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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역대급 수련-91화 (91/177)

# 91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91화

23장 어디 한번 해보자고(2)

“흐음…….”

연못에 비친 내 모습을 쳐다봤다. 검은색의 얇은 천 옷 위에 갈색 가죽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가벼운 전투 복장과 허리에는 검집과 함께 화려한 검 자루가 눈에 띄었다.

겉모습만 본다면 가격이 꽤나 나갈듯한 그런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게 나라고?”

무엇보다 연못에 비친 내 얼굴은 오유성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빨간 머리칼에, 잘생기고 귀티가 나는 얼굴이었다.

매끈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으며, 손 또한 매우 부드러웠다. 눈을 한번 깜박이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시련 : 평화와 전쟁]

길로스 왕국을 다스리는 왕 슈펜 폰 길로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슈펜 폰 길로스의 첫 번째 아들이자, 길로스 왕국을 이어받을 왕자인 로펜 폰 길로스가 죽었기 때문이다.

로펜의 심장에는 엘프들이 사용하는 세계수의 가지로 만든 화살이 박혀 있었다.

왕국 서쪽에 위치한 세계수의 숲에 사는 엘프들을 향해 슈펜 폰 길로스는 전쟁을 선포했다.

그의 명령으로 왕국의 병력이 움직였고, 목표는 엘프들의 척살과 세계수를 불태워 버리는 것이었다.

이번 전쟁의 사령관은 왕국 최고의 기사라고 불리는 안젤로.

그 밑에는 수많은 기사가 참가했고, 2왕자인 체펜 폰 길로스도 같이 참가했다.

체펜 폰 길로스는 자신의 형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왕자의 모범과도 같았고, 무력이나 지력이 매우 뛰어났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무척이나 분노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길로스 왕국의 손을 들 수 없었다.

이번 사건의 원흉이라고 알려진 엘프.

그 종족에는 자신이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사랑하는 엘프 공주 세레나가 있었다.

형과 세레나.

그 둘 중 한 명을 쉽사리 선택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선택을 해야 했다.

클리어 조건 : 전쟁과 평화,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합니다.

전쟁 ? 엘프의 왕인 하이 엘프 애프림을 죽여라.

평화 ? 엘프와의 화해.

??? - ???

보상 : 티켓, ???

실패 : 엘프와의 전쟁에서 패배할 경우 ? 죽음

전투에서 목숨을 잃을 경우 ? 죽음

시련 메시지가 모두 나타난 뒤, 내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기억이 흘러들어왔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감정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크으윽!”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많은 양의 정보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나는 머리를 잡으며,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파도처럼 몰아치던 정보는 차근차근 정리되며 점점 잦아들었다. 고통이 없어지고 머릿속은 정리되었지만 속이 울렁거렸다.

근처에 있는 나무에 속을 한 번 게워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후우…….”

완전히 게워내지 못하고 남은 위액 맛이 느껴졌다. 침을 모아 위액을 모두 뱉어내고, 연못으로 가서 간단하게 입을 헹궜다.

“크윽!”

갑자기 가슴이 타들어 갈 것처럼 아팠다. 멀쩡한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누군가의 죽는 모습과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 교차하면서 지나갔다.

‘이번엔 심하네.’

부작용이었다.

최근에 두 번 정도 시련을 클리어하면서 겪었던 일이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의 몸 속에 들어가 완전히 그 사람이 되는 것. 앞선 두 번의 시련에서는 내가 차지한 사람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는 것이 다였다.

이렇게 세세한 감정과 기억 따위는 없었다.

나는 근처에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고르며 머릿속으로 들어온 기억을 정리했다.

이곳에서의 나는 체펜 폰 길로스였다.

연못에서 봐왔던 그 잘생긴 얼굴의 주인이자, 이번 시련의 주인공이었다.

누군가의 죽는 모습은 형인 로펜의 죽음이었다. 관에 담겨 싸늘한 피부로 눈을 감고 있었다.

옆에는 미세하게 빛이 나는 화살이 놓여 있었다. 아마도 그게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만든 화살 같았다.

그리고 뒤에 나타난 아름다운 여성의 귀는 뾰족했다. 바로 엘프 공주 세레나의 얼굴이었다.

“이쁘네.”

기억을 정리하니 점점 더 나 자신이 오유성이 아닌 체펜 폰 길로스가 되는 느낌이었다.

