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역대급 수련 176화
43장 S급 던전(3)
예전에 보았던 진천우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릴 적 보여주었던 미소는 따뜻했다.
공포에 질린 아이에게 건넨 한 손은 아이를 절망에서 희망으로 끌어주었다. 그로 인해 아이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영웅을 꿈꾸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마주친 진천우의 미소는 달랐다. 눈에는 욕망과 어둠이 가득했다.
내가 지금껏 살아오게 만들었던 목표가 모두 부정당한 느낌이었다. 나타나는 증거들을 발견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진천우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아니면 정신 조작에 걸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저게 본 모습이었던 걸까.’
내 쪽으로 완전히 돌아선 진천우의 모습은 당당했다. 몸에서는 케슬란 놈들이 흘리던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놈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강렬함이었다. 마치 이 어두운 안개를 만든 것이 마족이 아니라, 진천우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이곳까지 들어온 걸 보면 한 실력 하는 것 같은데 요새 우리 일을 방해한다는 그놈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진천우를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릴 적 사진과 매우 닮은 내 얼굴을 못 알아보고 있었다.
아마도 나에 대해 잊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흐름 속에서 기억이 지워지는 것은 당연했다.
진천우와 나의 만남은 좀 더 각별했다고 생각했지만, 진천우의 입장에선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케슬란의 대장인가?”
“그래.”
그때, 옆에 있던 마족의 몸이 꿈틀거렸다. 주위에 있던 반투명 검은 막이 마족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것은 빨간 안광을 번쩍이며 진천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굳게 닫힌 입이 반쯤 열리며 기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 주제에 나를 한 번 죽이다니. 그 실력은 인정해 주지.”
마족에게 향했던 내 시선이 진천우에게로 움직였다. 검은 연개가 일어나기 시작하고, 내가 이곳에 도착한 것은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 짧은 시간동안 진천우는 저 보스 몬스터를 쓰러뜨린 것이었다. 진천우는 마족을 살짝 흘기며 중얼거렸다.
“역시 완전히 죽이는 것은 불가능 하네.”
마족은 진천우를 보며 분노했다. 몸 안에 쌓인 마기를 사방으로 퍼뜨리면서, 위압을 내뿜었다.
나는 마나를 끌어올리며, 마기가 몸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았다. 그리곤 흘러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어차피 마족의 어그로는 진천우에게 끌려 있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간 마기가 휘몰아치면서 진천우에게로 향했다. 수천 개의 날카로운 송곳으로 변한 마기는 진천우를 뚫어버릴 기세였다.
콰아앙!
그러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인해 마기가 터져 나갔다. 진천우는 한 결 같이 여유로움을 보이며, 마족을 향해 웃고 있었다.
등에 있는 거대한 바스타드 소드를 꺼내 들었다. 아주 가볍게 들어 올린 검을 들고 마족을 향해 걸어갔다.
마족은 다가오는 진천우를 향해, 자신이 가진 힘을 꺼냈다. 마기로 이루어진 검의 형상이 마족의 손에 나타났다.
“결국에는 내가 이길 것이다.”
마기로 이루어진 검이 휘둘러지고 주위가 어둠으로 물들었다. 나는 검을 소환하여 돌발 상황에 대비했다. 붉은 화염과 함께 내 몸에 갑옷이 나타났다.
‘크흡!’
거대한 마기의 기운 안에서, 또 다른 기운이 꿈틀거렸다. 마족이 만들어낸 마기다 더욱 강렬한 마기였다.
이내 거대한 선 하나가 나타났고, 마족이 만들어낸 어둠이 갈라졌다. 그 안에서 나타난 진천우가 검을 휘두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럼 몇백 번이고 더 죽여주지.”
진천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족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동시에 마족의 몸에서 반투명 검은 막이 나타났고, 마족의 갈라졌던 몸이 다시 붙었다.
‘저래서 죽지 않는다는 거구나.’
진천우가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보스급 마족을 한방에 갈라낸 검격도 저 반투명 보호막을 뚫지 못했다.
입맛을 다시는 진천우가 다시 나를 향해 돌아보았다.
“그린 나래 길드가 가지고 있던 아이템은 땡. 그렇다면 아이리스 길드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 진짜라는 건데, 혹시 지금 가지고 있으면 빌려줄래?”
나는 대답 대신 검을 들어올렸다.
‘다른 사람이야.’
속으론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내가 알던 진천우는 죽고, 저기 서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근데 왜?’
S급 조각을 모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렇게 강한 사람이라면, 세계를 정복하는 것 따위는 간단하게 했을 것이다.
그만큼 강했다.
“조각들을 모아서 무슨 일을 할 생각인 거죠?”
진천우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러곤 검을 들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 또한 검을 들어, 진천우를 향해 겨누었다.
나는 검에 마나를 흘려 넣으며 봉인을 풀었다. 여유를 부리기에는 벅찬 상대였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힘을 다해 싸운다면, 이길 수도 있었다.
휘이이잉!
발 주변에 일어난 가벼운 돌풍이 커지면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돌풍 주위로 거대한 화염이 일어나며 주위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흐음.”
여유롭던 진천우가 한쪽 눈썹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이내 나와 같이 힘을 끌어올리는 것처럼 보였다.
주위는 어둠과 화염으로 뒤덮였다.
나는 검을 들고 자세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이유가 뭐든. 당신만 없애면 케슬란도 와해가 되겠지.”
“뭐.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해봐.”
진천우가 자신의 품에서 조각들을 꺼내 흔들었다. 저 조각들만 뺏어도 케슬란을 막을 수 있었다.
자신만만해하지만, 나에게도 승산이 있었다.
