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87화
22장 이찬혁(2)
발칸을 호출했지만, 뭘 하는지 대답이 없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열어 확인해 보려 했지만,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에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오유성!”
이지상과 이찬혁의 대련이 끝나 있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지상을 이기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헉헉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는 이찬혁이 대련장 밑으로 내려왔다.
이지상은 대련장 위에서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올라와.”
이찬혁이 밑으로 내려와 의자에 앉아 수건을 목에 걸치고, 땀을 식혔다. 나는 시선을 돌려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이번엔 진심을 다해서 할 거니까. 최선을 다해라.”
나는 이지상의 진심이라는 말에 순간 멍해졌다. 최근에 있었던 대련에서 이지상의 전력을 목격했고, 내가 이겼다.
그런데 지금 이지상은 그게 자신의 전력이 아니라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의문스럽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자 이지상이 웃으며 말했다.
“설마 저번 대련이 내 전력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
아무런 대답이 없자, 이지상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래 보여도 길드 대항전 대표로 나갔고, 너네 훈련 코치야. 그 정도가 전력일 리가 없잖아? 그때 져준 건 너네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야.”
이지상이 검을 들었고, 나도 손에 검을 쥐었다.
“김세아, 최정환, 한소희, 그리고 너는 어느 정도 무대 공포증도 없는 것 같으니까. 이제 제대로 대련 연습을 시작하는 거야. 먼저 들어와.”
이지상이 검을 늘어뜨린 채, 내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지상을 바라보며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힘이 생기고 너무 상대를 낮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에도 내가 강해졌으니 이지상을 이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김세아도, 이찬혁도, 한소희도 이겼으니 내가 이기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싫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지상의 본 실력과 겨루어 볼 수 있었고, 또 하나의 기준을 만들 수 있었다.
대표단끼리는 서로서로 전력을 다해서 싸우지 않았다. 대련이기도 했고,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대부분이 어느 정도의 힘을 숨겼다.
그러나 훈련 코치들은 그런 것이 없었다.
“그럼 갑니다.”
나는 앞으로 달렸다. 바람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이지상에게 접근해 검을 휘둘렀다.
처음이니 몸을 풀 요량으로 가볍게 움직였다.
챙!
이지상이 내 검을 막았고, 나는 급소를 노리며 검을 찔러 넣었다. 내가 주로 공격을 했고, 이지상은 주로 방어를 하며 피해 다녔다.
내 공격을 피하고, 검으로 쳐내고, 그러고는 나를 바라보며 이지상이 입을 열었다.
“어쭈. 네가 안 들어오니 내가 들어간다!”
이지상이 속도를 올렸다.
방어에서 공격으로 전환을 하며, 검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내 머리와 심장, 손목을 노리며, 끈질기게 쫓아왔다.
‘아직이야.’
나는 몸에 마나를 퍼뜨리며, 속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내 몸을 노리는 검들을 쳐냈다. 육체적 능력이 올라가면서 힘 또한 강해졌기에 이지상의 동작이 커졌다.
내 검으로 인해 이지상의 팔이 크게 올라갔고, 그 틈을 노려 검을 아래서 위로 쳐올렸다.
삭!
무언가 베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손에 뱄다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벤 것은 이지상의 잔상이었다.
동시에 마나 탐지를 사용했다.
바로 내 뒤에서 이지상의 마나가 느껴졌다. 나는 빠르게 몸을 돌려 검을 들었다.
챙!
이지상이 꽤나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걸 막아?”
“좀 느리네요.”
이번엔 내 차례였다.
다시 사라진 이지상의 공격을 막으며, 속도를 한 층 더 끌어올렸다. 점점 빨라진 몸놀림과 검으로 인해, 이지상과 비슷비슷해졌다.
삭!
이지상의 속도가 이전보다 두 배는 더 빨라졌다. 미처 반응하지 못한 탓에 왼쪽 어깨에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러나 두 번이나 공격을 용납할 생각은 없었다.
챙!
