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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역대급 수련-166화 (166/177)

# 166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66화

“도착했다.”

차 문이 열리고, 협회 헌터들이 먼저 내렸다. 그 뒤에 내가 내렸고, 복면을 쓴 채로 걸어갔다. 흙냄새와 풀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끼이익!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그 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서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다시 한번 철문이 열리고, 의자에 앉게 됐다.

“벗겨.”

강준의 목소리와 함께 검은 두건이 벗겨졌다. 나는 바로 눈을 뜨지 않고, 감은 상태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회색 시멘트로 이루어진 벽이었다. 한쪽에는 벽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울이 달려 있었다. 내 모습밖에 보이지 않지만, 반대쪽에서는 이 안이 보일 것이다.

“팀장님 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의자에 앉아 한쪽 다리를 꼬고 있던 강준이 나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부하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쾅!

“살살 좀 다루지.”

문이 닫히고 취조실 안에는 나만 남았다. 저쪽 거울 너머로 나를 지켜보는 놈들이 있어서 완전히 혼자가 된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여유시간이 생겼다.

나는 마나를 흘려,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건드렸다. 바로 가져갈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아마 다른 쪽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어쨌거나 마나를 이용해 스마트 폰에 주입하자 진동이 울렸다.

발칸이 뭔가를 하고 있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신호였다. 하지만 내 상황이 상황인지라 계속해서 마나를 보냈고, 발칸은 그제야 영체화하여 눈앞에 나타났다.

-왜 자꾸 부르는…… 여긴 어디냐?

내 주위를 배회하던 발칸이 멈춰 섰을 때 나는 입을 열었다. 복화술에 가까운 입술의 움직임이었다.

“취조실.”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냐.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벙찐 표정으로 발칸을 쳐다보았다. 누가 보면 사고만 치고 다니는 줄 알겠다.

“무슨 짓을 저지르긴. 상황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내가 있는 좌표를 찍어서 김세아에게 보내줘.”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을 하던 발칸이 입을 열었다. 마치 거래에서 우위를 점한 승리자의 표정이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알겠어.”

끝까지 듣지 않아도 충분했다. 무슨 말이 나올지 뻔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범위였다.

환한 미소를 지은 발칸이 위에 있는 벽을 통과하며 사라졌다. 이곳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밖의 상황을 보러 간 것이다.

그때, 철문이 열리며 강준이 들어왔다. 무슨 통화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까보다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묘하게 달라진 표정이 나에겐 너무 크게 다가왔다. 애써 감추려고 하지만, 아직까진 표정을 감추는 게 부족했다.

“일단 몸 수색부터 진행해.”

강준의 말과 함께 근처에 있던 협회 헌터가 다가와 내 몸을 수색했다. 중요한 것들은 아공간 주머니에 있기 때문에, 스마트폰 말고는 나올 게 없었다.

“이게 다입니다.”

부하는 앞에 있는 테이블에 내 스마트폰을 올려놓았다. 그러곤 강준에게 짧은 묵례 뒤에 밖으로 나가며 문을 닫았다.

이 좁은 공간에 나와 강준 둘만 남았다.

강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 이곳에 오면서 강준이 내게 말했던 것이 궁금했다.

“1급 범죄자라는 게 무슨 소립니까?”

“말 그대로다.”

던전 브레이크를 잡고, 케슬란 일당을 해치우고 나니 범죄자가 되어 있었다. 대체 내가 잠깐 누워 있던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궁금했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가 뭡니까.”

내 말에 강준이 입꼬리를 올렸다.

“질문은 내가. 너는 대답만.”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입을 닫았고, 강준 또한 생각을 정리하는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고민 중인 강준의 얼굴을 쳐다봐야 했다. 그러다 날카롭던 눈빛이 돌아오며 강준이 입을 열었다.

“변명할 시간은 충분히 준 것 같고. 어디 한번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애초에 변명할 게 없습니다만.”

“그래. 다들 그렇게 얘기해.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생각도 달라질 거야.”

강준은 온몸에 근육을 풀더니, 테이블 위로 양손을 올렸다. 턱을 괸 상태에서 입만 뻐끔거렸다.

“이번 사건의 배후에 대해 알고 있나?”

