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51화
37장 실종(3)
일단은 저 둘이 같이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해,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서 주문을 하고, 2층에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는 구조였다.
나는 1층으로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드시고 가세요?”
“아니요. 테이크아웃이요. 화장실은 2층에 있나요?”
“네.”
계산을 마치고, 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2층에 올라가니 구석에 앉아 있는 박나윤과 고준석의 모습이 보였다.
“발칸.”
-왜
“한 번 만 더 도와줘. 지금 저 구석에 있는 둘의 대화 좀 듣고 와봐.”
스마트폰에서 아주 미세한 마나가 움직였다. 발칸이 몸을 움직인 것이다.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요새 핸드폰 카메라 화질이 매우 뛰어나 멀리서 찍어도 박나윤과 고준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진 찍는 소리도 꺼놔서 이목이 끌릴 일도 없었다.
나는 사진을 확보하고 밑으로 내려왔다. 주문한 커피가 나와 있었고 커피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바닷가 근처에 있는 공용 의자에 앉았다. 앞에는 시원한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바람도 살살 부는 것이 매우 좋았다.
커피를 마시며,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복잡했던 머리가 차근차근 정리되면서, 좀 더 현재 펼쳐진 문제들이 명확하게 다가왔다.
아마, 던전 내부를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것은 송연뿐이었을 것이다. 항상 문제가 일어났던 곳에는 송연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진수를 섭외했던 것도 송연이었다. 부대장이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분명 직접 움직였을 것이다.
거기다 부대장은 송연이 침에 맞았을 때, 크게 분노했다. 사랑과 같은 감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좀 더 순수한 분노에 가까웠다.
누군가를 두려워하는, 그래서 절망에 빠진 듯한 분노였다. 송연은 당분간 일어나지 못할 것이고, 부대장이라는 녀석은 초조해질 것이다.
‘나를 찾겠지.’
무슨 일을 벌이는지 모르겠지만, 송연이 필요할 것이고 독의 제조법을 알고 있는 나에게 올 것이다. 송연에게 사용한 독에는 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갔다.
투기장에서 주웠던 독도 섞여 있으니, 정말 S급 치유 능력자가 오지 않는 이상 치유하기 힘들었다.
지금까지 실종자 중에 치료 헌터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S급 헌터는 한 명밖에 없었다.
과거 성녀라고 불렸던 빛의 성녀 이하영.
이하영의 성품이라면, 케슬란을 돕고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하영이 보낸 행보에 적대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이 지금의 케슬란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해독제를 만드는 것과 나를 찾는 것이지만, 해독제를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준비해야겠지.’
부대장은 나보다 강했다.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부대장을 이기기 부족했다. 좀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이번 사건이 끝나는 대로, 지옥 훈련에 돌입할 필요가 있었다. 헌터 패스를 이용해 포인트를 부지런히 모으고, 스탯을 올려야 했다.
휘이잉!
바람 부는 소리와 함께 스마트폰에 다시 마나가 깃들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냈고, 그곳에는 조금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발칸의 모습이 보였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발칸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영체화를 사용하게 되면 꽤 진이 빠지는지 항상 저랬다.
그나마도 적응이 되어 이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은 얼마 걸리지 않은 것이다.
정신을 차린 발칸이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무리해서 그렇다. 무슨 이야기인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 같아서 그 둘이 자리를 뜰 때까지 모두 듣고 왔다.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나는 커피를 들고 카페 앞쪽으로 달렸다. 이형환위를 사용하니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때마침, 고준석이 먼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주위는 신경 쓰지 않는 독보적인 자세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한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박나윤이 나왔다. 고준석과는 다르게 경계심이 극에 다다라 있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빠르게 카페를 빠져나갔다.
나는 박나윤을 따라 움직이면서 발칸에게 그 둘의 대화를 들었다.
“그래서 둘이 무슨 얘기를 한 거지?”
-처음 이야기의 시작은 여자가 시작했다. 이진수라는 사람을 어디에 숨겼는지 물어보더군. 남자는 그 질문엔 답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일단은 고준석이라는 남자가 이진수를 데리고 있다는 것은 확실시되었다.
-그러자 여자가 화를 내더군. 자기가 한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같이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남자는 보안이 중요하다며 끝까지 이진수가 있는 곳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무슨 일을 했는데?”
-VIP실에 있는 함정들의 파훼법과 경호원들을 잠깐 기절시키는 음료를 만든 것들이다. 철저한 설계는 여자 쪽에서 한 것 같고, 실행은 남자 쪽에서 움직인 모양이다.
“그래?”
박나윤은 다시 호텔로 돌아가고 있었다.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나는 잠시 밖에 조성되어 있는 공원 의자에 앉았다.
발칸과 모든 이야기를 끝내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진수는 어떻게 한다는 건지도 이야기했어?”
-이진수는 조만간 케슬란에 넘긴다고 했다. 정확한 날짜는 오늘로부터 일주일 뒤, 장소는 한라산 정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일주일 뒤라면, 조사단에서도 어느 정도는 조사를 마무리 지을 시기였다. 오늘부터 빡빡하게 조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포기하기 쉬웠다.
헌터들의 경우는 더욱더 흔적을 찾기 힘들었고, 남아 있는 흔적들도 사라지기 쉽게 때문이다.
한마디로 조사단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는 박나윤이 계획을 세운 것 같았다. 일주일 뒤, 조사단이 조금은 경계를 늦췄을 때, 이진수를 케슬란에 넘기는 계획이었다.
“이것 말고 중요한 얘기는 더 없었어?”
-네가 궁금해했을 만한 이야기는 저 두 개가 다였다. 그 외에 이야기 중에 중요해 보이는 건 딱히 없었다. 조만간 때가 올 거라는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무엇을 뜻하는지는 듣지 못했다.
