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역대급 수련-84화 (84/177)

# 84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84화

21장 예선전(3)

“선배, 잠시만요.”

김찬익이 강한수를 말리고 나섰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신중하게 생각해야 되요.”

“뭘?”

“아직 메린 길드에는 한주태도 있고 홍주영도 있어요. 거기다 2승까지 챙겼으니, 한 번이라도 지면 여기 끝이라고요.”

아무래도 이 공간 안에서 걱정을 하지 않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김세아와 이찬혁도 꽤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대련장에서 걸어오는 이찬혁은 이미 죄인 모드였다.

터벅터벅 걸어온 이찬혁의 표정은 울기 직전이었다. 목소리도 이전과 다르게 개미가 기어가는 것 마냥 작았다.

“죄송합니다…….”

“고생했어. 다음에 똑같은 실수만 안 하면 돼.”

이지상이 이찬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처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었다.

2패만 아니었다면, 이찬혁도 저리 분위기가 다운되지는 않을 텐데, 빨리 처진 분위기를 끌어올려야 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김찬익과 강한수가 태블릿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남은 3명 중 누구를 내보내야 할까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아니, 2명 중에 고르고 있을 것이다.

최정환과 김세아.

지금 김찬익과 강한수는 둘을 놓고 누구를 내보낼지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빠진 이유는 어찌 보면 당연했다.

내 실력에 대해 완전히 알고 있지 못했다. 겉으로 드러난 내 실력은 이찬혁보다는 강하지만, 다른 3명에 비해서는 약하다고 알고 있었다.

실제로 대련에서 많이 져주기도 했으니, 당연히 내가 약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이길걸 그랬나…….’

아쉽기는 하지만, 최정환과 김세아가 이기게 되면, 아이리스 길드는 무조건 승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난 그 둘이 이길 것이라도 믿고 있다.

회의가 끝났는지, 김찬익이 입을 열었다.

“최정환 준비해.”

“예.”

최정환이 펜던트를 목에 걸고, 자신의 무기인 창을 쥐었다. 그러고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대련장을 향해 나아갔다.

“이번 아이리스 길드의 선수는 최정환 헌터입니다!”

“헌터 학교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선보인 선수죠.”

“과연 2패의 늪에서 아이리스 길드에게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찬익과 강한수의 표정은 오히려 고민하기 전보다 좋아보였다. 자신들의 선택과 최정환을 믿기 때문에,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나 또한 대련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메린 길드 쪽에서 회의를 하는 것처럼 모여서 얘기하고 있지만, 카메라를 의식한 액션이었다.

메린 길드에서 나올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규필.

이찬혁이 상대한 녀석과 더불어 메린 길드에서 약체로 분류되는 선수였다. 메린 길드는 이규필을 내보내 최정환을 제거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예측대로, 메린 길드에서는 이규필이 창을 들고 걸어나오고 있었다.

‘뻔하네.’

메린 길드의 목표는 이제 확실해졌다.

김세아와 최정환에 2승을 안겨주고 2 대 2 상황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를 꺾어 이기겠다는 심보가 확실했다.

“그럼 이규필 대 최정환, 최정환 대 이규필의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시작 휘슬과 함께 최정환과 이규필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둘 다 사용 무기가 창이었지만, 사용하는 방법은 달랐다.

이규필은 거리를 벌린 상태에서 창의 리치를 이용해 최정환을 공략했다.

빠른 찌르기 공격을 넣으며 최정환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마치 창이 여러 개로 보이는 듯한 착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최정환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자신이 들고 있는 창의 중앙을 잡고 회전시키며, 이규필의 공격을 막아냈다. 거기에 빠른 몸놀림으로 이규필에게 단 한 번의 공격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규필은 창을 끌어당기더니, 끝을 잡고 위에서 아래로 크게 내려쳤다.

콰아앙!

