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22화
29장 각자의 자리(3)
“못 본다는 게 무슨 소립니까.”
나는 정면에 보이는 채하나를 쳐다보았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난 채하나가 무언가를 들고 왔다.
얇은 A4 종이 한 장이었다.
그 안에 적힌 글씨는 영어였고, 빽빽이 차 있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지막 줄에 있는 인장이었다.
마법사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넓은 챙 모자가 그려져 있고, 그 위로 빗자루가 새겨져 있었다.
검은 모자와 하얀 빗자루.
저 인장을 사용하는 곳은 너무나 유명해서 모를 수가 없는 곳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탑이기 때문이다.
하이루드 마탑.
마법사를 양성하는 데 있어서 최고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이름 있는 유명한 마법 계열 헌터들이 이곳을 수료했고, 수료한 헌터들이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이었다.
세계 최고 길드라고 불리는 미국의 A.G 길드의 부길드장인 헤리케인이 하이루드 마탑 출신이었다.
손짓 한 번에 던전 브레이크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을 정리하는 영상은 아직까지도 높은 조회수를 가지고 있었다.
“그 콧대 높은 양반들이 직접 입학 허락서를 보내왔어.”
하이루드 마탑을 들어가는 과정은 꽤 까다로웠다.
일단 자신의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아야 했다.
총 3차 테스트까지 진행되어 100명을 선발한다. 그다음 100명을 모아놓고 끊임없이 경쟁시킨다.
선의의 경쟁.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선의의 경쟁이라고 해도, 결국엔 서바이벌이었다. 살아남는 자만이 마탑에 남을 수 있었으니까.
100명의 헌터 중 딱 3명만이 정식적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그 3명은 하이루드 마탑의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얼마나 배워서 나오는지, 얼마나 강해져서 나오는 건지는 개인 역량에 달렸다.
단, 한 가지 확실한건, 하이루드 마탑 출신치고 약했던 헌터들은 없었다.
“그 정도로 인정받은 겁니까?”
그래서 하이루드 마탑에서는 입학서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희망자에게서 입학서를 받았다.
가끔, 예외는 있었다.
하이루드 마탑에서 직접 입학서를 보내는 경우가 있었다. 테스트를 거치지 않아도, 하이루드 마탑에서 인정을 받게 되면 입학할 수 있었다.
헤리케인도 하이루드 마탑에서 직접 입학서를 보낸 경우였다. 입학서를 받은 헌터는 3차 테스트를 건너뛰고 시작할 수 있었다.
“그래. 김세아에게도, 길드 측에도 나쁜 제안은 아니니까. 적극적으로 밀어줄 예정이야. 김세아도 생각이 있다면 마탑에 들어가겠지.”
마탑에서 강해질 수 있는 김세아, 그런 김세아를 길드에 데리고 있을 수 있는 아이리스 길드.
아마 마탑에서 수련하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것을 아이리스 길드에서 지불할 것이다.
수련을 받는 것에는 꽤 많은 돈이 들어서 대부분 길드 측에서 지원을 해주는 편이었다.
“잘 됐군요.”
아무래도 개인 임무를 할 수 있는 쪽으로 다시 골라야 할 것 같았다. 이번에 고른 임무는 혼자 하기에 조금 벅찼다.
“올라온 김에 네가 가서 전해줘.”
채하나가 입학서를 나에게 건넸다. 나는 옆에 있는 봉투에 입학서를 넣고, 주머니에 챙겼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임무는 다시 골라서 오겠습니다.”
“그래.”
채하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때 채하나가 뭔가 생각난 듯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너한테도 2차 수련 기관에서 연락 온 곳들이 있는데. 이거 가져가.”
채하나가 두툼한 봉투 뭉치를 나에게 건넸다. 나는 한 손에 간신히 잡히는 봉투를 쳐다보았다.
2차 수련 기관.
1차 수련 기관인 헌터 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가는 곳이었다. 헌터 학교가 고등학교까지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2차 수련 기관은 대학교 과정과 비슷했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좀 더 세밀하게 공부하고 채울 수 있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헌터들이 길드에서 1년을 채우고 2차 수련 기관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수련기관을 졸업하면 실력적인 면에서는 확실하게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들어가는 법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2차 수련 기관의 입학 신청은 간단했다. 길드에서 6개월 이상의 경력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했다.
“전 어차피 조사단에 들어가야 하니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나는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봉투들을 버렸다. 그러자 채하나가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검성이 운영하는 수련 기관도 있었는데?”
30년 전 검으로 유명했던 검성 이무학이 말년에 만든 수련 기관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명한 수련 기관이었다.
하이루드 마탑 정도는 아니지만, 꽤 알아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메리트가 크게 없었다.
5년 전, 검성이 죽고 군성 그룹에서 인수를 하면서 국내에서 이름값은 조금 떨어졌다.
게다가 검성에게 직접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나에게는 시간 낭비였다.
“예, 필요 없습니다.”
2차 수련 기관이 아니더라도 내 시간을 쓸데는 많았다. 던전을 돌며 포인트를 쌓고, 스탯을 올리는 게 나한테는 이득이었다.
훈련 또한 발칸에게 받으면 되니까, 더더욱 2차 수련 기관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가 보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채하나에게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김세아에게 문자를 보내 어디 있는지 확인했다.
‘멀리도 있네.’
김세아에게서 온 답장을 확인하고, 건물 밖으로 나와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오기 전 근처 마트에 들러 핫팩 5개를 구매했다.
“강원도 오대산으로 가주세요.”
택시기사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장거리 손님이니 반가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안전벨트를 맸고, 택시는 강원도 오대산을 향해 출발했다.
* * *
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듯 보인다고 해서 청학산이라고도 불리는 오대산에 김세아가 훈련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오대산 있는 던전 안에 있었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 던전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후우.”
