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08화
26장 황무진(2)
일순간 내 주위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통나무처럼 가만히 서서 황무진을 쳐다보았다.
짙은 눈매에 떡 벌어진 어깨와 단단해 보이는 몸.
강한 신념이 느껴지는 얼굴로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황무진은 현재 아이리스 길드를 이끌고 있으며,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헌터였다.
그리고 내가 어릴 적 겪었던 던전 브레이크를 막았던 헌터 중 한 명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찾고 싶어 하는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네가 오유성이냐.”
“예.”
“고생했다.”
황무진의 단단한 손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곤 다른 대표단들에게도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기자들을 쳐다보았다.
기자들이 흥분한 기색을 보였다. 아이리스 길드가 우승한 것만큼이나, 대박 특종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이리스 길드장인 황무진.
폐관 수련에 들어간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아이리스 길드가 길드 대항전에서 우승한 직후이기 때문에 기사거리가 넘치고 넘쳤다.
기자들이 뭐라고 말하려고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누군가가 입을 막고 있는 듯 답답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야. 애들 데리고 돌아가 있어라.”
채하나는 황무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우리를 보며 말했다.
“따라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춤거리고 있는 대표단 사이에서 강한수가 먼저 몸을 움직였다.
그를 따라 김찬익과 이지상이 움직였고, 나머지 사람들도 따라 움직였다.
나는 천천히 뒤를 따라가며,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있던 곳에 남아 있는 황무진과 이태수의 모습이 보였다.
황무진은 우리가 한참 멀어진 것을 확인한 후 기자들을 쳐다보았다.
솨아아아!
황무진의 주위로 마나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야 기자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에서 플래시가 터져 나왔다.
찰칵찰칵!
말을 하고 있지 못했던 기자들의 음성도 다시 흘러나왔다. 서로 자신들이 질문 하기 위해 목청을 올렸다.
“폐관 수련은 언제 마치고 나오신 겁니까?”
“아이리스 길드가 우승할 것을 알고 있었나요?”
“S급 던전에 도전하시는 건가요!”
한순간에 질문의 방향이 바뀌었다.
길드 대항전에 관한 것은 이미 알려진 정보들이 많았다. 그것만 모아도 쓸 만한 기삿거리는 차고 넘쳤다. 그러나 황무진에 관한 정보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지금 나오는 말들 하나하나로 인해 기자들은 대박 기사를 만들 수 있었다.
황무진은 기자들에게 포근한 웃음을 안겨주며 말했다.
“오늘은 길드 대항전을 우승한 만큼 제 개인적인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개인적인 인터뷰는 조만간 날을 잡아 기자님들을 초대하겠습니다.”
기자들은 호들갑을 떨며, 황무진의 말을 받아 적었다. 그다음 질문들은 다시 길드 대항전에 관한 것으로 흘렀다.
황무진은 아주 능숙하게 기자들을 상대하며 대답하고 있었다.
“빨리 와. 안 그럼 다른 기자들한테 또 붙잡힐 거다.”
김찬익이 앞서 걸어가다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시선을 돌려 준비된 차량에 탑승했다.
“진짜 끝이네. 이렇게 끝나니까 뭔가 이상하다.”
한소희가 내 앞자리에서 최정환의 어깨에 머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최정환이 한소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돌아가야지.”
“아직은 아니지. 휴가가 남았잖아.”
길드 대항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상황에서 이미 휴가는 떼 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결승전에 올라가면서 휴가에 관한 이야기도 완전히 달라졌다.
준우승을 하게 될 경우의 휴가 일수는 15일이었다. 그것만 해도 충분히 파격적인 휴가를 준 것이었다.
김세아나 최정환, 한소희 같은 헌터들을 임무에 투입하게 된다면, 15일 동안 많은 임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
그것을 감안하고도 아이리스 길드에서는 15일이라는 휴가를 보장했다.
그리고 우승하게 될 경우는 휴가가 두 배나 늘어나게 된다. 즉, 30일이라는 휴가 받게 되는 것이다.
