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25화
30장 투기장의 꼭두각시들 (3)
정면에 보이는 라이칸 스로프 세 마리 중 왼쪽에 있는 놈을 쳐다보았다. 한쪽 눈에 검으로 만들어진 흉터가 있었다.
그 흉터가 있는 눈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나는 왼쪽에 있는 라이칸 스로프를 향해 움직일 준비를 했다.
“같이 하죠.”
갑작스럽게 옆으로 다가온 무복녀가 얇은 검을 꺼내 들었다. 팔랑거리며 휘어지는 검이었다.
연검.
옛날 중국에서 사용하던 무기로 허리띠처럼 숨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숙련도가 떨어지면 평범한 칼을 들고 있느니만도 못해서, 사용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아니, 현대에 와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저런 연검보다는 일반적인 검을 사용하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알려진 검법 또한 많아서 익히기도 쉬웠다.
‘실력자인가…….’
긴장한 것 같지 않은 무복녀의 모습을 보아하니, 연검을 잘 다룰 것 같았다.
“왼쪽은 내가 맡지.”
“그래요.”
나는 검이 없기에 손가락을 움직이며 긴장을 풀었다. 권법이라고 하는 것을 익힌 적도 없었고, 막 싸움을 해본 적도 드물었다.
이곳에 오기 전, 발칸의 조언으로 검이 아닌 주먹을 사용하는 헌터들의 영상을 찾아서 보았다. 검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헌터들의 강의 영상을 모두 챙겨보았다.
‘할 만해.’
눈으로 보기만 할 뿐, 실제로 훈련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라이칸 스로프를 능가하는 육체적인 능력도 있으니 별문제 되지 않을 것이었다.
몬스터와 싸워본 것이 처음도 아니고, 검만 없을 뿐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크르릉.”
앞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라이칸 스로프를 향해 움직였다. 지면을 박차고, 빠르게 접근해 주먹에 마나를 둘렀다.
퍽!
순식간에 사라진 내 몸은 정면에 있던 라이칸 스로프의 앞에 나타났고, 내 주먹은 라이칸 스로프의 턱을 가격했다.
턱뼈가 아스러지는 소리가 났고, 라이칸 스로프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일단 한 놈은 끝났고.”
뒤이어 달려온 무복녀가 연검을 화려하게 휘두르며 오른쪽에 있는 라이칸 스로프를 몰아쳤다.
그녀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라이칸 스로프의 몸에 하나둘 상처가 나기 시작했다.
삭!
잠깐 정신이 팔린 사이, 붉은 눈의 라이칸 스로프가 나를 공격해 왔다. 날카로운 발톱이 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빠른 반사신경 덕분에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하늘 위로 나풀거리는 머리카락이 조금 거슬리지만, 나는 자세를 고쳐 잡고 라이칸 스로프를 쳐다보았다.
“크륵! 너부터 죽이고 네 힘을 가져야겠다.”
“누구 맘대로.”
먼저 달려오는 라이칸 스로프의 발톱을 피하며, 자세를 숙였다. 그때 라이칸 스로프의 오른 무릎이 내 얼굴을 향해 오고 있었다.
“흡.”
나는 숨을 참으며, 왼쪽 다리에 힘을 주었다. 급하게 경로를 틀어서 그런지 자세를 바로 잡을 수 없어 바닥을 한 번 굴렀다.
나는 정면에서 달려오는 라이칸 스로프의 주먹을 쳐다보며, 양손을 교차해 들어 올렸다.
마나를 끌어올려 막았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었다. 바로 반격을 하기 위해, 몸을 왼쪽으로 회전하며 주먹을 날렸다.
파앙!
내 공격은 허공을 갈랐고, 라이칸 스로프의 붉은 눈이 번쩍였다. 자세를 숙이고 있던 라이칸 스로프의 돌려차기가 날아왔다.
콰아앙!
