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47화
36장 현장 습격(3)
빠르게 이동 중인 택시 안에서 박영주는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맑았고, 평화로웠다.
제주도에 온 지도 벌써 2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오랜만에 긴 휴식이라 더 즐거웠던 것일지도 몰랐다. 다른 동료들은 해외를 주로 나갔지만, 국내가 편했다.
휴식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해외 로케이션이 시작되니 그때 나가도 충분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한라산을 보며, 수화기 너머로 들렸던 오유성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무슨 일이려나…….”
오랜만에 들어보는 오유성의 목소리였다. 저번에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봤으니 정말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좀 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무엇을 하면서 지냈는지, 잘 지내고 있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서 알게 된 정보도 공유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김포 공항에서 있었던 일이 궁금했다. 제주도에 오게 된 사실을 인터넷으로 알게 되었으니까.
기사 내용은 열애설이었다. 얼굴도 보았고 이름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오유성과 같은 팀에 팀장인 김세아였다.
김세아.
아름다운 얼굴이었고, 웬만한 연예인보다 아름다웠다. 박영주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못생겼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도, 가슴 한쪽이 답답했다. 처음에는 이 감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유성에 대한 생각이 자주 떠올랐고, 가지고 있던 미묘한 감정에 대해서 확실하게 깨달았다.
아직 그리 깊지는 않지만, 분명 자신은 오유성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열애설 기사를 봤을 때도,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니길 바랐다.
아이리스 길드의 후속 기사를 보고 한편으로 안도했지만, 그런 기사는 쉽게 믿을 것이 못 됐다. 연예계 기사에서도 열애설이 터지면 연막을 많이 치니까.
그래서 오유성에게 전화가 왔을 때, 김포공항에 대한 것을 물어보려고 했었다.
‘능력이 필요합니다.’
오유성의 목소리는 꽤 심각했다. 그래서 더 사적인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도움받은 것이 있기도 했고,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싶어서 오유성의 부탁을 승낙했다. 워낙 다급했기에 화장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빠르게 택시를 불렀다.
“조용하네요.”
운전을 하고 있던 운전기사가 길을 따라 차를 몰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한라산은 평소와 분위기가 달랐다.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던전 브레이크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 한라산에는 그린나래 길드원들이 던전 브레이크를 막기 위해 들어와 있었다.
거기다 오유성도 그린나래 길드에 협조한다고 했고, 자신을 부른 것도 그것과 관련된 일이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게요.”
조금 이상한 점은 택시를 막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일반인들의 한라산 출입을 막았다. 그래서 박영주도 최근에는 한라산 근처에도 오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은 막힌 것 없이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끝났을 때뿐이었다.
택시는 빠르게 이동했고, 순식간에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출입을 막는 울타리와 울타리를 지키고 있는 헌터들이 있었다.
박영주는 택시비를 계산하고 차에서 내렸다. 울타리로 다가가자, 헌터들이 다가와 물었다.
“어떤 일로 오셨죠?”
“오유성 헌터의 부탁을 받고 왔어요.”
박영주의 말을 들은 헌터들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울타리를 열어주었다. 박영주는 가볍게 묵례를 하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금 걸었을까, 누군가가 내려와 박영주를 맞이해주었다.
“한송이라고 해요. 오유성 헌터가 부른 사람 맞죠?”
“예. 박영주라고 해요.”
“일단 안으로 들어가죠.”
한송이가 먼저 앞에서 걸었고, 그 뒤를 박영주가 따라 걸었다. 한송이의 표정을 보니 꽤나 피곤해 보였다.
정문에 있는 건물로 들어가 왼쪽으로 꺾었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치료실이라고 적힌 곳에 섰다.
그때, 한송이의 전화벨이 울렸고, 발신자를 확인한 한송이가 박영주를 보며 말했다.
“자세한 건 오유성 헌터에게 들었을 테니까, 저는 잠시 일 좀 처리하고 올게요.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요.”
달려가는 한송이를 보며, 박영주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오유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까 택시에 있을 때, 문자로 급한 일이 있어 김세아를 부탁한다는 내용을 확인했다.
혹시나 기대했지만 오유성은 이곳에 없었다.
