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31화
32장 또 다른 고인물(3)
이곳저곳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섬 위에는 조그마한 건물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마석으로 움직이는 건물 안은 매우 바쁜 상황이었다.
“관객들이 야유를 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지속됐다가는 관객들이 모두 빠져나갈 것 같습니다.”
“일부 관객들이 포인트 환불을 요청했습니다.”
정신없는 현장 가운데 투기장의 관리장인 요정이 화로 위에서 가만히 떠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까지 여파가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투기장을 진행한 것이 한두 번도 아니었고, 그때마다 관객들은 매우 좋아했다.
고인물과 신입.
이 구도는 꽤 많은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구조였다. 먼저 고인물들이 엄청난 힘으로 압살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운 좋게는 신입들이 힘을 얻어 고인물들을 잡는 영웅적인 서사도 보여줄 수 있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좋아하더니. 이제 와서 이렇게 난리를 치면 어쩌잔 거야.”
요정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떠올려 보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열광하더니, 조금 과했던 모양이었다. 강함이란 것도 적당해야 했는데, 지금 고인물들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지금 신입들과 고인물 투사들 얼마나 남았는지 파악해 봐.”
요정은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하기 위해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부하들은 빠르게 정보를 조합해서 요정이 원하는 정보를 가져왔다.
“현재 남은 기존 투사는 5명. 신입은 40명 남았습니다.”
아직까지는 괜찮은 편이었다. 여덟 배의 비율로 남아 있으니 분위기가 반전될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나 함부로 투기장에 개입할 수는 없었다. 신과 같이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신입들이 처음 도착해서 룰을 설명할 때뿐이었다. 그 이외에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되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진행 중에 특이한 사항이 발견되면 바로 보고해.”
요정은 화로 속에서 빠져나와 뒤에 있는 문으로 이동했다. 자동으로 열린 문을 나서, 복도를 조금 걸어간 뒤에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 여러 개의 화면이 비치고 있었고, 다양한 생김새를 가진 관객들이 섬을 보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요정은 그 모습을 보며 잠시 침묵에 빠졌다. 관객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투기장에서 관객이 빠져나간다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이렇게…… 이렇게 망칠 순 없어.”
이번만 제대로 마무리하면 윗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엄청난 노력 끝에 이 자리까지 왔는데 그것을 한 번의 실수로 망칠 수 없었다.
“시원시원한 맛으로 봤는데 이것도 이젠 질리네.”
“그러게. 다른 곳은 쟁쟁한 경기가 많다던데 거기나 가봐야겠네.”
“쯧. 그러는 게 좋겠다. 나중에 생각나면 그때나 한번 들러봐야겠네.”
관객들이 하나둘 떠나가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내뱉는 이야기까지 들리니 더욱 신경이 쓰였다.
요정은 가만히 앉아서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신경이 쓰이지만 이런 유사한 상황은 항상 있었고, 잘 헤쳐왔다.
분명 이 상황도 기회의 발판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때, 복도를 달려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꽤나 다급한지 후다닥 달려오고 있었다. 이내 문이 열리고 부하 한 명이 얼굴을 내밀었다.
“진행자님, 특이 사항을 발견했습니다.”
요정은 입꼬리를 올리며 부하를 쳐다보았다. 이 상황을 반전시킬 무언가가 저 부하의 입에서 흘러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그래. 이런 것도 있어야지.”
“하하하하. 저놈 처음이랑은 완전 딴판이구만.”
관객들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무슨 상황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긍정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부정적인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요정은 관객들에게서 벗어나 부하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신입 투사가 기존 투사 한 명을 잡아냈습니다.”
“크큭큭”
요정은 기뻐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있던 상황 중 최고의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되면 어느 정도 개입을 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당장 돌아가자.”
관객들의 이탈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조금이라도 기대가 되는 상황이 되었으니 몰아쳐야 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온 요정은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마이크 켜.”
부하들은 요정의 말과 함께 빠르게 움직였다. 각 투사들에 대한 방송 시스템을 켰고, 준비된 마이크를 요정 앞으로 가져갔다.
요정은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새로운 룰 하나를 추가하겠습니다.”
* * *
내 질문에 백소교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생각을 깊게 하는 중인지, 나를 제대로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이 협력 관계가 지속되려면 백소교가 나에게 확실한 믿음을 줘야 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에 대해선 말해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금빛 주먹 투사는 백소교를 보고 놀라운 것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스태프를 가지고 있는 투사에게도 탐욕을 드러냈고, 역시나 스태프를 든 투사는 앱솔루트 배리어라는 사기적인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뭘 가지고 있기에.’
그런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도, 투사에게 밀렸던 것인지 궁금했다. 앱솔루트 배리어는 고인물들의 공격도 가볍게 막아냈다.
그런 사기적인 능력을 백소교는 사용하지 못했다. 사용을 안 한 것일 수도 있지만, 목숨이 위태한 상황에서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스킬을 얻어야 해요.”
입을 다물고 있던 백소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백소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다른 투사를 즉살시킬 수 있어요. 하지만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사용할 수 있어요.”
“그걸 줄이기 위한 스킬이 필요하다?”
“그래요.”
“그런 걸 왜 지금까지 숨긴 거지?”
“예?”
내 반문에 백소교가 당황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백소교가 어느 부분에서 걱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남을 즉살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한 팀을 맺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항상 앞을 걸어가면서도 뒤통수가 얼얼할 테니까.
더군다나 이곳은 남을 죽여야 사는 곳이고, 남보다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저런 사기적인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은 확실히 위험했다.
