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59화
38장 오버 캐슬(8)
“소환은 가능하지만, 지속시간은 길어야 30초밖에 안 돼요.”
엘린이 무척이나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성벽에 서 있는 투사들을 향해 외쳤다.
“닥치는 대로 죽여!”
지시를 내린 뒤, 검을 꺼내 들고 달렸다. 성벽을 밟고 점프하며 허공을 날았다. 내 위로 네 개의 상급 정령들이 적군을 향했다.
땅이 갈라지고, 화염이 치솟고, 눈이 내리고, 거대한 돌풍이 일어났다.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광경이었다. 자연의 힘 앞에서 투사들은 너무나 무력했다.
발레노의 광역 치료와 에드워드의 버프로 인해 투사들은 계속해서 일어나 버티고 또 버텼다. 투사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엘린이 저 정령들의 힘을 완전히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간적인 제약도 있었고, 엘린이 가지고 있는 마나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위력이 약했다.
그나마 다행이란 것은 저 정령들로 인해 발레노와 에드워드의 마나도 팍팍 줄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발레노의 광역 치료라도 없어진다면 좀 더 상대하기가 수월했다. 그러나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나는 발레노를 노리며 앞으로 달렸다.
정령들의 힘은 이제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적군 투사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나는 갑옷을 발동시켰다. 붉은 갑옷이 내 몸에 둘러지며 앞에서 달려오는 투사들의 공격을 막아주었다.
챙!
서걱!
마나 사용을 최대한 줄이며 투사들의 목숨을 노렸다. 검을 들어 심장을 찔렀고, 목을 베었다.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투사들은 계속해서 밀려들어왔다.
퍼억!
바로 앞에 달려오는 투사의 얼굴을 밟으며 도약했다. 검에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어냈고, 발레노를 향해 검격을 날렸다.
붉게 타오르는 마나 블레이드가 발레노를 향해 쇄도했다. 발레노는 꽤 지친 표정이었고, 피할 곳은 없었다.
“끄악!”
발레노의 근처에 있던 투사들이 몸으로 내 공격을 막아냈다. 다수의 투사를 죽이면서 포인트가 올랐지만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다.
다친 곳 하나 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발레노의 곁으로 에드워드가 다가왔다. 검은 마법진이 넓게 퍼졌고, 근처에 있던 투사들이 격앙되었다.
“저 놈을 죽여라! 그러면 우리의 승리다.”
에드워드의 고함과 함께 투사들이 다시 움직였다. 정령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고, 적군들 사이에는 오로지 나 혼자만 서 있었다.
‘절반은 죽여야 가망이 있어.’
때마침, 하늘에 있던 거대한 빛 덩어리가 모습을 감췄다. 아마도 발레노가 힘을 모두 사용한 모양이었다.
적어도 내가 움직일 동안은 그 힘을 사용하지 못할 터. 나는 최대한 적을 줄이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검을 하늘 위로 올리며, 마나를 끓어 올렸다. 맑았던 하늘은 검은 먹구름들로 인해 주위를 어둡게 만들었다.
쩌저저적!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와 강력한 스파크를 머금은 먹구름들이 내 위로 모였다. 그리고 곧, 하늘에서 다수의 번개 다발이 지면으로 내리꽂혔다.
“크아아악!”
“이게 뭐야!”
동시에 나 또한 빠르게 움직였다. 난전 속에서 번개의 춤은 더욱 극한의 위력을 낼 수 있었다. 번쩍임 속에서 나는 몸을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기존의 가지고 있던 마나를 모두 사용하자, 검에서 푸른 빛이 일어나 다시 마나를 충전해 주었다.
마나 충전.
이번에 충전한 마나를 모두 사용해도 한 번 더 충전할 수 있었다. 나는 아끼지 않고 마나를 뿌리면서 적들을 도륙해 나갔다.
“빛의 태양이 떴다!”
내 앞에 있던 투사가 하늘을 보며 외쳤고, 내 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검게 드리운 먹구름이 사라지며, 거대한 빛 덩어리가 다시 나타났다.