찬바람이 쌩쌩 불고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퍼졌다. 그만큼 날씨가 추웠지만, 이 정도 추위는 추위로 느껴지지 않았다.
체력 스탯이 올라가면서, 어느 정도의 추위와 더위는 버틸 만하게 변했다. 7랭크를 올리면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을지 궁금했다.
“여기쯤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마나 탐지를 사용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던전 포털을 찾았다.
조그마한 동굴처럼 생긴 곳 안에 포털이 생성되어 있었다.
이 던전은 산악구조대에 의해 발견되었다.
애초에 이곳은 산행 코스도 아니었고, 일반인은 들어올 수 없는 구역이었다. 산행에 자신 있던 한 사람이 무모하게 이곳으로 오다가 길을 잃어버렸고, 구조대에 구조 신청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곳이 알려지게 되었다.
다행히 던전 브레이크의 조짐은 없었고, 헌터들에 의해 던전은 정리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얼음, 물 속성 헌터들이 훈련하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일단.’
던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할 일이 있었다. 아까 구매했던 핫팩을 모두 뜯었다. 부착식이기 때문에 하나는 심장 근처에 나머지는 팔과 다리에 하나씩 붙였다.
뜨듯한 열기가 몸으로 퍼졌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휘이이잉!
던전 안에는 칼바람이 불고 있었다. 온통 보이는 것이라고는 눈 폭풍밖에 없었다. 하늘에서 계속 쏟아지는 굵은 알맹이의 눈과 바람이 계속해서 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마나를 몸에 둘렀다.
그러자 마나가 보호막처럼 내 몸으로 침투하는 칼바람을 일부 차단해주었다. 다음으로 마나를 핫팩 쪽으로 보내 열기를 극대화 시켰다.
‘따뜻하네.’
나는 가볍게 몸을 움직여보았고, 잘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고 나서 발걸음을 옮겨 안쪽으로 들어갔다.
눈 폭풍을 지나고 나니, 비교적 날씨가 깨끗했다. 길게 그어진 선을 기준으로 내가 건너온 곳은 눈 폭풍이 몰아쳤고, 선 너머는 구름만 조금 있을 뿐 잠잠했다.
“아이스 볼!”
“아이스 스피어!”
“아이스 포그!”
그 안에서는 꽤나 많은 헌터들이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대상은 자신들이 만든 얼음 인형이었다.
속성이 있는 마법사들은 대부분 속성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훈련을 했다. 그래서 에베레스트산에 오르기도 하고, 화산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벼락을 맞기도 하고, 하늘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마법을 쓰는 헌터들 중에 괴짜들이 많다는 이미지가 생기기도 했다.
“어디 있으려나.”
나는 김세아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입구로 들어와서 보이는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있다고 적혀 있었다.
‘설마 저건 아니겠지?’
딱 봐도 멀어 보이는 곳이었다. 심지어 산봉우리가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한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가장 높은 산봉우리는 저것밖에 없었다.
나는 가볍게 털레털레 앞으로 뛰어갔다. 그러다 몸에 마나를 끌어올리며, 앞으로 치고 나갔다.
이형환위의 쿨 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사용하면서 빠르게 달렸다. 중간중간에 시냇물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고, 그곳에서도 헌터들이 자신의 마법을 훈련하고 있었다.
거대한 얼음 문을 지나, 나는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도착했다.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합!”
눈을 밟으면서 도약했다. 중간중간 얼음이 있는 곳에서도 미끄러지지 않았고, 위로 치고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고 나서야 구름이 있는 곳이 나타났다.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 마나 탐지를 사용해 위로 올라갔다.
이제 이 정도는 가볍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마나 탐지의 숙련도가 오른 상태였다.
구름을 뚫고 나오자, 거대한 봉우리 위쪽에 평평한 곳이 보였다. 그곳에는 자그마한 초막집이 있었고, 그 앞에는 김세아가 서 있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김세아를 쳐다보았다. 머리가 하얗게 변하면서 마나가 요동치는 것을 보니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자리에 멈춰 김세아의 훈련을 지켜보았다.
‘음?’
그러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요동치던 마나는 가라앉았고, 김세아의 머리도 원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니 마법에 실패한 모양이었다. 나는 발걸음을 움직여, 김세아에게 다가갔다.
“뭐야 방금 마법은?”
“아, 연습중인데 쉽지가 않네.”
“무슨 마법인데?”
“비밀이야. 나중에 성공하면 알려줄게. 그나저나 여기까진 무슨 일로 온 거야?”
나는 품에 있던 봉투를 꺼내서 김세아에게 건넸다. 봉투를 받아 든 김세아가 봉투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채하나 선배님이 전해주라 해서 가져왔다.”
김세아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영어를 빠르게 훑어 내려가면서 마지막에 찍힌 인장에 도착했다.
“하이루드 마탑에서 입학서를?”
“그러게 너 완전 출세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김세아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으음…… 이거 입학일이 다음 주잖아. 그날은 너랑 임무하기로 했던 날 아니야?”
“그치.”
“그럼 안 갈래.”
“뭐?”
생각외의 답변에 나는 당황한 표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김세아라면 무조건 갈 줄 알았다.
“그런 짱 박힌 곳에서 공부만 하면서 마법 수련을 하느니, 차라리 몸으로 부딪치면서 성장하는 쪽이 훨 나아.”
“그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아니, 됐어. 나중에 강해졌을 때 하이루드 마탑의 꼬리표를 달고 싶진 않아. 스스로 강해져서 인정받을 거야.”
너무나도 확고한 모습에 내가 설득할 틈은 보이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피식 웃었다.
김세아가 나를 보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왜 웃냐?”
“그냥.”
문득, 이 소식을 듣게 될 채하나의 표정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