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86화
22장 이찬혁(1)
아이리스 길드와 메린 길드 경기가 끝나고, 진행자의 마무리 멘트와 함께 사람들은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오늘 경기를 치른 헌터들은 대기실에서 사람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대기실로 돌아와 이찬혁의 옆에 가서 앉았다.
“괜찮냐?”
내 말에 이찬혁이 고개를 들었다. 핏기가 사라져 얼굴이 새파랗게 보였다.
“뭐가?”
“아니다.”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이찬혁이 고개를 다시 숙였다. 축 처진 어깨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저으며, 선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도 이찬혁의 상태가 궁금했는지 나를 향해 물었다.
“왜 저러는 거냐?”
이지상의 질문에 내가 대답했다.
“저도 잘……. 근데 경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의 턱을 만지며 이지상이 이찬혁이 있는 곳을 쳐다보았다.
“쩝. 경기에서 지면 보통 다 저러니까. 며칠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라.”
김찬익 또한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들의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은 저런 반응을 보였다.
꽤나 중요한 자리에서 말실수를 한다든가.
중요한 게임에서 실수로 인해 팀을 패배로 이끌 뻔 한다든가.
이번 같은 경우처럼 이찬혁이 패배해서 팀이 패배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선수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었다.
선수를 보낸 감독의 책임이었다.
그래서 감독이 그만한 대우와 권력을 갖는 것이다. 이찬혁이 처음이기에 실수할 수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내보낸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훈련 코치들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그들이 해야 할 것은 이찬혁의 자신감을 끌어올리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게 더 열심히 훈련 계획을 짜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저 상태에서 빨리 빠져나오는 게 중요했다.
‘쉽진 않아 보이지만…….’
이찬혁의 저런 모습은 처음 봤다.
지금까지 아이리스 길드에 들어와서, 이찬혁은 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뺀질거리기도 하고, 술 먹는 것을 좋아해서 밖으로 나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이찬혁이 재능이 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김세아와 함께 팀이 되고, 임무를 수행하면서 이찬혁은 꽤나 많이 바뀌었다.
열심히 노력했고, 지금 대표단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이 모든 것은 누가 도와줘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찬혁 스스로 바뀌고 노력해서 얻은 결과였다.
예전에 임무가 끝난 뒤 이찬혁과 단둘이 술을 먹은 적이 있었다. 엄청나게 술을 먹고 이찬혁이 취했을 때, 내가 이런 질문을 했었다.
-변하게 된 이유가 뭐냐?
그때 이찬혁의 대답은 이랬다.
-너 때문에.
-나?
-그래. 네가 열심히 노력하고 변하는 모습에 조금 감동받았어. 나는 변하고 싶지 않았거든. 내가 변하게 되면 지금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을 잃어버리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때 유일하게 이찬혁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다.
-뭐가 두려운데?
-아버지. 내가 변하면 분명 아버지가 알게 될 거고. 나는 모든 것을 잃겠지.
딱 여기까지 말한 뒤에 이찬혁은 잔에 있는 술을 마시고, 그로 인해 뻗어버렸다.
그 뒤로 이찬혁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 나중에 술이 깬 뒤에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지만, 원래의 이찬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냥 웃으며 이야기를 넘겼고, 난 그 뒤로 이찬혁에게 아버지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아버지란 사람 때문인가?’
지금의 상황으로 봐선 그 이야기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켰다.
그리고 대표단에 들어왔으니, 자신의 변화가 드러나는 것에 대해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냈을 것이다.
처음 이름이 호명되어 대련장에 나갈 때까지만 해도 이찬혁은 웃고 있었다.
승리를 했다면, 저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찬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패배.
이찬혁은 지금 졌기 때문에 저러고 있는 것이다. 대체 아버지라는 사람이 누구기에, 한 번의 패배 가지고 저런 모습을 보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후우…….’
저런 상태로 계속 둘 수는 없었다. 이찬혁도 김세아만큼 나한테는 소중한 사람의 범주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길드에 돌아가서 채하나에게 부탁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이찬혁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야 이찬혁을 도울 수 있으니까.
똑똑!
그때 대기실 문이 열렸고, 중후한 중년의 남성 한 명과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 여러 명이 주위에 서 있었다.
어디가 모르게 이찬혁과 닮은 얼굴.
다른 점이라면, 인상이 날카롭고 차갑게 생겼다. 거기다 풍기는 아우라가 범상치 않았다.
주변에 있는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경호원처럼 보였다. 귀에 인이어를 착용했으며, 무표정으로 주위를 경계 하고 있었다.
중년 남성은 이찬혁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심한 놈.”
그의 말에 이찬혁이 경기라도 난 듯 몸서리치며 고개를 들었다. 삐걱거리는 얼굴은 마침내 중년 남성의 얼굴을 마주했다.
이찬혁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 아버지…….”
“적당히 놀다가 돌아올 줄 알아야지. 이런 식으로 아비 얼굴에 먹칠을 해?”
중년 남성의 말에 이찬혁은 이를 악물었다. 중년 남성에게 저항하듯 양손에 주먹을 쥐며 말했다.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최선?”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중년 남성이 이찬혁을 바라보았다.
“최고가 아니라면 아무 소용없다. 최선은 실패자들이 하는 변명일 뿐이다. 방황은 끝이다. 이제 돌아와라.”
“싫습니다.”
중년 남성이 이찬혁의 말을 무시하며,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에게 말했다.
“데려와.”
그러곤 시선을 뒤로 돌려 이찬혁을 바라보았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중년 남성의 뒤에 있던 경호원 중 4명이 문 안으로 들어와 이찬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평소답지 않은 이찬혁은 지금 이 순간에도 평소답지 않게 굴었다. 힘을 뺀 채 가만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대로라면 경호원들에 의해 끌려갈 상황이었다.
