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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역대급 수련-93화 (93/177)

# 93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93화

23장 어디 한번 해보자고(4)

저벅저벅.

훈련된 병사들의 발걸음이 딱딱 맞춰 움직였다.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나는 기사와 함께 나란히 걸었다. 걷는 동안에 대화 같은 것은 없었다.

침묵 속에서 병사들은 주위를 경계하기 바빴고, 기사 또한 굳은 표정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마라.”

왕궁으로 들어가는 정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안전하게 왕궁까지 도착했기 때문인지, 기사의 표정도 훨씬 나아졌다.

긴장은 진작부터 할 필요가 없었다. 마나 탐지를 사용해 본 결과, 주변 일대에서 강력한 마나를 가진 존재는 왕궁이 유일했다.

“충성!”

무사히 정문에 도착했다.

나는 보금자리로 돌아가려고 방향을 틀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2왕궁이 나오기 때문이다.

“어디 가십니까.”

기사가 내 앞쪽으로 다가와 막아섰다.

“볼일 끝난 거 아닌가?”

“왕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진작 말을 했어야지.”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며 걸었다. 큰 대로가 보이고 그 너머에 제일 화려한 궁전이 보였다.

저 너머에 보이는 입구로 들어가게 되면, 길로스 왕국의 통치자인 슈펜이 나타나게 되었다.

슈펜 폰 길로스.

체펜의 기억에 의하면, 슈펜의 업적은 정말 대단했다.

그는 일개 변방의 소국이었던 곳을 왕국으로 만들었다. 그의 지력과 무력은 대단했고, 왕국에서는 슈펜을 영웅이라 불렀다.

슈펜의 명성을 듣고, 수많은 가문이 고개를 숙여 길로스 왕국으로 흡수되었다.

슈펜은 백성들의 마음을 헤아려 많은 정책을 내놓았고, 이 밖에도 말하면 셀 수도 없는 업적들로 가득했다.

이 위대한 업적을 만들기까지 꽃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부상을 얻고, 또 이겨내며 저 자리를 지켜낸 것이다.

부상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 슈펜의 몸도 정상이 아니었다.

예전처럼 활동하기에는 이제 몸이 받쳐주지 않았다. 왕위 계승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 1왕자가 죽었으니, 더욱 착잡한 마음일 것이다.

“제2왕자 체펜 폰 길로스 왕자가 도착했습니다.”

기사가 문 앞에서 외쳤다.

그러자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기사 옆으로 발걸음을 옮겨 길을 터주었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정말 놀라웠다. 슈펜으로 보이는 왕좌에 앉은 남성의 양옆에는 아름다운 미녀들이 있었고, 그 앞에는 술과 안주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슈펜은 한 손으로 미녀를 감싸며, 다른 한 손으로 잔에 있는 술을 마셨다.

그러자 다른 미녀 한 명이 안주 하나를 슈펜의 입에 넣어주었다.

안에는 왕과 미녀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밑에는 각 가문에서 온 대표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들어 오너라.”

술로 인해 얼굴이 벌게진 슈펜이 손을 흔들며 나를 향해 말했다. 나는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안으로 들어갔다.

분위기로 보아, 1왕자의 죽음, 그리고 그 후에 대한 대책 회의를 하기 위해 모인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가문의 대표들을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러나 지금 회의를 이끌어야 할 슈펜은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다.

1왕자의 죽음에 대한 충격 때문일까.

지금의 슈펜의 모습은 정상이라고 보기 힘들었다.

‘이상한데?’

그러나 체펜의 기억에도 슈펜의 모습은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슈펜을 본 것이 체펜의 기억으로는 석 달 전 로펜 왕자의 생일 파티 때였다.

몇 달 사이에 슈펜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프로아 백작.’

나는 왼쪽 열에서도 가장 왕 쪽에 가까이 서 있는 프로아 백작을 쳐다보았다.

“이리로 오시지요.”

