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07화
26장 황무진(1)
경기가 종료되고 난 뒤, 나는 이찬혁과 최정환의 도움으로 인해 대기석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세아가 옆에서 체력 포션을 건넸다. 내가 받아 들려 했지만, 아직 몸을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다.
“마셔.”
김세아가 한숨을 푹 쉬더니, 내 입에 체력 포션을 가져다주었다. 그걸 받아 마시고는 가만히 앉아 포션의 효과를 기다렸다.
효과는 빠르게 퍼졌다. 온몸이 끊길 듯한 근육통이 사라지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졌다.
전체적으로 힘이 빠진 느낌이지만, 이 정도면 곧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나는 김세아를 보며 말했다.
“안 놀라네?”
“뭘.”
“내가 이긴 거.”
“네가 처리하고 온다면서.”
김세아는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도 김세아를 따라 움직였다
대련장 위에서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헌터 협회 쪽 사람들은 시상식을 하기 위해 무대를 꾸미고 있었다.
미리 준비된 단상을 옮기고, 트로피와 마이크 등 잡다한 것들을 빠르게 진열했다.
“다 봤어.”
김세아의 말에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김세아를 쳐다보았다.
“뭘?”
“휴일에도 연습하는 거.”
순간 내 몸은 긴장으로 뻣뻣해지며 식은땀이 흘렀다. 어제와 그저께 했던 훈련에서 내가 했던 행동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틀 동안 진행되었던 훈련에서 나는 발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나 혼자 훈련했기 때문에 이어폰 같은 것 없이 발칸과 이야기를 했다.
남이 봤으면 수상하다고 생각할 만한 행동이었다.
‘본 건가?’
한편으로 김세아라면 알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변명을 구상하고 있었다.
“어제 잠깐 길드에 볼일이 있어 들렸다가 훈련실에서 나온 걸 봤어. 완전 땀범벅이더라.”
“아…….”
“솔직히 말해서 처음엔 좀 이상했거든. 지원 헌터에서 전투 헌터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스켈레톤을 상대로 싸우고 있고. 최근에도 계속 성장하는 게 딱 이진수를 보는 것 같았거든.”
나는 침을 삼키며, 김세아를 쳐다보았다. 나름 잘 감추며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근데 네 눈빛을 보니까. 이렇게 강한 것도 이해가 가더라. 그렇게 훈련을 하고도, 뭔가 아쉬워하는 눈빛.”
“…….”
“뭐. 그걸 보면서 나도 돌아보게 되더라. 최근에 조금 풀어졌던 게 아닌가 하고.”
김세아는 굳은 결심과 함께 양손을 불끈 쥐며 말했다.
“이번 휴가 동안 더욱 강해질 거야. 그다음에 나랑 한번 붙자.”
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강자와의 싸움은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그것 또한 내 경험이 되어 실력을 상승시켜 줄 것이다.
시상식의 준비는 얼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대형 스크린에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간추린 영상을 틀어놓고 있어, 관객들의 시선은 그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때, 뒤에서 신난 훈련 코치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찬익과 이지상이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이야. 이거 아이리스 길드의…… 아니, 이번 신입 길드의 에이스 아니신가.”
이지상은 웃으며 말했다.
“뭔가 실감이 안 난다.”
김찬익도 분명 기뻐하고 있지만, 체감하고 있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도 지금의 김찬익과 똑같았다.
이진수를 확실하게 이겼고, 내가 이김으로 아이리스 길드가 길드 대항전에서 우승을 하게 되었다.
아까 기분이 정말 미칠 듯 좋았던 것은 이진수를 이겼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뭔가 기쁘지만, 우승에 대한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내 손으로 이룬 것이지만, 최고라 불리는 그린나래 길드를 꺾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네가 해낸 거다. 좀 더 기뻐해도 돼.”
“내가 얘기했지. 넌 떡잎부터 달라 보였다니까.”
이지상의 말에 김찬익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뒤에서는 최정환과 한소희도 다가왔다.
손에 들린 핸드폰을 보니, 딱 봐도 동생이랑 통화하고 온 게 분명했다.
“고생했다.”
“설마 네가 이진수를 이길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대단하네.”