아쉬움을 털어내고 있을 때 누군가 끙끙거리며 앓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오른쪽에 있는 침상 위에서 김세아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박영주는 김세아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앞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저게 뭐야?’
김세아의 어깨에는 검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아마 저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박영주도 검은 불꽃을 보며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오유성의 부탁으로 이곳에 왔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 같았다. 저 검은 불꽃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 않았다.
“후우.”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노력이라도 해보기 위해 박영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손을 검은 불꽃 쪽으로 향하게 한 뒤에 마나를 끌어올렸다.
온몸에서 흐르는 마나가 손 쪽으로 빠져나가 검은 불꽃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검은 불꽃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손에서 나온 빛이 검은 불꽃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힘을 더할수록 속도는 빨라졌고, 어느새 활활 타오르던 검은 불꽃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사라진 상처 부위에는 검에 뚫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뼈가 드러날 보일 만큼 심각한 상처였다. 박영주는 빠르게 치료를 시작했다.
상처들이 아물고, 새살이 돋아났다. 그리고 보기 흉하던 상처가 완전히 사라졌다. 다른 사람이 보면 상처가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깔끔한 피부였다.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나?’
박영주는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검은 불꽃을 없애는 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싱겁게 일을 마치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힘들 일을 도와줬으면, 핑계라도 대면서 데이트 신청이라도 했겠지만, 이번 일로 그런 핑계를 대기에는 조금 힘들어 보였다.
언제가 또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며 아쉬움을 털어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끌어 올려 김세아의 어깨까지 덮어주었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처음 보는 남자와 한송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남자는 가운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아, 치료실에 상주하는 헌터로 보였다.
헌터 관련 시설에서도 행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두 분 표정이 왜…….”
한송이는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에 있던 남자는 그것보다 심했다. 두 눈이 커져 있었고, 목젖이 떨리고 있었다.
“지금 이, 이게 무슨 일이죠?”
“…….”
“저 헌터 어깨에 있던 검은 불꽃 못 봤습니까? A등급 정도의 치유 능력이 필요한 일인데……. 혹시 당신이 한 일입니까?”
박영주는 둘의 반응을 보고 깨달았다. 자신이 한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꽤 어려운 일이었고, 그것을 자신이 해낸 것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저 둘의 반응이었다. 여기서 이실직고를 했다가는 오랜만에 받은 휴가가 물 건너갈 것 같았다.
‘그건 안돼.’
박영주는 지금까지 배웠던 연기 스킬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여자를 연기했다.
“아니요. 제가 여기 왔을 때부터 없었는데요?”
* * *
“여기를 어떻게 따라 왔을까?”
내 모습을 본 송연이 비아냥거렸다. 겉으로는 비아냥대고 있지만, 속으로는 꽤 놀랐을 것이다.
텔레포트 흔적을 찾아 추적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한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S랭크의 텔레포트 능력자나 가능한 일이었고, 그런 기술을 내가 사용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이 아이템이 포인트 상점에 있을 줄은 몰랐다. 모든 아이템이 있으니, 혹시나 싶어서 찾아보았는데 정말 있었다.
“오면 안 될 곳이라도 왔나 보네.”
나는 여유롭게 앞으로 걸었다. 오른손에 든 검은 언제든지 휘두를 준비가 되어 있었고, 몸 안에 마나도 충만했다.
나한테 된통 당한 것이 떠올랐는지, 이진수가 검을 빼 들고 달려왔다.
“아깐 방심했지만, 두 번은 없을 거다.”
이진수가 휘두른 검에서 검은 기운이 솟구쳤다. 마치 내가 사용하는 마나 블레이드와 같았지만, 색이 달랐다.
훨씬 칙칙하고 어두웠다.
그에 맞서 나도 마나 블레이드 만들어 이진수를 향해 휘둘렀다.
두 개의 마나블레이드가 부딪치면서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나는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역시 이를 악물며 버티고 있는 이진수의 얼굴이 보였다. 투기장에서 보낸 한 달의 시간은 이진수와 나의 실력에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 힘을 어떻게 얻었는지, 얼마나 사용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내 쪽은 아직 여유가 넘친다는 것이었다.
“넌 이제 나한테 안 돼.”
몸에 마나를 흘려보내며 육체를 강화시켰다. 갑작스러운 힘의 증가에 이진수가 뒤로 튕겨 나갔다.