지쳐서 쓰러져 있던 투사들이 좀비처럼 일어났고, 나는 더 이상 무리하지 않고 몸을 뒤로 뺐다. 절반 이상을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3분의 1 정도 줄이는 것은 성공했다.
나 하나를 잡기 위해 살아남은 투사 전원이 달려들었다. 성문 앞까지 도착했을 때, 허공답보를 이용해 성벽 위로 올라섰다.
돌아서 뒤를 돌아보니 정말 살 떨리는 광경이 보였다. 성문을 부수기 위해 50명 정도의 투사가 자신들의 힘을 사용했다.
나무가 부서지는 소리와 성문을 지키던 투사들의 신음이 들렸다. 이미 집중포화가 시작되었고, 보호막 관련된 힘을 가진 투사가 우리 쪽에는 없었다.
곧, 성문이 뚫렸고 적군 투사들이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나는 우리팀 투사들을 보며 외쳤다.
“다들 한 놈만 죽인다는 생각으로 싸워!”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성벽에 기대고 있는 엘린에게 다가갔다. 과도한 힘을 사용해서 그런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고생했어. 네 덕분에 아마도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다음에 만나면 오버 캐슬에서 밥이라도 먹자.”
이 전투에서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선 따로 할 일이 있었다. 아마도 엘린의 얼굴을 보는 것은 다음 번이 될 것이다.
내 얼굴을 본 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할 기운이 없어 보이는 엘린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백소교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탑 위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것을 보며 백소교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저도 싸우는 게 좋아 보이는데.”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백소교의 옆에 있던 깃발 두 개를 베어냈다. 적군들이 성안으로 침범했기에 깃발이 쉽게 잘려 나갔다.
깃발을 챙겨 등에 메고 끈으로 묶어 고정했다. 그 모습을 본 백소교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뭐 하려고요?”
“지금부터 남은 두 개의 깃발을 모두 모을 거야. 그리고 3일이 지날 때까지 몸을 숨기면 우리가 1등을 하겠지.”
“저는 이곳에 있는 투사들의 수를 최대한 줄이면 되겠네요?”
나는 백소교의 말에 미소를 지었고, 몸을 돌려 성벽 위로 몸을 날렸다. 아직 바깥에 있던 발레노와 에드워드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손을 한 번 흔들고는, 가장 먼저 검은 깃발이 있는 에드워드의 성으로 몸을 날렸다. 두 팀 모두 최소한의 병력을 남겼거나, 모두 데려왔을 것이다
사실상 우리만 전멸시키면 1, 2위 안에는 들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그것을 역으로 노린 것이다. 우리 팀은 현재 다른 팀의 깃발을 가지고 있었고, 두 번의 전투에서 다수의 투사를 죽이며 점수를 얻었다.
혼자라도 3일 동안만 버티게 되면, 2위 안에는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앞으로 달려나가며, 뒤를 돌아보았다.
발레노와 에드워드가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나를 뒤쫓아 성과 깃발을 지킨다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선 서로 싸워야 한다는 것 또한 깨달았을 것이다.
‘에드워드가 좀 더 유리하겠지.’
파란 깃발 팀과 함께 빨간 깃발 팀을 공략했으니, 투사를 죽이면 얻는 점수가 조금 더 높을 것이다.
노란 깃발 팀은 그 전투에서도 뒤늦게 나타났으며, 전투가 끝나가고 얼마 남지 않은 투사들을 죽였기에 점수가 부족할 것이다.
‘내 알 바 아니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다른 성들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먼저 성문을 부수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성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나는 검은 깃발을 손쉽게 챙길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노란 깃발이 있는 성으로 달렸다. 안에는 조금 남겨둔 투사들이 있었지만, 나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끽해봐야 5명도 되지 않는 투사들이었고, 나는 포인트를 얻기 위해 모두 정리했다.
그러고 난 뒤, 마지막 깃발까지 모두 챙겼다. 나는 근처를 돌아다니며, 마지막 날까지 버텼고,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번 경기에서 1위를 하였습니다.]
[보상 8만 캐슬을 얻었습니다.]
[관객들이 당신의 경기력에 매우 만족하였습니다. 추가로 8만 캐슬을 얻었습니다.]
[귀환합니다.]
