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49화
37장 실종(1)
채하나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브리핑했다. 묵묵히 듣고 있던 채하나는 김세아의 상태부터 물었다.
-그래서 김세아의 상태는 어때? 지금이라도 호출해서 그쪽으로 보낼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때마침 가지고 있던 성수가 있어서 그걸로 처리했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 중으로 사람을 보낼게. 성수로 처리했다고는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이 사실을 알릴까 말까도 고민했다. 박영주를 영입한 것은 채하나였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 시기를 늦추기로 마음먹었다.
일단은, 지금 상황을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모든 상황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사건 정황을 알고 있는 사람의 수는 적은 것이 좋았다.
박영주가 개입한 일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그린나래 길드에게서 귀찮게 할 것이고, 자신이 원하던 연예인 생활도 못 하게 될 것이다.
거기다 한 번 납치하려던 케슬란이 다시 움직일 가능성이 컸다. 내가 제일 걱정하는 부분이 이것이었다.
여러모로 이번 일이 알려져 봤자 좋을 게 없기에 내가 한 것으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박영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조금 흐른 뒤에야 박영주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뭔데요?
“김세아를 치료한 일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조금은 밝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싱긋 웃는 박영주의 모습이 절로 연상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순진한 연기 좀 했죠. 제가 봐도 완벽한 연기였어요.
걸그룹 출신의 배우치고는 확실히 실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애초에 연기를 준비하다가 걸그룹에 합류했다고 하니.
최근에는 한 드라마에서 명품 연기를 쏟아내며 극찬을 받았었다. 이런 사실도 이찬혁이 아니었으면 몰랐을 것이다.
“그렇군요. 그럼 나머진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밥 살 테니까 편한 날짜만 정하세요.”
-알겠어요. 집에 돌아가면 스케줄 확인 좀 해보고 연락할게요.
나는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박영주의 자신감도 그렇고, 몇 번 보았던 드라마에서의 연기를 보면 안심할 수 있다.
아직까지는 한송이나 치료 헌터는 박영주가 김세아의 저주를 치료한 것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수상함을 알아채고 파고들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나는 포인트 상점에서 최하급 성수 하나를 구매한 뒤 치료실로 돌아갔다.
“만나셨어요?”
치료 헌터가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못 만났다고 이야기하고는 김세아의 앞으로 가서 앉았다.
“이 상처는 어떻게 된 겁니까?”
“아, 여기 계셨던 여성분이 그러는데 갑자기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고급 저주가 단숨에 사라지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네요.”
“그럴 리가요.”
나는 일부러 치료 헌터가 볼 수 있는 각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김세아의 입에 성수를 흘려 넣었다. 목을 살짝 들어 성수가 몸 안으로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남은 성수는 다시 주머니에 챙겼다. 그러자 치료 헌터의 눈이 커지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거 성수 아닙니까?”
“예.”
성수가 구하기 힘든 것은 아니지만, 갖고 있는 사람이 드물기는 했다. 개인적으로 구매하기에는 가격이 조금 나갔고, 보통은 길드에서 대량으로 구매해 사용하기 때문이다.
“혹시 몰라 길드에서 챙겨왔습니다.”
“그럼 아까는 왜?”
내가 처음 김세아를 데리고 왔던 모습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내가 원하는 질문이 나왔고, 생각하고 있던 말들을 꺼냈다.
“저주에 당한 뒤에 바로 먹였는데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조금 급했습니다. 이 성수가 먹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말에 치료 헌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성수라고 해서 모든 저주를 치료하는 것도 아니고, 성수도 종류가 다양하니까요.”
“다행히도 이 성수가 딱 맞았던 것 같습니다. 효과가 늦게 일어났지만.”
“그러게요. 저도 처음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곳에 있던 여성분이 한 일인 줄 알고. 근데 방금 계셨던 분, 제가 알고 있는 박영주가 맞죠?”
