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23화
30장 투기장의 꼭두각시들(1)
김세아의 결정에 채하나가 방방 뛰며 난리를 쳤다. 다행히 세아와 함께 들어갔기에 나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채하나는 두 시간가량을 붙잡고 김세아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김세아는 완강했고, 결국 채하나가 두 손 두 발을 다 들면서 끝이 났다.
“그럼 다음 임무는 이대로 갈거니?”
“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갈 임무는 김세아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저번과 다른 조사 임무도 아니었고, 공략 임무이기 때문에 더 편할 수도 있었다.
“후우……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애들을 다보네. 하이루드 마탑에 검성이 운영하는 기관까지.”
채하나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우리 둘을 쳐다보더니 다시 한번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세아도 훈련을 해야 해서 같이 일어났다.
“저도 가보겠습니다.”
집무실을 나와서 1층으로 내려갔다. 잠시 카페에 들러 다음 임무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눴다.
“임무 수행 이틀 전에 만나서 회의하자. 그때까지는 개인 훈련에 집중하는 것으로 하고.”
내 말에 김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오늘 만났던 곳에서 계속 훈련을 할 생각이니까 급한 일 있으면 거기로 와. 연락은 끊어놓고 훈련에 집중할 생각이라.”
“그래. 나야 뭐 항상 폰을 들고 다니니까 연락해.”
그 외에 간단한 이야기들을 나눈 뒤에 김세아가 먼저 자리를 떴다. 나는 카페에 남아서 남은 커피를 모두 마셨다.
‘어떡하지.’
이렇게 카페 남아 움직이지 않는 것은 눈앞에 떠 있는 메시지 때문이었다.
[투기장 까지 남은 시간은 04 : 46 입니다.]
[먼저 입장이 가능합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김세아가 자리를 뜨면서 메시지가 나타났다. 아직 입장까지 시간이 남았지만, 일찍 입장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보였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기에 섣불리 입장하지 않고 기다렸다. 이번 투기장에서 발칸에게 들은 것은 티켓이 중요하다는 것 밖에 없었다.
일단은 발칸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었다. 나는 발칸과 편하게 대화하기 위해 숙소로 올라갔다.
“발칸.”
-왜?
이번 대답은 꽤나 빨랐다. 항상 뭔가에 몰두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내가 타이밍 좋게 부른 모양이었다.
“이번 투기장에 대해 설명 좀 해줘.”
-음…… 이번 투기장의 키워드는 생존이다.
“생존이라면…… 다른 투사들과 싸우는 건가?”
발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냥 싸우는 것은 아닌지, 추가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그래. 하지만 조금 다르다. 이번 투기장에서 넌 아마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잃어버릴 거다. 처음 투기장에 왔을 때로 돌아가겠지.
“…….”
-투사들 모두 처음 투기장에 도착했을 때로 돌아가 경쟁을 하게 될 거다. 그러나 종족마다 가진 힘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형평성에 문제가 생기게 되지. 그래서 생긴 것이 티켓이다.
내가 저번 층을 클리어하고 받은 프리미엄 티켓이 떠올랐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히든으로 클리어하라는 발칸의 말을 듣고 프리미엄 티켓을 얻었다.
-그 티켓은 현재 가지고 있는 힘을 가져다 쓸 수 있게 만들어준다. 아마 프리미엄 티켓이니 세 가지를 쓸 수 있겠지.
“스킬만 해당 되는 거냐?”
-아니. 장비는 물론 스킬이나 육체적인 능력 모두 가능하다. 뭐가 제일 최고의 선택일지는 잘 알아서 선택해라.
“그거 말곤 또 없어?”
-이번 투기장은 특히나 조심해라. 너처럼 강한 놈들이 우글거릴뿐더러, 가지고 있는 능력들이 꽤나 다양할 테니까. 내가 예전에 본 것 중에 하나가 흡혈이었다.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서 자신의 체력을 회복하는 투사가 있었지.
