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역대급 수련 172화
42장 준비(2)
S급 던전 공략을 위한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나와 김세아의 경우는 모든 임무에서 제외되었고, 채하나와 강한수에게 집중 훈련을 받았다.
그 둘에게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는 것은 김세아였다. 나는 첫날 본 실력을 보여주며 강한수와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승부가 나진 않았지만, 내 실력은 충분히 보여줬다.
그 뒤로 나는 개인적인 훈련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대련을 했을 때, 오랜만에 만난 강한수가 놀라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꽤나.’
뿌듯했다.
넘어야 할 산 하나를 정복한 것 같았다. 붉은 늑대 서식지에서 보았던 또 하나의 등을, 나는 뛰어넘게 된 것이니까.
거기서 끝이 아니라, 더 강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매일같이 투기장에서 연승을 이뤄내며, 단시간에 B급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훈련은 끝났냐?”
나는 훈련장 가운데서 헉헉대고 있는 김세아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땀에 전 김세아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후우.”
김세아는 뭔가 억울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내쉬고는 훈련장 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는 천천히 훈련장으로 걸어가며, 옆에 비치된 체력 포션을 하나 집었다.
“자.”
체력 포션을 마신 김세아의 혈색이 돌아왔다. 호흡도 한결 좋아졌다. 하지만 얼굴에 가득한 억울함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너 좋아하는 고기 먹으러.”
“네가 사는 거지?”
“당연하지.”
내가 건넨 손을 잡고 김세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가볍게 마나를 끌어올리자, 땀이 증발해 버렸다. 젖어 있던 훈련복도 바짝 마른 것처럼 돌아왔다.
머리는 가볍게 묶어 뒤로 넘겼다. 예전에는 차가워만 보였던 얼굴이 지금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웃음도 부쩍 늘었고, 삐지는 것도 조금 늘었다.
어차피 둘 다 월급은 똑같았고, 먹는 것 정도는 가볍게 살 수 있을 정도로 벌었다. 그래도 저런 식의 표정을 지을 때, 밥을 사준다고 하면 금방 미소를 지었다.
나는 최근에 혼자 던전을 돌며 발견한 고깃집을 떠올렸다.
‘특수 부위가 맛있었지.’
9랭크에 올리기 위한 포인트를 모으기 위해 수도 없이 많은 던전을 돌아다녔다. A급 던전을 혼자 도는 것이 나에겐 훈련이었다.
혼자 움직이다 보니 시간이 배로 늘었지만, 그 안에서 배우는 것도 상당했다.
기습이나 함정 설치 등 잡다한 기술부터 마석을 얻어 성장형 무기를 성장시키고, 내가 가진 힘을 정돈할 수 있었다.
“훈련의 성과는 있는 것 같아?”
“어. 이제 채하나 선배의 마법은 확실하게 막을 수 있어.”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봤을 때 엄청난 성장 속도였다.
누군가는 길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일정 수준에 오르면 더없이 느리게 성장하는 것이 헌터들이었다.
한 끗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동안 했던 노력의 수십 배를 더해야 했다. 그 과정은 절대 쉽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강자들이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난…… 뭐.’
상대만 이기면 강해지는 것이지만, 그래도 엄연히 목숨을 걸고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아, 맞아. 이진수 정신 차렸다던데?”
김세아가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진수는 내가 데리고 나온 후에 그린나래 길드에서 바로 데려갔다.
그 이후, 이진수에 관한 정보를 들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만 전해 들었다.
“찬혁이가 그래?”
“어. S급 던전 공략에 대해 연락을 하다가 들었어.”
이찬혁 또한 많은 발전을 이뤘다. 지금의 김세아를 상대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길드 대항전 당시의 이진수 실력 정도는 따라잡았다.
이찬혁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했다.
‘확실히 돈이 좋긴 하다. 매일같이 마나 증진, 체력 강화에 좋은 영약들을 먹고 그린나래 길드 최고급 교육진들에게 수련을 받으니 강해지고 싶지 않아도 알아서 강해지더라. 네가 이 느낌을 알아야 하는데.’
나는 그 이야기에 그저 웃으며 고생이 많았다고만 이야기했다. 저렇게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영약이 비싸서 사 먹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헌터들이 구하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영약을 잘 먹지 않는 이유는 하이 리크스 하이 리턴 때문이었다. 몸에 아주 좋지만, 그만큼 부작용도 심했다.
‘독한 놈.’
이찬혁도 정말 이 악물고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능력을 키워 그린나래 길드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모양이었다.
S급 던전 공략에 참가한다고 알렸고, 아마 14팀이 다시 만나는 날은 S급 던전 공략 날이 될 것이다.
차에 탑승한 김세아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어디로 갈 건데?”
“기대하고 있어. 너도 좋아할 거야.”
* * *
“이거 전부 바꿔주세요.”
나는 환전소에서 가지고 있던 포인트를 모두 케슬로 교환했다. 오늘 있을 경기에 베팅을 하기 위해서였다.
매일 같이 경기 전에 케슬로 교환한 뒤에, 베팅으로 번 케슬까지 모두 포인트로 바꾼 뒤에 현실로 돌아갔다.
꽤나 귀찮은 일이지만, 현실에서 급하게 포인트를 쓸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베팅을 안 하기에는 성장 속도가 느려질 테지만, 이 정도의 귀찮음은 감수할 만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케슬을 모두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남쪽에 있는 B급 전용 투기장으로 걸어갔다. 아직 A급 전용 투기장에 가 보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일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B급이 이 정돈데.’
중세시대의 왕도 중심에 있는 건물들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벽돌 하나하나가 새것이었고, 전체적으로 세련된 분위기였다.
