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63화
39장 선전 포고(4)
저번에 보았던 그 신전이었다. 낡은 신전은 처음 보았던 그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와 부대장, 이진수와 송연이 만들었던 전투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후드가 펄럭였고, 앞서 걸어가던 부대장이 자리에 멈췄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걷는 자세나 분위기로 보아 강렬한 분노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할 얘기가 뭐야?”
내 질문에 후드 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는 분노가 가득한 목소리였다.
“네가 한 짓은 기억이 나겠지?”
“그럼.”
“좋게 얘기할 때 그 독에 대한 성분을 말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아무래도 좋게 이야기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검을 소환하여 오른손에 쥐었다. 손에 딱 맞는 그립감을 느끼며 검을 부대장에게 겨눴다.
“뭐야 겨우 그거 물어보려고 이 난리를 친 거야? 카리나의 독이잖아.”
내 말에 후드를 뒤집어쓴 부대장의 모습이 사라졌다. 빠른 속도로 움직였지만, 내가 기척을 못 느낄 수준은 아니었다.
챙!
검을 들어 부대장이 휘두른 검을 막았다. 힘으로 검을 밀면서, 부대장을 뒤로 밀었다.
부대장의 검이 튕겨 나갔고, 그 틈을 타 내 발을 집어넣었다. 어깨에 적중한 공격과 함께 부대장이 뒤로 물러섰다.
“네 꿍꿍이를 모르고 따라왔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부대장이 처음 나를 보며 했던 말이 있었다. 몬스터를 모두 물릴 테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간단한 이야기를 나눈 뒤에 이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만들겠다고 얘기했고, 나는 손해 볼 것이 없어서 부대장을 따라 포털 안으로 들어왔다.
그렇다고 순순히 이야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내가 케슬란에 납치되는 경우까지 생각했다.
부대장 같은 녀석이 한 명 더 있었다면 내 실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을 테니까.
“크큭…… 크하하하하하”
혼자 흐느끼던 부대장이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검은 기운이 흘러나와 주위를 잠식했다.
완전히 달라진 기세에 보답하듯, 나도 갑옷을 사용하고는 검에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부대장의 검에 흑색 마나 블레이드가 만들어졌고, 다시 한번 몸이 사라졌다. 이번엔 정말 엄청난 움직임을 보였다.
빠르게 마나 탐지를 사용했고, 한 끗 차이로 부대장의 검을 막아낼 수 있었다.
콰아아앙!
검과 검이 부딪치며, 거대한 반발력이 일어났다. 사방으로 퍼진 반발력은 주위를 초토화시키며 거대한 모래 폭풍을 일으켰다.
바람이 일어나며 모래 폭풍이 사라졌고,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부대장이 천천히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마나 탐지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검을 들어 부대장이 공격하기를 기다리며, 입을 열었다.
“이런 식의 소모적인 전투가 네 궁금증을 푸는 대는 그리 도움이 되진 않을 거야. 내가 힘이 빠지면 입이 점점 무거워지거든.”
내 말에 부대장이 멈칫하며 자리에 멈춰 섰다.
“걱정하지 마라. 그 무거운 입도 열게 될 테니까.”
“내가 장담하나 할 수 있는 건, 아마 네가 악착같이 달려든다고 해도 내 입은 열 수 없을 거야.”
내겐 포인트 상점이 있었다. 그곳에서 완전 회복 포션을 구매한다면, 저 부대장과도 온종일 싸울 수 있었다.
물론, 저 부대장이 그렇게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싸우는 것보다 정보를 얻는 것이 더 이득이었다.
부대장을 이 자리에서 처리하게 된다면 왜 이러한 일들을 일으켰는지 케슬란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니까 서로 힘 빼지 말고, 정보를 공유하는 게 어때? 내가 묻는 것들에 답만 잘한다면, 합성 독에 대한 성분을 말해주는 건 어렵지 않아.”
“…….”
부대장은 따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서서 내 쪽을 쳐다보았고, 이내 흑색 마나 블레이드가 사라졌다. 동시에 강렬했던 기세도 줄어들었다.
이 정도면 내 제안이 먹혀든 것 같았다.
