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역대급 수련 169화
41장 배팅(2)
“와아아아아!”
투기장에 있는 투사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본격적인 D급 투사들의 결투 시작을 알렸다.
“여기서 D급 투사들의 결투를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저도요.”
옆에 앉아 있던 백소교와 엘린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투기장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배치 결투가 끝나자마자 현실로 복귀했으니 나도 결투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배치를 위해 나뉘었던 구역들이 사라지고, 거대한 원형 투기장이 만들어졌다.
진행자로 보이는 요정이 투기장의 중앙에 나타났다. 이번 요정은 머리에 세 개의 뿔을 달고 있었다.
인상 또한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뭔 투사들이 이리 많아. 재미도 없는 경기를 보러 시간을 낭비하다니.”
무심하게 혼잣말을 내뱉었지만, 그 말은 투기장 전체에 다 들렸다. 투사들은 그것을 듣고도 신경 쓰지 않고 환호했다.
진행자는 손을 움직였고, 양쪽에 있는 문이 열리면서 두 명의 투사가 걸어 나왔다.
양쪽에 나란히 선 투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자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듣기만 했던 배팅 시스템이었다.
[배팅을 하시겠습니까?]
나는 가지고 있는 캐슬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다음 문자가 나타났다.
[베르타에게 배팅하시겠습니까? 호르만에게 배팅하시겠습니까?]
백소교와 엘린도 이 화면이 나타났는지, 유심히 양 투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경기 시작 시간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빨리 결정해야 했다.
나도 투기장으로 시선을 돌려 유심히 쳐다보았다.
베르타라고 하는 투사는 악어의 형상을 한 몬스터였다. 인간처럼 이족보행을 하고, 자신의 몸집만 한 창을 들고 있었다.
호르만은 2m는 넘어 보이는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베르타의 절반도 되지 않는 키에 몸집도 작았다.
나는 그 둘을 한 번 흘겨보고는 지금 가지고 있는 800캐슬을 모두 걸었다.
“유성 님은 누구한테 거셨어요?”
엘린이 물었지만, 백소교 또한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비밀.”
“전 호르만한테 걸었어요.”
해맑은 웃음과 함께 엘린이 말했다. 그런 엘린을 보며 백소교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누가 봐도 베르타가 이길 것 같지 않아? 저 덩치며, 풍기는 기세를 보면 딱 느낌이 오는데.”
“그래요? 전 베르타가 오히려 더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호르만이 이길 것 같은데요.”
누가 맞을지는 결투를 지켜보면 알게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 이제 배팅이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가운데 있던 진행자의 신호와 함께 결투가 시작되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호르만이었다.
호르만이 들고 있던 망치를 이용해 맨바닥을 내려쳤다. 쾅 소리와 함께 자욱한 먼지가 일어났다.
베르타는 창을 빠르게 돌리며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자 먼지가 빠르게 사라졌고, 그 틈을 타고 호르만의 망치가 날아왔다.
콰악!
자신의 튼튼한 이빨로 호르만의 망치를 물어버린 베르타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망치를 잡고 있느라 허공에 떠 있는 호르만을 향해 베르타의 창이 쇄도했다.
그 순간, 베르타의 길쭉한 입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말 그대로 상체가 무너지면서 바닥으로 엎어졌다.
베르타가 입을 벌리려고 하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휘두르는 창은 호르만에게 위협을 줄 수 없었다.
“저게 뭐야?”
백소교가 놀란 눈으로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런 백소교에게 설명해 주었다.
“망치의 무게를 늘린 거야. 베르타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망치에 흐르는 마나가 느껴졌다. 얼마나 많은 무게가 나갈지는 감이 오지 않지만, 엄청나게 무겁다는 것 하나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여전히 베르타는 일어나지 못했고, 호르만이 주먹을 들어 베르타의 머리를 내려치는 것으로 경기가 끝이 났다.
[배팅에 성공하셨습니다.]
[배당률 200%로 인해 1,600캐슬을 얻으셨습니다.]
“아…….”
“와!”
탄식을 내뱉는 백소교와 환호를 하는 엘린의 모습이 들어왔다. 자연스레 내 입꼬리도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본 백소교의 두 주먹이 부들거리고 있었다.
“다음에 따면 되지.”
