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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역대급 수련-168화 (168/177)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68화

41장 배팅(1)

하얀빛이 사라지면서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것은 투사들로 가득한 오버 캐슬이었다.

잠시 후, 하늘이 어둠에 물들었다.

오버 캐슬 곳곳에 네 개의 빛기둥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번에 새로 올라온 투사들의 경기가 시작된 모양이었다.

네 개의 기둥을 향해 달려가는 투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찬찬히 눈으로 훑으면서 몸을 움직였다.

오버 캐슬까지 올라온 투사들이니만큼 기본적으로 강한 녀석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차원이 다른 강함을 뽐내는 투사들이 있었다.

내가 오버 캐슬에 있을 때, 상급 정령술을 사용하는 엘린과 광범위 버프를 가진 에드워드, 그리고 다중 힐을 사용하는 신관 녀석이 그런 투사였다.

“유성 님!”

때마침 광장 건너에서 해맑은 미소를 띠며 달려오는 엘린의 모습이 보였다. 팀전 결투 때보다는 키가 조금 컸다.

“하루 만에 키가 컸네?”

어제까지만 해도 처음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확연히 티가 날 정도로 달라진 모습이었다.

“하루라뇨. 1년이나 지났다고요.”

그러고 보니, 지나가는 식으로 얘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나야 하루에 한 번 이곳에 들어오지만, 엘린의 경우는 1년에 한 번씩이라고 들었다.

투사들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모르겠지만, 엘린은 1년 만에 나를 보는 것이었고, 나는 하루 만에 엘린을 보는 것이었다.

“아, 1년 만에 키가 그렇게 큰 거야?”

“네, 이번에 성인식을 치렀거든요. 앞으로 이곳에서 볼 때마다 키가 커 있을 거예요.”

“성인식?”

“네. 진정한 엘프의 일족으로 거듭나는 과정의 시작이랄까요. 성인식을 치름으로 인해 봉인되었던 힘도 점점 풀릴 테고, 숲의 임무도 수행하게 될 자격이 주어져요.”

봉인되었던 힘이라, 결투 마지막 전투에서 보여주었던 그 광경이 떠올랐다. 봉인이 풀리면 정령왕이라도 불러내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길 수 있으려나.’

아직 정령과 싸워본 적은 없지만, 정령 중에서도 제일 위에 있는 것이 정령왕이었다. 고작 상급 정령임에도 풍기는 기운이 남달랐었다.

시간이 지나면 엘린은 상급 정령보다 강한 정령을 부리게 될 것이고, 위로 올라가다 보면 엘린과 붙게 될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당장 엘린이 아니더라도 정령을 다루는 자를 만나게 될 경우를 대비하는 편이 좋았다.

“일단 가자.”

오늘 결투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엘린의 경우도 나와 비슷한 시간대에 결투가 잡혀 있었다.

그래서 같이 밥을 먹기로 했다.

나는 오버 캐슬에서 이용 가능한 통신 채널을 사용해 백소교가 오버 캐슬에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같이 만나기로 한 장소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나는 엘린과 함께 빛기둥을 지나치며, D급 투기장이 있는 동쪽 지역으로 이동했다.

동쪽 지역의 건물들은 대부분 허름한 편이었다. 투사들이 가장 많이 오는 곳이지만, 캐슬을 가장 많이 아끼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투사들이 캐슬을 잘 사용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영향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가격들이 비싸지 않았다.

그리고 그만큼 서비스나 질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문제가 많았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그냥 만족하면서 지낼 뿐이었다.

첼른 식당.

나랑 백소교가 찾아낸, D급 투기장에서 그나마 괜찮은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자리를 잡고 있는 백소교의 모습이 보였다.

엘린이 먼저 안으로 달려가 백소교의 옆에 앉았다. 나 또한 뒤이어 백소교가 있는 테이블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항상 먹던 거로 시켰어요. 엘린은 샐러드 종류로 시켰고.”

“좋아.”

백소교는 내가 첫날 배치 결투를 치르고 난 뒤, 바로 접수원을 때려치웠다. 내가 간 이후에도 진상들이 줄줄이 나타난 영향이 컸다.

오늘이면 배치 결투가 끝나니, 자유롭게 결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백소교의 실력이라면, 적어도 B급 투기장에 갈 때까지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나는 정보도 얻을 겸, 배치 결투를 끝낸 백소교에게 물었다.

“등급은 어떻게 나왔어?”

“D급이요.”

“엥?”

