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역대급 수련 171화
42장 준비(1)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상황은 나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기자들을 소집한 뒤로, 협회를 저격하는 기사들이 올라갔다.
내가 첩자였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누명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내 쪽으로 좋게 흘러가고 있으니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것은 협회 측이었다.
나에 관한 소문은 자신들이 아니라고 우길 수 있었지만, 케슬란의 간부들은 쉽게 처리하기 힘들 것이다.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 케슬란 간부들을 잡아놨으니, 협회 고위 간부들도 속이 탈 것이다. 함부로 풀어주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쉽게 사형을 시킬 수도 없었다.
“사형은 안 시키겠지?”
김세아가 국수를 한입 먹으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헌터법상 간부들은 정보 취득 후 사형이니까. 정보를 얻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시간을 질질 끌겠지.”
“뭐 그만큼 우리도 케슬란의 시간을 뺏고 있는 거니까.”
“그치.”
국수를 빠르게 처리한 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을 먹었으니 일을 할 차례였다.
근신하라던 채하나가 임무를 주었다. 상황이 좋게 돌아오기도 했고, 엄청난 일을 꾸미는 중인 케슬란을 견제해야 했다.
오늘 할 일이 바로 케슬란이 꾸미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더욱 자세한 얘기는 이번 임무가 끝나는 대로, 채하나가 이야기해 주기로 했다.
우리는 가게를 빠져나와 뒤쪽에 있는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포털이 조금 깊숙한 곳에 있기 때문에 빠르게 이동했다.
포털을 발견한 김세아가 입을 열었다.
“저건가 보다.”
다른 포털보다 큰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주위에는 포털의 기운을 잠재우기 위한 방호 라인이 만들어져 있었다.
아직까지는 다른 포털과 큰 차이가 없었다. 나와 김세아는 걸어서 방호 라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장난 아니네.”
김세아가 내 말에 공감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A급 던전에 아무나 들여보내지 않는지도 알겠어. 그만큼 우리도 조심해야겠지.”
“나만 믿어.”
이렇게 A급 던전에 오게 된 것도 나와 김세아의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본래라면 3인 1조로 움직이겠지만, 지금 길드에 놀고 있는 길드원이 없었다.
A급 임무가 가능한 헌터들은 모두 길드장과 채하나의 명령을 받으며 임무 수행에 들어갔다.
우리도 그중 한 팀이었다.
우리 실력을 인정받은 것 같기도 해서 뿌듯했다. 일주일간 투기장에서 얻은 포인트도 상당하니, 돌발 상황이 와도 헤쳐 나갈 자신이 있었다.
“들어가자.”
내가 먼저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산이었던 주위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포털 안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그나마 떠 있는 하나의 달이 아니었다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달이 비추는 풍경에 나는 침을 삼켰다.
어둠을 비추는 달은 빨간색이었다. 주위는 붉은 노을이 진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있는 곳은 산꼭대기였고, 정면에는 마을처럼 보이는 곳이 있었다.
우리의 목표는 아이템 하나를 구하는 것이었다. A급 던전에서만 나오는 특이한 아이템으로, 던전 안에서는 신물처럼 대해진다고 들었다.
김세아의 시선이 마을 쪽으로 가 있었다.
“아마도 저기겠지?”
“그러길 바라야지.”
당장 앞에 보이는 마을이 저곳일 뿐이지, 이 던전 안에 얼마나 많은 마을이 있을지 몰랐다.
나는 밑으로 내려가며 말했다.
“빨리 시작하자.”
* * *
“흐음.”
채하나가 애매한 표정으로 내가 가져온 아이템을 쳐다보았다. 활 모양의 아이템으로, 꽤나 상당한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처음 얻었을 때, 감별 스킬로 확인했었다.
워낙 특이한 아이템이라고 하기에, 감별해 보았지만 능력치가 다른 아이템보다 뛰어날 뿐, 별다를 것은 없었다.
