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46화
36장 현장 습격(2)
핀트가 나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앞에 있는 이진수는 기절한 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끓어오르는 화를 가라앉히며 현실을 직시했다.
마지막 남은 송연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김세아에게 가 있었다. 그러곤 웃었다.
송연은 나와 시선을 마주쳤을 때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재수 없어서 당장에 처리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앞에 있는 김세아 때문이었다.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진수의 공격으로 인해 김세아는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인상을 찡그린 채 식은땀까지 흘리며 끙끙 앓고 있었다.
공격을 당한 어깨 쪽에서는 검은 기운 불길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저주인가?’
헌터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는 그러했다. 쉽게 사라지지 않고, 강하게 일렁이는 것을 보니 저주 계열에서도 높은 계열인 것 같았다.
이진수가 어떻게 저런 기술을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김세아를 치료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김세아가 죽을 수도 있었다.
포인트 상점.
마음 같아서는 바로 치료를 시킬 수 있는 고급 저주 해제 물약을 사고 싶지만 포인트가 부족했다. 저주 해제 물약 주제에 너무 비쌌다.
포인트야 다시 모으면 되니까 상관없었지만, 이러면 살 수가 없었다. 천상 밖으로 나가서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아직 송연이 남았기에 저주가 지속되지 않을 정도만 조치하기 위해, 하급 저주 해제 물약을 샀다. 주머니에 나타난 물약을 꺼내, 김세아의 어깨에 뿌렸다.
치지직!
김세아의 상처 부위에 물약이 떨어지면서, 검은 연기가 일어나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아예 수그러든 건 아니었고, 더 커지는 것을 막아낸 정도였다.
김세아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하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조금은 나아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송연을 바라보았다.
송연은 우리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며, 그 틈을 타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내가 검을 빼 들자 송연도 다시 전투 자세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괜찮겠니? 그거 꽤 고급 저주라 시간이 늦어질수록 치료하기 힘들 텐데?”
“걱정 마. 오래 걸릴 일 없으니까.”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송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에서 나온 마나 블레이드가 송연을 향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촤르륵!
허공에 생긴 마법진에서 단검이 달린 쇠사슬이 나와 내 공격을 막아냈다. 나는 허공을 박차며, 다시 마나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쇠사슬들이 나의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공격을 시도해 왔다. 쇠사슬들은 나의 양팔과 다리는 물론, 머리와 심장도 노리고 있었다.
“그만하자.”
나는 몸에 마나를 끓어 올렸다. 허공을 박차며 이형환위를 사용했고, 나를 향해 오던 단검들을 모두 피해버렸다.
흐릿해진 내 잔상에 단검들이 꽂히는 것이 보였다. 처음과 다르게 이형환위도 많은 성장을 이뤘다. 꽤 길게 남은 잔상에 송연의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내 몸은 이미 송연의 뒤에 서 있었고, 망설이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있는 힘껏 휘두른 검이기에 단번에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챙!
화르르륵!
그러나 내 공격은 무언가에 의해 막혔다. 나의 검이 닿은 곳에서 늑대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검은 늑대는 내 검을 꽉 물고 있었다.
나는 힘으로 검을 빼내고는 뒤로 물러섰다. 그 자리로 수십 개의 단검이 스쳐 지나갔다.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네. 아쉽지만 이쪽에서 바빠서 이제 끝내자.”
송연은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쓰러져 있는 김세아를 바라보았고 그녀를 향해 손을 움직였다. 허공에 나타나는 단검들이 김세아를 향했다.
그제야 송연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마치 나를 꿰뚫고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쉽게도 이번엔 송연이 나의 빈틈을 잘 찾았다. 나는 이형환위를 사용해 김세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 앞에 서서, 다가오는 단검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빠르게, 좀 더 빠르게 동체 시력을 끌어올리며 모든 단검을 쳐냈다.
얼마 남지 않은 마나로 인해 마나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저 육체적 능력을 끌어올려 막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시간이라도 충분했다면 마나 포션을 마셨겠지만, 그럴 시간도 없었다. 정신없이 공격을 막았고, 한순간에 단검들이 모두 사라졌다.
“하아, 하아…….”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검을 들었다. 아득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송연과 이진수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육안으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진수가 기절해 있던 자리에는 움푹 파인 구덩이만 존재했다. 공격을 하면서 내 시선을 끌고, 그사이에 이진수를 데리고 도망친 모양이었다.
나는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을 마신 뒤에, 김세아를 업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이렇게 업으니 가벼웠다. 근력이 강해져서 그런 거겠지만, 내 등 뒤에 업힌 김세아는 솜털처럼 가벼웠다.
아직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 이진수와 송연을 쫓아갈 수도 있었지만 그전에 김세아를 던전 밖으로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해야 했다.
나는 지면을 박차고 달리면서 던전 포털이 있는 곳까지 단숨에 달렸다. 오는 길에 있는 몽쉬들을 모두 처리했기에 돌아가는 것은 쉬웠다.
포털을 타기 직전 오른손에 검을 꺼내 들었다. 아직 바깥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리가 되지 않았다면, 몽쉬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후우.”
포털을 타고 던전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도 전투가 끝난 모양이었다. 몽쉬들의 시체가 가득했고, 중간중간 상처를 입은 헌터들도 보였다.
박동식의 지휘 아래 현장은 빠르게 정리 중이었다. 나는 김세아를 업은 채 박동식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야?”
