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50화
37장 실종(2)
회의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박동식의 얼굴에는 균열이 일었고, 한송이는 커다래진 눈으로 소식을 전한 헌터를 바라보았다.
송주혁을 비롯한 다른 헌터들은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 또한 그들과 별다를 게 없었다.
-협조자가 있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진수에게 가해졌던 제약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나 봉인부터, 양팔과 다리에 꽤나 무거운 추가 달려 있었다.
거기다 특정된 장소를 벗어날 시, 경보가 작동하는 마법까지 설치해 놓았다.
박동식의 표정을 보면 경보가 울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진수를 데려간 놈이 처리했을 확률이 높았다.
“이젠 심문조차 못하겠군. 이번 일은 그린나래 길드가 책임지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한쪽 구석에 앉아있던 바인드 길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나는 쥐고 있던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어디 가십니까?”
“어차피 이미 조사단은 망한 거 아닌가? 이곳에 있어 봐야 시간만 낭비지. 우리는 돌아가겠어.”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하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지금 가면 이진수를 납치한 길드라는 사실을 인정하시는 겁니까?”
“뭐?”
“이진수는 지금 저희가 찾아야 하는 송연과 관련이 높은 용의자입니다. 그럼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찾으러 가는 게 먼저 아니겠습니까. 선배님.”
바인드 길드의 헌터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곤 이를 악물며,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다른 길드 헌터들도 사태의 중요성과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내 말의 뜻을 가장 먼저 파악한 것은 박동식이었다.
자신의 전화기를 들어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렸다.
“수사대를 불러서 현장 조사부터 시작해. 그리고 조사 자료들을 모두 위로 올려. 그리고 이진수를 심문하려고 했던 헌터, 위로 올려보내.”
통화를 마친 박동식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그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방금이야 정신 차리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나섰지만, 이 조사단을 이끄는 것은 박동식이었다.
내게 마이크를 건네받은 박동식은 상황을 정리했다.
“이 일은 그린나래 길드 측에서 잘못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과를 하기 전, 이 일을 벌인 범인부터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박동식의 눈은 살벌했다. 그 눈빛은 회의실에 있는 다른 길드 헌터들을 향하고 있었다. 바인드 길드의 헌터가 책상을 쾅 치며 일어났다.
“그 눈빛은 뭡니까. 정말 저 녀석 말대로 우리를 의심하는 겁니까.”
“오유성 헌터의 말이 아니더라도. 잘 생각만 한다면 이 안에 범인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텐데요.”
박동식의 말은 차가웠다. 정말 화가 난 것처럼 보였고, 한송이가 잔뜩 긴장해 있었다.
나 또한 박동식이 화를 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떤 임무든 좋은 분위기를 이끌어갔고, 좋은 결과로 도출해 내는 헌터였으니까.
“이번 이진수 관련 사항은 조사단에게 가장 먼저 알렸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일을 아는 것은 조사단과 조사단에 참가한 길드 정도가 되겠지요.”
“…….”
“근데 이진수가 납치되었습니다. 그럼 이곳에 있는 사람과 길드부터 의심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회의실 분위기는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이 중 하나가 있을 수도 있지만, 아직 범인을 추측하기에는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적었다.
“그동안 오유성 헌터가 다시 사건 브리핑을 할 겁니다.”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이 범죄조직이 길드 내부에 깊이 잠입해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길드도 그것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길드 대항전이 시작되기 전 일을 떠올렸다. 그때 축출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아이리스 길드는 무너졌을 수도 있었다.
“아마 선배님들이 몸담고 계신 길드도 확신할 수 없으시겠죠. 이 범죄조직의 이름은 케슬란. 현재 뉴스에서 가장 이슈로 다루고 있는 집단입니다.”
이런 내용은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아이리스 길드에서 일어난 일들은 이미 길드원들의 입방아에 오르며 알음알음 퍼졌다.