“이번 것도 꽝이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걸리면서 얻은 아이템이었다. 처음에 도착했던 마을은 이미 몬스터들에게 침략당해 생존자가 없었다.
그 뒤로 여러 마을을 돌아다녔지만, 몬스터들에게 침략을 당한 상태였다. 결국, 던전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모두 처리하고 나서야 이 활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끔찍한 일정이었다. 눈을 뜨면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밖으로 나와 쪽잠을 자고 다시 던전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시간을 촉박하게 줬는데 잘 처리했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는 채하나의 말 때문에, 일정은 빡빡하게 진행되었다.
“이번 것도 꽝이라는 건 무슨 말입니까?”
다른 길드원들이 A급 던전에서 가져온 아이템도 꽝이라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리고 채하나는 A급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 중 원하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채하나는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밑에 있는 소형 비밀 창고로 가서 무언가를 꺼냈다.
‘누군가 훔쳐가려면 통째로 가져가야겠네.’
채하나의 마나에 반응해서 열리는 거라 내용물을 훔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아마 내용물을 가지기 위해선 창고를 통째로 가져가야 할뿐더러, 창고를 열 수 있는 기술자가 필요할 것 같았다.
“보여?”
창고에서 꺼낸 물건은 한 자루의 단검이었다. 보통의 단검보다는 조금 세련되게 생겼다. 실질적인 단검이라기보다는 장식용 단검처럼 보였다.
손잡이에 달린 커다란 보석이 눈에 띄었다. 주먹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로, 영롱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스스로 빛을 내고 있는 건가요?”
김세아가 보석을 쳐다보며 물었다. 채하나는 책상 테이블 위에 단검을 올려놓았다. 단검의 보라색 보석은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그래. 이런 보석이 있는 아이템을 찾고 있는 거야.”
창고에 다시 단검을 집어놓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런 채하나를 보며, 나는 활을 쳐다보았다.
분명, 보석이 박혀 있지만 스스로 빛나지는 않았다. 그게 어떤 차이가 있는 건지 이제 채하나가 말해줄 것이다.
“후우. 일단은 너희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도 했으니, 그에 관한 정보를 들을 준비가 됐다고 생각할게. 지금 말하는 정보는 우리도 안 지 얼마 안 됐어.”
우리라는 것은 길드장을 포함한 최고위 간부를 뜻하는 것이었다. 채하나가 항상 우리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그 사람들을 얘기할 때뿐이었다.
“현재 케슬란이 준비하고 있는 것은 S급 던전 공략이야. 정확히는 이미 공략을 끝낸 S급 던전이 있고, 한국에 있는 S급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거지.”
“예?”
“네?”
지금까지 세계의 어떤 길드도 S급 던전 공략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 S급 던전을 케슬란은 이미 공략을 끝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S급 던전에는 뭐가 있는 겁니까.”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각 길드의 실력자들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모아 진행하는 것이 S급 던전 공략이었다.
결코 취미로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채하나가 다리를 꼬며 말했다.
“현재 파악 중이지만, S급 던전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소원권 같은 개념의 아이템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
“…….”
“그리고 그 소원권의 범위가 상당히 클 것으로 파악하고 있지. 이번에 네가 잡은 케슬란 조직원들과 간부들의 입에서 나온 정보들을 조합해서 나온 정보야.”
소원을 들어주는 아이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몬스터들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특수한 능력을 사용하고, 특이한 아이템들이 판치는 곳이니까.
“케슬란은 무엇을 원하는 겁니까?”
내 말에 채하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걸 모르겠어. 무슨 소원을 빌지 모르니 대책이라고는 한국에 있는 S급 던전을 막는 수밖에 없는 거지.”
가만히 듣고 있던 김세아가 채하나에게 물었다.
“케슬란에서 이미 S급 던전 공략을 끝냈다고 하지 않았나요?”
“맞아. 정확히는 S급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을 모두 모아야 소원을 이룰 수 있는 모양이야. 안타깝게도 오유성이 각 나라의 지부장들을 잡았을 때는 그 나라의 S급 던전이 공략된 이후였어.”