저주로 인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김세아를 보며 박동식이 다급하게 외쳤다. 나는 설명할 시간이 없기에 박동식의 질문을 자르며 말했다.
“자세한 건 모든 게 다 끝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치료부터.”
“그래.”
박동식은 옆에서 현장 정리 중이던 한송이를 불렀고, 나는 한송이를 따라 텔레포트 주문서를 사용해 본부석으로 이동했다.
치료실로 이동했고,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치료계 헌터가 다가왔다. 그는 김세아의 어깨에 피어오른 검은 불꽃을 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리로 오세요.”
나는 준비되어 있던 침상에 김세아를 눕혔다. 치료계 헌터가 힐을 사용해 김세아의 상태를 회복시켰다. 그러나 회복의 진전은 없는 것 같았다.
치료계 헌터가 땀을 뻘뻘 흘리며 힐 사용을 멈췄다. 그리고 난 뒤 나를 보며 말했다.
“일단 응급조치는 했지만,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정확한 증상은 뭐죠?”
내 질문에 치료계 헌터가 고민 가득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건 검사를 진행해 봐야 알 것 같습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장비로는 불가능하니 큰 병원으로 가거나, 길드 본부로 이동하는 게 최선입니다.”
나는 일단 김세아를 두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스마트폰을 꺼내 채하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래라면 바로 받았을 채하나였지만,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신호음만 꽤 길게 이어졌다. 나는 이내 전화를 끊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병원에 가 봐야 제대로 된 능력자가 없어서 치료가 불가능했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려면 신전을 가거나, 길드에 있는 헌터를 데려와야 했다.
거기다 일반적인 힐 치료는 효과도 없어 보였다. 시간은 빠듯했고, 생각할 것은 많았다. 그러던 중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제주도에 있다고 했었지?’
박영주가 이번 활동이 끝나 잠시 휴식 기간을 가진다고 했다. 그 장소가 제주도였고, 이번 임무를 진행하는 동안 한 번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그녀 또한 치유계 헌터였다. 그리고 김세아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나는 박영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그렇게 길게 가지 않았다. 신호음이 사라지고, 아름다운 미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박영주 씨 맞습니까?”
항상 간단한 메시지만 주고받았기에 이렇게 통화하는 것이 어색했다.
-요새 저보다 유명하시네요. 제주도 온 걸 인터넷으로 알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요.
꽤 들떠 보이는 목소리였다. 나 또한 좀 더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었다. 나는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부탁할 게 있습니다.”
내 진중한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전화기 너머의 박영주의 목소리에서도 웃음기가 사라졌다.
-무슨 일인데요?
“영주 씨 능력이 필요합니다.”
* * *
박영주는 고민도 하지 않고 내 부탁을 승낙했다. 나는 이곳의 위치를 알려줬고, 곧바로 움직일 준비를 했다.
“제 이름을 대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 사람이 오면 이곳으로 데려와 주세요. 신원은 아이리스 길드 측에서 보증하겠습니다.”
이왕이면 박영주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좀 더 시간이 늦어지면 이진수와 송연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한송이에게 부탁을 마친 뒤에 치료실 밖으로 나왔다.
길드 쪽에도 연락을 할까 했지만, 이번 일은 조사단과 관련된 일이기에 비밀리에 진행해야 했다.
대신 채하나에게 메시지 하나를 남겨 놓고, 텔레포트 주문서를 사용해 다시 한라산 정상으로 이동했다.
헌터들이 직접 현장 처리를 했기에 속도가 빨랐다. 이미 대부분의 현장 정리가 끝나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박동식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지금은 무엇보다 송연과 이진수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
나는 던전 안으로 이동해 전투가 벌어졌던 곳까지 이동했다. 그리고는 포인트 상점을 열어 아이템을 구매했다.
[텔레포트 추적기를 구매하셨습니다.]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게 되면 3시간 정도 흔적이 남습니다. 이 추적기는 그 흔적을 찾아내고, 이동된 장소를 알아냅니다. (3/3)
내가 가진 절반의 포인트를 소모해서 구매한 아이템이었다. 세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일회성 아이템이지만 후회는 없었다.
아공간 주머니에서 텔레포트 추적기 하나를 꺼냈다. 금색 구슬로 이루어진 추적기를 사용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나는 구슬에 마나를 불어 넣고는 허공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마나를 담은 금색 구슬이 허공에서 빛을 발하며 터졌다. 구슬에서는 가루가 터져 나왔다.
사방으로 퍼지는 금색 가루는 흔적을 찾듯 이리저리 움직였고, 한 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포털처럼 나선형을 이룬 금색 포털이 생성되었다.
이진수가 쓰러져 있던 구덩이가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가지 전에 다시 한번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을 마셨다.
여유분의 포션을 구매하고, 포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야가 아득해졌고, 머리가 빙글빙글거렸다. 포털에 처음 들어갔을 때 겪었던 경험이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눈에 보이는 시야에 집중했다. 저번 투기장에서 보았던 신전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다만 이곳은 천장이 없었고, 벽도 없었다.
검은 기둥과 검은 바닥만 있을 뿐이었다. 기둥 앞에 세워진 화로에서는 검은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세아의 어깨에 있던 저주를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신전 중앙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송연과 이진수의 모습이 보였다. 정신을 차렸는지, 이진수가 주위를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며 검을 꺼내 들었다.
‘사냥을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