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61화
39장 선전 포고(2)
포털이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마나가 중구난방으로 요동치기 시작했고, 협회 소속 헌터 두 명이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뭐 해요?”
“그…… 그게 저희가 지원 헌터라.”
두 헌터는 겁에 질린 강아지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그렇게 당당하더니 몬스터가 나타나니 본 모습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저런 모습을 욕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지원 헌터가 저러는 것은 당연했다. 예전에 나였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몸을 사렸을 것이다.
지원 헌터는 몬스터 하나 제대로 죽일 수 없는 반쪽짜리 헌터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저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걸로 충분했다.
“일단 주위 50m에 있는 시민들을 대비 시키세요. 여긴 제가 어떻게든 막아볼 테니까.”
“옙!”
“알겠습니다!”
두 명의 지원 헌터는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 가지 당부를 했다.
“협회에 연락해서 빨리 이 근처 헌터들 소집 명령 내리는 것도 잊지 마시고!”
우웅!
포털에서 나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다. 나 혼자 다 막아내기엔 조금 벅찰 정도였다. 그나마 김세아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지만, 아직 무리가 될 수도 있는 상태였다.
‘버텨 보자.’
사람 목숨이 우선이었다. 물질적인 피해는 입더라도 정부에서 지원이 나오고 복구도 진행해 주고 있으니.
몬스터를 몰살하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겠지만, 현재로서는 버텨주는 것만 해도 충분할 정도였다.
아공간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포털에서 나오는 족족 썰어 버리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 섰다. 포털의 변화도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퍼어엉!
포털 주위에서 강력한 마나의 파동이 일었다. 주위에 1m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박살 내는 충격이었다. 나는 드라칸의 갑옷으로 피해를 흡수하며 포털을 노려보았다.
이내 빛이 번쩍이고,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카일로였다.
사람처럼 이족보행을 하지만 전체적인 생김새는 검은 고무 인형에 가까웠다.
저놈들의 특성은 도플갱어와 비슷했다. 모습을 따라 하지는 않지만, 상대방이 가진 기술을 따라 했다.
이미 나는 겪은 바가 있었다. 길드 대항전을 준비하면서 나와 똑같은 실력을 가진 몬스터와 싸웠다.
‘상대하는 게 익숙하겠어.’
카일로의 손이 내가 든 검의 모형으로 바뀌었다. 손에 검이 붙어 있는 기이한 형태였다. 먼저 움직인 것은 카일로였다.
나는 녀석이 휘두르는 검을 피한 뒤에 번개의 춤을 사용했다. 세 방위에 번개가 내리쳤고, 내가 정면에서 달려들며 마나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삭!
카일로가 반으로 잘리며, 이내 펑 소리와 함께 몸이 터져 나갔다.
하나의 개체만 놓고 본다면, 카일로도 충분히 상대할 만한 몬스터였다. 내가 가진 기술을 딱 하나만 복사해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일로의 수가 많아진다면, 그때는 정말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카르르!”
또 하나의 카일로가 포털을 타고 넘어왔다. 지금은 하나씩 나오지만, 조금만 더 지난다면 여러 마리가 튀어나올 것이다. 그전까지는 단 한 놈도 살려 보내면 안 됐다.
“그래그래. 지구라는 곳에서 한 번 울어봤으니 만족하라고.”
나는 검을 휘둘러 카일로를 정리했다. 포털의 입구에 붙어서 하나라도 새지 못하게 나오는 즉시 처리했다.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여기 있었네.”
김세아가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며 양팔을 걷어붙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물었다.
“영주 씨는?”
“시민들과 함께 임시 대피소에 있어. 나도 같이 있으려다가 협회 소속 헌터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 현장에 너 혼자밖에 없다고.”
“그래, 고맙다.”
협회에서 잘한 일 중 하나가 임시 대피소를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웬만한 몬스터들을 가볍게 막아주는 방어막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슬슬 포털이 요동치는 모양새를 보니 맛보기는 끝난 것 같았다. 아주 환상적인 타이밍에 김세아가 나타난 것이었다.