프로아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그 웃음이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더럽게 느껴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나는 중앙으로 걸어가며, 슈펜의 바로 밑에 섰다. 그것을 확인한 프로아 백작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회의를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현재 엘프의 숲에서도 대규모의 움직임이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습니다.”

“엘프들이 대비를 하기 전에 빨리 공격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당장 쓸어버리러 갑시다!”

배가 볼록 나온 슈만 백작이 흥분하며 소리쳤다. 그런 슈만 백작을 제지한 것은 이번 전쟁의 총사령관인 안젤로였다.

“엘프들은 숲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을 겁니다. 거기다 엘프들에게 숲은 유리한 전장입니다. 아무런 대책 없이 쳐들어갔다가는 전쟁에서 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주된 회의는 엘프들과의 전쟁에서 어떻게 하면 승리할 수 있을지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 엘프들이 로펜 형님을 죽인 이유는 뭡니까.”

내 말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프로아 백작이 애써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미 엘프들은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로펜 형님은 그럼 이유도 없이 개죽음당했다…… 그 소립니까?”

“크흠…… 그런 게 아닙니다. 로펜 왕자님을 위해서라도 엘프들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이유건 엘프들은 로펜 왕자님을 죽였고, 저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든 정보를 얻어 보려고 했던 내 시도는 먹힐 것 같지 않았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흥분 상태였고, 침착하게 이 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있다고 해도 나처럼 깊게 파고들 의욕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프로아 백작이 하는 말이 저들에게는 가장 와닿을 것이다.

내일 아침 출발을 하는 것으로 회의는 끝이 났다. 아무래도 엘프들이 들고 일어선 것은 당사자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슈펜은 기사들이 다가와 부축해서 침실로 옮겨갔다. 슈펜이 나간 뒤, 안에 있던 가문의 대표들도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나가려고 하는 순간, 뒤에서 프로아 백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2왕자님?”

나는 몸을 돌려 프로아 백작을 쳐다보았다.

“뭔가 예전과 많이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눈치채는 사람이 하나 정도, 아니, 그 이상은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운이 좋아 들키지 않았을 뿐이다.

무엇보다 방금 전 회의 때에서 그렇게 거침없이 의견을 내뱉는 것은 체펜의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나에게는 아주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카드가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 저도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길로스 왕국의 제 1왕자인 로펜이 죽었고, 한때 영웅이라고도 불렸던 슈펜은 폐인이 되어 있었다.

체펜의 행동이 바뀌기에 충분한 조건이었다.

“그렇군요.”

프로아 백작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는 먼저 밖으로 나갔다.

* * *

정면에 보이는 드넓은 평야.

그 너머에는 안이 보이지 않는 나무로 가득한 숲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숲 깊은 곳에는 구름을 뚫을 정도로 높고 굵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저게 세계수구나!”

“이야.”

엘프의 수호신이라고도 불리는 세계수의 위엄은 정말 대단했다.

서쪽 지역은 처음 와보는 기사와 병사들이 세계수를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나 또한 감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체펜의 기억으로 본 것과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은 확실히 느껴지는 게 달랐다.

“여기서 재정비한다!”

안젤로의 말을 들은 기사들은 빠르게 퍼져 나가며 대규모 병력에게 전파했다.

가장 후방부에 지휘소가 설치되었고, 그 앞으로 병사들이 휴식할 수 있는 소형 천막들이 쳐졌다.

일부 병사들은 식사를 위한 배식을 준비했고, 일부 병력은 전면에 나서서 진지를 구축했다.

나는 돌아다니면서 그 모습들을 훑어보고는 지휘소로 이동했다. 그 안에서는 안젤로를 비롯한 가문의 대표들이 모여 있었다.

“작전 계획을 설명하겠습니다.”