내가 구해주었던 한서율의 아버지, 한민찬에게서 가끔씩 헌터 업계의 이런저런 소문이 날아왔다. 도움이 안 되는 것들도 많았지만, 가끔씩 알짜배기 정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소문에는 아이리스 길드에서 일어났던 사미영 사건도 있었다. 자세하게 적히지는 않았지만, 길드에서 나름에 위치가 있는 분들이니 이런 정보쯤은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저 송연이라는 여자가 바로 케슬란에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송연은 던전과 던전 밖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포털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내 말을 들은 조사단 일원들은 다시 한번 침묵에 빠졌다. 그만큼 내가 던진 정보는 중요한 것이었다.
현재 던전에 들어가는 방법은 오로지 자연스럽게 생성된 포털뿐이었다. 수많은 던전 학자가 연구했지만, 아직까지 던전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그들은 그렇게 던전으로 들어가 실종자들에게 권유했을 겁니다. 그것을 받아들인 자들은 모종의 힘을 얻고 케슬란에 들어가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일 테고요.”
“모종의 힘?”
송주혁이 되물었다.
“예. 케슬란에 있는 전부가 사용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을 사용했습니다.”
“그럼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소드마스터 길드 헌터의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나도 아는 것이 없어 고개를 저었다.
“그것에 대해선 저도 모릅니다. 그러니 이진수와 송연이라는 여자를 찾아야 합니다.”
오늘 이후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헌터 협회에서는 케슬란에 대한 강경책을 내놓을 것이고, 실종자를 대비한 매뉴얼을 만들 것이다.
케슬란도 이제 기존의 방식으로 헌터들을 영입하는 행위는 하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실종자 중 10%만 영입했다고 생각해도 전력이 장난 아니었다. 그 전력을 가지고 무슨 일을 벌일지도 고민해야 했다.
이런 부차적인 것은 내가 아니더라도 고민할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이 조사단 내부에 범인이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박동식이 부른 심문 헌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남자였다. 망토를 둘러서 무슨 옷을 입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묵묵한 스타일로 보였다.
“이리로 오세요.”
한송이가 선글라스 낀 남자를 준비된 자리로 안내했다. 남자가 자리에 앉고, 한송이가 그에 대해서 설명했다.
“헌터 협회에서 심문을 맡고 있는 고준석 헌터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범죄자를 심문했고, 한국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심문 전문 헌터입니다.”
“고준석 헌터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
바인드 길드 헌터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다른 사람도 고준석에 대한 이름은 들어 본 모양이었다.
나도 이름과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심문 헌터가 드물기도 했고, 헌터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인물이었다.
다른 심문 헌터들은 TV에도 나오면서 이미지를 만들고 명성을 쌓았지만, 고준석은 오로지 헌터 업계에서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게다가 대부분의 활동 지역은 헌터협회나 헌터 감옥이어서, 같은 세계에서 일하는 헌터들조차 얼굴 보기가 힘든 인물 중 하나였다.
“지금부터 그럼 내부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박동식이 말을 하며 고준석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박동식을 바라보는 조사단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심문을 받는다는 것이 좋을 수가 없었다. 특히 고준석은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아주 사소한 거짓말도 잡아낼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내 속마음을 읽는다는 것, 그것도 범죄 가능성을 두고 그런 조사를 받는다는 것이 편할 리가 없었다.
특히나, 나는 가지고 있는 비밀이 더욱 많았다. 투기장에 관한 것도 있었고, 발칸에 관한 것도 있었다.
‘일단은 봐야지.’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는 지는 말과 글로만 봤을 뿐이었다.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 했다.
그래야 대책을 세울 수 있었으니까.
“그럼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박동식은 조사단장으로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며, 고준석의 앞에 앉았다.
사실은 제일 먼저 의혹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조사단에서 가장 의심스러운 것이 그린나래 길드였으니까.
