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99화
24장 준비(4)
“부탁드립니다.”
내가 시작을 알리자, 마법사는 이전과 같이 마석으로 도플갱어를 만들어주었다.
도플갱어는 만들어질 때마다 한결같았다. 내가 가진 힘에 놀라고, 나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챙!
도플갱어가 휘두른 검을 막았다. 이제 초반 싸움은 지겨울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뜨고 있던 눈을 감았다. 새로운 방식으로 훈련을 하기 위해 떠올린 방법이었다.
대충 도플갱어가 어떻게 공격할지는 눈을 감아도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나 눈을 감은 이상, 확신할 수는 없었다.
정공법만 하는 게 아니라 가끔은 변칙적인 공격도 섞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눈을 감은 것은 감각을 끌어올리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리스 길드에서 지원하는 빵빵한 포션들이 있기에 가능한 훈련이었다.
‘왼쪽.’
나는 살기가 느껴지는 왼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왼쪽이라는 것을 아는 것에 멈춰서는 안 된다.
눈을 감은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만큼 도플갱어가 공격할 수 있는 범위는 넓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도플갱어의 검을 찾아야 했다. 그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마나 탐지.
마나가 아주 미세하게 담긴 검이 내 심장을 향해 일직선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느껴지는 마나로 그림을 그렸다. 도플갱어의 모습을 그렸고, 검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암흑 속의 도플갱어가 휘두르는 검을 향해 내 몸도 움직였다.
챙!
내 검은 정확하게 도플갱어의 검을 쳐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는 검을 휘두르며 공격했다.
삭!
허공을 가르는 검과 함께 도플갱어의 기척이 사라졌다. 나는 빠르게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도플갱어가 이다음에 어떤 공격을 해올지는 뻔했다.
‘뒤를 잡겠지.’
이형환위를 사용해 내 뒤로 다가온 도플갱어의 공격을 막았다. 나는 검에 마나를 불어 넣으며, 도플갱어를 뒤로 튕겨냈다.
펑!
가벼운 충격파와 함께 도플갱어는 내게서 멀어졌다. 그리고는 암흑 속에서 그려졌던 도플갱어의 모습이 사라졌다.
‘역시.’
감각 강화 훈련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도플갱어가 내가 하는 행동을 알아차리고, 몸에서 마나를 감춘 것이다.
그로 인해 내가 그려놓았던 도플갱어의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내가 만만하게 보이나 본데…… 후회하게 해주지.”
하는 말조차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았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도플갱어의 공격 패턴도 랜덤으로 바뀌었다.
처음에 이 훈련을 시작하고, 똑같은 패턴으로 공격하는 줄 알았다가 큰 상처를 입은 적이 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마나를 감춘 도플갱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야비하게 행동했다.
챙!
나는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전투를 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사람은 오감에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존재였다. 그중에서 시각은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잘 보이던 게 보이지 않게 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이 불안감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머릿속에서는 사소한 정보에도 과대 해석하기 때문이다.
사방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감각은 하나의 도플갱어를 수십 명으로 증식시켰다.
마치 사방에서 여러 명의 도플갱어가 나를 노리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많이 당황했지만, 지금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하나둘, 상상 속에서 만들어진 도플갱어의 모습을 지웠다.
모든 도플갱어를 지우고 난 뒤에 오감을 하나씩 차단했다. 도플갱어의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차단했고, 코로 들어오는 냄새를 차단했다.
인간에게는 오감 이외에 여섯 번째 감각이라고 불리는 육감이라는 것이 있었다.
나는 차분하게 그 초인적인 감각에 정신을 집중했다.
‘느껴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지만 도플갱어가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빠르게 다가오는 도플갱어의 검을 쳐내고, 내 검을 찔러 넣었다.
역시나 가뿐하게 내 공격을 피했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더욱 거칠게 몰아치며, 도플갱어와 싸움을 지속했다.
싸움이 지속될수록 내 감각은 더욱 날이 섰고,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이제 불편함이 없었다.
