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39화
35장 조사단 (1)
“너 진짜 뭐 잘 못 먹었니?”
김세아가 나를 보며 징그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왼쪽에 있는 유리 벽에 반사된 내 모습을 보니, 충분히 그럴 만했다.
한쪽 입꼬리는 올라가 있고, 눈은 반달 눈이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지금 내 기분은 날아갈 듯이 좋았다.
B급 임무 세 개를 모두 끝냈고, 일주일 정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사실 이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얻기 위해, B급 임무를 미친 듯이 빠르게 처리했다.
정말 미친놈처럼 임무를 처리했고, 드디어 내가 원하던 일주일의 시간을 얻었다.
“뭐부터 먹을까…….”
“요새 너 좀 이상한 거 알아? 두 번째 임무를 갈 때부터 걸신들린 것처럼 먹을 것만 찾아대고.”
“그럴 일이 있다.”
“그 표정 짓지 말라고 했다. 진짜 죽어볼래?”
김세아가 예전의 얼음 공주가 되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꽤 신경 쓰였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김세아를 가볍게 무시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음식 중 하나를 골랐다. 그러나 내가 먹어본 것은 한정적이었고,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것을 먹고 싶었다.
예전의 나라면 그냥 있는 거면 먹고, 맛집을 찾아 돌아다닐 정도로까지 미식가는 아니었다. 대부분 맛있는 가게를 가는 것도 이찬혁이나 김세아 때문에 갔던 거지, 나 스스로 알아보고 찾아간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투기장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훈련을 하면서도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 바쁘게 달려오면서 제대로 된 휴식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항상 무슨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을 해결하면서 보내왔다.
더군다나 한 달 내내 비슷한 열매 종류만 먹다 보니 물렸다. 그러면서 현실에서 먹었던 음식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첫날 먹은 라면도 맛있었지.’
투기장에서 돌아온 날, 라면 5봉을 끓여서 먹었다. 해외를 나가 본 적이 없지만, 대부분 하는 이야기들이 매콤한 음식이 당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라면은 정말 맛있었고, 아직도 그 맛이 잊히지 않았다.
두 번의 임무를 더 하는 동안에도 근처에 있는 맛집이라는 맛집은 다 돌아다닌 것 같았다. 고기는 물론, 평소에는 먹지 않던 생선 집까지 모두 돌아다녔다.
사실상 식탐은 어느 정도 해소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뭔가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고픈 소망이었다.
“에휴.”
“한숨 쉬지 마. 그럼 내가 진짜 이상한 놈처럼 보이잖아.”
“그건 그렇고. 조사단 임무는 대체 뭐야?”
B급 임무를 수행하면서 김세아의 실력도 꽤 많이 늘었다. 거기다 마탑도 들어가지 않는다고 확실하게 선포한 뒤, 좀 더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채하나가 조사단 임무에 김세아를 포함시켰다.
겉으로 보여준 것은 내가 더 많은데, 아직까지는 김세아가 믿음직스러운 모양이었다. 내가 간다고 했을 때는 그렇게 말리더니, 김세아는 알아서 추천했다.
‘뭐, 혼자보단 두 명이 나으니까.’
임무를 맞추면서 시너지 효과도 났고, 하나 보다는 둘이 더 나을 거라는 채하나의 판단이 들어갔을 것이다.
“던전에서 실종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건 알고 있지?”
“응, 들었어.”
“그 실종 사건에 대한 조사를 위해 조사단이 꾸려질 거야. 대부분의 상위 길드에서 참여한다고 들었어. 내가 아는 것은 이 정도. 자세한 것은 내일모레 있을 모임에 나가봐야 알 것 같아.”
채하나도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내가 들은 것도 길드장이 얘기해 준 것이 다였으니, 자세한 진행 사항은 모르고 있었다.
내일모레 비공식적으로 모임이 있을 예정이었다. 이번 조사단 임무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헌터들이 모이게 된다고 들었다.
조사단의 단장은 현 그린나래 길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헌터 박동식이었다.
