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나 혼자 역대급 수련 101화
25장 결승전(2)
누군가가 사일런스 마법을 건 것처럼, 아니, 마치 사람들이 말을 못 하게 저주를 건 것처럼 경기장은 고요했다.
내 앞에 쓰러진 박준호가 이를 악물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자신의 얼굴을 바닥으로 가져다 대며 카메라를 피해 얼굴을 가렸다.
검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검에 마법이 걸린 것이 아니라, 검을 잡고 있는 내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만큼 지금 심정이 복잡했다.
주변의 고요함 따위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내 안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 없이 이찬혁의 경기를 보았다. 이미 전략 회의 때, 박준호가 나오지 않고 다른 선수가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래서 이찬혁의 승패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노력한 것에 대해 후회 없이 싸웠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이진수…….’
그런데 이찬혁이 먼저 나가고 나온 상대가 이진수였다.
그린나래 길드에서, 아니, 현 신입 헌터들 중에서는 최강이라고 불리는 이진수가 이찬혁을 잡으러 나왔다.
최악의 경우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진수가 나온 것까지도 괜찮았다. 그린나래 길드 역시 1승을 챙기기 위한 전략을 생각했을 테니까.
그러나 내 눈에 보이고 말았다.
VIP 관객석에서 이찬혁 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용학과 눈이 마주쳤다.
이용학은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경기의 내용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진수와 이찬혁의 경기는 일방적인 ‘농락’에 가까웠다. 이찬혁이 아무리 빈틈을 찾으며 노력해도 이진수는 장난으로 답했다.
차라리 빨리 끝냈더라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진수는 이찬혁을 끝까지 농락한 뒤에 끝을 냈다.
경기가 끝나고 돌아온 이찬혁의 표정은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안심을 하려는 찰나, 이찬혁의 시선이 이용학에게 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찬혁의 떨리는 두 손과 일그러진 얼굴을 보았다.
이용학의 입김으로 이진수가 움직였고, 이찬혁은 이용학을 보면서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용학은 이찬혁을 다시 나락으로 빠뜨리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두 번째 경기의 승리는 아이리스 길드입니다. 오유성 선수가 1초 만에 박준호 선수를 제압하고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해설자의 말에 박준호가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석으로 돌아갔다.
그린나래 길드의 대기석에 있는 이진수와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웃고 있는 이진수를 보며 나는 몸을 돌렸다.
‘끝까지 웃을 수 있나 보자고.’
동시에 고요했던 경기장에 엄청난 함성이 찾아왔다. 귀가 얼얼할 정도로 큰 함성을 받으며, 나는 아이리스 길드 대기석으로 돌아왔다.
“…….”
“…….”
두 명의 코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고, 감독인 강한수는 가볍게 웃고 있었다.
대표단의 표정도 코치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들 지옥 훈련 한 거 아니야?”
내가 우스갯소리로 한 말에 대표단의 시선이 자연스레 강한수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강한수는 그들이 원하는 대답보다는 세 번째 경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최정환. 준비해라.”
자리에서 일어난 최정환이 준비를 하고, 나는 자리에 앉았다. 옆에 있는 물을 마시며 목을 축였다.
“선배님. 알고 계셨습니까?”
“저거 며칠 전의 오유성이 아닌데요?”
“나도 몰랐어. 일단은 경기에 집중하자. 카메라에 다 찍힌다.”
나는 저들의 대화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이 힘에 적응하기 위해 했던 훈련이 떠올랐다.
발칸이 알려준 방법은 정말 지옥 훈련 그 자체였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강도가 높았다. 하지만 효과는 매우 뛰어났다.
아직 완전하게 적응한 것은 아니지만,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할 정도는 되었다.
이렇게까지 훈련하는 데 걸린 시간은 이틀이었다. 촉박한 시간이라 더욱 이를 악물고 연습했다.
그리고 박준호와의 경기에서 이렇게 훈련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고생했어.”
김세아가 옆으로 다가와 앉으며 말했다.
“어?”
“그 정도까지 강해지려고 정말 죽도록 노력했을 거 아니야.”
“어…… 그렇지.”