차례차례 경기가 진행되었고, 곧 엘린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호명과 함께 엘린의 모습이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밑에 있는 문에서 엘린이 걸어 나왔다. 상대로 보이는 투사는 검은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거기다 검까지 검은색으로 맞춰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다시 한번 배팅 창이 열렸고,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엘린에게 12,000캐슬을 걸었다. 내가 계속해서 딴 캐슬 전부를 건 것이다.
“이번엔 무조건 엘린이 이길 거예요. 그쵸?”
“그럼.”
경기가 시작함과 동시에 엘린의 주위로 4대 정령이 튀어나왔다. 저번처럼 상급 정령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엘린의 다리까지 오는 작은 몸집을 하고 있었다. 4대 정령은 각각의 능력을 발동하며, 검은 갑옷 투사를 몰아붙였다.
지면이 푹 꺼지고, 검은 갑옷 투사의 투구 앞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갑자기 바람이 불며 갑옷 투사의 자세가 무너졌고, 바닥이 진흙으로 변해 갑옷 투사의 하반신이 빨려 들어갔다.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검은 갑옷 투사는 검을 버리고 항복하는 것을 선택했다. 아마도 엘린의 어린 모습으로 인해 자비를 베풀 것이라 생각하고, 그런 행동을 취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곧 검은 갑옷 투사의 몸이 먼지가 되어 하늘로 사라졌다.
‘이곳에서 순수함이라는 것은 찾아 볼 수 없지.’
오히려 이런 쪽에서는 엘린이 더욱 단호했다. 배치 결투를 치르는 동안 그 어떠한 적도 봐준 적이 없었다.
엘린을 얕본 덕분인지, 배당률이 높았고 3만 캐슬이 넘는 돈을 벌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돈을 딴다면, 제한 기간 내에 체력과 민첩도 8랭크에 올릴 수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백소교는 엘린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한 다음, 내게 가까이 다가왔다. 굳은 결의가 보이는 눈빛이었다.
“이거 전부 저한테 걸어주세요.”
꽤나 묵직했다.
계산해 보니 1만 캐슬이었다. 한 번의 결투가 끝나고, 백소교의 이름이 바로 불렸다. 백소교는 내가 사준 연검을 들고 투기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경기 시작과 함께 상대를 몰아 부치며, 결투를 빠르게 끝내버렸다. 관객석으로 돌아온 백소교에게 2만 캐슬을 넘겼다.
“배당률이 두 배밖에 안 돼요? 거짓말이죠.”
“두 배도 많은 거야. 방금 결투는 시작 전부터 네가 이길 것 같은 분위기였으니까.”
경기 시작도 전에 백소교는 상대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배당률이 낮게 잡힐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높아서 내가 더 놀랐다.
“오늘의 마지막 경기네.”
나는 진행자의 멘트를 듣고, 엘린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10만 캐슬을 넘겼다.
“나한테 걸어.”
“네!”
하얀 빛과 함께 내 몸이 이동했다. 어두컴컴한 철창 안이었고,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문이 열려 있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투기장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내가 싸워야 할 상대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내게도 아주 익숙한 얼굴이었다.
에드워드.
자신을 왕이라고 칭하는 미친놈이 내 앞에 나타났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 나랑 붙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크윽! 네놈!”
이를 갈며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런 에드워드를 보며, 나는 검을 소환했다.
“뭐 때문에 화가 그리 났는지 모르겠다. 다 네가 자초한 것을 텐데.”
엘린 팀과 동맹을 맺은 것, 신관 녀석과 동맹을 맺고 우리를 배신한 것 모두 에드워드의 선택이었다.
“네놈을 갈아 마셔야 속이 후련할 것 같아. 자비를 베풀 생각 없으니 꿈도 꾸지 마라.”
“그런 건 이기고나 말하시지?”
경기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관객석에서 환호 소리가 흘러나왔다. 에드워드 폐하라는 말도 들렸고, 얼굴들을 보니 낯이 익었다.
내 손에 한 번씩 죽은 놈들이었다.
“으아아아아!”
에드워드의 발밑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전에 보았던 광역 버프였다. 하지만 저 기술은 다수 대 다수의 싸움에서나 빛을 보지, 이곳에서 그리 큰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상대가 나라면 더더욱, 효과를 보기 힘들었다.