둘의 이야기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아, 맞아. 정환이 동생이 네 이야기 엄청나게 하더라. 원래 헌터 중에 제일 좋아하는 게 정환이였는데 지금은 너래.”
“하하하…….”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누군가 나를 제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서 그런지 뭔가 기쁘면서도 부끄러웠다.
“시상식 시작한다는 연락이 왔다. 우리도 나가자.”
김찬익이 우리에게 얘기했고, 대표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련장으로 향했다.
가장 중요한 강한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옆에 있던 이지상에게 물었다.
“감독님은 어디 가신 겁니까?”
“아. 길드 쪽에서 연락이 와서 통화 중이셔. 곧 오실 거니까 우리 먼저 올라가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움직여 보았다. 훈련 때 먹었던 포션인만큼 효과가 매우 좋았다.
“뭐해.”
김찬익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이찬혁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멍하니 있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오며, 이찬혁이 나를 쳐다보았다.
“어? 아무것도 아니야. 무슨 일인데?”
“시상식 시작한대. 올라가자.”
“그래.”
이찬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웃으며 대련장으로 걸어갔다.
나는 시선을 돌려 VIP석이 있는 곳을 보았다. 군성 그룹의 회장인 이용학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세 번째 경기에 올라가기 직전까지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린나래 길드가 패배한 뒤 자리를 뜬 모양이었다.
‘왜 저러는 거지?’
이용학이라도 있었으면 이찬혁의 저런 모습도 납득이 가지만, 없는 마당에 저런 고민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걱정됐다.
아무래도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단순히 넘어가기엔 이찬혁이 짓고 있던 표정은 심각했으니까.
나는 이찬혁의 옆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같이 가.”
우리는 정확히 대련장 안까지 들어가지 않고, 그 직전에 서서 모여 있었다.
“이번 시상식에서 시상을 해주실 헌터 협회장님을 모시겠습니다.”
이정일 해설자의 멘트와 함께 저 멀리 있는 곳에서 헌터 협회장이 걸어 나왔다.
배가 나온 몸매에 푸근한 인상을 가진 중년 남성이었다. 동네에서 한 명씩은 있을 법한 외모였다.
하지만 헌터 협회장의 주위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가볍지 않았다.
헌터 협회장 강원수.
현재 헌터로서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때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였다.
전투 능력도 뛰어났지만, 사람을 우선시하는 인성과 모범적인 행동은 강원수를 헌터 협회장으로 만들었다.
“반갑습니다. 헌터 협회장 강원수라고 합니다.”
강원수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그 뒤로는 해설자가 멘트를 쳤고, 강원수는 단상에 올라서서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본격적인 시상에 앞서 다양한 분야의 시상이 먼저 진행되었다. 가장 대결을 오래 한 시상식부터, 선수 인기 투표와 길드 인기 투표상까지 다양한 상이 있었다.
김세아는 인기 투표에서 여자 부분 상을 받았다. 상을 받으러 나가서 돌아오기까지,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상을 한두 번 받아보는 것도 아니고.”
가장 긴 시간 동안 대결을 한 상의 기록은 1시간 13분이었다. 본선에 올라와 대장전까지 가게 된 두 길드의 치열한 사투였다.
대장전에 올랐던 두 선수가 나와 웃으며 상을 받았다. 경기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열기와 끈기에 대한 상이었다.
나는 내심 가장 짧은 경기 상도 기대했지만, 역시나 이것에 대한 상은 없었다.
대결이 길었던 상은 그나마 둘이 실력이 비슷하고, 일방적이지 않았기에 둘이 받아도 기뻤겠지만, 짧은 경기 상은 달랐다.
일방적인 경기.
나는 박준호에게서 1초 만에 승리했고, 이 상을 받게 된다면 기분 좋은 것은 나밖에 없었다.
국민들과 함께 하는 것이니만큼, 이런 것에 대한 상은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시상이 끝나고, 본격적인 시상이 시작되었다. 먼저 3등 길드가 올라와 상을 받았다.
소드 마스터 길드.
우리와 붙었던 소드 마스터 길드가 3등으로 상을 받았다. 뭔가 아쉬움이 뒤섞인 표정이지만, 상을 받은 것에 대해 기뻐하고 있었다.