이미 한소희는 최정환과 함께 한 달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 왼쪽에 앉은 이찬혁은 피곤한지 눈을 감고 있었다. 오른쪽 앉은 김세아는 창문 밖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훈련이라…….’
김세아는 휴가 때 훈련을 한다고 말했다. 아마 독하게 훈련을 할 게 훤히 보였다.
단순 특성과 재능만으로 강해진 게 아니라, 끈기와 노력이 동반되어 이만큼 강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 휴가 기간 동안 김세아는 한 번 더 성장할 것이다.
‘나도 놀 수는 없지.’
이번 휴가 동안 할 일이 많았다. 아직 랭크를 올리면서 강해진 힘을 완벽하게 컨트롤하지는 못했다.
이틀 동안 겉핥기식으로 배운 마나 블레이드도 익혀야 했고, 새로운 검도 만들어야 했다.
검을 만들려면, 그에 맞는 재료를 구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번 휴가는 바쁘게 보낼 것 같았다.
긴장감이 모두 풀리기도 했고, 길드 대항전을 치르면서 쌓인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잠이 쏟아져 왔다.
나는 눈을 감으며, 뒤에 있는 시트에 몸을 맡겼다. 푹신한 느낌이 매우 좋았다.
‘끝났다…….’
* * *
드르륵!
차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눈이 떠졌다. 찌뿌둥한 느낌에 몸을 움직였다.
양팔을 들어 기지개를 켜고, 다리를 쭉 뻗었다. 시원한 느낌이 온몸으로 퍼지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 왔다.”
앞에 앉아 있던 최정환과 한세희가 먼저 내렸다. 행색을 보니 잔 것 같지는 않고, 지금까지 대화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왼손으로 아직까지 자고 있는 이찬혁을 흔들어 깨웠다. 그러자 앓는 소리를 하며 이찬혁이 눈을 떴다. 그러곤 오른쪽에 있는 김세아를 흔들었다.
“일어나.”
김세아 또한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 차에서 내렸다. 나도 뒤이어 자세를 일으켜, 차에서 내렸다.
상쾌한 공기를 느끼며,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잠기운을 몰아냈다. 김세아와 이찬혁도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뒤이어 도착한 차량에서는 채하나와 강한수가 내렸다. 강한수의 입가가 올라가 있는 것을 보니, 뭔가 성공적인 딜을 한 모양이다.
채하나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올라가자.”
지하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연회장이 보였다. 있다는 것만 알았지, 와보기는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이곳에 올 만한 행사가 없었으니까.
굳게 닫힌 문.
채하나가 앞서 걸어가며 닫힌 문을 열었다. 그러자 엄청난 함성과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펑!펑!펑!
“이야아! 고생했다.”
“오유성 멋있었다.”
연회장에는 아이리스 길드원들이 모여 있었다. 전원이 모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길드원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길드원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우리는 중앙에 나 있는 길을 따라 앞으로 걸었다.
준비된 단상 위에 올라가자, 먼저 채하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 길드 대항전, 승리의 주역입니다. 모두 큰 함성과 박수로 맞아주세요.”
다시 한번 길드원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고, 힘찬 박수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자 그럼. 승리의 주역들의 소감을 들어 보겠습니다.”
채하나는 마이크를 강한수에게 건넸다. 그리고 강한수는 받은 마이크를 빠르게 넘겼다.
옆에 있던 김찬익은 강한수가 건넨 마이크를 받았고, 입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저희가 한 건 크게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 여러모로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희가 얘기해 봐야 뻔한 소리만 나올 거고, 바로 마이크 넘기겠습니다.”
먼저 김세아가 마이크를 잡았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짧고 간단한 멘트와 함께 마이크를 넘겼고, 최정환, 한소희, 이찬혁 순으로 간단한 소감을 발표했다.
그렇게 특이하거나 대단한 소감은 없었다. 대부분이 비슷한 소리를 다르게 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마이크를 받았다. 모든 길드원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길드 대항전에서 느꼈던 시선보다 더욱 강렬했다. 여기서 뭐라도 말하지 않는다면,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갈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이제 그린나래는 우리 밑입니다. 길드 대항전에서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아이리스 길드가 그린나래 앞에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크하하하하하.”
