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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역대급 수련-120화 (120/177)

# 120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20화

29장 각자의 자리 (1)

진이 빠져 몸을 가누지 못하는 김세아를 의무실에 넘겼다. 간호사가 건네는 서류에 내 연락처를 남겼다.

과하게 마나를 사용한 나머지 몸에 무리가 간 모양이었다. 나도 많이 겪었던 일이고, 김세아도 겪어봤을 것이다.

푹 쉰다면 며칠 안으로 컨디션은 돌아올 것이다.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김세아를 쳐다보았다.

간호사가 링거를 김세아의 팔목에 놓기 위해 왔다. 김세아에게 다가가는 간호사를 보며 말했다.

“깨어나면 연락 주세요.”

나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김세아가 저 상태라서 남은 일 처리는 내가 진행해야 했다.

먼저, 회의실로 올라가 오늘 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파이어 골렘을 만난 것과 드라칸이 나온 일들을 기억의 순서대로 적었다.

화산의 폭발과 그 밑에서 드라칸이 나온 것, 드라칸의 괴성으로 몬스터들을 조종한 것까지 모두 적었다.

“으아아!”

머리 위로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었다. 한 자세로 오래 있다 보니 몸이 찌뿌둥했다.

짜릿함과 나른함이 온몸에 퍼지면서 나는 의자에 기대며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이제 적을 건 다 적었고, 가져가서 보고만 하면 끝이었다. 그리고 올라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타오르는 화염 꽃.”

내 오른손 위에 타오르는 화염 꽃이 나타났다. 던전에 있던 화산에서 봤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성장형 검 제작서.”

왼손에 양피지 조각이 하나 나타났다. 그곳에 새겨진 글씨는 내가 읽을 수 있었고, 재료들의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기본 재료의 대부분은 이미 채워져 있었다.

나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화염 꽃을 왼손에 있는 제작서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시스템 창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타오르는 화염 꽃을 등록하시겠습니까?]

나는 수락했고, 오른손에 있는 화염 꽃이 하나의 빛줄기로 변해 제작서에 들어갔다. 이로써 남은 재료는 S급 마석과 메인 재료 3개였다.

“드라칸의 보주.”

붉은빛을 발하는 구슬이 오른손에 나타났다. 약간은 따스한 느낌도 나는 드라칸의 보주를 한 손에 쥐고 굴렸다.

4개의 특성을 가졌고, 드라칸의 비늘이라는 갑옷형 스킬이 붙어 있었다. 성장형 무기이면서, 방어구까지 활용할 수 있으니 지금 상황에선 최고의 재료라고 볼 수 있었다.

드라칸의 보주 또한 등록시키기 위해 제작서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이전과는 조금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메인 재료로 드라칸의 보주를 등록시키시겠습니까?]

[한 번 등록하면 취소할 수 없습니다.]

나는 멈칫했다.

바로 등록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계속 구슬을 굴리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매인 재료를 지금 등록시키려고 했던 것은 제작 시간을 좀 더 단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한 번 등록한 뒤에는 취소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니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더 좋은 재료가 있지 않을까.’

A급 던전도 아니고, B급 던전에서 나온 재료였다. 조만간 A급 던전에 들어갈 것이고, 좀 더 좋은 재료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던전에 들어간다고, 무조건 재료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동시에 무의미한 시간만 흘러갔다. 굉장한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보니,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충분하지만, 아직 나오지 않은 미지의 재료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압!

끊임없이 물고 무는 생각의 고리를 잘라 버린 것은 발칸의 목소리였다. 기합을 주는 듯한 발칸의 소리에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멍하니 있던 시야에 초점이 맞춰지고, 회의실이 눈에 담겼다. 나는 발칸의 목소리가 들린 것을 떠올리고,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어?”

잠금 화면을 해제하고, 발칸의 모습을 찾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발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 있다.

내 귀에는 계속해서 발칸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면에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내 눈 위로 자그마한 빛 하나가 나타났다.