조사단장이라는 자리 자체를 그린나래 길드의 헌터가 맡았고, 이번 던전 브레이크 사건도 그린나래 길드가 맡았다.
거기다 이번에 실종자가 될 뻔했던 이진수는 그린나래 길드의 유망주였다. 최근에는 2차 교육기관에서도 조기 졸업을 하며 그 이름을 알렸다.
비록, 나에게 지면서 조금 명성에 흠이 간 것이 있지만, 나를 제외하면 김세아와 더불어 가장 강한 유망주는 맞았다.
“으윽!”
고준석이 박동식의 손을 잡았고, 박동식은 약간 인상이 찡그려졌다. 그러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박동식의 눈은 멍했고, 푸른 마나가 일렁였다.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 하시면 됩니다.”
고준석이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꽤 남자다운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바인드 길드 헌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이진수를 어디다 숨겼지?”
“모릅니다.”
“그린나래 길드에서 이진수를 어떻게 하려고 했지?”
“일단 데리고 돌아가려고…….”
“데려가서 뭘 하려고?”
순순히 물어보는 것에 답하는 박동식의 모습에 바인드 길드 헌터는 신이 났다. 한송이는 그 모습을 보고 중간에서 끼어들었다.
“여기까지면 되지 않나요?”
고준석은 손을 뗐고, 박동식은 다시 한번 비음을 내며 멍했던 시선이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한송이가 끝났다고 전했다. 박동식은 의자에서 일어났고, 다음은 한송이가 조사를 받았다.
“그린나래 길드는 결백합니다.”
그 뒤로 차례차례 조사를 받았다. 소드마스터 길드, 바인드 길드, 자이로스 길드 소속 헌터들 모두 이진수에 대한 행방을 몰랐다.
그다음은 해미 길드의 박나윤이었다. 떨리거나, 걱정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당당하게 고준석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곧, 눈이 멍해졌다.
“이진수에 대한 행방을 알고 있습니까?”
“ㅇ…… 아니요”
박나윤이 대답하는 순간,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마나 탐지에 박나윤에게 흐르는 묘한 마나가 걸려들었다. 거기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히 들었다.
‘‘예’라고 하려 했어.’
워낙 빠르게 지나갔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은 별다른 의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지금까지 조사를 받던 다른 헌터들은 대답을 번복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더듬은 적도 없었다. 물 흐르듯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토해냈다.
‘뭔가 있다.’
나는 그것을 확신했고, 박나윤의 조사가 끝났다. 그다음은 내 차례였다.
나는 미리 발칸에게 부탁을 해놨다. 영체화를 한 뒤에 내가 무슨 대답을 하는지, 혹시나 위험한 발언이 나온다면 막아달라고.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 *
다시 눈이 떠졌다.
‘끝났나?’
정말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눈을 감기 전, 고준석의 얼굴을 쳐다본 것이 끝이었다.
-딱히 위험성이 있거나, 네가 자제시켜달라고 했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발칸의 말에 안도하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조사는 끝났고, 결국 이진수에 대해 행방을 아는 조사단원은 없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동식은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수사대에서 보낸 자료를 방금 받았습니다. 이 자료를 나눠 드릴 테니 이진수를 찾는 데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진수를 잡을 경우, 그 길드에 대해서는 그린나래 길드에서 경의를 표할 것입니다.”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고, 조사단원들은 모두 밖으로 나갔다. 나는 잠깐 기다렸다가, 박나윤이 나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 나갔다.
조금은 거리를 떨어뜨린 채 마나 탐지를 이용해 따라갔다.
박나윤은 밖으로 나가자마자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나는 계속해서 마나 탐지로 추적하며 몸을 날렸다.
박나윤이 이동한 곳은 호텔이 있는 곳 근처의 바다였다. 그녀는 바닷가 근처 여러 카페 중 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내게 익숙한 얼굴이 그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조사단을 조사했던 심문 전문 헌터 고준석이었다.
‘그럼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