엄청난 파괴력과 함께 대련장이 움푹 파일 정도의 공격이었다. 아무리 메린 길드에서 약하다고는 하지만, 메린 길드 내부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헌터였다.

그러나 공격은 빗나갔다.

최정환의 몸에서 마나가 피어올랐다. 그 마나는 손을 타고 창으로 뻗어 나갔다. 창날에 끝에 모인 마나는 잔상을 남기며 이규필을 향해 쇄도했다.

챙!

최정환의 첫 공격을 이규필이 막아냈다. 그러나 최정환의 공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챙! 챙! 챙!

최정환의 손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창은 화려했다. 그러나 화려한 만큼 강한 위력도 실려 있었다.

처음에는 이규필도 마나를 끌어올려 최정환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공격이 진행 될수록 펜던트의 방어막이 줄어들었다.

“으아아아압!”

최정환의 공격은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빨라졌다. 마치 자동차가 나아가듯 점점 빨라지는 최정환의 창은 일반인들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라졌다.

쾅!

최정환의 마지막 공격이 이규필의 몸을 강타했다. 그와 함께 이규필의 몸이 뒤로 날아가며 여러 번 굴렀다.

“이번 승리는 아이리스 길드입니다!”

“최정환 선수가 두 번의 패배를 딛고 첫 승리를 이뤄내네요.”

“다음 경기가 정말 기대됩니다!”

최정환이 숨을 고르며, 대기석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신나는 분위기로 최정환을 반기지는 못했다.

“잘했다.”

“고생했어.”

코치들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최정환은 한소희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이제는 메린 길드에서 먼저 선수를 내보낼 차례였다.

그리고 그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양손에 든 검을 이리저리 돌리며, 메린 길드의 에이스라고 불리는 한주태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아아아아! 이번에 모든 것을 끝내려 하는 것일까요. 메린 길드의 에이스 한주태 헌터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리스 길드에서도 에이스가 나오겠군요!”

진행자의 말대로 아이리스 길드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강한수가 툭 던지듯 말했다.

“김세아.”

“예. 감독님.”

“잘하고 와라.”

김세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펜던트를 목에 걸었다. 그러고는 대련장으로 가기 전, 내 쪽으로 다가왔다.

지금의 김세아는 헌터 학교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차가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며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김세아가 지금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김세아가 나를 보며 말했다.

“이길 수 있지?”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당연하지.”

내 대답에 김세아가 피식 웃으며, 대련장으로 걸어 나갔다. 김세아가 걸어 나가자, 경기장에는 다시 한번 관객들의 힘찬 함성이 울려 퍼졌다.

“에이스 대 에이스. 초대박 매치가 성사되었습니다!”

“이번 대결로 인해 메린 길드가 승리를 할 것인지. 아이리스 길드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생길지. 정말 궁금한 경기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네 번째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 *

에이스들의 결투라서 일까?

평소보다 많은 카메라가 다양한 각도에서 김세아와 한주태의 모습을 잡았다.

그들은 대련장 중심에서 거리를 벌린 채, 서로를 보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한주태였다.

“후배님 이름이 워낙 유명해서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어.”

목소리에 조롱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김세아는 그런 것에 일일이 반응 하지 않고 손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전 선배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이름이 뭐라구요?”

“으으으!”

한주태가 이를 악물며 달려왔다. 양손에 들린 검을 바닥에 늘어뜨리며, 날개처럼 벌리고 있었다.

김세아는 몸 안에 있는 마나를 끌어올려 양손에 집중시켰다. 그러고는 바닥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펑! 펑! 펑!

한주태가 달리는 앞길에 얼음 기둥들이 솟아났다. 덕분에 달려오는 속도가 늦어졌다.

“아이스 에로우.”

김세아의 손짓에 허공에 수백 개의 얼음 화살이 나타났다. 그리고 얼음 화살들은 한주태를 향해 날아갔다.

파바바바밧!

콰아아아앙!