왕도에서도 왕궁이 있는 곳 바로 외곽에 있을 법한 가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D급 투기장에 비하면 차원이 다를 정도로 퀄리티가 높았다.
파는 무기부터 시작해서, 방어구들의 능력은 효율적인 측면에서 10배는 가뿐히 넘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관에는 푹신하고 깨끗한 침대가 있었다.
무엇보다 음식이 맛있었다.
D급 투기장에서 먹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맛이었다. 각 지역에서 잘나가는 요리사들이 요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만큼 비싸지만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먹어도 괜찮았다.
“벌써 오셨네요.”
엘린이었다.
한동안 중학생 정도의 키를 하고 있더니, 오늘은 한층 더 커서 이제 170㎝는 넘는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엘프라 그런지 얼굴도 아름다웠고, 몸매도 훌륭했다.
“벌써 1년이 지난 건가? 그럼 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거야?”
성인식 이후 30년 동안 임무를 처리하는 것이 엘린이 속한 엘프 집단의 규율이었다.
뛰어난 활 솜씨 까지 추가로 장착하고, 지금은 최상급 정령까지 다룬다고 하니 임무를 처리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럼요. 그리고 이제 한 달에 한 번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 투기장에 오면서 메시지가 바뀌었거든요.”
“이제 더 자주 보게 되는 건가?”
나는 매일 보는 것이지만, 엘린은 그동안 1년씩을 보내면서 볼 때마다 성숙해져 백소교를 놀라게 했다.
성숙함과 비례하는 실력으로 엘린 또한 나와 같이 B급 투기장으로 올라왔다.
“뭐 먹을래?”
“소교 언니는 언제 오는데요?”
“곧 오겠지. 소교 거는 이미 시켜놨어. 아마도 달달하면서도 짭짤한 게 생각날 것 같아서. 너만 시키면 돼.”
어제 투기장에 왔을 때, 꽤 분노에 가득 찬 백소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정략결혼 상대를 만난다고 했던가?’
부모님이 정해준 얼굴도 모르는 생판 남과 결혼해야 한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리며 투기장 상대를 작살 내놓았다. 자기보다 약하면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는 호언장담을 하며 현실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모님 말씀이라면 하늘의 뜻처럼 다뤄지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상황이 좋게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았다.
콰앙!
역시나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백소교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거친 행동과 다르게 표정을 봐서는 좋게 끝난 모양이었다.
“뭐야 왜 웃고 있어.”
“웃으면 안 돼요?”
“제정신이 아닌 거면 미리 얘기해. 따로 자리 잡고 먹을 테니까.”
미묘한 미소를 지은 백소교가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부모님에게 말했어요. 저보다 약한 사람한테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살짝 다리 하나 부러뜨리고, 갈비뼈 두 개 정도 금가게 해놨으니까 당분간은 조용하겠죠.”
“정략결혼이라면서. 그렇게 쉽게 연을 끊을 수가 있어?”
“그 남자가 강해져서 돌아온다고 했고, 저는 언제든지 받아준다고 했죠. 이 정도 무력이면 제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진 정략결혼 따윈 하지 않겠죠.”
그렇게 신나게 떠들더니 내 옆에 있던 엘린을 봤다가, 다시 눈을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엘린이에요?”
“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엘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백소교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예전 같았으면 백소교를 보자마자 달려들었겠지만, 요새는 그런 반응이 줄었다.
30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엘프와 인간의 수명 차이가 길다고 하지만, 30년이란 시간을 보낸 것은 무시할 수 없었다.
때마침 음식이 나왔고,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백소교와 엘린의 어색함도 금세 사라졌다.
먹는 김에 나는 후식까지 시켰고, 우리는 좀 더 테이블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 백소교가 나를 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오늘 상대가 누군지는 알고 있는 거죠?”
원래라면 신청만 하고 상대방을 알아보지 않지만, 오늘은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투사가 내 상대였다.
현재 B급 투기장 순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페로.
그가 오늘 내가 상대해야 할 투사였다. 페로는 B급 투기장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문지기.
고의적으로 A급 투기장에 올라가지 않으면서, B급에서 올라가려는 투사들을 막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었다.
D급과 C급은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았을 때, 승리하면 자동 승급이지만, B급과 A급 투기장은 방식이 조금 달랐다.
자기보다 위에 있는 투사들을 끌어내리고 올라가야 하는 방식이었다. 거기다 B급 투기장부터는 A급 투기장으로 올라가지 않을 수 있었다.
페널티는 자기 자신의 경기에 베팅을 하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시스템으로 인해 누군가 대리로 베팅을 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페로는 그것을 포기하며,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 기간이 길지 않았고, 문지기인 동시에 B급 투기장을 관리하는 암흑 세력의 수장이기도 했다.
이곳에 있는 투사들은 모두 페로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사람이었고, 페로는 그 점을 이용해 B급 투기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상납금을 받고 있으니 케슬에 대한 페널티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겠지.’
이곳 음식점 주인의 말로는 상납금에 대해 반목을 했지만, 페로 무리에 협박으로 포기했다고 들었다.
투기장에서 만나는 즉시 죽여 버리니,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상납금을 내며 목숨이라도 붙어있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어, 나름 조사도 했어.”
그나마 다행인 점은 B급 투기장에서 강해질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었다. 그 이상으로는 능력을 키울 수 없었다.
그래서 페로는 아이템에 케슬을 투자했다. 하나같이 특수 옵션들이 가득한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능력을 모두 9랭크에 올렸기 때문에 나도 육체적으로 올릴 능력은 없었다. 그러면 실력과 아이템 면에서 판가름이 날 것이다.
실력이라면 더더욱 자신 있었다.
‘성장형 검도 많이 성장했고.’
나는 캐슬을 엘린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번에도 나한테 모두 걸어줘. 무조건 이길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