“가시죠.”
경호원들이 이찬혁의 앞에 서서 말했다. 그들의 말에 이찬혁의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더니 한 발자국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발을 들고 있었다.
“그렇게 안 되겠는데요.”
나는 이찬혁의 앞으로 가서 경호원들의 접근을 막았다. 지금 이대로 보냈다가는 내가 알고 있는 이찬혁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옆으로 김세아라는 지원군까지 도착했다.
“비키십시오.”
경호원들은 우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헌터 출신들인지 그들의 몸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사납게 우리를 노려보지만, 나에겐 별로 큰 효과가 없었다. 저놈들보다 강한 놈들을 한두 번 만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 조용히 있던 강한수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찬혁은 지금 아이리스 길드 대표단 소속으로 있습니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이찬혁은 지금 저희에게 필요한 인재입니다.”
“흠…… 내가 누군지 모르나?”
몸을 돌린 중년 남성이 강한수를 쳐다보았다. 중년 남성의 몸에서는 한 톨의 마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일반인임에도 불구하고, 몸에서 풍기는 위압감이 대단했다. 강한수는 중년 남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군성 그룹 회장님이신 이용학 회장님이시지 않습니까.”
처음 봤을 때, 익숙했던 것은 단순히 이찬혁을 닮아서가 아니라 자주 봤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10대 기업에 있던 군성을 한국 최고의 기업으로 만들어낸 장본인이자, 현 일반인들의 우상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카리스마와 타고난 머리를 이용해, 군성 그룹을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현재 그의 자식으로 알려진 것은 삼 형제가 있었다.
그중 후계자로 지목된 사람이 첫째 아들인 이경혁이었다. 그 외에 둘째와 셋째 아들에 대해서는 언론에 단 한 번도 노출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이찬혁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군성 그룹 이용학의 아들이었다는 게 조금 놀라웠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이찬혁이 말했다.
“속여서 미안하다.”
나는 조금이나마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때, 앞에 있던 이용학이 강한수를 보며 말했다.
“나를 아는데도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알기 때문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아이리스 길드가 이번 길드 대항전에서 우승하기 위해선 이찬혁이 필요합니다.”
강한수의 말에 이용학이 자그맣게 웃었다. 비웃음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이용학이 강한수를 보며 얘기했다.
“이번 우승은 그린나래 길드 아닌가?”
최고의 군성 그룹.
그 내에서도 최고를 뽑으라고 한다면 바로 그린나래 길드였다. 최고의 기업에서 멈추지 않고, 길드를 만들어 한국에서 최고로 만들었다.
그게 그린나래였다.
군성이 키우고, 군성이 만들어낸 최고의 역작. 그들은 이진수로 인해 한 번 더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 아이리스 길드 멤버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용학이 잠시 주위를 돌아보며, 대표단의 얼굴을 한 명씩 쳐다보았다. 나 또한 눈이 마주쳤지만 피하지 않았다.
“좋다. 마지막 기회를 주지.”
이용학은 몸을 돌려 이찬혁을 바라보았다.
“지금 따라가면 최소한 사지 멀쩡하게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는 지원해 주겠다.”
우리들 덕분인지 이찬혁은 작게나마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싫습니다.”
“아이리스 길드가 우승한다면. 더 이상의 참견을 하지 않겠다. 그러나 아이리스가 우승하지 못한다면. 넌 군성 그룹의 꼭두각시로 살게 될 거다.”
경호원들이 이찬혁에게서 떨어졌다.
“어디 한번 잘해보거라.”
이용학이 경호원들과 함께 문밖으로 사라졌다. 어수선했던 대기실에는 적막이 찾아왔다.
적막을 깬 것은 강한수였다.
“뭐 해. 돌아가자.”
* * *
아이리스 길드의 다음 시합은 일주일 뒤였다. 본선에 오르기 전까지는 다른 것 말고 개인 훈련에 집중하는 계획표로 훈련을 진행했다.
오전에는 대표단끼리 대련을 하면서 훈련을 했고, 오후에는 훈련 코치들과 강한수가 직접 몸소 나서서 대표단과 대련을 진행했다.
삭!
눈앞에선 이지상과 김진수가 대련을 하고 있었다. 이용학이 지나간 뒤로 이찬혁의 모습이 또 한 번 달라졌다.
몸에 무리가 가도록 훈련하는 것은 기본이고, 밤늦게까지 숙소로 돌아오지 않고 훈련을 했다.
챙! 챙!
이지상과 검을 주고받으며, 이찬혁의 검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이지상이 실력자이니만큼 이찬혁의 공격은 먹히지 않았다.
‘그게 문제지만…….’
이지상은 최선을 다하여 대련에 참여하고 있었다. 현재 이지상을 꺾은 사람은 김세아, 최정환, 한소희, 그리고 나까지였다.
아직 김진수와 이찬혁은 이지상을 꺾지 못했다.
지금 이지상이 사용하는 힘은 길드 대항전에 참가하는 헌터들의 평균 능력치라고 생각하면 됐다.
그래서 이지상을 이긴다는 것은 길드 대항전에서 평균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본선을 넘어 결승까지 가려면 아직은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결국, 그린나래를 꺾고 우승하려면, 이찬혁 또한 실력이 올라갈 필요가 있었다.
대회 규칙이 바뀌면서 내가 혼자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이 사라졌다. 이제는 함께 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대표단에서 하는 훈련도 좋지만, 당장 이찬혁에게 그렇게 큰 효과를 주지 못했다.
좀 더 체계적이고, 이찬혁에게 맞는 훈련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 주변에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귀에다 대며 말했다.
“발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