생각외의 질문에 나는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 이곳에 오면서 얼굴을 다 드러내고 다녔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굴을 본 사람이 매우 드물다는 것이었다. 치료 헌터의 눈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고, 나는 정공법으로 나섰다.
“예, 맞습니다.”
“무슨 사이신 거죠?”
치료 헌터는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다분히 불순한 목적이 가득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나는 치료 헌터를 보며 김세아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얘 친굽니다. 절친. 그래서 제가 없는 동안 부탁하려고 부른 겁니다.”
* * *
“끄응.”
김세아가 머리를 붙잡고 상체를 일으키며 신음을 내뱉었다. 아직 몸 상태가 회복되지 않아서 그런지 몸을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자, 이거 먹어.”
나는 밖에서 사 온 죽을 쟁반에 담아 김세아의 앞에 놓아주었다. 김세아는 그것을 한번 보고는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숙소는 언제 온 거야?”
저주가 모두 치료된 마당에 그런 야전 치료실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김세아를 데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김세아는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어제.”
“내 어깨에 있던…….”
김세아는 목이 메는지 끝까지 말을 하지 못했다. 나는 물을 준비해서 김세아에게 건네주었다. 대충 무슨 질문을 하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성수가 있었어. 그게 생각보다 효과가 좋더라고.”
“성수?”
“그래. 저번에 사용하고 남았던 게 있어서 너한테 먹였다.”
마지막 B급 임무에서 사용하고 남은 성수가 있었다. 아직 반납하지 못했고, 내가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 성수는 내 숙소에 있었다.
“다행이네.”
김세아는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저주에 걸렸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내 말도 의심 없이 넘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숟가락으로 죽을 떠서 김세아의 입가로 가져갔다.
“자, 먹어.”
그러자 잠시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던 김세아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나는 숟가락을 김세아의 입에 넣었다.
“맛있네?”
죽을 먹은 김세아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일부러 전에 맛있게 먹었던 유명한 죽집까지 가서 사 온 보람이 있었다.
“남은 죽도 알아서 챙겨 먹어라. 조사단 회의가 있어서 이제 가 봐야 해.”
미리 알람을 맞춰둔 스마트폰에 징징 울렸다. 그리고 곧 진동은 바로 꺼졌다. 발칸이 끈 모양이었다.
“그럼 나도 가야지.”
김세아가 자리를 일어나려는 자세를 취했다. 나는 그런 김세아의 한쪽 어깨를 누르며 막았다. 어차피 일어나지도 못했고, 지금은 컨디션 회복이 우선이었다.
“됐어. 이번엔 나 혼자 갔다 올게. 갔다 와서 다 얘기해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자신의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김세아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는 숙소 문을 열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꼭대기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 먼저 도착한 헌터들이 있었다.
자이로스 길드의 송주혁.
그린나래 길드의 한송이.
해미 길드의 박나윤.
어느 정도는 이야기를 섞어본 헌터들이었다. 내가 가볍게 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갔고, 때마침 뒤늦게 도착한 헌터들이 들어왔다.
나는 아이리스 길드 자리로 가서 앉았다. 송주혁이 내 옆자리를 쓱 훑어보고는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에휴.’
송주혁은 아마 이번 조사단 내내 우리를 싫어하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일일이 맞붙는 것보다는 무시하는 것이 좋았다.
“단장님은 어디 가신 겁니까?”
나는 앞쪽에 서 있던 한송이를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같이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곧 도착할 거예요. 급하게 길드와 처리할 문제가 있어서.”
딱 봐도 이진수와 관련된 것이 분명했다. 박동식이 길드와 처리할 문제는 그것밖에 없었다.
내가 간단한 이야기를 박동식에게 전해준 뒤, 조사단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 다시 모이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온 정보들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마나 탐지를 사용했다. 이진수가 이 호텔 VIP실에 있어 확인차 사용해 보았다. 원래라면 당장 감옥에 들어가야 했지만, 치료가 우선이었다.