“뭐야.”

나는 그 빛을 없애기 위해 손을 움직였다. 그러자 자그마한 빛이 요리조리 움직이며, 내 손을 피했다.

-나다! 나라고!

귓속에서 울리는 발칸의 목소리에 내 손이 멈췄다. 그제야 자그마한 빛도 가만히 멈춘 채 내 앞에 떠 있었다.

“발칸?”

-그래.

평소에 즐겨 하던 게임도 끊고, 영혼에 관련된 마법에 집중하더니 결국 해낸 모양이었다.

아직 완벽한 것 같지는 않지만, 아예 답이 없던 상황에서 이 정도까지 해낸 발칸도 대단했다.

“그 모습은 뭐야.”

-얼추 나오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보이는 것처럼 이런 조그만 형태가 한계다.

빛의 모습을 한 발칸은 이곳저곳을 움직이며,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아마도 멀어질 수 있는 거리를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50㎝.’

발칸이 스마트폰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 거리였다. 이번에는 빛이 점점 밝아지려 하고 있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거리도 짧고, 원래의 모습을 찾는 것도 아직까지 힘든 것 같은데. 유지시간은 3분이라……. 한숨만 나오는군.

“이 정도가 어디냐. 지금까지 스마트폰에만 있었으면서.”

-이제 슬슬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말로만 해서 알려주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무기 제작은 잘 되어가고 있나?

나는 지금 하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발칸이 생각보다 빠른 답변을 주었다.

-당장 등록해라.

“더 좋은 게 나올 수도 있는데?”

-음, 잠깐만 기다려라.

조그마한 빛이 움직여 스마트폰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유지시간이 끝난 모양이었다.

발칸은 스마트폰 화면에 나타났다. 그러곤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무기를 왜 만든다고 생각하는 거냐.

“좀 더 강해지기 위해서지.”

-아니. 분명 너한테도 얘기했던 것 같은데. 성장형 무기를 만들어 네가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강해진 너의 힘을 견딜 만한 검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확실히, 발칸이 처음에 성장형 무기를 만들라고 하면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음 한구석에서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의 너는 충분히 강하다. 그리고 내가 알려준 기술들을 연마하고, 투기장을 오르게 되면 이보다 더욱 강해질 거다. 조급해하지 마라.

조급해하지 마라.

그 말이 가슴에 팍 꽂혔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린나래 길드와 붙기 전에 있었던 훈련부터였던 것 같다.

이진수를 잡기 위해, 스탯을 올렸고 발칸에게서 이런저런 기술들을 빠르게 배웠다.

그래서 제대로 익숙해진 것은 하나도 없었고, 흉내 내는 게 다였다. 그런 상황에서 억지로 기술들을 사용하다 보니, 나 스스로도 부족하단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려고 하니, 나도 모르게 다른 방법으로 강해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딜레마에 빠지지 마라. 네 목표를 다시 떠올리고, 차근차근 집중해야지. 지금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너도 너의 힘에 잡아 먹히게 될 거다.

“그래.”

나는 발칸의 충고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고, 마음을 환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오른손에 다시 드라칸의 보주를 꺼내 제조서에 집어넣었다. 다시 메시지가 떴지만, 결정에 번복은 없었다.

내 수락과 함께 빛이 나며 드라칸의 보주가 제조서로 들어갔다. 그리고 제조서에 무언가가 추가되었다.

[제조 시간 : ???]

제조 시간이 뜬 것을 보니, 성장형 무기 제조가 시작된 것으로 보였다. 저 물음표가 정확한 시간으로 바뀌는 것은 모든 아이템이 들어간 다음일 것이다.

-그래서 훈련은 언제부터 할 거지?

“내일부터 해야지.”

이제 B급 임무가 끝났으니 며칠 동안은 휴식 기간이 주어질 것이다. 그때 훈련을 하고, 투기장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더욱 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알겠다.

