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역대급 수련 177화
에필로그.
화창한 햇살이 가득한 날이었다.
사방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했고, 곡소리가 가득했다.
날은 따스했지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까지 따듯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괜찮지…… 않겠지.”
옆으로 다가온 채하나가 가볍게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애써 울컥하는 감정을 참아내며 입을 열었다.
“성녀는 어떻게 됐습니까.”
사라졌다고 알려진 성녀가 돌아왔고, 나는 모든 상황이 마무리 지었을 때 성녀를 찾았다. 그녀의 능력이라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모든 능력을 잃어버렸대.”
“그게 무슨!”
“협회에서도 모두 확인을 끝냈어. 성녀는 더 이상 헌터가 아니야.”
하나 남았던 희망마저 사라져 버렸다. 목이 꿀렁거렸고, 눈에서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채하나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러 가자.”
나는 채하나의 손에 끌려 앞으로 걸어갔다. 앞에 파져 있는 땅에 관이 들어갔고, 주위에서는 그들을 추모하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 앞에 적힌 이름은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김세아부터 이찬혁, 그리고 강한수까지.
“후우.”
“저들이 있었기에 진천우를 막을 수 있었던 거야.”
채하나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고, 나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내가 진천우를 막고, 케슬란은 빠르게 무너졌다. 그리고 아이리스 길드와 그린나래 길드는 이번 사태를 막으면서, 자신을 희생한 헌터들을 위해 합동 장례를 치렀다.
“고생했어.”
장례식이 모두 끝난 뒤, 나는 묘 앞에 앉아 멍하게 앞을 바라보았다. 채하나가 내 어깨를 두드리고 자리를 떴다.
나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양손에 주먹을 쥐었다. 현실에서 시도할 방법은 모두 끝났지만, 아직 남은 방법이 하나 있었다.
[투기장으로 이동합니다.]
* * *
나는 미친놈처럼 투기장에서 결투를 했다. A급 투기장에서부터는 하루에 한 번밖에 결투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두 달이라는 시간이 걸려서야 랭킹 1위와 붙을 수 있게 되었다.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10초 이내에 모든 결투를 마무리 지었다.
사람들은 내 모습에 열광했고, 나는 벌어들이는 모든 포인트를 이용해 빠르게 강해졌다.
소원을 빌기 위해서는 투기장의 신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이겨야 했다. 그를 이기기 위해서, 나는 현실과 투기장에서 미친 듯이 강해졌다.
“드디어 마지막이겠네요.”
평소와 다르게 백소교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씁쓸함이 가득 묻어 있었고, 옆에 있던 엘린 또한 서운해하는 표정이었다.
“이제 못 보는 거예요?”
“아니.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투기장의 신을 만나 소원을 빈다고 해서 투기장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가득 차 있는 투기장에서 내 이름이 울려 퍼졌다. 이름만 불렸음에도 엄청난 환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백소교와 엘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꼭 다시 보자.”
내 몸에서 빛이 나면서 대기실로 이동됐다. A급 투기장의 대기실은 호텔과 비슷했다. 나는 그곳에서 대기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이번 결투만 이기면 투기장의 신을 만날 수 있었다. 신을 만나게 된다면, 이찬혁과 김세아, 강한수를 살려달라고 빌 것이다.
발칸에게 물어본 결과,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투기장의 신이, 내가 있는 곳의 세상에서 힘을 쓸 수 있는 지 모르겠지만 애초에 내가 투기장에 올 수 있는 것부터 심상치 않았다.
나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이 경기만 이기면, 두 달 동안 노력했던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투기장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검을 소환하고 문을 통해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반대쪽에서 나오는 상대를 쳐다보았다.
‘로이.’
투기장의 신에게 도전하지 않은 채, 1위에 머무르고 있는 자였다. 저 사람만 쓰러뜨리면 나는 투기장의 신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 둘이 서로 마주보았고, 결투를 진행하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시작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로이의 목이 베였다. 단 일격에 끝나 버린 싱거운 결투였다.