현실에도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뱀파이어로 변신하는 특성을 가진 헌터들의 능력이었다.
몬스터들의 피를 빨아 자신의 체력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정말 사기적인 능력 중 하나지만, 뱀파이어로 변신해 송곳니로 직접 피를 흡수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어떤 종족은 기본적으로 가진 힘이 다른 종족에 비해 10배 이상 강했다. 기본 티켓으로 낡고 낡은 검을 소환했음에도 압도적인 힘 차이를 보이며 투기장에서 살아남았지.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가만히 들어보니 만만치 않은 층이 확실했다.
지금까지 비교적 쉽게 투기장을 올라왔지만, 이제부터 진정한 투기장의 시작 같았다.
다른 투사들과 제대로 붙는 것이기도 했고, 키워드가 ‘생존’이라 그런지 피가 끓어올랐다.
“후우.”
너무나 오래 기다렸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길었고, 그사이에 무수히 많은 일이 있었다.
그만큼 성장했고, 이 힘이 투기장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도 궁금했다. 더불어 나와 비슷한 강자들이 있다니 빨리 붙어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의미 없는 싸움은 하지 마라.
투기장에서 살아남기 위에 싸우는 것이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내가 살기 위해선 걸어오는 싸움은 무조건 이겨야 했다.
“의미 없는 싸움?”
-이건 투기장에 가면 알게 될 거다. 얘기가 안 나오는 거 보니 이건 정보를 풀 수 없는 것 같다. 이번 투기장은 키워드에만 집중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존’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고, 의미 없는 싸움을 하지 말라는 발칸의 말을 되새겼다.
-내가 해줄 이야긴 여기까지고. 이번에도 잘 해낼 거라 믿는다.
“당연하지.”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넣고 침대에 누웠다. 얼추 내가 선택할 것은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었다.
좀 더 신중한 고민을 해도 좋지만, 지금 당장 투기장에 가는 것이 좋아 보였다.
먼저 가서 투사들을 파악하고, 전략을 짜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적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니까.
나는 메시지를 보며 수락을 선택했다.
[투기장으로 이동합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앞은 어두컴컴했다. 뭔가가 눈을 가린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상태에서 몸을 움직여 보았다. 팔과 다리가 묶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다음은 몸에 있는 마나를 확인했다. 발칸의 말처럼 내 몸에 남아 있는 마나는 너무나 적었다.
내가 가진 모든 능력치가 없어졌다. 예전이라면 그랬겠지만, 지금은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침착하게 자리에 앉아 앞이 보이길 기다렸다. 점차 어둠이 사라지며, 주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돌로 만들어진 기둥들이 보였고, 중앙에는 활활 타오르고 있는 화로가 보였다. 내부만 보면 신전인 것 같았다.
나는 좀 더 자리를 옮겨 내부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신전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안에 그려진 벽화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신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안쪽 깊숙이 들어가게 되면, 어둠과 함께 벽 쪽이 완전히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그곳에 그려진 벽화 또한 볼 수 없었다.
화로가 주위를 비추고 있는 곳에서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어둠에 숨어 나에 대한 흔적을 숨겼다. 모든 게 기본으로 돌아간다면, 감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찾는 것이 힘들 것이다.
적당한 시간이 흐르고, 하얀 빛과 함께 투사들의 모습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 모두 나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지, 주변을 더듬거리고는 바닥에 앉았다. 나는 그들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가장 처음에 나타난 투사는 나와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중국 대륙에서나 입을 법한 검은 무복을 입고 있는 여성이었다.
김세아 못지않게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흘리는 분위기가 다르기에 좀 더 신경이 쓰였다.
마나가 없는 상황에서도 그녀가 풍기는 존재감은 대단했다. 그 뒤에 나타난 다른 투사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시선을 돌려 여자의 옆에 나타난 투사를 쳐다보았다.
