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27화
31장 이변(2)
“저 미친 새끼가!”
“저 새끼 뭐야.”
투기장에 혼돈이 찾아왔다. 투기장에 들어가기 위해 대기 중이던 투사들은 곁눈질로 입구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곳에 서 있는 산발 머리의 투사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강렬했고, 방금 전 엄청난 위력의 마법을 선보였기에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다.
‘누구지.’
산발 머리는 분명 신입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렇고, 분명 우리보다 먼저 온 투사가 분명해 보였다. 그러니 우리를 보면서 신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곳에 남아 있는지가 중요했다.
대충 두 가지 정도가 떠올랐다.
첫 번째는 홀수로 남았을 경우였다. 마지막까지 남은 투사가 3명일 경우, 두 명이 결투를 치르게 되면 한 명이 남는다. 이럴 경우, 섬에 남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이 섬이 계속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일부러 올라가지 않고 계속 남아 있는 경우였다. 아까 보았다시피, 물이나 식량들이 섬 안에 존재했다.
마음만 먹으면 먹고 사는 것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단순하게만 생각해 보았을 때, 왜 남아 있는 지가 중요했다.
전자의 경우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선택 사항이었다.
“그래그래! 다 덤벼라!”
콰아아앙!
다시 한번 투기장 주위로 전격이 내리꽂혔고, 스파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와 나는 빠르게 눈을 가렸다.
눈을 가렸음에도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게 번쩍였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기준 왼쪽 투사들은 거의 반죽음 상태였다.
산발 머리 투사는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산발한 머리 사이로 노란 눈빛이 번쩍였다. 그러다 한 투사 앞에 멈춰 선 산발 머리 투사가 자신의 주먹을 들어 올렸다.
“네 놈, 좋은 것을 가지고 있구나. 크흐흐.”
산발 머리 투사의 손이 거대해지더니, 쓰러진 투사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사방으로 피가 터져 나갔고, 산발 머리 투사의 주위로 하얀 빛이 어렸다가 사라졌다.
‘감별까지…….’
이제 확실해졌다. 산발 머리 투사는 후자에 속했다. 특히나 저 노란 눈빛으로 투사들이 가진 능력을 파악해 좋은 것만 추려서 가졌다.
저렇게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하나 확실한 건 저놈을 쓰러뜨려야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산발 머리 투사가 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상, 다음 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투사는 없을 것이다.
“다들 모여봐! 저놈부터 쓰러뜨리자고.”
“저놈만 잡으면…….”
“저 새낀 내가 죽인다!”
경미한 부상을 가지고 있던 투사와 숲에서 나처럼 상황을 지켜보던 투사들 일부가 모였다.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산발 머리 투사의 주위로 다른 투사들이 모였고, 각자의 필살기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투기장 주위로 각양각색의 마나가 요동쳤다.
그러나 가운데 있는 산발 머리 투사는 웃고 있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에서 준비를 끝낸 투사들이 강력한 마법을 사용했다. 허공에서 번개가 내리치고, 얼음으로 된 창이 날아들었으며, 화염 폭탄이 터져 나갔다.
쾅!
콰아아앙!
쿠구구궁!
그러나 모두가 산발 머리 투사를 공격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옆에 있는 투사, 앞에 있는 투사들을 노리며 병장기를 휘두르고 마법을 사용했다.
“크아아악!”
“이런 개새끼가!”
“나 혼잔 절대 안 죽어!”
실질적으로 산발 머리 투사에게 날아간 공격은 적었다. 그 공격들조차도 산발 머리 투사의 손짓에 가볍게 사라졌다.
아비규환이 되어버린 투기장.
그곳에선 배신의 배신이 연속적으로 일어났고, 일부 투사들은 만족스러운 결과와 함께 그곳을 빠져나갔다.
시체만 가득한 돌무더기 언덕에 남아 있는 것은 움직이지 못하는 심각한 부상자들과 산발 머리 투사뿐이었다.
“쯧. 버러지밖에 없군.”
산발 머리 투사가 남아 있는 부상자들은 건드리지 않은 채 모습을 감췄다.
나는 마나 탐지를 사용해 산발 머리 투사를 확인해 보았다. 역시나 모습을 숨겼을 뿐, 투기장 근처에 머물고 있었다.
그것을 모르는 몇몇 투사들이 투기장으로 나왔다. 투기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걸어가던 도중, 옆에 쓰러져 있는 부상자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큭. 능력은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겠지?”
“살려줘…….”
투기장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는 지옥.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믿지 말아야 하며, 누구보다 강해야 했다.
‘움직이자.’
이곳에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나도 빠르게 움직여서 다른 투사들을 처리해야 했다. 좀 더 많은 능력을 가져야만, 저 산발 머리 투사를 상대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몸을 돌려 숲으로 들어갔다. 뒤에서는 방심하고 있던 투사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저 좀 살려줄래요?”
숲을 빠져나오던 도중 다른 투사에게 둘러싸인 백소교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실력이라면, 저기서 도망가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하지만 백소교는 무언가에 당한 듯,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세 명의 투사는 고개만 살짝 돌릴 뿐,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 누가 백소교의 능력을 가질지 싸우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에 백소교를 죽이고 다른 투사를 노렸을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있음에도 누구하나 나한테 다가오지 않았다. 세 명의 투사 모두 서로를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두 명은 내꺼다.”
“세 명 다가져도 돼요.”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백소교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러곤 아까 주워든 검을 꺼내 들고 투사들을 향해 달려갔다. 미래를 보는 눈을 사용하자 놈들의 움직임이 보였다.