정신을 차려야 심문이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이진수 또한 워낙 유명한 인물이라, 그린나래 길드도 신중을 기했다. 그래서 이곳 VIP실에 이진수를 가둬놓았다.
온갖 장치들로 구속되어 있어 도망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박동식이 나를 불러 진행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이진수가 있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처에 다른 누군가 있는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 모였습니까?”
그때, 문을 열고 박동식이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봤을 때와는 다르게 표정이 조금은 어두워 보였다. 박동식은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번에는 시작부터 한송이가 진행을 했다. 한송이는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서 간략한 상황 설명을 하며, 화면을 넘겼다.
나는 그것을 잠깐 보고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화면에는 한창 게임을 하고 있는 발칸의 모습이 보였다.
최근 영체화에 어느 정도 진전을 이뤄냈고, 잠시 휴식 기간을 가진다면서 다시 게임에 빠져 살고 있었다.
화면 분할을 이용해 메모장에 글을 적었다.
[발칸.]
-왜
게임을 하던 발칸이 잠시 정지를 하고, 나를 향해 돌아보았다. 메모장에 적힌 글을 지우고, 다시 적었다.
[이진수가 있는 방에 가서 무슨 일 있는지 감시 좀 해줘.]
-감시?
[그래. 뭔가 느낌이 이상해.]
회의는 잘 굴러가고 있지만, 미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송연은 끝까지 이진수를 데려가려 했고, 어쩔 수 없이 부대장과 돌아갔지만 이대로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았다.
이진수가 있는 곳에 감시역이라고는 문 앞에서 지키고 있는 헌터 두 명이 다였다.
그들은 송연이나 부대장에게는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을 것이다.
발칸은 게임 화면에서 상점을 들어갔다. 그러고는 이것저것을 가리켰다.
-이것들.
[그래. 이번 회의 끝나면 바로 충전해 줄게.]
내 메모장에 적힌 것을 보자마자, 스마트폰에서 발칸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진수가 있는 곳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
영체화가 10분 정도 가능해졌으니까, 그 안에 이상한 일이 생기면 발칸이 나에게 신호를 줄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오유성 헌터가 해줄 겁니다.”
한송이가 나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나는 마이크를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리스 길드의 오유성입니다. 어제 백록담에 있는 던전을 막던 중, 송연이라는 여자를 만났습니다.”
나는 송연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진수는 송연이 가지고 있던 검은 기운을 사용했습니다.”
내 말에 박동식과 한송이의 시선은 땅으로 향했다. 자신들이 한 일은 아니지만, 이곳으로 이진수를 데려온 것이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면 지금 이진수를 심문해야 되는 거 아닌가?”
소드마스터 길드 헌터의 질문에는 한송이가 대답했다.
“지금 상태가 좋지 않아 회복 중입니다. 깨어나는 대로 조사단이 모두 참가해 심문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강제로 깨우면 되잖아?”
송주혁이 한송이를 보며 말했다. 그러나 한송이는 고개를 저으며 안 된다고 대답했다.
“길드에서 지령이 내려왔습니다. 일단은 회복에 전념시키고, 깨어나게 되면 그때 심문을 진행하라고.”
“뭐라고? 지금 장난해? 그놈이 언제 깨어날 줄 알고 기다려.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나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앞에 서 있으니, 회의실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앉아 있는 헌터들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시간을 끌려는 이유가 뭐지.’
이번만큼은 송주혁의 말에 동감이었다. 내가 기절시키긴 했지만, 하루가 필요할 정도로 세게 때리지 않았다.
치료 헌터의 힐링 마법이면 금방 깨어날 법한데, 그러지 않았다. 분명 그린나래 길드에서 무언가를 벌이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송연은…….”
케슬란에 소속되어 있다고 얘기하려고 할 때, 문이 열리고 헉헉거리는 헌터의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내 귓가로 발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진수가 사라졌습니다.”
-이진수, 여기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