백소교라면 바로 C등급이 나올 줄 알았다. 실제로 백소교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게 조금 복잡하던데요. 저도 바로 C등급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래도 D급 투기장에서 1승만 거두면 바로 C급 투기장으로 갈 수 있어요.”

그렇다면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1승으로 한 등급이 올라가는 것 정도는 결국 배치 결투를 한 번 더 보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니.

곧 음식이 나왔고, 우리는 맛있게 음식을 먹었다. 내가 시킨 것은 고기가 들어간 스튜와 빵이었다. 빵이 조금은 딱딱하지만 스튜에 찍어먹으면 그나마 부드러워졌다.

“오늘 배치 결투 끝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백소교의 질문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한 번 더 결투 신청하고 등급을 올려야지.”

내 목표는 하루에 3번 결투를 하는 것이었다. 컨디션이나 마나가 무한이었다면 하루에도 수십 번 결투를 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이곳 투기장에서 부상이나 소모된 마나는 금방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투 횟수가 제한이 없다고 하더라도, 실질적 결투 횟수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그런 부분을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 배치를 끝낸 뒤 한 번의 결투를 해볼 생각이었다.

“시간 됐다.”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린은 나보다 경기 시간이 늦어, 백소교와 함께 있을 예정이었다.

가지고 있던 캐슬로 밥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투기장으로 가니 처음보다는 한산했다. 배치 결투를 받는 투사들이 줄어든 것이 컸다.

그래도 투기장 안쪽은 사람들이 조금 많았다.

나는 투기장 입구로 들어가서 관객석에 앉았다. 밑에서 이뤄지는 경기들을 보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오유성!”

마침, 앞에 있던 경기가 끝나고 내 이름이 불렸다. 그곳으로 내려가 바로 검을 소환했다.

검의 묵직한 감촉을 느끼며 내 앞으로 걸어오는 투사를 쳐다보았다. 일전에 한 번 겨뤄본 적 있는 투사였다.

글렌.

녀석의 실력은 다른 투사들보다 조금 강한 편이긴 했지만, 나와는 그 격차가 컸다.

녀석은 단검과 은신을 사용해 기습을 노리는 식의 전투 방식이었는데, 나에게 그것이 통할 리 없었다.

글렌과 처음 겨룰 당시, 내가 검을 두 번 휘둘렀을 때 녀석은 바닥을 구르며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다.

그때 눈물과 흙먼지가 뒤섞여 지저분해진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던 글렌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했다.

원래라면 녀석을 죽였겠지만, 나와 같은 인간이기에 한 번 기회를 줬었다. 녀석은 내가 처음으로 죽이지 않은 결투 상대였다.

“킥.”

앞에 있는 글렌이 재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단검을 자유자재로 돌리고 있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가죽 갑옷과 단검을 들고 있었다.

“소문은 들었어.”

내가 살려준 뒤 글렌에 대한 소문이 투기장에 퍼졌다. 글렌을 호칭하는 여러 가지 단어 중 글렌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단어가 있었다.

미친놈.

글렌의 배치 결투를 직접 본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생생한 소문을 들었다.

그 소문은 글렌이 결투 상대를 농락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승기를 잡은 상태에서도 일부러 결투를 끝내지 않고 상대방을 고문했다고 한다. 게다가 가지고 있는 캐슬을 모두 털어버리고 난 후에야 상대를 죽였다고 했다.

처음에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원래 그런 곳이고, 남을 짓밟고 위로 올라가야 하는 곳이니까.

하지만 내가 경고했던 내용을 깔끔하게 무시하는 행동에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너도 같은 인간에 대해서는 자비를 베풀어라.’

글렌은 같은 인간에게 더 혹독했다. 피에 미친놈처럼 그 순간을 즐겼다고 들었다.

그 뒤로부터 나 또한 바뀌었다.

상대로 인간 투사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봐주지 않았다. 제2의, 제3의 글렌이 나올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런 곳에서 자비를 베풀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었다. 엘린과 백소교를 만나며, 잠깐 환상에 빠져 있었다.

그래서 만약 글렌과 붙게 된다면, 내 손으로 처리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내 말은 그렇게 한 귀로 흘릴 줄은 상상도 못 했네.”

“내 표정 하나에 살려줄 줄은 몰랐어. 덕분에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건지 깨달았지. 그 부분은 고마워. 이번엔 네가 느낄 차례야.”

단검의 날을 혀로 훑는 미친 짓과 함께 다른 손에도 단검을 꺼내 들었다. 이전에 보던 은색 날이 아니었다.