강력한 탱커형 헌터인 박동식은 그린나래 길드에서 꽤 높은 위치에 있었다.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의 던전 브레이크에 참여한 공로가 있었다.
그린나래 소속이라는 것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박동식의 인성은 훌륭하다고 이미 헌터 업계에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럼 내일모레 보자. 모임 시간이 오전 10시니까 이동 시간까지 고려해서……. 9시까지는 여기로 올게.”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김세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내가 다급하게 외쳤다.
“맛집 추천 하나만 해줘 봐. 오늘 먹으러 가게.”
“나도 저녁은 먹으러 가야 하니까 같이 먹자. 문자 보낼 테니까 거기로 와.”
“오케이.”
* * *
“배부르다.”
나는 볼록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침대에 누웠다. 김세아와 함께 저녁을 먹은 음식집은 정말 맛있었다.
내일 다시 가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생각이 났다. 그러나 정말 갈 생각은 없었다. 내일 간다고 해도 오늘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지금 느낌에 충분히 만족했다.
거기다 내일모레 있을 조사단 모임에 대한 사전 준비를 해야 했다. 일주일 동안 휴가 기간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임무는 그만큼 중요했고, 사실상 조사만 할 뿐 크게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자료실에 다시 가 봐야겠지.’
나와 김세아에 한해서 아이리스 길드의 자료를 제한 없이 볼 수 있었다. 우리 둘은 조사단에 파견되기 때문에 길드장의 권한으로 일시적으로 풀어주었다.
생각보다 자료가 많아 날 잡고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해 미루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일은 그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반만 하면 되니까.’
이미 절반 정도는 김세아가 끝내놓았다. 내일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해서 김세아는 먼저 분석을 끝냈다. 이제 남은 몫은 내 것이었다.
“발칸.”
이곳에 돌아오고 나서 발칸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불러보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열어 확인도 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화면에서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매일 같이 불러댔지만, 대답이 없어서 나중에는 포기했다. 그러다 문득 다시 떠올라 발칸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역시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내가 저지른 일들 때문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섬에서 나는 진행자를 엿 먹이기 위해 옆에 있는 섬으로 도망쳤다.
보상으로 주는 것도 모조리 챙겼고, 잘 모르겠지만 여러 부분에서 큰 타격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헤카테와 싸우지도 않을 건데 능력까지 줘버렸으니까.
그리고 한 번 준 능력은 회수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내가 가진 능력들도 회수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쉽게 섬을 도망칠 수 있었다.
“진짜 어디 끌려간 건가.”
“끌려가긴 어딜 끌려가.”
발칸의 목소리였다. 나는 깜짝 놀라 서둘러 스마트폰을 확인했지만 그곳에는 발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좌우로 둘러보며 살펴봤지만 주먹만 한 발칸의 모습은 역시나 없었다.
“어딜 봐. 밑을 봐야지.”
나는 발칸의 말에 침대 밑을 내려다보았다. 2층 침대라 비교적 시야가 안 나와서 미처 확인하지 못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금발 머리를 한 미소년이 서 있었다.
내가 처음 튜토리얼 층을 끝내고 보았던 그 금발 머리 소년의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발칸이 스마트 폰에서 나오는 법을 알아낸 것 같았다.
“뭐야. 그 모습은.”
“이제 요령을 깨우쳤다. 아마 이 상태로 5분 정도는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다.”
“대답은 대체 왜 없던 거야.”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방해받기 싫어서 소리가 들리는 것을 차단했지. 딱 운 좋게도 방금 전에 성공을 했고, 네 목소리를 들었다.”
발칸은 다시 작은 모습으로 변해 내 옆으로 왔다. 나도 나만 한 덩치의 남자와 한 침대에 누워서 이야기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래서 이번 투기장은 잘 끝낸 건가?”
“그게 말이야.”
나는 투기장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좀 더 세밀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조금 늘려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조용히 경청하는 발칸에게 모든 이야기를 했고,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발칸이 입이 떡 벌어졌다. 평소에 특유의 분유기를 보이던 발칸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눈까지 휘둥그레지니 꽤 귀여웠다. 잠시 아무 말 없던 발칸이 삐걱거리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마무리가 잘됐나?”