정리를 해보려고 하다가 오히려 상황이 역전되려고 하고 있었다. 체펜의 기억들이 내 몸을 장악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아니지.’

이 몸은 체펜 폰 길로스의 몸이었다.

그의 몸에 내 정신이 깃든 것이고, 원래의 정신이 깨어나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체펜의 정신은 정말 혼돈의 소용돌이나 다름없었다. 분노와 슬픔, 사랑이라는 감정들이 뒤섞였다.

-내 몸을 돌려줘……!

환청이 들리듯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은 미성에 가까운 남자의 목소리였다.

발칸인가 싶기도 했지만 목소리가 자체가 달랐다. 무엇보다 목소리에서는 내 몸이라고 지칭했다.

목소리의 정체는 체펜 폰 길로스.

그가 자신의 몸을 되찾기 위해 발악하고 있었다.

“그건 안 되겠는데.”

체펜의 성격은 우유부단 그 자체였다.

지금도 형과 자신의 연인 사이에서 무한한 갈등을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녀석이 몸의 통제권을 가져간다면, 아마 나는 시련을 끝내지 못할지도 몰랐다.

전쟁이 벌어지고, 누군가에게 검을 휘둘러야 할 때 그러지 못한다면 결국 목숨을 잃는 것은 체펜이 될 것이다.

세레나를 만났을 때, 내가 느낀 체펜의 감정이라면 그 어떠한 행동도 못 할 것이 분명했다.

혹시라도 세레나를 지키기 위한 엘프족 병사가 이 몸을 노린다면 화살 맞고 죽을 수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런 배경에서 체펜의 성격은 살아남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세레나를 살려야 돼!

체펜의 마지막 발악에 나는 정신을 집중해, 몸 하나하나의 감각을 내 것으로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펜의 자리는 줄어들었고, 마지막 남은 자리까지 내가 모두 가져갔다.

“걱정 마. 네가 사랑한다는 그 여자 목숨만큼은 살려줄 테니까.”

이로써 내가 체펜의 몸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족쇄에서 풀리는 느낌과 함께 체펜의 감정 또한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시련에서도 엘프의 왕인 애프람을 죽이라고 나와 있었지, 세레나를 죽이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일단 몸을 장악했으니, 적응할 차례였다.

“상태창.”

내 말에 따로 상태창이 나타나는 것은 없었다. 장비창이며, 포인트 상점도 외쳐보았지만, 역시나 깜깜무소식이었다.

이전에 두 번의 시련에서도 사용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혹시나 될까 싶어서 시도해 보았지만, 안 되는 것은 이전의 시련과 똑같았다.

당연히 발칸의 도움은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도움 될 만한 것은 모두 듣고 왔다. 가장 먼저 클리어 조건에서 물음표로 도배되어 있는 세 번째 방식이 중요했다.

히든 클리어.

두 개의 정답 이외에 숨겨진 답을 찾게 될 경우 좀 더 큰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 보상은 티켓.

발칸의 말에 의하면 티켓은 10층을 올라가기 위해 필수라고 했다. 10층을 올라가기 위해선 티켓이 무조건 필요했고, 자신의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 특별한 층이라고 말했다.

그 옆에 있는 보상 칸의 물음표가 바로 히든 클리어를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얻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저 뭔지 모를 보상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따라 10층의 난이도가 크게 달라진다고 했으니까.

“으차!”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몸을 움직여 보았다. 가볍게 뛰어 보기도 했고, 검집에 있는 검을 뽑아보기도 했다.

맑은소리와 함께 검신이 드러났다.

촤아앙!

거의 깃털을 드는 것처럼 가벼운 검이었다. 가볍기만 한 검은 실질적이지 못했다.

나는 검을 휘둘러 근처에 있는 돌을 내리그었다. 그저 있는 힘을 모두 주고 그었을 뿐, 마나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돌이 두부 썰 듯 반듯하게 잘렸다.

서걱!

나는 다시 검을 들어 바라보았다. 마나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라면, 마나를 사용했을 때는 더욱 위력이 클 것이다.

‘이런 게 명검이구나.’

현실에서도 이름 있는 명검에 대한 존재만 알고 있을 뿐, 실제로 본 적은 없었다.

검이라는 것에 대해 욕심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검이라면 욕심이 생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검을 다시 집어넣었다.