검은 날로 이루어진 쌍 단검에는 이상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보통 저런 문양이 그려진 무구들은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시작!”

모든 룰을 알기에 경기는 빠르게 시작되었다. 시작과 동시에 글렌이 치고 나왔다. 나는 검을 들며, 마나를 끌어올려 몸을 강화시켰다.

속도로는 저놈을 잡을 수 없었다. 그만큼 속도에 특화되어 있는 능력이었다. 거기다 은신까지 사용하니, 다른 사람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챙!

마나 탐지로 인해 방향 정도는 예측이 가능했다. 그래서 글렌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한 번의 공격을 막고, 뒤이어 검을 빠르게 휘둘렀지만, 이미 글렌은 자리에서 사라져 있었다.

나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한 번 이겨보기도 했고, 이런 놈들을 어떻게 상대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속도에 집중되어 있는 능력들은 대부분 체력적인 부분이 부족했다. 글렌 또한 속도는 빠르지만, 지구력이 약했다.

정면에서 느껴지는 글렌의 기척과 함께 나는 검을 휘둘렀다. 사라진 글렌이 노리는 것은 내 뒤였다.

다시 몸을 돌리며, 글렌을 향해 번개의 춤을 사용했다. 글렌의 뒤를 잡은 내가 휘두른 검에 마나 블레이드가 서렸다.

콰아아앙!

바닥을 갈라버린 일격은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했다. 손에서 글렌을 벤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먼지를 가르고 날아오는 글렌의 단검이 보였다. 단검을 쳐내기는 쉬웠다. 하지만 곧 단검을 쳐내는 순간이 내 빈틈이었다.

챙!

단검을 쳐내는 순간, 내 뒤에서 무언가를 휘두르는 글렌이 느껴졌다. 엄청난 속도는 감탄이 나오지만, 나도 아무런 방비 없이 단검을 쳐낸 것이 아니었다.

‘드라칸의 보주.’

내 몸 주위로 화염이 치솟아 오르며, 붉은 갑옷이 온몸을 덮었다. 단검이 내 목 뒷부분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내가 쳐낸 단검을 잡아 내 오른팔을 쳐보지만, 소용없었다. 나는 몸을 돌려 글렌의 목을 잡았다.

아예 움직이지 못하게 하면 게임은 끝이었다. 나는 글렌을 바닥에 내리꽂고, 다리를 이용해 제압했다.

그때, 기형적으로 팔을 꺾어버린 글렌의 오른손과 함께 단검이 내 오른팔을 때렸다.

“크윽!”

팔이 떨어져 나간 것과 같은 고통이 오른팔에 퍼졌다. 순간, 집중력이 흔들렸고, 그 틈을 타서 글렌이 빠져나왔다.

그리고 다시 단검을 휘두르려는 것을 피했다. 오른팔 감각이 완전히 사라졌고, 내가 들고 있던 검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검과 떨어져 있어서 내 몸을 보호하고 있던 갑옷도 없어진 상태였다.

“내가 그동안 놀고 있던 게 아니야. 언젠가 네 녀석을 만나게 될 때를 생각하며 이를 갈았지.”

“…….”

“아마 내가 죽기 전까지는 감각을 잃게 될 거야.”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글렌이 한층 여유를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글렌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글렌에게 적중당한 공격은 총 세 번이었다. 그중 같은 부위를 닿은 것이 오른팔이었으니, 발동 조건은 같은 곳에 두 번 적중하는 모양이었다.

효과는 마비.

나는 글렌에게 새로 생긴 능력의 파악을 끝냈다. 그러곤 글렌이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기다렸다.

“이제 네가 느낄 차례야.”

글렌이 내 쪽으로 다가와 단검을 들었을 때, 나는 검의 능력 중 하나를 사용했다.

소환.

빠르게 갑옷이 생겨났고, 나는 검을 잡는 동시에 찔러 넣었다. 검은 글렌의 심장을 정확히 뚫고 지나갔다.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것. 아직도 그걸 모르다니, 어차피 넌 위로 올라가지도 못했겠네.”

나는 검을 뽑으면서, 글렌의 죽음을 선택했다.

[투기장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중재하던 진행자가 다가와 물었다.

“D급으로 배정이 나왔습니다. 여기서 1승을 하실 경우, C급 투기장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바로 신청할 수 있나?”

“그렇습니다.”

나는 몸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무감각해졌던 오른팔의 감각도 돌아왔다. 체력이나 마나의 소모도 크지 않았다.

이 정도면 한 번 더 싸울 수 있었다.

“그럼 신청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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