“S급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을 챙겼겠군요.”
“그래.”
대충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눈에 들어왔다. 아마 한국에 있는 S급 던전이 핵심이 될 것이다. 케슬란에서 가져가느냐, 아니면 그것을 막아내느냐.
나는 아까 보았던 단검을 떠올리며 채하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애초에 S급 던전에 오지 못하게 케슬란을 막으면 됐을 일인데, A급 던전에서 아이템을 얻어야 하는지 궁금했다.
“근데 A급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은 왜 필요한 겁니까?”
“그게 있어야 S급 던전을 공략할 수 있거든. 각 S급 던전에는 필요한 아이템들이 있어. 그 아이템들은 A급 던전에서만 구할 수 있지.”
“…….”
“어떤 아이템인지, 그리고 몇 개나 되는지는 모두 랜덤이야. 그래서 지금까지 S급 던전 공략을 이루지 못한 것도 있지. 이번에 내가 얻은 것은 너희가 저주받은 동굴 임무를 수행할 때, 해미 길드에서 받은 거야.”
지금 상황에선 그때 받아낸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박나윤이 그 아이템을 들고 케슬란에 들어갔다면, 이미 S급 던전을 공략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A급 던전을 더 돌아서 아이템을 확보하는 것은 힘들어 보이는데.”
헌터 협회 한국 지부에서는 이번에 내가 잡은 케슬란 간부들을 세계 헌터 협회에서 운영하는 감옥으로 보냈다.
케슬란에서는 그 소식을 듣고, 선전포고를 전했다. 자신들의 부하들을 데리러 갈 것이고, 한국 헌터 협회에 그 죄를 물겠다고 했다.
‘연막이지.’
그건 어디까지나 쇼일 뿐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할지도 모르지만, 케슬란이 한국에 오려고 하는 것은 S급 던전 때문이었다.
헌터 협외는 서울에 있었고, S급 던전은 전남 여수에 있었다. 케슬란이 선전포고를 한 이상, 일반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힘이 분산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마도 한국에 있는 S급 던전 공략에 필요한 아이템은 그린 나래 길드와 우리가 하나씩 들고 있는 것 같아.”
“이미 얘기는 끝난 것 같은데. 아이리스 길드는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내 질문에 채하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마도 내가 말한 내용 때문인 것 같지만, 별것 없었다.
채하나가 이미 그린나래 길드에 또 다른 아이템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 순간, 그린나래 측과 이야기가 진행 중이거나 끝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S급 던전 공략에 필요한 아이템을 서로에게 알릴 필요가 없었다.
이내 채하나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곤 마나를 사용해 우리 주위로 차단막을 만들었다.
“그린나래 길드에서 공략을 진행할 거고, 우리는 공략 직전에 아이템만 넘길 거야.”
“우리가 공략…….”
나는 뒷말을 아꼈다. 생각을 해보니, 그린나래 길드와 아이리스 길드의 전력 차이는 컸다. 내가 가세한다고 하더라도 격차가 조금 났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 채하나의 말처럼 그린나래 길드에서 공략을 진행하는 것이 맞았다.
“물론, 겉으로는 그린 나래 길드에서 진행하는 공략이겠지만, 그 안에는 한국의 랭커들이 대거 참여할 거야. 그린나래라는 이름으로 연막을 치는 거지.”
케슬란 측에서도 S급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 최정예 멤버들을 데리고 갈 것이다. 그렇다면 헌터 협회를 공격하러 오는 케슬란의 수준도 그리 높지는 않을 터, S급 던전에서 대규모 전쟁이 일어나도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세계 랭커들도 대부분 몰래 한국에 들어와 S급 던전에서 케슬란을 맞이할 거야. 그게 이번 작전의 핵심이지.”
나와 김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가 유출되지만 않는다면, 가능성 있는 작전이었다. 채하나는 주변의 차단막을 없애려던 것을 잠시 멈추고, 우리를 보며 말했다.
“아, 너희도 S급 던전 공략에 참여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