이 힘을 준 것은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포인트를 얻는 과정과 이 힘을 내 몸에 적응시키면서 단련시킨 것은 내가 한 일이었다.
이번엔 이찬혁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정면에 보이는 최정환의 경기를 보더니 평소의 밝은 모습으로 말했다.
“야, 이번에 우리가 이기면 그거 내 덕분인 거 알지?”
“그래, 맞지.”
모든걸 떠나서 결과적으로 본다면, 이찬혁의 말대로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제일 약한 카드로 상대방의 제일 강한 카드를 소모시켰다. 이찬혁의 말처럼 아이리스 길드가 이긴다면, 이찬혁의 공이 컸다.
그래도 처음처럼 넋을 놓거나, 자기 죄책감에 빠지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속은 타들어 가고 있겠지만, 그것은 경기 결과 때문이 아닌 이용학 때문이었다.
“우리 진짜 첫 번째 판 이기고 가는 건가?”
이찬혁의 말처럼 최정환의 상황이 유리했다. 창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니 거리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최정환은 그것을 잘 활용하며 상대방을 압박했다.
지금 최정환을 상대하는 그린나래 선수는 할 게 없을 것이다. 최정환에게 당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좀 더 빨라진 속도와 힘과 변칙적인 공격을 섞어가며, 최정환이 아이리스 길드에게 두 번째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이제 1승만 더한다면 아이리스 길드가 단체전 승리를 가질 수 있었다.
“다음, 김세아.”
김찬익이 마무리를 짓기 위해, 김세아을 내보냈다. 김세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이찬혁 쪽을 보며 말했다.
“내 팀원을 건드리다니. 이기고 올게.”
“그래.”
“화이팅!”
김세아가 앞으로 나가면서, 최정환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가벼운 터치 이후, 최정환이 대기석으로 돌아왔다.
짝짝짝!
나뿐만 아니라, 나머지 모두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유독 한소희가 더 기뻐하는 모습이 보였다.
“선배, 수고하셨습니다.”
“뭐. 지옥 훈련 덕분이지.”
내 말에도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유지했다. 그러고는 한소희의 옆에 가서 앉았다.
“아이리스 길드의 김세아를 상대할 그린나래의 선수는 레이나입니다!”
해설진의 말에 나는 정면을 바라보았다.
대련장에는 김세아와 레이나가 나란히 서 있었다.
현재 스코어는 2 대 1. 한 번이라도 지면 우리가 이기는 상황에서 레이나를 내보냈다는 것은 레이나가 승리할 거라고 자신하는 모양이었다.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는 레이나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마치 이진수가 떠오르는 그런 웃음이었다.
김세아는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지켜 나가는 것이 보였다.
‘진심으로 화났네.’
머리칼이 휘날리는 김세아의 싸늘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내가 보았던 것들을 김세아도 봤던 모양이었다. 풍기는 기세부터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럼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레이나는 바로 방어막부터 만들었다. 그리고 김세아는 방어막을 뚫기 위한 마법을 준비했다.
“지금 방어막을 여러 개 겹치는 거 맞지?”
이찬혁의 말처럼 레이나는 방어막 위에 방어막을 겹쳤다.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방어막을 겹치며 단단한 벽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맞는 것 같은데…….”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레이나는 방어막 이외에도 뛰어난 능력이 많았다. 그런 능력들을 사용한다면 김세아와도 비벼 볼 만한 실력이었다.
그러나 레이나는 공격보다 수비에 집중했다.
아마 김세아가 저 방어막을 뚫지 못한다면, 자연스레 분위기는 레이나의 승리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았다.
“제발…….”
이찬혁이 양손의 깍지를 끼며 빌고 있었다. 나는 그 깍지를 풀어주면서 말했다.
“잘해줄 거니까 믿고 봐.”
김세아의 주변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강력한 마나의 파동과 함께 머릿결과 옷들이 펄럭였다.
그리고 김세아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물들었다. 뿌리 부분만 변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성장했다.’