“케슬란입니다. 직접 심문해서 알고 있으신 거 아닙니까?”

“경고. 한 번만 더 말대답했다가는 이 심문 시간이 고통스러워질 거야.”

표정을 보니 고문을 할 모양인 것 같았다. 심문을 위한 헌터를 데려오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 것을 보니, 고얀 냄새가 났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특수부 소속 헌터는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조금만 더 상황을 지켜보고.’

이놈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심문 전문 헌터들이 없을 수도 있었고, 언제나 예외 사항은 있기 때문에 확신을 짓는 것은 조심해야 했다.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몬스터들이 몰려나오는 상황에서 자리를 이탈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를 쫓아갔다던데?”

“예.”

“후드를 뒤집어썼다는 자는 누구지?”

강준의 눈빛이 번쩍였다.

“케슬란 조직의 부대장입니다. 이번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킨 장본인이죠.”

“그와 무슨 대화를 나눴지?”

“별다른 대화는 없었습니다. 왜 이런 짓을 벌였냐고 물어봤고, 거대한 계획을 실행한다는 것밖에는 나눈 대화가 없어서.”

“거대한 계획? 그게 뭔지 자세히 얘기해 봐.”

“세계를 자신들의 아래에 둔다고 하더군요.”

내 대답에 강준이 크게 동요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듣는다면, 다른 반응들이라도 보일 것 같지만 강준은 그런 기색이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담담했다.

“그래서 너도 이진수처럼 그의 편에 선 건가?”

나를 쳐다보는 강준의 표정에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참았다. 하이에나처럼 주워 먹을 것이 있나 찾아보는 눈빛이었다.

“그럴 리가요. 케슬란에 들어가려던 범죄 지망생을 잡은 것도 이 손이었습니다.”

나는 수갑 찬 오른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나에 대해 조사했다면 알고 있을 것이다.

박영주 납치 사건 때, 내가 했던 일들이 적혀 있을 테니까.

“그건 짜고 치는 고스톱일 수도 있으니 넘어가고, 부대장이라면 꽤 강한 놈일 텐데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생각보다 약하더군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내가 반쯤 죽여 놓았고, 중간에 나타난 방해자만 아니었다면 정리했을 것이다.

“그래.”

강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걷어붙였다. 오른손을 들어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고, 바로 철문이 열렸다.

사람 패기 딱 좋은 야구 방망이가 들어왔다. 강준은 부하에게서 그것을 건네받고, 한 바퀴 돌리더니 내 턱에 가져다 대었다.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하자.”

강준은 내 허벅지를 향해 야구 방망이를 강력하게 휘둘렀다. 타격음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방망이를 가져왔던 헌터가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때린 거야?’

나한테는 조금 간지러운 수준이었다.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는 내 표정에 강준이 이를 악물었다.

“이 새끼 봐라.”

강준은 다시 한번 야구 방망이를 휘둘러 퍽 소리가 울릴 만큼 세게 후려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변화가 없는 내 표정에 강준은 열이 뻗치는지 다시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허억, 허억.”

강준의 호흡이 거칠어졌고, 나는 그제야 약간은 아픈 척 눈살을 찌푸렸다. 구색이라도 맞춰줘야 이야기가 진행될 것 같았다.

“네가 아무리 맷집이 강해도 이 정도는 못 버티겠지. 다시 묻는다. 케슬란의 부대장과 결탁하고 수상한 힘을 받은 거 맞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뭔가 지시를 받은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원하는 대답을 받기는 힘들 겁니다.”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것을 보고 바로 확신할 수 있었다. 이들은 헌터 협회의 특수부가 아니라, 높은 곳에 있는 개들이었다.

짖으라면 짖고, 기라면 기는 녀석들이다.

이곳에 오기까지 수상한 점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어딘지 모를 곳으로 온 것부터 시작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까지 정상이 아니었다.

헌터 협회 특수부는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들 나름의 프라이드가 있어서 심문할 때 이렇게 더러운 짓은 하지 않는다.

“야! 다음 거 가져와.”

부하 한 명이 양동이에 물을 담아 안으로 들어왔다. 내 발을 그 안으로 집어넣었다. 시원하지만, 축축한 것이 상당히 거슬렸다.

찌지직!

