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역대급 수련-110화 (110/177)

# 110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10화

26장 황무진(4)

황무진의 말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용산에 나타났던 베티스는 분명 강한 몬스터에 속했다.

마나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헌터들도 피해가 없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예상이 갔지만, 지금 황무진의 말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진천우는 베티스를 가볍게 제압했다. 그만큼 강하다는 소리였고, 즉 쉽게 죽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정신 차려.’

나는 엄청난 속도로 뻗어 나가는 상상을 멈췄다. 지금 상상하는 것들은 말 그대로 상상일 뿐 진실이 아니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채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알게 됐으니, 자리를 정리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황무진의 시간은 비쌌으니까.

하지만 나는 진천우에 대한 것을 더 알고 싶었다. 왜 죽었는지, 죽었다면 어디에 묻혀 있는지, 그리고 진천우가 있는 곳으로 직접 가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앞에 있는 황무진을 쳐다보며 물었다.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그러자 황무진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웃거나 포근했던 느낌은 사라졌고, 진중하고 차분하게 나를 보며 말했다.

“자네가 지금까지 해준 공로에 대한 대가는 방금 알려준 것으로 끝이 난 것 같은데.”

채하나는 나와 황무진 사이에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 알고 싶다고 해서 내가 알려줄 이유는 없는 거 아닌가?”

황무진의 표정에서 느껴졌다.

내게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황무진은 지금 할 이야기를 빌미로 거래를 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 거래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 상황에서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힘들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한 가지 일을 해주면 돼. 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야.”

고민은 할 필요가 없었다.

“하겠습니다.”

황무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천우와 관련 있는 일이기도하고, 지금 아이리스 길드 내에선 자네가 가장 적합하기에 이런 거래를 한 거지만 그만큼 지원은 확실하게 해주지.”

뭔가 낌새를 알아챈 채하나의 표정이 빠르게 굳었다. 그러곤 황무진의 앞에 서서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길드장님. 안됩니다.”

“지금 상황에 오유성 말고 더 적합한 사람이 있나?”

황무진의 말에 채하나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단순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아직 그 일을 맡기에는 부족합니다.”

채하나가 걱정해 주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황무진에 거래를 수락했다. 이 이야기는 사실 상 그것으로 끝이었다.

내가 하기로 했으니까.

“이야기해 주시죠.”

“오유성!”

채하나가 나를 보며 이름을 외쳤다. 지금까지 봐왔던 채하나의 모습 중 가장 무서운 표정이었지만, 나는 담담하게 쳐다보았다.

화를 억누르는 듯 숨을 내쉬고는 채하나가 황무진을 바라보았다.

“소리친 것은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러려고 오유성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닙니다.”

“음.”

“…….”

“일단 이야기를 들려주마. 이후에 이 일을 맡을지 안 맡을지 결정하는 건 자네가 알아서 하게. 안 맡는다고 한다면 빚 하나 달아두는 것으로 하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황무진은 채하나를 돌려보냈다. 어느 정도 타협을 했기 때문인지, 채하나는 조용히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물론, 나가기 전에 나를 살벌하게 쳐다보는 것은 덤이었다. 그것조차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던 황무진이 입을 열었다.

“하나가 자네를 많이 아끼는 모양이야.”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공생 관계라고 할까, 채하나에게 받은 것도 많은 만큼, 해준 것도 많았다.

김세아나 이찬혁과 같이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큰 사건들을 겪어 나가며 신뢰가 쌓였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S급 특별 기밀이야. 그 어느 누구한테도 말해선 안 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비밀이 새는 순간, 자네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둬.”

가볍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황무진은 정말 죽일 기세로 나를 보며 말하고 있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아까 얘기했던 천우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조금 과장됐어. 정확히 말하자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

“놀리시는 겁니까?”

아까 전에는 죽었다고 했으면서 지금은 모른다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자네가 듣고 판단하게. 나는 지금부터 내가 아는 것을 이야기 할 테니까.”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황무진이 하는 이야기에 집중했다.

“용산에서 일어났던 던전 브레이크의 초기 진압은 성공적이었지. 그 당시에 강했던 헌터들이 모두 출동했고, 아무리 베티스가 강하다고 하지만 강했던 헌터들에게는 오크만도 못했으니까.”

“…….”

“그러나 2차로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지. 아마 자네가 구해진 것도 2차였을 거야. 그때는 베티스뿐만 아니라 베티스 킹도 간혹 나타나 강한 헌터들은 킹을 처치하기 위해 몰렸지.”

베티스 킹은 베티스보다 3~4배는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강한 헌터들이 킹을 처지하는 것은 당연했다.

가만히 두었다가는 더 큰 피해를 입혔을 테니까.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이었어. 던전 주위에서 강렬한 마나가 요동쳤고, 헌터들은 긴장하기 시작했지. 이번에 나올 놈은 절대 간단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다들 알았을 테니까.”

“…….”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 여왕이었다.”

베티스 퀸.

헌터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 베티스 킹보다 훨씬 강한 존재로서, 마나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레이드급 몬스터였다.

정확한 출현지와 사건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간단한 특성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그 베티스 퀸이 나타난 곳이 용산 던전 브레이크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때 헌터들도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베티스 퀸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지. 비록 용산구 전체가 날아가 버렸지만……. 거기다 베티스 퀸이 죽으면서 나온 오염된 마나로 다시 복구가 불가능하게 된 거지.”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

높은 마나 방출량 수치로 인해 일반적인 사람들은 들어갈 수조차 없었으며, 웬만한 헌터가 아니면 제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는 곳이었다.

“베티스 퀸을 죽였음에도 포털은 닫히지 않았다. 안에서는 또다시 베티스와 베티스 킹이 기어 나오려고 하고 있었지. 그래서 토벌대를 만들었고, 그 안에 천우가 있었다.”