나는 검을 들고 앞으로 달렸다. 이형환위를 사용한 뒤에 마나 블레이드로 진천우를 향해 크게 휘둘렀다.
콰아아앙!
충격파가 일어나고, 반발력이 일어나 내 몸이 뒤로 밀려났다. 바로 번개의 춤을 사용해 거대한 번개를 만들었다. 하늘에서 내려친 번개와 함께 내 몸이 번쩍였다.
아깝게도 내 검은 진천우의 목을 베지 못했다. 한 끗 차이로 피한 진천우의 반격이 들어왔다.
양 팔을 교차하면서 진천우의 발차기를 막았다. 엄청난 힘이 실려 있었다. 교차해서 막은 양팔에 진천의 발차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 진천우에게 달려들었다.
그때 한 쪽에서 회복을 끝낸 마족이 움직였다. 나와 진천우를 향해 거대한 마기를 보냈고, 나는 번개의 춤을 이용해 빠져나왔다.
진천우는 마족의 마기를 온 몸으로 받아내며,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검을 들어 진천우의 공격을 막았고, 옆에서 공격하는 마족의 공격도 피해야 했다.
‘젠장.’
진천우만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데, 마족까지 신경 써야 했다. 나는 마나를 모두 끌어올리며, 마족을 향해 마나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거대한 화염이 마족을 집어 삼켰다.
그리곤 다시 마족은 반투명의 검은 보호막 아래서 자신의 몸을 회복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마나 회복을 사용했다.
“다시 해볼까?”
내가 검을 들고 다시 진천우에게 달려들려고 했을 때, 주위에 펼쳐진 검은 안개를 가르고 누군가가 나타났다.
부대장을 살리러 왔던, 케슬란의 간부였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내가 김세아에게 맡겼던 단검이 들려 있었다.
단검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숨이 턱 막혔다. 머릿속에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니야…….’
남자는 진천우에게 단검을 넘기며 말했다.
“반항이 조금 심했지만, 방해자들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메아리처럼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들고 있는 검이 부들부들 떨렸고, 호흡이 가팔라졌다.
그때, 품에 있던 스마트폰에서 발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신 차려!
동시에 살기가 느껴졌다. 나는 검을 들어 살기가 향해지는 곳으로 휘둘렀다. 단검을 가져온 남자의 창이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내 검에 튕겨져 나간 창을 잡은 남자가 피식 웃었다.
“가만 두지 않을 거야.”
“거기 있던 꽤 강했던 여자도 그런 소리를 하던데. 짜고 맞춘 거냐?”
나는 조용히 검을 들었다. 저놈만은 죽여야 이 끓어오르는 화를 식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충전한 마나를 모두 끌어올려, 온 몸으로 퍼뜨렸다. 붉은 갑옷이 녹아내리며 내 뒤로 거대한 날개를 만들었다.
화룡의 날개.
날개가 펄럭이고 내 허공으로 떠올랐다. 검을 휘두르자, 거대한 화염이 일어나 남자를 집어 삼켰다.
꺼지지 않는 불꽃.
진정한 용의 브레스는 남자를 집어삼켰고, 고통에 부르짖는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단검을 내가 가지고 있었더라면.’
김세아와 이찬혁 등 다른 사람들이 다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니, 차라리 같이 움직였더라면, 그들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자를 향하던 분노는 자책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조각의 존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조각, 그것만 있다면 죽은 사람들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조각들은 모두 모은 진천우의 모습이 보였다.
이형환위를 사용해 진천우의 앞까지 이동했다.
“아무래도 그건 내가 가져가야 할 것 같은데요.”
“미안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다. 울보 꼬맹아.”
“뭐?”
내가 울고 있을 때, 진천우가 나를 불렀던 별명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진천우를 노려보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그래.”
“근데 왜!”
“내가 너를 기억하는 것과 이런 일을 벌이는 게 무슨 상관이지?”
“당신은…….”
진천우의 손에 모인 조각들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진천우는 그것을 바라보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처음에는 네 생각과 같았다. 사람들 구하는 게 헌터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건 너무 어리석은 생각이었어.”
“…….”
“내 사명감으로 인해. 내가 지키고 싶었던 여자가 죽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들만 생각하며 성녀에게 요구했지. 살려 달라. 치료해 달라. 그게 성녀의 목숨을 대가로 이뤄지는 것도 모른 채, 살려주고 치료해 주면 마치 몰랐던 사람처럼 돌아섰어.”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닐 겁니다.”
“결국, 그들로 인해 성녀는 죽었다. 너를 구해준 그 날, 사람들은 성녀에게 자신들의 가족을 살려달라고 빌었고, 성녀는 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이용해 그들을 살렸다.”
완성된 조각이 진천의 손에서 사라졌다. 뭔가 중얼거리던 진천우가 다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나는 성녀를 다시 살릴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는 사람들에게 희생당하지 않게, 이 세상에서 자신의 욕심만 챙기는 사람들을 모두 지워 버릴 거다.”
“당신의 개인적인 욕망으로 인해, 죄 없는 사람들도 죽었습니다.”
“그건 더 이상 내가 알바가 아니야.”
진천우의 몸에서 빛이 일어나더니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곤 진천우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제 그녀를 만날 시간이다. 비켜라.”
“못 비킵니다. 당신처럼. 내가 아끼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당신이 일으킨 일 때문에.”
검을 들어 한 번 남은 마나 충전을 사용했다. 그리고 검을 진천우에게 겨누었다.
“다시 성녀를 만날 일 따위는 없을 겁니다.”
“그래. 어디 한번 막아봐라.”
“당신은 여기서 죽을 테니까.”
나는 검을 들고 빠르게 달려갔고, 진천우 또한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나를 향해 달려왔다
서로를 향한 최후의 일격이 부딪쳤다.
콰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