나는 바로 자세를 바꿔 발차기로 응수했다. 발에 담긴 마나가 터져 나왔고, 라이칸 스로프가 쩔뚝거리며 몸을 뒤로 뺐다.
지금이다 싶어 몸에 마나를 끌어올렸다. 한층 빨라진 속도로 라이칸 스로프에게 다가가 주먹을 휘둘렀다.
펑! 펑! 펑!
빠른 연타 공격이 허공에서 터져 나갔다. 내 공격을 깔끔하게 피해낸 라이칸 스로프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라이칸 스로프는 마치 내가 어딜 공격할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한 번이야 운이라고 할 수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도 내 공격을 모두 피해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변칙적인 루트까지 사용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번쩍이는 붉은 눈과 함께 라이칸 스로프가 몸을 움직였다.
나는 붉은 눈을 유심히 쳐다보며, 라이칸 스로프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곤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내가 피하려고 했던 곳으로 라이칸 스로프의 발톱이 내리그어졌다. 다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면, 꽤나 깊은 상처를 얻을 뻔했다.
‘역시.’
라이칸 스로프는 붉은 눈을 통해 내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 그러니 내 공격은 모두 빗나갈 수밖에 없었고, 라이칸 스로프는 강력한 후속타를 날릴 수 있었다.
“크아악!”
옆에 있던 곳에서의 전투는 끝이 난 모양이었다. 라이칸 스로프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고, 무복녀가 검에 묻은 피를 털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붉은 눈의 라이칸 스로프를 쳐다보았다. 원인을 알았으니, 이제 끝을 볼 시간이었다.
내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는 라이칸 스로프에게 일반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은 힘들었다.
얼마나 내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해결법은 간단했다. 바로 반응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를 내면 됐다.
몸 안에 흐르는 마나를 더욱 퍼뜨리며, 지면을 박찼다. 한껏 가벼워진 몸과 빨라진 속도로 라이칸 스로프의 앞에 섰다.
바닥에 쓸린 먼지가 퍼지기도 전에, 내 주먹이 먼저 움직였다. 고개를 돌리려고 하는 라이칸 스로프의 머리가 보이지만, 소용없었다.
퍼억!
내 주먹은 그대로 명중했고, 라이칸 스로프의 몸이 휘청거렸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왼쪽 다리를 걷어차며 자세를 무너뜨렸고, 몸을 회전시키며 강력한 발차기로 라이칸 스로프의 머리를 걷어찼다.
허공으로 흩뿌려지는 피와 이빨이 보였다. 확실한 처리를 하기 위해 가볍게 지면을 박찼다.
“이 새끼가! 크르륵!”
라이칸 스로프의 붉은 눈이 다시 번쩍였다. 뒤로 넘어가던 라이칸 스로프의 몸이 멈췄다. 하반신에 근육이 꿈틀거리며 자세를 지탱했다.
마지막 일격을 피하려는 움직임이었지만, 이젠 끝낼 시간이었다. 나는 엄청난 속도로 바닥에 떨어졌고, 주먹에서는 마나가 끌어 오르고 있었다.
콰아아앙!
주먹에서 나온 마나가 지면에서 터져 나갔다. 땅이 파여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냈고, 라이칸 스로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구덩이에 퍼져 있는 피와 살점들이 보일 뿐이었다. 내가 라이칸 스로프를 죽이자,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라이칸 스로프 ‘카락’을 처치하였습니다.]
[스킬 ‘미래를 보는 눈(D)’를 얻었습니다.]
역시나 스킬 내용을 확인해 보니 내 움직임을 어떻게 예측했는지 알 수 있었다.
미래를 보는 눈.
대상을 지정하면 1초 뒤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무한정은 아니었고, 제한시간이 3분 정도 있었다.
그다음 미래를 보는 눈을 사용하려면 1시간이라는 쿨타임이 존재했다. 충분히 사기라고 불릴 수 있는 스킬인 만큼, 함부로 사용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좋은 걸 얻었나 봐요.”