발칸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전처럼 자신이 할 일에 집중했다. 나는 스마트 폰을 끄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곤 아까 스치듯 보았던 것을 떠올리며, 아공간 주머니를 열었다. 그곳 제일 상단에 위치한 보석이 보였다.

“음…….”

분명 저 보석은 저주받은 동굴에서 얻었던 보석이었다. 그 당시에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확인할 수 없던 터라, 저렇게 처박아 놓은 채 잊고 있었다.

나는 저 보석을 꺼냈다.

그리곤 감별 스킬을 사용해 보석을 확인해 보았다.

[???]

구분 : 재료

속성 : 무(無)

+특성 : ???

[스킬 등급이 낮아 아이템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B급 감별 스킬로 확인 가능한 것은 구분과 속성뿐이었다. 그 이외에 것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이렇게 되니 점점 더 궁금해졌지만, 당장 감별 스킬에 포인트를 투자할 수는 없었다.

나는 보석을 다시 집어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작성한 보고서는 잘 정리해 두었다.

보고는 내일 할 예정이니까.

* * *

회의실에서 나온 뒤, 간단하게 한잔하고 잠을 자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과자 종류와 맥주 6캔짜리 묶음을 사서 길드 숙소로 돌아왔다.

부우우웅!

숙소 앞에 검은색 리무진 차량 3대가 나열되어 있었다.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포장된 상자를 가지고 나와 차에 실었다.

나는 그것을 훑어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완전히 저녁이 되긴 이른 시간이라 길드에는 꽤 많은 사람이 남아 있었다.

길드 안에 있던 몇몇 사람들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눈에 익은 사람을 발견했다.

길드 대항전 당시, 군성 그룹의 회장인 이용학을 호위하던 경호원이었다. 유일하게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 않아, 알아볼 수 있었다.

‘뭐지?’

군성 그룹의 사람들이 아이리스 길드까지 들어올 일이 있나 싶었다. 이찬혁은 여행을 떠난 상태여서 더욱 이곳에 왜 왔는지 싶었다.

저 경호원은 이용학을 모셨을 거고, 이 안에 이용학이 갈 만한 곳은 길드장실 정도밖에 없었다.

둘이서 무슨 대화를 할까, 잠깐 떠올렸지만 이내 생각하는 것을 접었다. 그 둘이 무슨 대화를 하든 나와는 상관이 없을 테니까.

지금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내 손에 들린 맛있는 과자와 시원한 맥주가 기다리고 있었고, 숙소에는 따스한 침대가 있었다.

“음?”

경호원 눈이 마주쳤지만, 나는 시선을 돌려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혼자 술을 먹으면 심심하니 이찬혁이 받아놓았던 박영주의 드라마나 보면서 술을 먹으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재밌다면서 난리를 칠 정도였으니까, 한 번 속는 셈 치고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재미없기만 해봐라.’

나는 숙소에 도착해 문 앞에 섰다.

무언가 썰렁한 기운과 함께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항상 다니던 익숙한 곳에서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긴장감을 가라앉히며, 오른손을 들어 문고리에 올렸다. 천천히 문고리를 돌리고, 살짝 문을 열어 안쪽을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안쪽을 확인한 나는 급히 문을 활짝 열었다.

숙소 안은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낯선 사람들의 흔적으로 가득했으며, 이찬혁이 쓰던 짐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경호원들이 아까 가져갔던 상자, 그 안에 이찬혁의 짐이 들어 있던 것이다.

내가 샀던 과자와 맥주를 대충 던져놓고, 밖으로 나왔다. 동시에 스마트 폰을 꺼내 이찬혁에게 연락했다.

신호는 계속 가지만, 받지 않았다. 나는 불길한 생각을 잠재우며,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이찬혁 몰래 그러는 거라면, 내가 막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이용학이라도 가만히 둘 생각은 없었다.

띠링!

그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여행을 간다고 했던 이찬혁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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