한 놈은 뒤로 살짝 빠졌고, 나머지 두 놈이 앞으로 다가왔다. 각각 검을 들고 있는 투사였고, 온몸에 털이 덮여 있는 것을 보아하니 인간은 아닌 것 같았다.
‘방심하면야 나야 좋지.’
나는 순간적으로 속도를 올려 왼쪽에 있는 놈에게 검을 찔렀다. 빠르게 나아간 검은 투사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끄아악!”
검을 빼내고 목젖을 발로 찬 뒤, 옆에서 다가오는 투사를 향해 일직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공격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다가오지 못하게 할 요령이었다. 투사는 내 공격에 의해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그로 인해 나에게 한 번의 텀이 생겼고, 일단 뒤에 쓰러진 놈을 확실하게 처리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떴지만, 그것을 확인하기보다는 앞에 있는 투사를 향해 달려갔다.
검에서 뿜어져 나온 마나가 투사에게 쇄도했다. 번쩍이는 검격과 함께 투사의 목이 잘려 나갔고, 나는 바로 자세를 틀었다.
파앙!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미래를 보는 눈이 아니었다면 쉽게 피하지 못했을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미 공격이 들어간 것인지, 내 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젠장.’
너무나 안일하게 생각했나 싶었다. 혼자 남아 있던 투사가 씩씩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고맙다…… 커억!”
투사의 목으로 얇고 긴 검이 튀어나왔다. 투사는 자신의 목을 부여잡으며, 파르르 떨더니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뒤로 백소교의 모습이 보였다. 연검을 회수해 자신의 허리춤에 매고 있었다.
“이건 도와준 거예요.”
“고맙다.”
투사를 죽인 순간, 내 몸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왜 몸을 움직일 수 없는지, 백소교에게 물어보았다.
아마도 시전자를 죽인 백소교에게 스킬이 같을 테니까.
“요거예요.”
백소교의 손끝에 아주 작은 하얀 빛이 서렸다. 그녀는 옆에 있는 나무를 향해 하얀빛을 날렸다.
작은 침처럼 빠르게 날아가 나무에 박혔다.
“아깐 에어 볼 마법으로 시선을 끌고 이 마법을 사용한 거예요. 그러니까 못 알아챘을 수도 있어요.”
“조심해야겠네.”
의미 없는 싸움은 하지 말라는 발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아마 같이 있었다면, 쓴소리를 했을 것이다.
“어찌 됐건 목숨을 살려줘서 고마워요.”
“됐어. 어차피 찾아가려던 참이었으니까.”
“왜요?”
답을 알고 있음에도 모르는 척 웃고 있는 백소교의 모습이 보였다. 워낙 해맑은 웃음이라 밉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평소라면 쉽게 믿을 법했지만,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확신은 금물이야.’
그건 그렇고 백소교를 찾아가려던 이유는 협력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혼자서 상대하는 것보다는 두 명이 나을 테니까.
“일시적 협력 관계를 맺으러 왔지. 기한은 산발 머리 투사를 죽이는 것까지다. 어때?”
“좋아요.”
“그리고 산발 머리 투사에 대해서 아는 것 좀 있나?”
왠지 백소교의 스폰서라면 뭔가를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역시나 백소교가 뭔가를 알고 있는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정확히 들은 건 아니고,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이런 무대가 되는 섬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층에 다수의 진행자가 있으니 다수의 섬이 있을 거예요.”
“그래.”
모르던 내용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그렇게 놀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그중에 위로 올라가지 않고 남아서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것에 만족하는 변태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왜지?”
“위로 올라가면 지금 얻은 능력들은 사라지니까요. 올라가고 싶지 않은 거죠.”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산발 머리 투사는 위로 올라가는 게 무서워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지금 가진 힘이라면 이곳에서 평생을 강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
백소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 가지 사실을 더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변태들이 여럿 있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뭐?”
그런 강자들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명이라는 이야기는 조금 충격이었다. 방금 보였던 산발 머리 투사의 강함은 상상 초월이었다.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비벼 볼 수도 없을뿐더러, 많은 사람을 모으더라도 잡기 힘들어 보였다.
아직 존재를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백소교의 말은 확실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그래서 더욱 닭살이 돋았다.
“이런 놈들에 대한 제재는 없는 건가…….”
“아마도요. 강해진 투사끼리 싸우는 것 또한 관객들에게 재미를 주는 요소니까 제재를 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쓰읍…….”
침이 썼다. 그러나 아예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루이라는 스폰서도 백소교에게 과거형으로 얘기했다.
그런 변태들이 있었다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이려는 백소교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내 표정을 본 백소교가 내 쪽으로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요?”
“얘기 안 한 게 있잖아.”
“네?”
“그래서 그 변태 놈들을 처리할 방법은 뭐지?”
“그건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예상외의 답변이었다.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더니 갑자기 마지막 대답을 피했다. 백소교는 몸을 돌리며 말했다.
“저도 아직 당신을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좀 지켜보고 믿을 만하면 그때 말해드리죠.”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나 또한 백소교를 믿지 않는 상태면서, 백소교는 나를 완전히 믿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 알겠다.”
일단은 지금 상황에서 할 것은 정해져 있었다. 안전 구역을 확보하고, 투사들을 죽이면서 힘을 길러야 했다.
산발 머리 투사를 비롯해 확인되지 않은 다른 강자들을 이기기 위해선 확실한 한 방이 있어야 했다.
그 확실한 한 방은 이번 투사들에게서 얻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된다면 시간이 더욱 걸릴 수 있었다.
‘다음 신입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나는 마음을 단단히 먹으며, 백소교와 함께 이동했다. 우선은 안전 구역을 찾아야 했다.
누구도 찾을 수 없거나, 찾을 수 있더라도 찾기 어려운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