“여기서 나오는 몬스터는 카일로야.”
헌터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기에 김세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빛이 일어나고, 세 마리의 카일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먼저 한 놈을 처리하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고무가 붉은 갑옷으로 변하며 내 공격을 막았다.
옆에 있던 다른 카일로는 아이스 스피어를 만들어 나를 향해 찔렀다.
찌이이익!
아이스 스피어가 내 갑옷에 부딪히며 녹아내렸다. 내가 입고 있는 갑옷의 속성이 더욱 강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아이스 스피어를 사용한 카일로의 목을 베었다.
“갑옷이 만능은 아니야!”
마나 블레이드를 이용해 검을 휘둘렀고, 갑옷과 함께 카일로를 반으로 베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김세아도 카일로 하나를 마무리 짓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번쩍!
다시 카일로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네 마리로 숫자가 늘었다. 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것을 느끼며,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김세아도 가진 마나를 아끼지 않으며 카일로를 상대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포털에서 나오는 카일로의 수는 증가했다. 몇몇 카일로는 포털에서 벗어나기까지 했다.
“마나를 거의 다 쓴 것 같은데. 나는 이제 더 버티긴 힘들 것 같다!”
김세아가 아이스 스피어를 날리며 외쳤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 헌터들이 보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협회 소속 헌터들에게 분명 소집 명령을 당부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었다.
협회 측에서 보고를 받고도 사실 여부를 파악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터지는 던전 브레이크는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헌터들이 나타나지 않는 건 심각했다. 조사단 멤버들에게 문자를 돌리고 싶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라 참았다.
그들은 이곳에 조사단 임무를 처리하고 있을 것이다. 애당초 각 지역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것은 대비하여 길드 소속의 헌터들이 상시 대기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협회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만.’
나는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까지는 나와 김세아에게 이목이 끌려 공격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흥미를 잃고 하나둘 사라지는 카일로의 숫자가 많아지고 있었다.
거기다 김세아는 마나까지 거의 다 사용한 상태였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서 나오는 수를 줄여 볼게. 그거 마시고 헌터들이 더 올 때까지 버텨봐.”
김세아게 내가 가지고 있던 마나 포션을 건넸다. 상급 마나 포션이라 효과가 매우 뛰어났다. 저걸 마신다면 조금 더 버텨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포털로 몸을 던졌다.
다리가 바닥에 닿는 순간 마나를 끌어올려 검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마나 블레이드가 만들어지며 거대한 반원형 검격이 정면으로 날아갔다.
나는 눈을 뜨며 상황을 파악했다.
포털 주변에 있던 카일로들이 내 공격으로 인해 죽어 있었다.
주변은 평범한 숲이었다. 카일로의 생활 방식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어 놈들이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이유는 알고 있었다.
‘무리를 이끄는 보스를 잡아야 돼.’
그때, 뒤에 있던 카일로들이 각각 내 능력을 복사한 기술을 사용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붉은 갑옷을 입은 놈, 마나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놈, 번개의 춤을 사용하는 놈 등 다양한 기술들이 나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가짜들이 어딜.”
잠시 해제하고 있던 갑옷이 다시 만들어지고, 검에도 마나 블레이드가 만들어졌다. 나는 곧장 번개의 춤을 사용하며 앞에서 달려오는 카일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콰앙!
파지직!
번개가 내리쳤고, 나는 그 사이로 빠르게 움직였다. 붉게 타오르는 검격이 사방으로 퍼졌다.
내 모습은 잔상만 남기며 카일로를 정리해 나갔다.
눈에 보이는 카일로들을 모두 처리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잠시 마나를 충전했다. 저 멀리서 걸어오고 있는 마지막 카일로를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기존의 카일로보다 두 배는 큰 덩치에 보스 몬스터이니만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진 능력을 모두 따라 하며, 그중 하나는 강화해서 사용할 수 있는 놈이었다.
“빨리 끝내자!”
저놈을 죽이지 않는다면, 어디선가 나타나는 카일로들이 포털을 통해 현세로 나갈 것이다.