“…….”

“토벌대는 자신들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쳤고, 다시 현실로 넘어오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포털이 사라져 버렸다.”

“그럼…….”

“그래. 천우는 그 포털에서 나오지 못한 채, 포털이 사라졌다. 천우 말고도 그 당시 이름값 있던 헌터들 대부분이 나오지 못했어.”

“그래서 죽었다고 하신 겁니까?”

“아니. 그 다음에 얼마 지나지 않아 포털이 다시 나타났다. 똑같은 장소에 나타나는 몬스터도 베티스였지. 실종된 헌터들을 데리고 있던 길드에서 힘을 모아 수색대를 만들었다.”

“…….”

“수색대는 던전을 샅샅이 뒤졌지. 안에 있는 베티스는 누군가에 의해 전멸된 상태였고, 그 소행은 포털에 갇힌 헌터라고 판단했다.”

“.....”

“근데 헌터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게 보고서 마지막에 적혀 있던 내용이었다. 분명 베티스를 처리한 흔적이나 증거가 있었지만, 헌터들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실상 실종이지만, 죽었다고 생각하기로 한 것이지.”

기껏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전과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었다. 여전히 만날 수 없었고,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니, 왜 황무진이 진천우가 죽었다고 했는지도 이해가 갔다.

혹시 만날 수도 있을까 해서 들떴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정신이 돌아오니 생각의 정리가 빨라졌다.

‘그래서 그런 거군.’

헌터 학교에서 배운 것 하나가 또 다시 떠올랐다.

헌터의 역사.

그 안에서 한국은 초반에는 약세였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그 중간에 주춤하는 부분이 있었다. 용산 던전 브레이크 이후라는 것만 배웠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는 몰랐다.

‘왜지…….’

하지만 고작 이런 것들로 인해 S급 비밀로 둘 필요가 있어나 싶었다. 헌터란 항상 위험 안에서 움직였고, 그 어떤 직업보다 죽음이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왜 S급 비밀인 겁니까.”

“그때 포털에 갇혀 사라진 헌터 중에 강수혁이 있었기 때문이지.”

강수혁.

사람들이 좋아하는 등급을 나눴을 때,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이 1등을 하고 있지만, 내가 어릴 적 한국에서 가장 강한 헌터는 강수혁이었다.

‘은거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강수혁은 큰 부상을 입어 헌터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별장에서 조용히 지낸다고 알고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한국은 그 당시 다른 나라들과 헌터 경쟁이 심했던 때였고, 강수혁의 부재를 알릴 수가 없었지. 그래서 헌터 협회에서는 S급 비밀로 규정하고 당시 관련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궁금 중은 이제 모두 풀렸다.

진천우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큰 허탈감이 느껴졌지만, 이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정리될 것이다.

이제 사족은 끝났고, 본론이 남았다.

“제가 해야 될 일이라는 게 어떤 겁니까.”

어떤 일이든 할 생각이었다. 지금껏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모두 풀게 된 보답이랄까.

황무진은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황무찬이라고 알고 있나?”

“예.”

아이리스 부 길드장이기도 하며, 황무진의 동생이기도 한 사람이었다. 황무진과는 다르게 마법 계열의 헌터였다.

다만, 최근에 A급 던전을 공략하던 중에 실종되었다. 저번에 보았던 찌라시를 봤기 때문에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후우. 던전에서 헌터들이 사라지는 일은 그때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이런 일들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동생뿐만 아니라 다른 길드의 헌터들도 A급 던전을 공략하던 중에 실종되었다는 정보를 얻었다.”

던전 내에서 가끔 헌터들이 실종되는 경우가 있었다. 함정에 빠진다든가, 내부에서 다툼으로 인해 살해당한 뒤 은폐를 당한다든가, 아니면 몬스터에게 당해 찾을 수 없을 때 등 다양한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 황무진이 말하는 실종은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설마.”

강수혁처럼 던전 자체에서 사라진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 던전에서 완전히 사라졌지. 현재 헌터 협회는 물론 A급 던전을 공략하는 중견급 이상 길드들에서는 이 정보를 다른 곳에 알리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빨리 알려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기엔 중견급 이상 길드들에게 갈 피해가 크다. 실종된 사람 대부분이 랭커다.”

랭커.

강한 헌터들의 순위를 나눠 1위부터 20위까지 정해놓은 것이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실종이라면 더욱 큰 문제였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도 옛날과 다르지 않아. 비록 아이리스 길드는 사미영으로 인해 정보가 흘러나갔지만, 다른 길드의 실종까지 모두 알려진다면 한국은 혼란에 빠지겠지.”

나는 황무진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랭커는 한 나라의 전력과도 같았다. 랭커들이 강하면 그 나라의 급이 올라갔고, 랭커들이 약하면 그 나라의 급이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랭커에 들기 위해 경쟁이 과열될 것이다. 랭커들은 국가에 의해 받는 혜택들이 많고, 무엇보다 강자라는 명예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이런 사실이 퍼진다면, 확실히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그래서 중견급 이상 길드에서는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조사단을 만들기로 했다.”

“…….”

“그리고 자네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 조사단에 들어가는 것이고. 아마 이번 실종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면 진천우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황무진의 표정은 담담했다. 강요를 하는 듯한 말투도 아니었고, 그저 나를 편안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위험하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 나올 수 있다. 그래도 할 수 있겠나?”

지금까지 위험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을 헤쳐 나가며 강해졌고, 지금의 실력을 가질 수 있었다.

내 느낌도 다르지 않았다.

이 사건은 진천우의 실종 사건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아닐 수도 있지만, 손해 볼 것은 없었다.

이번 기회로 더 강해질 것이고, 그것은 내 목표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일이 될 것이다.

“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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