이전까지 결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애초에 이곳에서 나를 이길 수 있는 투사는 없었다.
현실과 투기장.
이 두 곳에서 강해지는 나는 남들보다 몇 배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아무리 1위를 오래 했더라고 하더라도, 받을 수 있는 포인트는 한계가 있었다.
A급 투기장부터는 자신에게 배팅을 할 수 없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거는 캐슬도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캐슬을 뻥튀기 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하얀 빛과 함께 내 몸이 붕 떴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하얀 바닥이었다. 일정 원을 벗어난 곳에는 구름이 가득했고, 주위는 파란 하늘이 보였다.
내가 있던 곳, 바로 앞에 하얀빛이 일어나 사람의 형태를 이루었다. 아마도 저 존재가 이곳 투기장을 만든, 투기장의 신일 것이다.
“이곳까지 올라온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것 같군.”
“무슨 소원이든 빌 수 있는 겁니까.”
“나를 이긴다면.”
“그럼 빨리 시작하죠.”
“그래. 어디 나를 한번 죽여 보게.”
투기장의 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몸은 공포로 물들었다. 손에 들린 검이 떨어졌고, 내 몸이 부르르 떨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렀고, 숨이 턱 막혔다. 고개를 살짝 들어 투기장의 신을 쳐다보았다. 나를 보고 웃고 있으며, 따듯한 기운을 풍기고 있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내 몸이 경고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난 죽는다. 깊게 스며든 죽음의 공포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가 바드득 갈렸고, 목에는 핏줄이 튀어나왔다.
입 안에서는 피가 터졌는지, 쌉싸름한 피 맛이 났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마음 한켠에 자리 잡고 있던 죽음의 공포가 줄어들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지금까지 겪어온 경험들이 공포감을 줄여나갔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낸 순간들이 떠오르며, 떨리는 몸을 잠재웠다.
‘그냥 죽지는 않아.’
죽을 때 죽더라도, 남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소원을 빌지 못하더라도, 후회는 없었다. 그들의 곁으로 가게 될 테니까.
“흡!”
나는 숨을 들이 마시면서, 오른손에 들린 검을 꽉 쥐었다. 공포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나는 두려움을 이겨내며 앞으로 한 발자국 내밀었다.
그 순간, 내 몸을 잠식하던 공포감이 사라졌다. 그러곤 투기장의 신이라는 작자가 호탕한 웃음을 내뱉었다.
“크하하하.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다니 대단한 배짱이야. 아주 만족스러운 녀석이군. 그래서 소원이 뭐라고?”
“제 소중한 사람들을 살리고 싶습니다.”
“사람들? 내가 살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 이상의 소원은 들어줄 수 없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입을 닫았다. 셋 중 누구 하나를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김세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세아를 떠올리자 가슴 한편이 지끈거렸다. 정말 한 명만 구할 수 있다면, 아마도 김세아를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분명 모두를 살릴 방법이 있을 것이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 생각했다.
모두를 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그러다 내 눈이 번쩍 떠졌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투기장의 신을 쳐다보았다.
“정말 무슨 소원이든 가능한 겁니까.”
“제약이 있긴 하겠지만. 가능하다.”
“그렇다면 시간을 돌려주십시오.”
“시간?”
“예. 제가 살리고 싶은 사람들이 죽기 이전의 시간으로.”
투기장의 신은 나를 보며 웃었다. 한쪽 손을 들자, 하얀빛이 모였고 그것이 내 몸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소원 접수. 너를 과거로 돌려보내 주마.”
다시,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절대 그들끼리 있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함께 다닐 것이고, 단검은 내가 그대로 가질 것이며, 진천우를 과감하게 처리할 것이다.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는 동안, 내 눈은 자연스럽게 눈이 감겼다.
* * *
웅성웅성.
주위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나는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지?’