나는 가장 먼저 궁금했던 것을 질문했다. 어찌 보면 가장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그동안 사소한 사건 사고에서 만족하더니, 최근 들어서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가 뭐냐?”
“대의를 위해서다.”
“대의는 개뿔. 범죄 조직에 대의라고 해봐야 다 때려 부수는 것밖에 더 있냐. 그딴 걸 대의로 포장하는 너희도 대단하다. 그래서 너희들이 생각하는 대의가 뭐지?”
“합성 독의 성분이 먼저다.”
부대장은 단호했다. 하지만 이미 독의 성분에 대해 가지고 이 이야기를 진행 중이기 때문에, 내가 훨씬 유리했다.
“프랑코의 독.”
케슬란에서 사용했던 독성분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꽤 많은 질문 카드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장난하는 거냐?”
검을 쥐고 있는 주먹이 떨렸다. 부대장의 후드 속에서 붉은 안광이 빠르게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런 협박이 통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아니었다.
“장난?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독의 성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야. 더 이상 얘기를 원하지 않으면 말해. 난 상관없어.”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부대장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최고급 정보였다. 혹시나 이야기가 파투나면, 아쉽게도 최고급 정보들을 날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부대장을 툭툭 건드리고 도발하는 것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에게 집중시키고, 내가 가진 정보에만 집착하게 만들기 위해 더욱 세게 나갔다. 부대장이 원하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에 이런 배짱 배팅이 가능했다.
“우리의 목표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힘을 가진 사람 아래 힘이 약한 자들이 무릎을 꿇는 것이 당연지사. 하지만 요새 인간들은 그렇지 않지.”
“힘이 강한 자가 힘이 약한 자를 보호하는 지금의 상황이 매우 불합리하다는 건가?”
“그래. 너희 같은 놈들이 많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은 보호받는 권리가 당연할 줄 아는 것이다.”
모든 헌터는 일반인을 보호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것은 선택받은 헌터들이 해야 할 신성한 의무 중 하나였다.
헌터 학교에서도 그렇게 배웠고, 나 또한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투 헌터가 되어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는 꿈을 키울 수 있었다.
부대장은 내 가치관과 정반대되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네 눈빛을 보니 내가 처음 헌터가 되었을 때가 떠오르는군. 하지만 너도 곧 알게 될 거다. 인간의 이중성에 대해서.”
“…….”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을 때, 제대로 막지 못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나?”
“불쌍한 사람들이 죽어나겠지.”
몬스터들이 나타난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적응해가는 과정이었으며, 헌터들이 힘을 다루는 것도 능숙하지 않을 때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헌터들은 힘을 능숙하게 다루기 시작했고, 포털들을 미리 정리하며 던전 브레이크의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그 이후 가장 크게 일어났던 피해는 내가 어릴 적 겪었던 던전 브레이크였다. 그때도 많은 사람이 죽었고, 많은 헌터가 죽었다.
“인간은 엄청난 위험 속에서 목숨을 건졌음에도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던전 브레이크에서 목숨을 얻었지만, 죽어버린 가족이나 동료들에 대한 슬픔을 헌터들에게 풀지. 최선을 다해서 막아주었는데도 말이야.”
저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직까지 겪어본 적은 없지만, 자신의 가족과 동료들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헌터가 그 모든 감정을 받아줄 필요는 없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이런 일을 벌였다고?”
“고작?”
부대장은 검에 다시 흑색 마나 블레이드가 만들어졌다. 사라졌던 기세 또한 돌아왔다.
“던전 브레이크 생존자들로 인해 내 동생이 죽었다. 생존자들은 정신을 차린 뒤, 던전 브레이크에 참가했던 헌터들에 대해 조사를 했고 인터넷에 퍼뜨렸지.”
“…….”
“실패의 책임은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흘러갔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던 동생은……. 모두 일반인들이 벌인 일이다. 이래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건 그 사람들의 잘못인 것이지. 모든 사람의 잘못이 아니잖아. 네가 말했듯이 소수가 했던 일들을 가지고 전체적인 사람이 한 일처럼 과대 해석하지 마.”