‘끝내자.’
나는 다가오는 도플갱어의 검을 잡아챘다. 손에 마나를 둘렀기에 상처를 입지 않았다.
내게 잡힌 검을 놓은 채 도망가려는 도플갱어에게 이형환위를 사용하며 달라붙었다.
왼손에 있는 검을 바닥에 버리고 빠르게 도플갱어의 목을 잡아 부러뜨렸다.
“컥!”
내 손에 잡혔던 도플갱어의 감촉이 사라지고, 그제야 나는 두 눈을 떴다.
차단했던 감각들이 돌아오며, 머리가 띵하고 울렸지만 빠르게 적응되었다.
나는 밑에 있는 마법사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마법사는 손을 들며 인사를 하고는 빠르게 대련장 밖으로 나갔다.
나는 마법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자리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아직 부족한데…….’
도플갱어로 할 수 있는 훈련을 거의 다 해본 것 같았다. 그럼에도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지금까지 했던 훈련은 내 기본기를 다지는 것과 같을 뿐, 뭔가 강해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으…….”
나는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충분한 휴식도 취했고, 여기서 앉아 있어 봐야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열심히 하네.’
훈련을 마치고 나올 때마다 보이는 광경이었다. 김세아와 채하나가 열심히 지옥 훈련을 하고 있었다.
벌써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크게 없었다. 김세아의 마법은 채하나를 뚫지 못했고, 결국 채하나의 마법을 허용하며 녹다운되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쾅!
콰가가가강!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채하나의 화염 마법이 김세아를 강타했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김세아가 두 다리를 바닥에 붙인 채 버티고 있다는 점이었다.
김세아는 채하나의 공격을 버텼고, 반격을 준비했다. 양손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김세아의 앞에 모이면서 강력한 파동을 일으켰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나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의 한기였다. 양팔에는 어느샌가 닭살이 돋아 있었다.
콰아아아앙!
김세아의 마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련장을 가득히 메운 얼음 송곳들이 보였다.
바닥에서 위로 올라온 얼음 송곳들이 사방에서 올라와 채하나를 향했지만, 아쉽게도 채하나에게 직접 닿은 것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이글거리는 열기에 하나의 주위가 일렁이고 있었고, 김세아의 얼음 송곳들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허억허억…….”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김세아에 비해, 채하나는 한결같이 여유로웠다.
“오늘은 여기까지.”
“더 할 수 있습니다.”
김세아가 옆에 있던 체력 포션과 마나 포션을 마시려고 하는 것을 채하나가 막았다.
“여기서 더 하면 네 몸에 무리만 갈 뿐이야. 오늘은 내 공격을 막고도 버텨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장했어.”
“아직 부족합니다.”
창백한 얼굴의 김세아를 보며, 채하나가 한숨을 쉬더니 뒤에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얘 좀 데려가라.”
내가 봐도 지금 김세아가 무리하는 것으로 보이기에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지금 상태로 데려가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아, 일단 체력 포션을 먹였다.
창백했던 김세아의 얼굴이 빠르게 돌아왔다. 피가 돌고 얼굴에도 화색이 피었다.
훈련을 더 하고 말겠다는 욕망이 서렸지만, 이미 채하나가 대련장 밖으로 나간 지 오래였다.
“잠깐 쉬었다 가자.”
나는 김세아를 의자에 앉히고, 옆에 같이 앉았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바닥으로 숙인 김세아가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
나는 다리를 꼬고 앉아 의자에 등을 기대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던 거냐.”
“…….”
“얘기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해도 되는데. 요새 너를 보면 뭔가에 쫓기듯이 훈련하는 것 같아서. 너의 팀원으로서 걱정된다.”
김세아가 이렇게 이를 악물며 훈련을 하는 것은 간단했다.
길드 대항전의 결승전도 있지만, 그 결승전에는 이진수가 있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김세아는 지금 그때의 일에 과도하게 얽매여 있었다.