챙!
나는 갑옷을 만들어 입고, 에드워드의 공격을 막았다. 생각보다 검술이 뛰어났다. 한 번 한 번의 공격이 날카로웠다.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에드워드의 검술을 눈에 담았다. 그렇다고 시간을 끌면서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에드워드 또한 엘린만큼의 강자였고, 이 전과는 더 강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마나를 몸에 퍼뜨리며 육체적인 능력을 끌어올렸다.
콰아앙!
내가 휘두른 검격에 투기장 바닥이 움푹 파였다. 그래도 잽싸게 피했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는 에드워드의 모습이 보였다.
그를 쳐다보며, 나도 숨을 고르게 쉬었다.
생각보다 힘을 많이 줬는지, 오른팔이 욱신거렸다. 8랭크의 힘에 적응해보려 노력을 많이 했지만, 페널티는 없앨 수가 없었다.
“알 그래 미디오.”
그때, 에드워드의 몸 주위로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크게 펼쳐진 마법진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에드워드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강해졌다. 검은 기류가 일어나며 에드워드의 눈도 시커멓게 물들었다.
상황을 보니, 마법진의 범위가 줄어들고 버프의 능력이 상승하는 것 같았다. 느껴지는 기운이 상상을 뛰어넘었다.
‘하여간 여기저기 괴물 천지군.’
한 방 싸움으로 결과가 정해질 것이다. 힘을 사용한 뒤에 오는 고통이 상당했지만, 살아남으려면 나도 전력을 다해야 했다.
착용하고 있던 갑옷도 해제시켰다. 그곳에 사용되는 마나까지 모두 끌어모아 검에 집중시켰다.
그 엄청난 힘에 한 손으로 지탱할 수 없어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검에서 타오르는 화염이 검에 응축되기 시작했다.
주위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든 열기가 줄어들었고, 준비가 끝났을 때는 붉게 물든 검신만 남아 있었다.
검신에 그려진 용 모양의 문양에서 푸른빛이 일어났고, 검신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찌지직!
검 끝이 살짝 바닥에 닿았다. 순간, 바닥이 녹아내리며 자국이 파였다. 파인 게 아니라 완전히 녹여 버린 것이다.
“후우.”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가며 검을 위로 들어 올렸다.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마나가 모두 증발해 버리기 전에 끝을 내야 했다.
에드워드의 검은 검과 나의 붉은 검이 부딪쳤다.
찌지지지직!
그리고 내 검이 에드워드의 검을 녹여 버렸다. 반으로 잘린 에드워드의 검과 함께 내 검이 에드워드에게 닿았다.
삭!
[투기장에서 승리하셨습니다.]
[C등급이 되었습니다.]
[B등급으로 올라갈 자격이 충분합니다. 1승을 거둘 시 B등급으로 진급합니다.]
* * *
결투가 끝나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오버 캐슬에 있는 여관이었다. 백소교와 엘린이 내가 눈을 뜰 때까지 자리를 지켜주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엘린이 건네는 캐슬을 받았다. 그러곤 다음에 만나자는 기약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뭐야.”
스마트폰에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한두 개가 아닌 백 개가 넘는 발신 기록이 떠 있었다.
채하나가 30통, 김세아가 70통, 이찬혁이 10통, 그 이외에 사람들에게서 자잘한 전화가 왔었다.
뭔지 알아보기 위해 화면 잠금을 풀었을 때, 나를 쳐다보고 있는 발칸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은 짜증이 난 듯한 얼굴 표정이었다.
-전화 때문에 게임에 집중을 못하겠네.
“그러게, 뭔 일이냐.”
나는 가장 전화가 많이 온 김세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 번 갔을 뿐인데, 김세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다소 격앙된 목소리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웃으며 대화를 하던 기억 때문인지, 김세아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뭔 일인데 그렇게 화가 나 있어.”
-당장 TV 틀어봐. 협회에서 너를 저격하고 움직이기 시작했어.
나는 뭔 소리가 싶어서 TV를 틀어보았다. 뉴스를 할 시간이 아님에도, 앵커가 나와 뉴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속보라는 단어가 적혀 있었고, 화면에는 내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앵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었다.
“아이리스 길드의 오유성 헌터가 케슬란에게 협력해 이번 제주도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켰다는 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