“얘기가 통하지 않는군.”
부대장이 몸을 움직였다. 거대한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나도 마나를 끌어올렸다. 흑색 마나 블레이드가 허공을 갈랐고, 그 위로 내 붉은 마나 블레이드가 움직였다.
부대장의 움직임이 전체적으로 차분해졌다.
“오랜만에 감정이 끓어오르니 잡생각을 하지 않게 되네. 그래서 그런지 머릿속이 아주 차분하게 정리되는 기분이야.”
“독의 성분은 필요 없나 봐?”
“필요 없다. 말장난을 맞춰 주는 것도 이제 끝이다. 네놈을 죽여서 데려가면 다 알게 되겠지.”
콰앙!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대장의 위력이 거세졌다.
저렇게 나오는 마당에 더 이상 얻을 정보는 없어 보였다. 빠르게 정리하고 돌아가려는 생각으로 나도 마나를 끌어올렸다.
온몸에 퍼지는 마나를 느끼며, 지면을 박찼다. 허공을 밟으면서 부대장을 공격을 피하고, 빈틈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네놈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의 더러움과 추악함에 대해서.”
“그런 건 이미 알고 있다.”
“크크큭…… 네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쿠웅!
부대장의 공격을 막았을 뿐인데, 나를 지탱하고 있는 발 주위가 움푹 파였다. 이런 식의 공방을 주고받는 것으로는 이 싸움을 끝낼 수 없었다.
비장의 한 수가 필요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마나를 모두 사용하는 한 방 공격은 이 상황에 쓰기 힘들었다. 마무리 공격이기 때문에 지금 같이 상대가 쌩쌩할 때 사용하기는 제약이 많았다.
나는 포인트 상점을 열어, 남아 있는 포인트를 확인했다. 100만에 가까운 포인트가 쌓여 있었다. 투기장에서 투사들을 죽이고, 결투에서 승리하면서 벌게 된 포인트였다.
이 포인트라면 스탯 하나를 올릴 수 있었다. 7랭크에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8랭크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이 갖춰졌다.
포인트 투자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공격을 멈춘 부대장을 바라보았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부대장의 목소리에 나는 떠오르는 것이 있어, 입꼬리를 올렸다. 아마도 이곳에 도착하지 않는 부하들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사람을 보내서 오지 못하게 막았다. 너랑 일 대 일도 힘든데 다른 놈들까지 싸울 실력이 안 돼서 말이야.”
정확히 얼마나 많은 부하가 올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나 확실한 건 이진수를 건네받는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래서 김세아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박나윤을 뒤쫓으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지금쯤이면 조사단도 나타났을 것이고, 박나윤의 모습을 캐치한 김세아가 훼방을 놓았을 것이다.
“진심으로 죽여주지.”
모든 힘을 끌어올린 것 같은 흑색 마나 블레이드가 나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가진 마나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마나 충전도 모두 사용했기 때문에 다시 사용하려면 내일이 되어야 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포인트를 모두 사용해서 랭크 8을 만들었다.
[힘 랭크 7이 랭크 8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힘이 당신의 몸에 깃듭니다.]
[삐빅!]
[경고 사항입니다. 당신의 육체가 랭크 8의 힘을 감당하기 힘들어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균형을 맞춰야 육체의 붕괴를 막을 수 있습니다.]
[패널티가 부여됩니다.]
[남은 시간 : 30일]
나는 빠르게 읽고 넘겼다. 자세한 생각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부대장의 공격을 막아야 할 때였다. 포인트를 투자해서 랭크를 올린 뒤 커다란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았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몸이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랭크 7을 올렸을 때는 넘칠 듯한 힘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뭔가가 차 있는 느낌은 들었다. 편안하면서도 단단한 느낌의 이 기운을 느끼며,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았음에도 화염으로 타오르는 마나 블레이드가 만들어졌다.
나는 가볍게 휘둘렀고, 부대장의 거대한 흑색 마나 블레이드를 베어냈다.
거기에 부대장의 오른팔까지 함께 잘려나갔다. 정말 가볍게 휘두른 공격의 위력은 엄청났다.
‘이게 랭크 8의 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