“여기 살아서 돌아왔잖아. 얘기했다시피 다른 섬에서 무사 귀환했다.”
“그게 문제가 아니다. 섬을 넘어가는 경우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네가 최초로 그런 것도 아니고, 이전에도 몇 번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그래?”
“무사히 살아남은 것만 따지면 네가 처음이다. 대부분의 투사가 옮긴 섬에서 죽어버렸으니까.”
발칸도 진정을 했는지 목소리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진행자 쪽이다. 네가 한 짓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쓸데없는 적을 만들어버린 것 같다.”
“적을 만들다니.”
진행자는 그 섬에서 계속 있을 테고 나는 투기장을 계속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발칸의 뉘앙스가 이상했다. 만들 수 없는 적을 만들었다는 것을 보니 심상치 않았다.
“흐음. 이것까지는 얘기가 가능한가 보군.”
혼잣말을 하던 발칸이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투기장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있나?”
“그럼. 너무나 한정된 정보로 인해 제대로 고민해 볼 수 없었지만. 가지고 있는 정보 한에서는 깊게 고민해 보았지.”
“그렇다면 투기장에서 관람하는 관객들은 누구일지도 생각해 보았나?”
관객.
투기장 운영되려면 기본적으로 투사들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 투사들이 준비되면, 가장 중요한 것이 관객이었다. 관객들이 투사들의 경기를 보지 않으면, 그 투기장은 운영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관객은 중요했다.
“신…… 아니야?”
포인트를 줄 수 있으면서, 진행자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내 머릿속에 그런 존재는 신밖에 없었다. 현실에서도 따로 믿고 있는 신은 없지만, 투기장에는 확실히 신이 존재했다.
투기장의 신.
그렇다면 신이 하나가 아닐 수도 있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관객들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신들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다.”
발칸은 단호했고, 관객의 정체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강한 노이즈가 섞였고, 나는 발칸의 말을 온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건 안 되나 보군. 하여튼 관객들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둬라. 그리고 진행자의 경우는 어쩔 수 없지. 네가 지금보다 더욱 강해지는 수밖에.”
“그 소리는 언젠가 진행자와 만나서 싸우게 된다는 거야?”
“그래. 그때가 되면 왜 싸우게 됐는지 알게 될 거다. 이미 엎질러진 일이니 쓸데없이 깊게 고민하지 말고, 강해지는 것에 집중해.”
나는 순간 백소교가 떠올랐다. 자신의 스폰서인 루이와 이야기를 하며 비밀스러운 정보도 교환했다. 그런 능력이 내게 없는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백소교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에 관한 내용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아, 그리고 루이라고 알아?”
고민하면서 떠올랐던 루이에 대해서 발칸에게 물어보았다. 깜박하고 있어서 처음에 얘기하지 못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발칸의 얼굴이 한순간에 뭉개졌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로 보는 발칸의 웃긴 모습이었다.
“뭐, 뭐라고?”
“너와 같은 하이 클래스 소속 스폰서 루이. 이번 투기장에서 루이라는 스폰서가 스폰하고 있는 투사와 만났어. 왜 만나면 안 되는 거였어?”
“그건 아니다. 나랑 같이 한동안 투사를 스폰하지 않았던 터라, 지금 활동하고 있다는 소리에 놀라서 그런 거다.”
발칸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루이가 스폰하는 스폰서와는 좀 친해졌나?”
“어쩌다 보니.”
“그럼 됐다. 앞으로는 2 대 2 결투가 한동안 펼쳐질 테니,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는 건 좋다.”
“근데 루이는 우리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던데. 너랑은 무슨 사이인 거야?”
잠시 침묵을 가지던 발칸의 몸이 흐릿하게 변했다. 그러고는 내 눈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비밀이다.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인데, 이것 또한 다음에 백소교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녀라면 알고 있을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