내가 생각했던 상황이 아니었다. 본래라면, 김세아와 이찬혁을 떠나보낼 때로 돌아갔어야 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때로 돌려보내 줄 줄 알았다.
그런데 주위에 보이는 상황은 많이 달랐다.
학부모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가득했다. 그들이 입고 있는 교복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헌터 학교.
사람들이 움직이는 곳으로 시선이 이동했다. 그곳에는 내가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던 헌터 학교의 모습이 보였다.
하얀 건물로 이루어지고, 거대한 대학교 캠퍼스처럼, 드넓은 잔디밭과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게 무슨.’
나는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내가 입고 있는 것은 헌터 학교의 교복이었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것은 내가 가지고 있던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강력했던 힘은 모두 사라져 있었고, 포인트 상점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꿈인가 싶어 뺨을 때려보았지만, 아팠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넋을 놓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옆으로 돌아갔고, 그곳에는 이찬혁이 서 있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이찬혁보다 더욱 어려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이찬혁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이찬혁은 분명 이렇게 말했다.
“미안, 미안. 귀찮은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떼어내려고 하다 보니. 괜찮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나는 멍하니 이찬혁을 쳐다보았고, 이찬혁은 갸우뚱거리다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를 들으며 기겁을 했다.
“진중한 사과는 담에 만나서 하자. 지금은 내가 좀 바빠서.”
이 뒤로 헌터 학교에서 이찬혁과의 접점은 없었다. 다시 만나게 되는 곳은 아이리스 길드였다.
‘입학식으로 돌아오다니…….’
댕! 댕! 댕!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도 전에, 몸이 반응했다. 이제 곧 입학식이 시작될 것이고, 종소리는 행사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나는 빠르게 달려가 강당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입학식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또다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1학년 대표 김세아입니다.”
단상 위에 살아 있는 김세아의 모습이 보였다. 따듯한 웃음이나 여유는 보이지 않는, 차가운 모습과 냉랭한 기운이 풍기지만 내가 알고 있는 김세아의 모습이 분명했다.
너무 빤히 쳐다보았는지 김세아와 눈이 마주쳤다. 살짝 눈을 피하며, 붉어지는 볼을 보며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어찌 됐건 김세아와 이찬혁을 비롯해, 케슬란과의 전쟁에서 죽었던 모든 헌터들이 죽지 않게 되었다.
좋게 생각하면 미래를 대비할 시간이 3년이 생긴 것이다. 더 일찍 케슬란을 막을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2년이 지나고 아이리스 길드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투기장으로 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혹시나 그럴 수도 있는 것을 대비해, 나는 지금부터 계획을 짜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러는 사이 입학식은 끝이 났고, 나는 기숙사로 이동했다. 헌터 학교 기숙사는 1인 1실이었다. 나는 먼저 침대에 누워 생각을 정리했다.
‘졸리네.’
과거로 돌아온 부작용인지, 너무 긴장했다가 풀린 것 때문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그리고 눈이 감길 때쯤, 아주 익숙한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투기장으로 이동합니다.]
-나 혼자 역대급 수련 완결-
작가의 말
먼저,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니었다면, 이 글은 시작하지 못했을 겁니다.
<나 혼자 역대급 수련>은 제 첫 번째 작품입니다. 예전부터 글을 보는 것을 좋아했기에 한번 써보자고 생각하며, 소재만 가지고 달려들었습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이 글에 애착이 가게 되었고 성적이 좋든 말든 완결을 지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소설 쓰는 것이 처음이다 보니, 다소 설정이 부실하고 그에 관한 댓글이 많이 달린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들을 수정하다 보면, 이 글의 끝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완결만 보고 앞으로 달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완결 후기까지 쓰게 되었네요.
휴식기 동안 독자 여러분들이 달아주신 댓글들을 확인하고, 제 글에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여 좀 더 만족하실 만한 글을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다시 한번, 제 글을 읽어주시고 좋아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