안젤로의 밑에 있는 기사가 작전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작전 계획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선발대가 앞장서서 숲에 불을 지르고, 본대가 합류해서 엘프들을 쓸어버리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어려운 게 없었으나, 누가 선발대로 나갈지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선발대로 나가게 되면, 최악의 경우 전멸 가능성도 높았고, 무엇보다 가장 먼저 달려들기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하지만 작전대로 이루어지고, 전쟁에서 승리만 한다면 가장 많은 영광과 보상을 챙겨가는 것 또한 선발대였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몇몇 가문의 대표들이 손을 들었다. 대부분이 체펜의 기억에 없는 그런 가문들이었다.

자신들의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선발대에 참가하려고 손을 든 것이지만, 애초에 그런 가문들에서 많은 병사를 데려왔을 리가 없었다.

그들만으로는 선발대의 인원이 차지 않았다.

‘메리트가 없지…….’

이름 있는 가문들이 선발대에 참가하지 않는 이유였다. 이미 부와 명예는 충분히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다.

같은 왕국 안에 묶여 있지만, 이 안에서도 수많은 다툼과 권력 싸움이 일어났다. 그 안에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병력은 또 다른 무력과 같았다.

되도록 피해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 이름 있는 가문들의 속마음이었다.

“그렇다면 가문별로 차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안젤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가장 합리적이며, 모두가 불만을 가지지 않을 최선의 방법이었다.

나는 밖으로 나와 최전방으로 가서 앞에 보이는 엘프의 숲을 바라보았다.

이 시련에서 클리어 조건은 엘프의 왕을 죽이는 것과 화해를 하는 것 두 가지가 있었다.

세 번째 물음표도 있지만, 저 두 가지 방법 중 하나에서 추가적인 방법으로 클리어할 뿐이지, 저 클리어 조건에서 궤를 달리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일단은 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뭐가 맞을까.’

먼저, 엘프의 왕을 죽여서 클리어하는 경우, 아마도 엘프족을 전멸시키는 것이 세 번째 물음표의 클리어 조건이 아닐까 싶었다.

전쟁이라는 것에도 딱 어울리니 쉽게 연상할 수 있었다.

반면에 화해를 해야 한다는 클리어 조건 경우에는 세 번째 물음표의 클리어 조건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고민이 되었다.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 화해하게 되는 것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이것에 대한 해답은 프로아 백작이 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지만, 그것에 대해 알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앞으로 전쟁을 펼쳐야 할 엘프를 만나야 했다.

‘지금은 위험해.’

원래의 내 몸도 아니고, 체펜의 몸으로 저 숲을 혼자 들어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근처에 가는 순간, 엘프들의 화살에 벌집이 되어 입도 열기 전에 죽게 될 것이다.

내일 전쟁이 시작되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세레나에게 접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최대한 빨리 만나서 상황 파악을 끝낸 다음, 서로 한 발자국씩 물러선다면 시간을 버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다.

그 안에 충분한 해답을 찾는다면, 화해를 통한 세 번째 클리어 조건도 해볼 만했다.

엘프들을 쓸어버리면 쉽겠지만, 처음에 내가 한 다짐을 깨뜨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지 않는 이상, 최대한 노력해 볼 생각이었다.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거나, 죽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돌리려고 할 때, 내 옆으로 뭔가가 날아와 바닥에 박혔다.

‘화살?’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니 수백 개가 넘는 화살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근처에 있는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방패 들어!”

내 명령과 함께 상황 파악을 한 병사들이 모두 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한 차례 화살 비가 지나간 뒤, 지휘소 쪽에서도 연락을 받았는지, 병사들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엘프 쪽에서 먼저 선공을 취하는 걸 보니, 뭐가 잘못 돌아가도 단단히 잘못 돌아가는 게 분명했다.

‘시련에 적혀 있지 않은 무언가가 있어.’

나는 일단 좀 더 자세한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공격이 날아오는 쪽을 쳐다보았다.

“뭐야?”

그 정면에는 예상대로 엘프들이 화살을 쏘고 있었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엘프들의 중심에서 화살을 쏘고 있는 세레나의 모습이었다.

체펜의 기억 속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기로 맹세한 세레나가 맹렬한 기세로 화살을 쏘고 있었다.

상태를 보아하니, 평범한 대화를 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일단 제압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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