오크처럼 초록 피부를 가졌으나, 생김새는 인간에 가까웠다. 단단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으며, 코가 돼지 코처럼 올라가 있었다. 피부색과 코만 제외한다면 인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하프 오크.
실제로 본적이 없으며, 아직 현실에서 나타나지 않았지만 개념상으로만 알고 있는 종족이었다.
오크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하프 오크가 무서운 점은 그 둘의 장점을 모두 가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머리와 오크의 힘을 모두 가졌기 때문에 하프 오크가 강할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알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조심해야 해.’
그 둘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눈을 끄는 투사들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점점 늘어나는 투사들의 수가 많아졌고 내 눈으로 그들 모두를 좇기 힘들었다.
투기장의 시작이 가까워지는지, 여러 명의 투사가 한 번에 신전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나타나는 투사들은 바로 앞이 보이는지, 주변을 경계했다.
라이칸 스로프부터, 미노타우르스, 놀, 오크, 고블린 등 다양한 종족의 투사가 나타났다.
얼추 100여 명의 투사가 이 신전 안에 나타난 것 같았다. 그중에 인간은 오분의 일 정도였다.
‘그만큼 이 탑에서 인간이 살아남기 힘들다는 거겠지.’
하지만 그 반대로 살아남은 인간들이기에 다른 몬스터들보다 더욱 강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점을 생각하며,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눈에 담았다.
특히 처음에 나타났던 검은 무복의 여자와 하프 오크는 1순위로 올려놓았다.
“여기가 어딘지 아는 놈 있나?”
다른 투사들보다 세 배는 커 보이는 거인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얘기했다. 움찔거리는 주먹은 나의 몸만 할 만큼 거대했다.
“인간. 그 냄새나는 입 좀 닥쳐라.”
오크가 코를 벌렁거리며 거인을 노려보았다. 덧니처럼 나온 송곳니가 눈에 띄었다. 코를 벌렁거리는 오크가 거인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큭.”
거인이 피식 웃더니 주먹을 올렸다가 오크를 향해 내리찍었다.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서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서 경쟁자가 한 명 줄어드는 일이니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쿵!
그러나 거인의 주먹은 오크에게 닿지 못했다. 투명한 막에 막혔고, 오크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지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에이, 본격적인 시작도 하기 전인데 이렇게 성급한 분들이 있었네요.”
화로가 활활 타오르더니 조그마한 요정의 형상으로 변했다. 그 요정은 웃고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이 경기를 관람하는 관객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후후”
“넌 뭐지?”
거인이 요정을 보며 말했다. 그러자 요정이 신전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이야기 했다.
“저는 진행자입니다. 이번 층을 담당하고 있죠. 후후”
요정의 말에 거인이 씨익 입꼬리를 올리더니, 다시 주먹을 들어 올리며, 있는 힘껏 내려쳤다.
“쪼그만 게 시끄럽네.”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며 내려쳐진 거인의 주먹에 요정의 모습이 산산 조각나며 사라졌다. 몇몇 투사들은 꽤나 놀랐는지,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안 죽었어.’
나는 어둠에서 화로를 쳐다보았다. 다시 타오르는 화로에서 요정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번에 나타난 요정은 조금 화가 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형 스폰서가 붙으신 분이네요. 후후. 근데 말이죠. 스폰서에서 말을 안 하던가요?”
요정의 손짓과 함께 거인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이번에야말로 대부분의 투사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그러곤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요정을 쳐다보았다. 요정은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제 신경을 건드리는 투사님이 꼭 한 명씩 계시더라고요. 보셨죠? 제 신경 건들지 마세요. 시작도 하기 전에 죽고 싶지 않으면. 후후”
“…….”
“투기장의 신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제가 이 층에 한해서는 신의 대리인이니까요.”
그러다 꿍한 표정을 짓더니, 이전과 같은 아이의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위에서 빨리 경기를 시작하라고 재촉하네요. 그럼 본격적인 게임의 룰을 설명해 드릴게요. 자알 들으세요, 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