길드 등록을 하러 갔을 때, 이진수를 만났고 내 충고로 인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후우…….”
김세아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정말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쉰 다음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오늘따라 더 아름다워 보이는 미모가 돋보였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내가 그린나래에 잠깐 있었던 것을 알고 있지?”
“어.”
“하아…….”
다시 한숨을 내쉰 김세아가 잠깐 말을 멈췄다. 그리곤 확실하게 마음을 먹었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진수와 그렇게 큰 악감정이 있거나 싸운 건 아니야.”
“그럼 왜?”
악감정이 있거나 싸운 게 아니라고 하기에는 둘이 만났을 때 분위기가 살벌했다.
특히 이진수가 김세아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내가 그린나래에서 했던 훈련을 버티지 못했을 뿐이야. 그게 다야. 큰일은 아니니까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말은 저렇게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김세아는 생각이 많아 보였다. 딱 봐도 저게 전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 표정으로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 퍽이나 걱정 안 하겠다.”
“…….”
“저번에도 얘기했지만 난 네 편이다. 혹시라도 네가 도움이 필요 하면 난 언제든지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팀장인 네가 그렇게 있으면 팀원인 내가 힘이 나겠냐?”
“…….”
“혼자 감당하지 못하겠으면 도움을 청해. 그게 얼마나 무겁던 내가 함께 짊어져 줄 테니까.”
나는 다급하게 한마디를 더했다.
“이찬혁도 같이. 우린 같은 팀이잖아.”
내 말에 잠시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던 김세아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
김세아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사실 그린나래에서 받았던 훈련은 정상적인 훈련이 아니었어.”
분위기 취한 것인지, 내가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내뱉은 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김세아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는 가만히 침묵과 간단한 고개 짓으로 김세아의 말을 들었다.
“강해지는 것이라면 비 인륜적인 훈련도 강행했어. 나는 그것을 보고 버티지 못한 채 도망쳤고.”
“…….”
“그런 식으로 강해지고 싶지 않았어. 잘못됐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저번에 다시 만난 이진수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강해 보이더라.”
“…….”
“그 사실이 참을 수가 없었어. 내가 선택했던 방법이 잘못된 것 같았거든.”
“잘못되지 않았어.”
내 말에 김세아가 나를 쳐다보았다.
“넌 충분히 강해. 지금 당장은 실력 차이가 나더라도, 넌 분명 이진수를 뛰어 넘을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김세아는 가지고 있는 특성뿐만 아니라 재능이 있기에 1년차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길드 대표전에서 1등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리스 길드는 김세아를 필승 카드로 사용하면서 결승전에 올라왔다.
김세아의 강함은 길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너 빼곤 다 알아.”
* * *
나는 조용히 훈련할 수 있는 개인 훈련장을 빌렸다. 그러곤 마법사에게서 마석을 이용해 도플갱어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도플갱어를 만드는 방법은 쉬웠다.
이미 마석을 가공해서 마법사가 조취를 취해놓았기 때문에 마나만 불어넣으면 되었다.
“후우.”
지금의 실력이라면 이진수와 비벼 볼 수도 있지만, 내 성에 차지 않았다.
확실하게 짓눌러 버리고 싶었다.
그렇기 위해선 지금의 방식으로는 부족했다. 좀 더 확실하게 강해져야 했다.
나는 그동안 포인트를 모아왔다.
7랭크를 올릴 수 있는 충분한 포인트가 있음에도, 투기장에서 필요할 때에 필요한 능력을 올리기 위해서 아껴두었다.
그리고 어제 밤 발칸이 다음 층에 대한 얘기를 해주었다. 최대한 강해져서 올라가야 한다며, 열심히 훈련을 하라고 했다.
“해볼까?”
나는 포인트를 사용했다.
[힘 랭크 6이 랭크 7이 되었습니다.]
[능력치 중 하나가 최초로 랭크 7에 도달했습니다. 보상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를 얻었습니다.]
뿌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내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