내가 앞에 있는 보스 카일로를 향해 달려가는 사이에도 몇몇 카일로들이 포털로 모습을 감추었다.
“하압!”
기합과 함께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어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카일로는 한쪽 손으로 내 검과 똑같은 모형을 만들어 공격을 막았다. 마나 블레이드까지 사용하며 역으로 공격까지 하고 있었다.
나는 공격을 막아내며, 뒤로 물러난 뒤에 마나 블레이드에 마나를 모았다.
화르륵!
한 방에 끝내기 위해 마나를 모두 끌어올렸다. 앞에 있던 카일로의 몸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몸에 두르고 있단 갑옷이 좀 더 날카롭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어깨에 있던 드라칸의 얼굴은 용의 얼굴로 변했고, 입 부분에서 화염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화염은 마치 날개처럼 양쪽으로 퍼졌다.
‘와.’
검이 성장하면서, 드라칸의 보주의 등급이 올라가면 저렇게 변하는 것일까.
단순히 멋있다는 생각도 했지만, 저것을 벨 수 있을까 하는 호승심도 들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달려들었다.
타오르는 마나 블레이드가 카일로의 갑옷을 베었다. 거대한 화염 돌풍이 일어나며 주위로 퍼져 나갔다.
내 검에서는 자글거리는 열기가 피어올랐고, 카일로의 갑옷에 절반이 들어가 있었다. 필살기와 같은 기술이었지만 겨우 절반밖에 베어내지 못했다.
“고맙다.”
성장형 무기가 더욱 성장하게 되면 이렇게나 강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한번 타오르는 마나 블레이드가 남은 절반의 갑옷을 베어내며, 카일로를 반으로 갈랐다.
‘뭐지?’
보스 카일로를 베어내고 나니, 뭔가가 바닥에 떨어졌다. 손톱만 한 마석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기 위해 상체를 숙였다.
마석은 아니었고, 검은 보석이었다.
감별을 사용해 보니, 단순한 보석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검은 보석의 이름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무슨 효과가 있는지는 아주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강제 각성.
몬스터에게 사용하면, 바로 보스 몬스터로 만들어버리는 괴상한 아이템이었다.
아마도 이것 때문에 카일로 중 하나가 보스 몬스터가 되었던 것이고,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모양이었다.
쿠구구궁!
땅이 떨리면서, 진동이 일어났다. 포털이 닫히려고 하는 신호였다. 일단 밖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몸을 움직였다.
마지막까지 포털로 들어가려 하는 카일로들을 베어내며 포털에 몸을 실었다.
* * *
밖으로 나오니, 뒤늦게 도착한 헌터들이 현장 정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보스 카일로를 맡느라 놓친 카일로들의 수가 꽤나 많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얼추 정리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근처에서 쉬고 있는 김세아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안으로 들어가고 얼마 있지 않아서 헌터들이 도착했어. 카일로들이 꽤 많이 도망가서 잡으러 다니고 있는 거야.”
“상황이 나빠 보이진 않네.”
헌터들이 조금 다급하게 움직이는 것을 뺀다면, 아직까지 큰 피해를 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사람이 다쳤다는 이야기도 없었고.
나와 김세아가 아니더라도 이 상황은 충분히 정리될 것 같았다.
“가자. 영주 씨랑 못 먹은 밥이나 먹으러 가자. 몸을 움직였더니 배고프네.”
“그래.”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피소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협회 소속 헌터가 내 이름과 소속을 알고 있으니, 보상 같은 것은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다.
“티…… 팀장님!”
옆에 있던 헌터 한 명이 소리쳤다. 주위에 있던 다른 헌터들은 소리를 친 헌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건 나와 김세아도 마찬가지였다.
헌터가 가리킨 곳에는 새로운 포털이 생성되고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최소 다섯 개 이상이었다.
“당장 추가 지원 요청해!”
팀장이라는 헌터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을 챙겨 마셨다. 물론, 김세아에게도 하나씩 챙겨주었다.
“아무래도 곱게 가긴 그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