* * *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창문 틈으로 들어온 새하얀 빛이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아침 7시였다.
알림 메시지에는 박영주와의 만남이 적혀 있었다. 약속 시간은 점심이었고,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았다.
나는 찌뿌둥한 몸이라도 풀고자 이어폰을 챙겨 호텔을 나왔다.
나는 곧장 해변이 보이는 곳으로 걸었다. 이른 아침 비행기를 타는지, 호텔을 나가는 차량이 많았다.
얼마 걷지 않아 해변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난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을 꺼내 발칸을 불렀다.
“발칸.”
그리고 해변을 천천히 걸었다. 내 부름에 발칸이 바로 대답을 해왔다.
-투기장은 잘 다녀왔나?
“뭐. 잘 다녀왔지.”
발칸은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항상 자신이 알려준 것이 얼마나 도움됐는지 알고 싶어 했다. 지금까지는 매우 도움이 됐지만, 이번 투기장만큼은 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이번에 내가 간곳은 선착순의 섬이 아니라 오버 캐슬이었어.”
-오버 캐슬?
“그래 네가 잠깐 설명해 줬던 오버 캐슬. 거기에 갔다가 백소교를 다시 만났고, 방금까지 경기를 치르고 왔다.”
-바로 오버 캐슬로 이동할 리가 없는데?
“내가 저번에 얘기했던 거 기억나? 생존의 섬 마지막 쯤에 다른 섬으로 들어가서 포털을 타고 나왔던 거.”
-기억난다. 설마 그게 선착순의 섬이었고, 이번에 오버 캐슬로 바로 넘어간 건가?
역시나 발칸 또한 몰랐는지 놀란 목소리였다. 그러곤 더 놀란 발칸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그럼 오버 캐슬에 바로 갔다가 결투까지 마치고 온 건가?
“어. 그래도 네가 예전에 얘기해 준 것들이 조금은 도움이 됐다. 결투적인 부분에서는 오로지 내 힘으로 해냈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 잔잔한 파도가 치는 바다가 보였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찌뿌둥했던 몸도 풀렸다.
-오버 캐슬에 갔다면 그곳에 화폐가치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았겠군.
발칸의 말에 다시금 오버 캐슬을 떠올렸다. 여러 물건들을 파는 상인들이 있었고, 오버 캐슬에서 사용가능한 캐슬이라는 화폐를 얻기 위해서는 환전소에 가야했다.
내가 가진 힘을 돈으로 바꿔 사용해야 하는 곳이었다. 다시 투기장에 들어가 백소교를 만나게 되면 빌려준 캐슬부터 잊지 말고 받을 것이다.
“봤지.”
-어땠나?
“뭐 그 사람들 지내는 거? 그냥 내가 사는 이곳과도 크게 다를 건 없는 것 같았어. 다만,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진심으로 행복해 보이진 않더라.”
-흠. 그 부분은 네가 제대로 파악한 게 맞다. 네가 느낀 걸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볼 수 있겠어?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었다. 오버 캐슬 자체가 신기했고, 구경하느라 바빴다.
뭔가가 있다고 느낀 것은 환전소에 들어갔을 때였다. 환전을 진행하던 안내 직원이 미소를 지었지만, 눈에는 깊은 근심이 가득했었다.
그 근심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밖으로 나와서 식당에 들어갔을 때도, 백소교의 무기를 샀던 곳에서도 주인들이 웃고는 있지만, 눈에는 저마다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
“뭔가 슬퍼 보이기도 하고, 포기하고 낙심한 것 같기도 하고, 열망이 가득해 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지도 생각해 보았나?
나는 발칸의 이 질문을 듣고 내가 생각했던 것이 맞다는 것을 확신했다. 오버 캐슬의 화폐인 캐슬은 곧 힘과 같았다. 오버 캐슬에서는 힘이 거래된다고 봐야했다.
오버 캐슬에서 사는 사람들이 왜 힘이 필요할까를 고민했고, 그에 대한 해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한 투사들이 모여 있는 곳. 그게 바로 오버 캐슬의 숨은 의미 아닌가?”
내 말에 발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버 캐슬은 위로 올라가지 못한 투사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