이제 왕궁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왕궁으로 가서 내가 할 일은 의외로 간단했다.

사건 조사.

체펜의 기억에 로펜의 죽음만이 남아 있을 뿐, 그 내막에 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일단은 사건 조사를 해본 뒤에, 이 사건의 중심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를 찾아야 했다.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왕궁 쪽으로 향했다.

체폰의 기억 때문에 이전과 다르게 헤맬 필요가 없었다.

* * *

왕궁으로 돌아왔다.

궁을 둘러싼 높은 벽과 거대한 문이 나를 반겨주었다. 문 앞에는 두 명의 호위 병사들이 나를 보며 크게 외쳤다.

“충성!”

평소의 체펜이라면 웃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부터는 평소의 체펜이 아니었다. 체펜의 모습을 한 오유성일 뿐이다.

거기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체펜으로서의 표정 관리도 필요했다.

왕국 전체가 슬퍼하고 있었고, 더군다나 형을 먼저 떠나보낸 동생이 웃고 다닐 리 만무하니까.

“그래.”

나는 간단하게 대답하고, 2왕자궁으로 걸어갔다. 그 과정에서 시녀들뿐만 아니라, 체펜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인사를 받았다.

대부분의 시선에는 안타까움과 걱정이 담겨 있었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니, 깔끔하게 무시하고 2왕자궁에 있는 집무실로 이동했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왕자치고는 꽤나 소박한 방이었다. 화려한 장식품은 다른 방에 비해 10분의 1 정도였고, 책상과 의자 정도만 있었다.

“왕자님 오셨습니까!”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어린 소년이 다가왔다. 깔끔한 복장이었다.

체펜의 시종인 알렉스였다.

체펜의 기억에 의하면, 밖으로 나가기 직전 알렉스에게 시킨 것이 있었다.

“내가 시킨 것은?”

“책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나는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책상 위에는 양피지 두루마리가 5개 정도 쌓여 있었다. 아마도 이번 사건에 대한 보고서일 것이다.

나는 의자에 앉아 가장 위에 있는 것을 열어보았다. 이번 보고서는 왕실 기사단의 조사 보고서였다.

[사건 보고서]

왕국에서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왕국 서열 2위인 제 1왕자 로펜 폰 길로스의 죽음에 대한 보고서이다.

사인은 심장에 직격으로 맞은 화살이다.

무척 희귀해서 엘프들도 잘 사용하지 않는 세계수의 화살은 마나를 없애버리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화살을 맞은 장소는 서쪽 성벽 너머에 있는 엘프의 숲 초입로.

병사들과 순찰을 하던 중 공격을 당했다…….

나는 두 번째 양피지를 꺼냈다.

모루와 망치의 문양이 박혀 있었다. 왕실 직속으로 있는 장비 제작자들이 모인 단체였다.

장비 제작이니만큼, 세계수의 화살에 대한 보고서였다.

[세계수의 화살]

엘프의 심장이라고도 하는 세계수에서 1년에 한 번씩 떨어지는 나뭇가지를 이용해 만든 것이 세계수의 화살이다.

세계수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엘프족 중에서도 고귀한 혈통만이 가능하다.

인간의 언어로는 왕이라고 할 수 있는 하이 엘프.

오직 하이 엘프만이 이 세계수의 화살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 점으로 보아 이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하이 엘프일 것이라고 추정된다.

나는 다른 양피지를 모두 확인하고 마지막 양피지를 꺼내 들었다.

이번 양피지에는 검은색 활이 그려진 문양이 박혀 있었다. 왕실에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보 부대의 문양이다.

오로지 왕의 명령만 듣고 행동하는 부대였다.

[유력한 용의자]

엘프족의 공주 세레나.

세계수의 화살대 중앙에 미세하게 쓰여 있는 엘프어를 분석한 결과, 엘프족의 공주인 세레나의 이름이 나왔음.

나는 조용히 양피지를 한곳으로 모아 찢어버렸다.

세레나가 유력한 용의자라는 소리에 나는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엘프라는 종족은 거짓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번 맹세를 하면 죽을 때까지 지키는 특이한 종족이다.

무엇보다, 세레나는 체펜에게 맹세를 했다.

인간을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마디로 마지막 보고서는.

‘개소리지.’

아무래도 왕실 내부에 정보를 조작하려고 하는 검은 세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세력이 이 사건의 진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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