몇몇은 강원수를 보며 감격에 찬 표정으로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은 이번 길드 대항전의 준우승은 그린나래입니다! 그린 나래 길드 선수들은 모두 대련장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뭔가 그린나래 길드는 전체적으로 다운된 분위기였다. 겉으로 티를 내고 있지 않지만, 준우승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최고의 우승 후보.
그린나래가 준우승을 하게 될 줄은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린나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미 이진수의 표정부터 무표정이었고, 감독의 입가와 눈가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최고의 유망주와 천재 등 다양한 별명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이름을 알린 이진수를 데리고 졌으니, 길드에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지 눈에 훤했다.
심지어 그린나래 길드를 만든 군성 그룹의 이용학도 돌아갔고, 그린나래의 길드장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시상식이 끝나고 난 뒤의 후폭풍을 피하기 위해 먼저 몸을 피했을 것이다.
그래도 용케 상을 다 받고, 인사까지 하며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푹하고 찌르면 눈물이 흘러나올 것 같은 그린나래 감독은 대련장에서 빠르게 사라졌다.
지금 바쁘게 나간다고 하더라도, 쉽게 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밖에 대기하고 있는 수많은 기자가 진을 치고 있을 테니까.
해설자는 내려가는 그린나래 길드를 보며 마무리 멘트를 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강한수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제가 갔다 올까요?”
이지상이 김찬익에게 물었지만, 김찬익은 고개를 절레 흔들며 말렸다.
“안 가도 돼. 늦게 오면 우리끼리 올라가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하면 돼.”
해설자는 아이리스 길드를 호명했고, 우리가 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강한수가 대기석 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뭔가 분위기가 뛰어야 할 것 같았지만, 강한수는 여유로웠다. 천천히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고, 아이리스 길드 대표단은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그중에서도 헌터 협회장이 서 있는 단상으로 올라갔다. 강원수는 시선을 옮기며,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강원수가 웃었고, 나도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아이리스 길드는 이번 길드 대항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며 다크호스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길드 대항전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웅장한 사운드가 울려 퍼졌다. 둥둥거리는 소리가 마음을 고양시켰다. 관객들은 응원과 함성을 보내주고 있었고, 승리를 상징하는 트로피를 강원수가 김세아에게 건네주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트로피.
그 중앙에는 길드 대항전의 마크와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밑에는 아이리스 길드의 이름과 오늘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김세아는 대표로 트로피를 받아,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다 같이 트로피를 잡고 하늘 위로 높게 뻗었다.
“와아아아아아!”
“아이리스 길드 최고다!”
* * *
“집에 가서 자고 싶네.”
한소희가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한소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심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상식 이후에 헌터 협회장부터 시작해서, 조금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과 사진을 찍었다.
거기다 인터뷰 시간도 따로 있어서 1시간 정도를 인터뷰하는 데 사용했다.
그러나 아직 남은 것이 있었다.
밖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다양한 신문사의 기자들이었다. 인터뷰했던 사람은 헌터 협회 소속 사람이었다.
“빨리빨리 처리하고 가서 푹 쉬자.”
이지상이 파이팅 넘치게 분위기를 이끌었고, 대표단은 지친 몸을 이끌고 경기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파바밧!
찰칵! 찰칵! 찰칵!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엄청난 플래시가 터졌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강렬했다.
거기다 기자들이 목소리를 크게 올리며 질문들을 해왔다.
“이번에 아이리스 길드가 우승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그린 나래 길드를 이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오유성 헌터 한 말씀만 해주세요!”
김찬익과 이지상이 나서서 정리를 해보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엄청난 특종 기사를 위해 기자들은 기자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우리를 나름 경호하겠다고 준비된 인원까지 투입되지만, 몰려드는 기자들을 막기는 힘들어 보였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
그때, 기자들이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밀어내는 것처럼 보였지만, 거칠지 않았다.
기자들도 자신들의 몸을 보며 놀랐다. 그러다 우리 쪽을 보며, 입을 떡 벌리며 눈은 휘둥그레졌다.
“어……?”
나는 기자들의 반응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곳에는 난처하게 웃고 있는 채하나가 보였다. 그 옆에는 이태수가 있었고, 또 한 명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이리스 길드장.
황무진.
그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