“그거야…….”
“됐고. 그럼 너도 지금 상황에 답이 없다는 거네?”
“그렇죠…….”
“그럼 일단 움직이자.”
차라리 이런 편이 속 시원했다. 백소교를 좀 더 믿게 될 수 있었고, 포기하고 나니 다른 쪽으로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일단 이번에 들어온 틈은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지금 밖으로 나갔다가는 고인물들의 공격을 받아 위험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주면 우리를 쫓아 들어올 게 분명하니 도망도 가야 했다. 나는 파이어 볼을 만들었고, 백소교는 내 뒤에 섰다.
“조건 맞는다고 죽이면 가만 안 둔다.”
“지금 죽일까요?”
“에이 씨.”
분위기 전환용 농담이었는데 저리 나오니 섬뜩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앞으로 걸어갔다. 틈은 사람 한 명 정도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주위를 환하게 밝힐 수 있는 사람이 나였기에 자연스럽게 내가 앞에 섰다. 입구로 들어간 다음, 파이어 볼을 일직선으로 날려보았다.
파이어 볼이 날아가면서, 틈 내부를 밝혀주었다. 일정 거리까지 날아간 뒤 파이어 볼이 사라졌다. 그 위치까지는 안전하다는 뜻이었고, 생각보다 틈이 크다는 것을 알았다.
“가자.”
나는 다시 파이어 볼을 띄우고 이전보다는 조금 빠르게 이동했다. 어느 정도는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했기에 이렇게 이동할 수 있었다.
쿠우웅!
머리 부분에 있던 돌들이 갈라져 가루와 함께 밑으로 떨어졌다. 나는 빠르게 머리 위로 팔을 들어 막았다. 뒤에 있는 백소교 또한 나와 같은 자세였다.
분명 우리가 들어온 입구 쪽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마나 탐지를 사용해 보았지만, 입구 쪽에서 투사들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느껴졌다. 입구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 하나와 절벽 위쪽으로 추정되는 곳에 하나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밑에 있는 투사가 입구를 막아버린 것 같았다.
우리가 나오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 같았다. 아니면 우리가 입구로 나오길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식량도 식수도 구할 수 없을 테니까.
예전이었다면 포인트 상점에서 해결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이곳에서 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일단 들어가자.”
우리는 안쪽으로 들어갔고, 두 개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나는 왼쪽에 있는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으로 가자.”
“오른쪽이 더 마음에 드는데.”
백소교가 오른쪽 길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언가 끌리는 것이 있는지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나눠져서 움직이자. 식량과 식수가 없는 상황에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으니까. 아마 입구를 막아 놓은 이유가 있을 테니 고인물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할 거야.”
“그럼 그렇게 하죠.”
백소교가 오른쪽 길로 들어갔고, 나는 왼쪽에 있는 길로 들어섰다. 왼쪽에 나 있던 길을 쭉 따라가자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나선형으로 돼 있어 위로 올라가는 구조였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듯 정교한 구조였다. 이런 곳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구조물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혹시 모를 함정에 대비하면서 걸어 올라갔다. 앱솔루트 배리어가 있으니, 조금은 감당하기 벅찬 함정이 나와도 살 수 있었다.
계단의 끝에는 하나의 문이 달려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라 부수면 간단하게 열 수 있었다. 나는 검을 들어 마나를 사용해 문을 부쉈다.
콰아앙!
자욱한 연기가 퍼져 나가고, 나는 기침을 하며 손으로 바람을 일으켰다. 팔로 왼발로 입가를 가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는 시체 썩은 냄새가 가득했다.
“이건…….”
바닥에 수갑이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를 가둬뒀던 공간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기분 나쁜 냄새는 이곳에서 죽은 누군가의 시체에서 나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코를 틀어막고 돌아다녔다.
대부분이 철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나는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건질 만한 것이 없었다. 그나마 찾은 것이라고는 다른 곳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그때, 요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부터 새로운 룰 하나를 추가하겠습니다.
새로운 룰을 추가하겠다는 것은 지금 분위기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았고, 원하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 새로운 룰을 추가하는 것 같았다.
‘어차피 따라야지.’
-지금부터 투사를 죽이면, 그 투사의 모든 능력을 가질 수 있어요. 이 룰은 6시간만 지속되며, 이후에는 원래 룰처럼 사라질 거예요. 히히.
무슨 그림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고인물을 노리는 룰이라는 것이다. 진행자는 죽인 투사의 모든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인물 투사 한 명을 잡으면, 그 순간 내가 고인물이 된다는 소리와 같았다. 비록 숙련도가 부족하겠지만, 신입 투사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여러모로 불공평하겠죠. 그래서 신입 여러분들에게 준비한 선물이 있는데요. 이 섬에는 찾기 힘든 다섯 개의 장소가 있어요.
나는 지금 서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곳도 요정이 말한 다섯 장소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쿠구궁!
다시 한번 진동이 울리고, 머리 위로 돌과 가루들이 떨어졌다. 아무래도 요정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이 바뀐 모양이었다.
-그 다섯 곳에 가게 되면 원하는 것을 하나 가질 수 있어요. 그것이 아이템이 되었든 스킬이나 능력이 되었든.
나는 속으로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저기만 가게 되면 무효화를 얻을 수 있었다.
-아 참. 그리고 찾기 쉽게 초록빛이 나도록 설정했습니다. 그럼 재미있는 경기를 기대할게요. 헤헤.
요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가 있는 철창 안에서 초록빛이 나는 자그마한 상자가 보였다.
‘저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