서늘하고 음산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아. 정말이지 이런 말도 안 되는 퀘스트를···.”
강건우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블랙과 화이트에게 받은 퀘스트는 정말 까다로웠다.
“퀘스트”
[파괴자의 의지]
목표 - 파괴자의 비석
내용 – 조율자가 되기 위해서는 파괴신들의 목적을 이해해야만 한다.
암흑의 무저갱에 있는. 파괴신들의 기원과 목적이 담긴 비석을 찾아가라.
보상 - 조율자로의 전직(0/2), 1000P
[수호자의 의지]
목표 - 수호자의 비석
내용 - 조율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호자의 목적을 이해해야만 한다.
천상의 계단에 있는. 수호신들의 기원과 목적이 담긴 비석을 찾아가라.
보상 - 조율자로의 전직(0/2), 1000P
퀘스트를 확인한 강건우가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상태창을 호출했다.
“상태창”
이 름 : 강건우
진 영 : 없 음
직 업 : 전 사
각성등급 / 잠재등급 : B 랭크 / S 랭크
보유 포인트 : 0
보유 능력 : 화염 베기(Normal), 카운터(Normal)
“더럽게 쌔네.”
상태창을 확인한 강건우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직 퀘스트를 위해 블랙과 화이트에게 받은 임시 각성 능력은 엄청났다. S 랭크에 이르는 잠재등급과 B 랭크의 각성 등급을 확인할 때마다 가슴이 터질 듯 기뻤다.
‘만약 조율자로 전직한다면 랭크가 얼마나 높아질지 상상이 되지도 않는걸.’
강건우가 도우미들로부터 받은 장비인 양손검과 방어구를 점검했다. 장비 점검을 마친 강건우가 동굴의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제길. 여기는 정말 오기 싫었던 곳이었는데.”
회귀 전 오민석에게 콜로세움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들었던 강건우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경험이었다며 말하던 곳이 바로 암흑의 무저갱이었다.
‘끝도 없이 내려가야만 하는 구조, 끔찍하게 생긴 크리쳐들. 정말 두 번 다시 가기 싫다고 했었지? 뭐 형이 괴물을 유난히 싫어하긴 했지만.’
순간 형처럼 따랐던 오민석이 떠올라 씁쓸했지만, 강건우는 마음을 다잡았다.
동굴 안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입구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에 강건우가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양손으로 쥔 대검을 단단히 다잡은 강건우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나아가던 강건우의 앞에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다.
‘여기군. D 랭크 흡혈박쥐의 서식처.’
강건우가 품 안에서 라이트 스톤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공동의 중앙으로 힘껏 던졌다. 화르륵! 대낮처럼 밝아진 공동의 천장에 엄청난 숫자의 흡혈박쥐들이 모여 있었다.
태생적으로 빛을 싫어하는 흡혈박쥐들이 붉은색 안광을 내뿜으며 공동 밖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포인트 덩어리들. 한 놈도 빠짐없이 잡아주마.”
강건우의 양손검이 화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땅을 박차며 뛰어오른 강건우가 화염의 검을 엑스자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공동 밖으로 나오던 흡혈박쥐 무리가 화염에 불타 죽기 시작했다. 동족의 죽음에 흡혈박쥐들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강건우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제 발로 기어들어 와 주는군.”
어느새 땅에 착지한 강건우가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하아아압!”
강건우가 화염으로 물든 양손검을 풍차처럼 돌리기 시작했다. 대검의 속도가 빨라지며 거대한 화염의 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전생의 경험을 통해 화염 베기를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끼에에엑! 흡혈박쥐들의 공격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화염의 원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역겨운 냄새와 함께 불타버린 흡혈박쥐들의 사체가 수북이 쌓였다.
“일단 식량은 확보한 건가···.”
강건우가 적당히 익은 흡혈박쥐들을 인벤토리에 담기 시작했다. 암흑의 무저갱 깊숙한 곳까지 가야 했기 때문에 식량 확보는 필수였다.