무복녀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가까이서 들으니, 목소리가 얼굴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원한다면 가져가도 좋아.”
나는 식지 않은 투기를 끌어올리며, 무복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무복녀가 손에 들고 있던 연검을 집어넣었다. 싸울 의사가 없다며 손까지 살짝 들었다.
“궁금했을 뿐이에요. 이렇게 같이 싸우기도 했는데 연합하는 거 어때요?”
“별로.”
나는 무복녀를 지나치며 뒤로 돌았다. 활짝 열린 신전 안에 남아 있는 투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전투가 벌어지는 동안 모두 도망간 모양이었다. 애초에 그런 의도로 나선 것이기 때문에 지금 상황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다들 도망갔네요.”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무복녀의 모습이 보였다. 정말 진심으로 그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위해서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나를 위해서 움직였고, 혹시 모를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먼저 움직인 몬스터 투사들이 투기장을 점령해 버린다면, 인간형 투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가뜩이나 이곳에 갇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인간 투사들은 이미 최정예가 되어버린 몬스터 투사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나중에 내가 투기장에 들어서려고 할 때, 혼자는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판을 만든 것이었다.
‘근데 왜 하나지?’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 쓰러뜨린 라이칸 스로프의 스킬이 넘어오지 않았다.
총 두 구의 라이칸 스로프 시체가 보였다. 나머지 한 구는 내 공격에 형태를 잃어버렸다. 하나는 연검으로 인해 난도질 되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심장이 뜯겨져 있었다.
나는 심장을 공격한 적이 없었다. 그 말은 즉, 다른 누군가가 심장을 공격하고 라이칸 스로프를 마무리 지었다는 소리였다.
“불공평하다고 외친 남자가 죽였어요.”
무복녀가 범인을 알려주었다. 무복녀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나를 보고 발걸음을 돌리며 말했다.
“알겠어요.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면 말해요.”
무복녀가 신전 주위를 벗어나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인상을 찌푸린 것은 무복녀 때문이 아니라 범인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가질 것을 빼앗은 범인을 잡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이 있었다.
‘투기장부터.’
섬 중앙에 있다는 투기장을 찾고, 그곳의 분위기를 파악해야 했다. 그리고 상황에 맞춰 투기장에 들어가 승리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마나 탐지를 사용했다. 이 섬이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모르기 때문에 꽤나 많은 양의 마나를 소모하면서 파악해야 했다.
‘꽤 넓네.’
신전이 있는 곳은 섬의 끝부분이었고, 섬 중앙은 꽤나 멀었다. 그리고 중앙을 향해 움직이는 다수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도 다수가 움직이는 방향을 쳐다보며 움직였다. 요정은 섬 중앙에 투기장이 있다는 이야기만 했을 뿐, 상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투기장에 대해서도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게 분명했다. 투명화 마법으로 인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땅 밑에 만들었을 수도 있었다.
“후우…….”
조금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한 투사가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무복녀인 것 같은데 아마도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조금 빙 둘러가는 것을 선택했다. 조금은 믿을 법도 하지만, 혼자 움직이는 게 편했다.
-아아! 모두 들리시나요? 헤헤.
하늘에서 울려 퍼지듯 요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잠깐 자리에 멈춰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혜택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 아마 각자 원하는 게 다를 테니, 각자 원하는 것들로 채워보았습니다. 헤헤.
요정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킬 수에 따른 혜택.]
3킬 : E등급 스킬 획득권
4킬 : D등급 랭크 업(스킬)
5킬 : C등급 스킬 획득권
6킬 : B등급 랭크 업(스킬)
7킬 : A등급 스킬 획득권
10킬 : S급 마석
나는 마지막 항목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부터 진행될 결투들은 모두 의미 있는 싸움이 될 것이다.
10킬을 하고 S급 마석을 얻어야 하니까.
그러기까지 남은 킬 수는 9킬이므로, 나는 섬 중앙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