공격을 막아내고, 마나를 좀 더 끌어올려 몸에 퍼뜨렸다. 그로인해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이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본적이 없었다. 의식을 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닌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무아지경에 빠진 것처럼,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빨라지는 속도에 적응하면서, 움직임이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콰아앙!
마침내, 이지상과 나의 검이 마주치면서 엄청난 풍압을 일으켰다. 엄청난 속력이 담긴 두 검이 만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후우, 후우…….”
마지막에 모든 마나를 써버리느라, 남아 있는 마나가 없었다. 엄청난 속도에 적응하느라 체력 또한 거덜나버렸다.
이렇게 서 있는 것은 오로지 검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눈만 치켜 들어 반대편을 쳐다보았다.
이지상도 나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표정이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놀라운 표정도 있었고, 웃기도 했고, 뭔가를 말하고 싶어 했지만 숨을 고르느라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결국 이지상 대련장에 먼저 드러누웠다.
그것을 보고 나도 뒤로 쓰러졌다. 내 귀로 이지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축하한다. 이번 대련에서 성장했구나.”
원래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을 사용한 것이지만, 이지상의 입장에서는 성장으로 보였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지상 덕분에 속도의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기회가 생겼고, 속도의 한계를 늘릴 수 있었으니까.
거기다 성장이라는 좋은 핑계거리가 생겼다.
“이젠 진짜 제가 이긴 겁니다.”
“이걸 쪽팔려 해야 하는 건지, 성장을 도와줘서 뿌듯해해야 하는 건지. 미치겠네…….”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좋지 않겠습니까.”
“말을 말자.”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체력이 어느 정도 돌아와 상체를 들었다. 먼저 이찬혁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러나 대련장에 이찬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찬혁이 사용했던 수건만이 의자에 남아 있었다.
나는 의자 쪽으로 가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찬혁은 이미 밖으로 나간 모양이었다.
“너. 뭐야?”
언제 다가왔는지, 김세아가 약간은 뚱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가?”
“방금 전 대련. 그 정도 실력을 가졌는데 나한테 숨기고 있던 거야?”
“속인 건 아니고. 최근에 뭔가 아리송한 느낌이 들었다가 이번 대련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야.”
뭔가 쉽게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김세아는 이해하기로 한 듯 다른 주제를 꺼냈다.
“이찬혁은?”
“안 그래도 찾아보는 중인데. 나간 것 같아.”
이지상 또한 체력을 회복했는지, 우리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만 하고. 너넨 이찬혁 찾아서 기분이라도 좀 풀어줘라. 투정은 오늘까지만 봐주는 거니까. 잘 타일러서 와.”
“예. 알겠습니다.”
“네.”
나와 김세아는 대련장 밖으로 나왔다. 아마 이찬혁도 땀을 흘렸기 때문에 씻으러 갔을 것이다.
“일단 씻고 분위기 괜찮은데서 이야기나 해보자.”
내 말에 김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김세아가 씻으러 가고 나도 숙소로 올라갔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샤워실에서는 물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이찬혁이 씻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문을 열고 나와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아까 발칸과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잠금을 풀자 책에 집중하고 있는 발칸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화면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발칸.”
-무슨 일이지?
너무 집중하고 있었는지, 아까 내가 부른 것은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나는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부탁 좀 할 게 있다.”
-말만 해라.
“네가 저번에 말했지? 투사들 많이 가르쳐 봤다고.”
-예전에는 그랬지. 최근에는 너 하나뿐이지만.
“그 능력 좀 빌리자.”
내 말에 발칸이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되물었다.
-내가 알려준 훈련을 벌써 끝낸 건가?
“내가 아니라. 조금 급한 놈이 하나 있다.”
발칸이 입을 다물더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발칸을 쳐다보았다.
-네 부탁이라면 들어주지. 그러나 믿을 만한 사람인가?
“어. 그건 내가 보증할게.”
-뭐가 문제지?
나는 이번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길게 설명하기보다는 이찬혁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큰 무대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말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발칸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역시 방법이 있을 줄 알았다. 나는 자세한 방법을 듣기 위해 질문했다.
“어떻게 하면 되지?”
-짧은 것과 긴 것 두 개가 있다.