양동이를 들고 온 부하의 손에서 스파크가 일어났다. 하다 하다 이번엔 전기 고문이었다.

강준이 침착하게 숨을 고르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곤 부하를 향해 손을 움직였다.

파지직!

부하가 자신의 손에 전기를 만들어내어 양동이 안으로 집어넣었다. 순간 온몸을 타고 전기가 퍼졌다.

“크으으!”

따끔따끔한 찌릿함이 느껴졌다. 손과 발이 쭉 뻗어졌고, 머리카락이 붕 뜨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게 끝이야?”

한소희가 사용하던 전기 마법보다 훨씬 약했다. 한창 길드 대항전 훈련을 하면서 많이 맞아서 그런지 내성이 생겼다.

거기다 번개의 춤을 사용하면서 좀 더 내성이 올라간 것 같았다. 물과 함께한 전기 공격이 큰 타격이 없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좀 더 강하게!”

강준의 윽박에 부하가 양손으로 전기를 만들어냈다. 아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스파크 튀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이번 역시도 큰 효과는 얻을 수 없었다. 강준은 애먼 유리창을 향해 야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강화 유리라 그런지 야구 방망이가 반발력에 뒤로 튕겨 나갔고, 유리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내 검 가져와.”

“티, 팀장님. 그건 안 됩니다. 저희까지 잘못되는 수가 있습니다.”

“이 새끼 입에서 우리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어차피 다 죽는 거야.”

강준의 살벌한 눈빛에 부하가 준비되어 있던 검을 꺼내왔다. 그동안 강준은 외투를 벗고 품에 있던 녹음기를 꺼냈다.

나는 녹음기를 보고 입을 열었다.

“녹음기는 증거로써 효능이 그리 좋지 못할 텐데?”

“이 정도만 있어도 윗분들이 알아서 하실 테니 걱정하지 마.”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여럿인데 왜 하필 내가 목표인 거지?”

강준은 검을 손에 쥐며 날을 확인했다. 예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보니 평범한 검은 아닌 것 같았다.

“명령이니까.”

“협회도 이미 썩어버린 지 오래였군.”

이런 소극적인 자세로는 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저놈들은 지금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 나를 고문할 셈이니까.

강준이 검을 들고 다가오는 것을 보며, 나도 손에 힘을 주었다. 약간 벌어져 있던 수갑을 비틀어버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끼이익!

괴음과 함께 수갑이 비틀어졌고, 고리를 부숴버리자 수갑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손목 부분에 수갑 자국을 어루만지며 강준을 쳐다보았다.

“이제부터 역할 좀 바꿔볼까?”

검을 휘두르는 강준의 공격을 피하며 명치에 주먹을 가격했다. 마나가 실린 공격이라 상당히 아플 것이다.

“컥!”

강준이 명치를 감싸며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강준을 그대로 두고 문을 열었다. 옆에 있던 방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도망가려고 나온 것을 확인했다.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있었다.

검은 정장에 금색으로 이루어진 안경을 쓰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탄탄한 몸매를 가진 젊은 남자로, 헌터 협회장 밑에서 일하고 있는 비서였다.

길드 대항전에서 협회장을 따라다니던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스케일이 장난 아니네.’

나는 마나 탐지를 사용했고, 그들을 향해 움직였다. 지금부터 이곳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잠시 후, 이곳에 있던 모든 사람을 취조실에 옮겨놓았다. 대부분이 내 말에 따랐고, 몇몇 부하들은 반강제로 기절시킨 채, 구석에 던져 놓았다.

그들을 한 번 흘겨보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이 상황을 아주 깔끔하게 처리해 줄 사람이 있었다. 프릭스 헌터 법률 사무소의 대표인 한민찬이었다.

“부탁드릴 게 있어요.”

-드디어 내가 도울 일이 생긴 건가?

그동안 연락을 주고받으며 친한 형 동생으로 지내고 있었다. 항상 나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했지만 그동안 부탁할 일이 없었다.

“생각보다 스케일이 큰 건데 괜찮으세요?”

-뭐 헌터 협회라도 건드렸어?

한쪽 구석에서 내 눈치를 보고 있는 헌터들을 쳐다보았다.

“건드린 건 아니고요, 건드릴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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