‘그나마 이놈들이 낫겠지. 내려갈수록 구역질 나는 놈들뿐일 테니···.’
식량을 확보한 강건우가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래층으로 향할수록 환경은 더욱 생존하기 힘들게 변해갔다.
무저갱은 정말 전해 들은 그대로였다.
잠을 잘 때면 C랭크 동굴 고블린들의 습격을 받았다. 거대한 늪을 지나칠 때면 여지없이 덮쳐오는 동굴 놀과 동굴 오크의 습격은 일상이 돼 버렸다.
그렇게 며칠을 묵묵히 내려가던 강건우의 눈앞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으아! 정말 못해 먹겠군. 천상의 계단은 좀 낫겠지?”
그동안의 고생에 초췌해진 얼굴의 강건우가 심호흡을 내뱉으며 문을 향해 나아갔다.
“드디어 도착했군. 무저갱의 진정한 입구.”
거대한 문은 검이 엑스자로 교차하는 모양이 음각되어있었다. 문은 강렬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문 앞으로 다가간 강건우가 온몸으로 문을 힘껏 열었다.
쿠쿠쿵. 거대한 문 너머로는 용암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위로 쭉 뻗은 다리 너머로 거대한 비석이 존재했다. 검은색 기운이 넘실거리는 비석에서 강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저거다. 파괴자의 비석’
강건우가 다리를 건너 비석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비석의 앞에 도착한 강건우가 비석을 향해 손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쾅!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검은색 빛에 휩싸인 존재가 나타났다.
-그만! 물러나라!-
“큭! 누구냐!”
거대한 반발력에 강건우가 뒷걸음질 쳤다.
자세를 바로잡은 강건우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검은색 망토로 전신을 가린 남자가 서 있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건우를 바라보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나는 비석의 관리자. 가헨. 선택받지 않은 자여. 돌아가라.-
“돌아가라니. 난 조율자가 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강건우는 당당했다. 강건우를 바라보던 가헨이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분명 그분은 힘을 다하셨다.-
“그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난 퀘스트를 완료해야만 한다.”
-잠시만 그대를 살펴볼 수 있겠는가?-
강건우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강건우를 살펴보던 가헨의 눈동자가 부드러워졌다.
-정말이었군···. 미약하지만, 태초의 힘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어서 길을 비켜줘.”
-알겠다. 하지만 명심해라. 파괴자의 비석은 그분 못지않은 힘을 가진 많은 신이 공동으로 만들었다. 그대의 정신력이 버티지 못한다면 잠식되고 말 것이다.-
가헨이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한쪽으로 비켜섰다. 잠시 가헨을 바라보던 강건우가 결심한 듯 비석에 손을 올렸다.
‘비겁하고 찌질하게 살았던 삶을 저주하며 죽어갔다고. 다시 주어진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강건우의 머릿속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가 밀려들기 시작했다.
[태초에 우주가 탄생하여 그 힘으로 많은 세상이 창조되었다. 세상의 창조와 함께 강력한 의지를 가진 존재들 또한 태어났으니. 그들은 신이라 불리며 자신의 세상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억겁의 세월이 흘러 우주의 힘이 포화상태에 달하니. 신들은 자신의 세상에 만족 못 하고 다른 세상을 정복하고 신들을 멸하기 시작했다. 중략···.
그리하여 우리는 온 우주를 무로 돌려 정화하고자 하니 파괴신의 대리자로 선택받은 각성자여 파괴하고 죽여 모든 것을 무로 돌려라.]
엄청난 두통을 느끼며 정신을 차린 강건우의 눈앞에 퀘스트 완료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를 확인한 강건우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가헨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가헨, 파괴신들의 의지는 잘 이해했다.”
-모든 것은 태초의 의지로 이루어진 것. 우리는 이 우주를 정화할 것이다.-
가헨의 말에 강건우가 발끈했다.