“와아아아!”
“저 새끼 저거 완전 또라이네.”
반응은 좋았다.
또라이도 되고, 미친놈도 되었지만, 저들이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무안해 할까 봐 저렇게 열띤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군성 그룹이 뒤에 있는 그린나래 길드, 나는 그 위에 아이리스 길드가 있도록 만들 것이다.
지금의 성장 속도로 봤을 때,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한번 박수.”
마무리 박수와 함께 우리는 따로 마련된 자리로 가서 앉았다. 음식은 뷔페식이라 직접 가서 떠와야 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접시를 챙기고, 라인을 따라 움직이면서 음식을 담았다.
한눈에 봐도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이 즐비했고, 나는 최대한 많이 쌓으면서 다음에 먹을 음식들도 눈에 담았다.
자리로 돌아오자,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음식을 가지고 왔다.
“음, 맛있다.”
“진짜 맛있네.”
맛은 훌륭했다. 하나하나 맛없는 것들이 없었다. 차가운 음식들은 차가움을 유지하고 있었고, 따뜻한 음식들은 따뜻했다.
“자자, 한 잔씩 합시다!”
이찬혁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가 막히게 술을 조합했다. 그런 다음 한 잔씩 돌렸다.
나는 이찬혁이 건네는 잔을 받았고, 다 같이 건배를 한 다음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시작된 술 파티로 인해, 테이블에는 음식 접시보다 술병들이 더 많이 쌓였다.
나는 디저트로 먹을 만한 것들을 담아 자리로 돌아왔다.
‘어?’
이찬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최정환, 한소희와 대화 중인 김세아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이찬혁 어디 갔어?”
“바람 쐬러 나갔어.”
이미 혀가 꼬여 있었다. 나는 이찬혁을 찾아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최정환과 한소희에게 말했다.
“선배님. 얘 이제 술 주지 마세요. 여기서 더 먹었다간 감당 안 됩니다.”
내 말에 최정환과 한소희가 피식 웃었고, 나는 김세아의 앞에 있는 술을 슬쩍 빼놓고 밖으로 나왔다.
아마 1층으로 내려가 밖에 있을 것 같지는 않고,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난간에 기대고 있는 이찬혁의 모습이 보였다. 그쪽으로 다가가자, 이찬혁이 고개를 돌렸다.
“어?”
“여기서 뭐 하냐.”
“바람 쐬러 나왔다.”
나는 이찬혁의 옆에 서서 반짝이는 건물들을 쳐다보았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취기가 날아갔다.
고개를 돌려 이찬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고민 있냐?”
“푸후…… 티 나냐?”
이찬혁이 허공에 바람을 불며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완전.”
“사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원래라면 지금쯤 술에 취해, 김찬익과 이지상의 옆에서 미친 듯이 술을 먹어야 하는 놈이 그러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돼지.”
“그러게. 오늘따라 뭔가 감정이 들쑥날쑥하네. 내일이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걱정하지 마.”
이찬혁의 눈빛을 보니, 아직까지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뭔가 큰 사고를 칠 것 같지도 않았고, 나는 이찬혁의 등을 치며 말했다.
“걱정은. 김찬익 코치님이랑 이지상 코치님이 너 찾더라. 늦지 않게 가봐.”
나는 다시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채하나가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여기 있었네.”
채하나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옆에 있는 몇몇 길드원들의 눈이 하트가 되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뭐, 아이리스 길드에서 아름다운 사람 다섯 명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니 저런 반응도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웠다.
“따라와.”
나는 군말 없이 채하나를 따라 연회장 밖으로 다시 나왔다. 채하나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어디 가는 겁니까?”
내 질문에 채하나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약속 지키러 가야지.”
“약속?”
“던전 브레이크 관련해서 알고 싶다며.”
채하나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15층으로 갈 거야.”
약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비워져 있던 곳. 15층은 아이리스 길드장인 황무진이 사용하는 집무실이었다.
‘드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