“때가 올 거라고?”
여기서 말하는 때는 아마 케슬란의 목표일 것이다. 능력자들을 포섭하며 모으고 있는 이유,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
지금 하는 행보로 봐서는 세계 정복이 가장 가능성이 높았다. 케슬란에 속해 있는 범죄자들이 판을 치고 있었고, 세계 연합에서도 최근 공식입장을 내비쳤다.
케슬란을 비롯한 범죄조직에게 자비는 없을 것이라며, 범죄조직 소탕을 위한 특수 조직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정복은 아니야.’
느낌이 그랬다.
세계 정복을 꿈꾸는 것치고 그들의 행보는 너무 이상했다. 뉴스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케슬란 단원들은 하나같이 이름 없는 것들이었다.
우리가 파악한 실종자 중에서 언론에 노출된 헌터가 없었다. 지금에서야 송연 한 명만 파악했을 뿐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했을까.
케슬란이 세계 정복을 원했다면, 실종자들을 포섭한 뒤 돌려보냈을 것이다. 그쪽이 좀 더 빠르고 쉽게 영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직도 실종자들이 어디 있는지, 얼마나 넘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목적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조사를 통해 알아내야 했다. 그 목적을 막는 게 조사단을 비롯한 헌터들의 목적이 될 테니까.
박나윤과 고준석이 언제 움직일지 알고 있으니 이제 내가 할 일은 딱히 없었다. 훈련을 하며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보내면 됐다.
‘알릴 필요는 없지.’
비밀을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은 더 이상 비밀이라고 할 수 없었다. 누군가 그 이야기를 할 것이고, 비밀을 하는 사람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이다.
나 또한 이번 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김세아와 채하나를 믿긴 하지만 혼자 움직이는 것이 편했다.
“고맙다.”
나는 스마트 폰을 들어 발칸이 원하던 게임에 게임머니를 충전시켜 주었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돌아갔다.
김세아는 침대 베개에 등을 기대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대충 소리를 들어보니 훈련 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문 여는 소리가 들렸는지 김세아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회의는 잘 끝났어?”
“잘 끝나지는 않았는데 잘 해결될 것 같기는 해.”
“그게 뭔 소리야.”
나는 남은 죽을 들어 마나를 이용해 데웠다. 성장형 무기를 얻게 되면서 화 속성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가벼운 잔재주 정도는 사용이 가능했다.
“문제가 좀 있긴 한데 잘 처리될 것 같다고. 다 이야기해 줄 테니까 일단 죽부터 먹어.”
얌전히 죽을 먹는 김세아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흘러나왔다.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김세아의 모습이기도 했고, 죽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보기 좋기도 했다.
“뭘 웃고 있어.”
말투는 여전했다.
“크흠. 지금부터 네가 기절하고 난 뒤에 일어난 이야기를 해줄 테니까 잘 들어.”
요약해서 얘기했기 때문에 설명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자잘한 것들을 제외하면, 크게 세 가지뿐이었다.
송연은 케슬란 소속으로 실력 좋은 헌터들을 포섭하기 위해 움직였다는 것.
이진수가 케슬란에 넘어가서 이상한 힘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진수가 실종되었다는 것.
모든 설명을 마쳤을 때, 채하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대충의 상황은 들었어.
“네. 그래서 이곳에서 좀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알겠어. 김세아 상태는 어때?
“괜찮아 보입니다. 한 이틀 정도 더 푹 쉬면 제 컨디션으로 돌아올 것 같습니다.”
-오케이. 또 길드 쪽에서 해줘야 할 게 있어?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노는 것도 좋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적당한 일과 함께해야 그 기쁨도 더한 법이었다.
“제주도에서 진행할 수 있는 B급 이상의 임무가 필요합니다.”
-조사단 임무는 어쩌고.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 알겠다.
채하나가 따른 의문을 품지 않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보여준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포인트 좀 모아볼까.’
* * *
“이 독을 치료하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중년 남성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옆에 있던 부대장은 부하의 말을 들으며, 신경질을 냈다.
“뭐라고?”
앞에서 누워 있는 송연은 식은땀을 흘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고통에 찬 비음이 매일 흘렀고, 여태 눈 한 번 제대로 뜨지 못했다.
앞으로의 대계를 위해서는 송연이 꼭 필요했다. 이 사실을 대장이 알게 된다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부대장은 지옥 같이 펼쳐질 상황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부하를 쳐다보았다.
“방법을 찾아라.”
“최소 성녀는 데려와야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이 독을 만든 제작자를 데려와야 치료가 가능합니다.”
지금 상황에 성녀의 도움은 받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천상 이 독을 사용했던 그 쥐새끼 같은 놈을 데려와야 했다.
“제작자만 있으면 무조건 치료할 수 있다?”
“예, 이런 종류의 혼합독은 제작 방법을 알아야 그에 맞는 해독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희가 사용하는 독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다면 굳이 데리고 오지 않아도 그 독에 무엇이 들어갔는지만 알면 된다는 건가?”
“예.”
부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부대장은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부하들을 쳐다보았다.
“아이리스 길드의 오유성. 그놈 지금 어디 있지?”
이번 길드 대항전에서 우승한 놈이기에 얼굴이 익숙했다. 혹시나 싶어 미리 부하를 시켜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부하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아직 제주도에 있습니다.”
부대장은 이를 갈며 말했다.
“준비해라. 그 녀석을 잡으러 갈 테니까.”
혼자 가도 충분하지만, 부하들을 데려가는 것은 대장에게서 내려온 새로운 지시 때문이었다.
‘우리의 존재를 알려라.’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진짜 케슬란의 모습, 그것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절망에 빠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