다음 경기까지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을 수도 있는 시간이었다.
“긴 건 얼마나 걸려?”
-두 달.
“너무 길어. 짧은 건?”
발칸이 손가락 두 개를 피며 말했다.
-이틀.
나는 발칸을 쳐다보며 웃었다. 주말이라면 이틀이라는 시간 정도는 충분하게 낼 수 있었다.
“딱 좋네.”
* * *
“일단 마셔.”
나는 술을 가득 따른 잔을 들며 말했다. 이찬혁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잔을 같이 들었다.
술잔을 부딪침과 함께 술을 들이켰다.
“미안하다.”
이찬혁이 술잔을 깔끔하게 비운 뒤 얘기했다.
항상 밝은 모습의 이찬혁만 봐서 그런지, 이렇게 우울한 표정의 이찬혁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우울한 모습보다 웃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얘기해 봐. 대체 무슨 일인지.”
이왕이면 우울한데 강제로 웃으라고 하는 것보다는,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원래의 이찬혁으로 돌아왔으면 싶었다.
그러려면 이찬혁의 속마음에 대해서 들어봐야 했다.
내 말에 이찬혁이 잠깐 고민을 하더니 술잔을 내밀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술잔을 채워줬다.
이찬혁은 쉽게 털어놓지 못하겠는지, 계속 빈 술잔을 내밀었고 나는 계속 술을 채워주었다.
오늘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이찬혁이 우리를 믿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해 줄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우리한테라면 얘기해 줄 테니까.’
그리고 알딸딸한지 이찬혁이 숨을 크게 들이쉬며 물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시간이 지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미안하다……. 속인 것도 그렇고…… 길드 대항전도 그렇고…….”
“속였다고 생각 안 해. 너라면 언젠가 우리에게 얘기했을 테니까. 그리고 길드 대항전이라면 이제 그만 얘기해. 코치님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김세아가 속 시원하게 해주었다. 나는 남아 있는 술을 한 잔 마시면서, 이찬혁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10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를 처음 만났어. 그전에는 아버지가 죽은 줄 알고 살았다.”
“…….”
“더 믿기 힘든 건 내 아버지가 평범한 사람이 아닌 군성 그룹의 회장이라는 거였지. 나는 10살 때 아버지의 밑으로 들어갔고. 군성 그룹의 셋째 아들로 살게 되었지.”
“.....”
“거기다 나는 혼외 자식이니 대우는 뭐. 드라마에서도 많이 나오잖아? 그렇게 갈굼을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살아왔지.”
“…….”
“그러다 특성을 얻었고 헌터 학교로 도망쳤지. 나중엔 아버지가 그린나래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또다시 아버지의 밑으로 들어간다는 게 싫었다……. 그래서 아이리스 길드에 들어왔지.”
“…….”
“그러다 너네를 만났고, 당당해지고 싶었어. 그래서 용기를 내어 아버지께 인정받고 제대로 세상을 살아보고 싶었는데……. 내가 다 망쳐 버렸지.”
“뭘 망쳐.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내 말에 이찬혁이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우리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그린나래한테는 힘들다는 거 다 알잖아. 거기다 이번에 지게 되면 분명 아이리스 길드에도 영향을 미칠 거야. 그리고 그 영향은 너희에게까지 미치겠지.”
“우린 질 생각이 없는데?”
김세아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김세아 말처럼 난 질 생각이 없었다.
무조건 이번 길드 대항전 우승 길드는 아이리스 길드로 만들 것이다.
나는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그래서 다 필요 없고 네 생각은 뭐야. 어떻게 하고 싶어.”
“나는…… 너네랑 함께하고 싶다.”
누군가가 답을 유도해서 얻은 것이 아닌, 이찬혁의 가슴 깊은 곳에 있는 진심을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이찬혁의 술잔과 부딪치며 말했다.
“그거면 됐다.”
일단 시작은 다음 경기에서 이찬혁이 승리를 하고 자신감을 얻는 것부터였다.
“이번 주 주말 시간 비워놔.”
“왜?”
“내가 강해진 방법. 너한테도 알려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