그리고 나는 뒤로 물러섰다.
파바밧!
내가 있던 자리에 송연이 날린 단검들이 박혔다. 주의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당했을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앞으로 달려나가며 이형환위를 사용했다.
이진수의 오른쪽 어깨에 검을 박았다. 살집을 뚫고 지나간 검에서 피가 흘렀다.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는 이진수의 표정을 보며 검을 뽑았고, 돌려차기로 배를 찼다.
마나를 담았기에 속이 진탕되었을 것이다. 비틀거리는 이진수가 피를 내뿜으며 자리에 쓰러졌다.
“얘는 데려가려 해서 이 정도지만, 넌 아니야. 죽여서 데려갈 테니까 각오해.”
어차피 살아있어도 입을 열지 않을 송연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죽인 뒤에 사령술을 가진 헌터에게 의뢰를 하는 것이 정보를 얻기 더 쉬울 것이다.
파앙!
지면을 박차고 튀어나간 뒤에 송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첫 공격부터 전력을 다했다.
단검을 베어내고, 피하고, 허공에서 사방으로 움직였다. 모든 방위에서 송연을 노리며 공격했다. 수세에 몰린 송연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마나 블레이드에 모든 마나를 집중시키며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력하고 거대한 검격이었다.
엄청난 스피드로 날아간 검격은 송연의 오른팔을 앗아갔다. 피가 솟구쳤고, 송연이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가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단 한 걸음이면 송연을 처리하고, 이진수를 데려갈 수 있었다.
“끝이다.”
마지막 일격을 위해 검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송연의 목을 향해 검을 내리그었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공격에 내 몸이 허공을 날았고 근처에 있던 기둥에 몸을 박았다.
콰아아앙!
“쿨럭.”
머리에서 피가 흘렀고, 정면에 시야가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품에서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을 꺼내 마셨다.
음침하고도 동굴 소리 같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안 오나 했더니 이런 일이 있었구나.”
“부대장님…… 크윽!”
나는 송연의 말을 듣고 억지로 눈을 크게 떴다. 후드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부대장이라는 작자가 신전에 떡하니 서 있었다.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고, 언제 공격을 했는지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지금의 나와는 월등히 차이가 나는 강자였다.
그는 순순히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아끼는 부하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다니. 꽤 강한 놈인 것 같지만. 나는 피어오르는 새싹을 정말 싫어해서 말이지.”
콰아앙!
다시 한번 무형의 공격이 내 몸을 강타했다. 나는 턱하고 막히는 숨과 함께 신전 밖으로 굴렀다.
정신없는 와중에 마나를 끌어올리며 몸을 보호했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정신을 붙잡았고, 부들거리는 모을 세워 일어섰다.
“크레도가 왔다면 큰일 날 뻔했어. 분명 저런 놈을 살려뒀다가 죽여야 한다면서 그냥 보냈을 테니까.”
너무나도 압도적인 차이였다.
혼자라면 도망가 볼 법하지만, 이대로 물러선다면 이들의 흔적을 찾는 것은 훨씬 늦어질 것이다. 최소한 이진수라도 데리고 도망가야 했다.
“어차피 죽을 거, 머리 굴리지 마.”
콰아앙!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어 타이밍을 맞췄지만, 힘의 차이가 컸다. 내가 들고 있던 검이 부서졌고, 내 몸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나마 있던 무기도 사라져 버렸다.
실력의 차이도 큰 상태에서 공격 수단이 사라지니 저 부대장이라는 녀석을 막을 조금의 희망조차 사라졌다.
부대장은 어느새 내 앞에 나타났고, 마지막 일격을 위해 주먹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화염을 다루는 것인지, 아주 뜨거운 파란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죽음.
라이칸 스로프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나는 얼마 남지 않은 마나를 사용해 몸을 일으켰다.
죽을 때 죽더라도, 마지막까지 싸우다 죽을 것이다. 이대로 포기한 채 죽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 눈빛 내가 아는 누군가와 많이 비슷하네.”
“.....”
“재수 없는 게 아주 똑같아.”
부대장이라는 남자의 주먹이 움직이려고 할 때, 모든 게 멈추며 내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성장형 무기가 완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