“결국, 하찮은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건가?”
가헨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우주는 올바른 질서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작은 희생은 불가피하다.-
“힘 있는 것들은 항상 그런 식으로 말하곤 했지.”
씁쓸했다.
-이제 돌아가라. 아무리 그분의 후계자라 하여도 더는 이곳에 머무를 수 없다.-
말을 마친 가헨이 강건우를 향해 손을 뻗었다. 흑색의 빛이 터져 나오며 강건우의 모습이 사라졌다.
***
콜로세움 광장 한가운데로 강건우가 나타났다.
“돌아왔군.”
돌아온 강건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옆에서 블랙이 불안한 듯 검은색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강건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떨고 있는 거야?”
-건우님, 파괴신들 또한 그분의 자식들. 너무 노엽게 여기지 말아주시길···.-
전과는 달라진 공손한 말투에 강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호자의 의지를 확인하러 가야겠어. 그리고 걱정하지 마. 조율자가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알 거 같아.”
-부디 그 마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블랙과의 대화를 끝낸 강건우가 큰소리로 외쳤다.
“화이트! 이제 네 차례다. 천상의 계단으로 가겠어.”
-준비할게요. 건우님.-
화이트가 밝은 빛을 뿌리며 나타났다. 강건우의 앞에 도착한 화이트가 말했다.
-건우님. 가헨 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비석관리자 라헬 님께서 건우님을 바로 비석의 방으로 초대하셨어요.-
“오? 잘됐군.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어.”
-어차피 천상의 계단으로 가는 길은 건우 님에게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걸요.-
수많은 크리쳐들과 구조물들을 처리하며 나아가야 하는 암흑의 무저갱과는 달리 천상의 계단은 오르는 자의 의지와 신념을 확인하고 단련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수호신들은 조율자 예정자인 강건우를 시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 부탁할게. 화이트.”
-네 건우님. 잘 다녀오세요.-
강건우가 밝은 빛에 휩싸여 모습을 감췄다.
잠시 후 순백의 돌로 이루어진 거대한 신전에 강건우가 나타났다. 그리고 비석관리자 라헬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건우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만나서 반가워. 라헬.”
-이미 가헨을 만나고 오셨으니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겠군요. 비석은 제 뒤에 있습니다.-
하얀색으로 빛나고 있는 라헬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강건우가 라헬을 지나쳐 비석에 손을 올렸다. 엄청난 두통과 함께 많은 양의 정보가 흘러들어왔다. 강건우가 비석에서 손을 떼며 입을 열었다.
“세상을 지키고 생명을 수호하는 것이 너희의 의지란 말이지.”
-맞아요. 건우님-
강건우가 라헬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수호자의 모습들은 많이 다르던데?”
한때 주인이었던 김한나가 떠올랐다. 수호자의 탈을 쓰고 있었지만, 김한나도 파괴자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세상을 지키고 중요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작은 희생은 불가피하니까요.-
라헬의 가식적인 대답에 강건우의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었다. 잠시 분노를 가라앉힌 강건우가 입을 열었다.
“가식적이군. 너희들이 생각하는 정의는 늘 그런 식이었어. 내가 그 희생자 중의 한 명이기도 했고.”
-우리가 없다면 우주는 혼란에 빠질 거예요.-
“아 그래? 뭐 더 나눌 대화는 없을 것 같군. 돌려보내 줘.”
라헬이 싱긋 웃으며 손을 뻗자 하얀색 빛이 강건우를 감쌌다. 잠시 후 콜로세움에 강건우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앞에 블랙과 화이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녀왔어. 빨리 돌아가고 싶어.”
블랙과 화이트는 강건우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돌아가기를 원하는 강건우를 붙잡을 수 없었다.
블랙과 화이트가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건우님. 만나서 영광이었습니다.-
-부디 조율자의 책임을 다해 주세요.-
“그래 즐거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
잠시 후 강건우의 몸이 희미하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