속성별로 마법의 수준이 올라가면, 그 속성에 관련해 신체에 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예를 들면 화 속성 채하나의 경우, 마음먹고 마법을 사용했을 때 머리카락이 붉게 변하곤 했다. 머리카락의 뿌리만 변하는 김세아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붉게 물들곤 했는데, 그만큼 채하나의 능력이 강력하다는 뜻이었다.
김세아는 채하나만큼은 아니지만 변화가 일어나긴 일어났다. 김세아가 신입 헌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상당히 놀라운 성장이었다.
김세아의 손이 움직였고, 마나가 흘러나와 형상을 이루었다. 마나는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해설진에서는 이 상황을 뭐든지 막는 방패와 뭐든지 뚫어버리는 창에 비교하고 있었다.
“과연 방패와 창의 대결 중 누가 이길지 지켜보겠습니다!”
하나 틀린 것이 있다면 김세아가 사용하려고 하는 마법은 그녀의 전매특허 마법 아이스 스피어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다른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대체 이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뒤에서 코치진들이 놀라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놀라움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지금 나도 김세아의 마법에 많이 놀란 상태였으니까.
김세아의 마나는 거대한 운석을 만들어냈다. 새하얀 눈덩이 같은 운석은 대련장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크기가 컸다.
불 속성 계열의 메테오와 비슷해 보이는 마법이었다. 마법의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김세아의 마나 파동이 더욱 강렬해지면서 거대한 운석도 움직였다.
레이나의 방어막을 향해 내려가는 거대한 운석.
쿠우우우우웅!
거대한 운석에 의해 가장 외곽에 있던 방어막이 갈라졌고, 얼마 있지 않아 깨져 버렸다.
두 번째 방어막도.
세 번째 방어막도.
차례대로 깨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거대한 운석도 조금씩 균일이 일어나며 부서지고 있었다.
거대한 운석의 속도가 빨라졌다. 레이나가 재빠르게 방어막을 더 생성해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콰과과과과광!
방어막이 모두 산산조각 나면서 깨졌고, 거대한 운석이 레이나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아아아아! 이번 경기의 승자는 아이리스 길드입니다. 이로써 아이리스 길드가 3승을 챙기면서 첫 번째 단체전의 승리를 가져갑니다!”
거대한 운석은 레이나의 펜던트 보호막까지 부쉈다. 그와 동시에 김세아는 마법을 없애 버렸다.
“이겼다!”
이찬혁이 주먹을 뻗으며 외쳤다. 나는 김세아를 쳐다보았다. 김세아는 우리를 바라보며 아주 작게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 * *
첫 번째 단체전이 끝나고 3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대련장 중심에는 두 번째 경기를 위한 포털을 설치하고 있었다.
저 포털을 통해 길드 대표들은 공용 던전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두 번째 경기인 깃발 뺏기가 진행되었다.
공용 던전 안에서 작동하는 특수 카메라를 통해 중계될 예정이었다.
“이번 전략 잘 숙지했지?”
이지상의 말에 대표단 5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 전략기획부에서 짠 전력이라 그런지, 꽤 탄탄했다.
여러 가지 돌발 상황과 대처 방법들까지, 미리 공부하고 외워왔음에도 오늘 몇 가지가 추가되어 그것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기본적인 메인 오더는 김세아. 서브 오더는 오유성이 맡는다.”
김찬익의 말에 대표단이 대답했다.
“넵.”
“옙.”
“이번에 확실히 이기고 길드 대항전에서 그린나래를 한번 꺾어보자!”
이지상이 분위기를 끌어올렸고, 대표단은 깃발 뺏기 경기에 대해 준비했다.
팀원들끼리 대화를 할 수 있는 특수 무전기를 착용했다. 초소형 스티커를 귀 안쪽에 붙이고, 주먹보다 작은 장치를 주머니에 넣었다.
“아아. 다들 들려?”
김세아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외에도 한 명씩 돌아가면서 체크를 했고, 이상은 없었다.
“준비된 길드는 포털로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행자의 말에 아이리스 길드 대표단은 움직일 준비를 했다.
대표로 내가 강한수와 코치들을 보며 말했다.
“이기고 오겠습니다!”
우리는 대련장 중심에 설치된 포털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