얼음 화살이 박힌 곳 주변이 강한 폭음과 함께 얼어버렸다. 으스스한 연기가 바람에 날리고, 얼음 기둥 사이에서 양 칼을 교체하고 서 있는 한주태의 얼굴을 확인했다.

왼쪽 발과 어깨 쪽이 화살에 맞아 얼어 있었다.

쩌저적!

한주태가 움직이자 얼음들이 깨지며, 그의 몸에서 떨어졌다. 그와 함께 한주태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이를 악물며, 째진 눈으로 김세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호흡이 거칠어져 상체가 들썩이고 있었다.

“후배님이 많이 거치시네!”

한주태가 다시 달렸다.

김세아는 그냥 둘 생각이 없었다. 다시 마나를 이용해 마법을 사용했다. 이번에 끝낼 생각으로, 연습 때 익혔던 마법을 꺼냈다.

머릿속으로 상상을 하며, 손으로 마나를 그렸다.

김세아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나는 형상을 이루며, 한주태를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촤르르르륵!

얼음으로 만들어진 사슬 8개가 한주태를 노렸다. 한주태는 얼음 쇠사슬을 검으로 쳐내기도 하고, 몸으로 피하기도 했다.

그러나 얼음 사슬은 집요했다.

결국 한주태의 다리 하나를 묶어버렸다. 그 순간 한주태의 다리가 바닥과 함께 얼어붙었다.

“젠장!”

한주태가 검에 마나를 실어 빠르게 얼음 사슬을 잘라냈다. 그리고 힘을 주어 바닥에 붙은 발을 떼어냈다.

촤악!

나머지 7개의 얼음 사슬은 한주태에게 틈을 주지 않았다. 양쪽 다리와 양팔에 하나씩 얼음 사슬이 감겼다.

나머지 3개의 얼음 사슬은 한주태의 몸을 휘감았다. 온몸이 얼음 사슬로 휘감겨, 꼼짝도 하지 못하는 한주태에게 김세아가 걸어갔다.

이 기술은 박찬영이 사용하던 것을 보고 따라 해본 것이었다. 생각보다 따라 하기 쉬웠지만, 단점이 있었다.

살상 마법이 아니기 때문에 파괴력이 없었다.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다른 마법을 사용해야 했다.

“아이스 스피어.”

김세아의 손에 얼음 창이 나타났다.

시원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이 드는 얼음 창.

손에서 떠난 얼음 창은 한주태의 심장을 향해 날아갔다.

쾅!

쩌저적!

얼음 창과 함께 한주태의 몸을 구속하던 얼음 사슬들이 터졌다. 그와 함께 한주태의 몸에서 하얀 보호막이 갈리며 깨졌다.

김세아의 승리였다.

에이스 대전이었지만, 압도적인 차이로 김세아가 이겼다. 그 충격에 관객석에 정적이 찾아왔다.

너무나도 큰 실력 차이.

그 정적은 진행자에 의해 깨졌다.

“이번 승리도 아이리스가 가져갑니다!”

진행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김세아는 몸을 돌렸다. 대기석에 있는 오유성이 보였다.

그가 웃고 있었다.

누가 보면 아이리스 길드가 이긴 것 마냥 신나보였다.

‘흐음…….’

처음과 다르게 부쩍 강해지면서, 뭔가를 숨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보여주는 모습이 다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요새 자주했다.

최근에 일어났던 사건들.

그 안에서 오유성은 엄청난 성장을 보여줬다.

그래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뭔가를 숨긴다고 생각하니 섭섭함이 몰려들었다.

김세아는 오유성의 앞에 서서 말했다.

“지기만 해봐.”

* * *

“안 져.”

왠지 모르겠지만, 이겼음에도 뚱해 보이는 김세아에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에 있는 펜던트를 목걸이에 걸고 있을 때, 김찬익이 다가왔다.

“생각보다 이길 확률이 높다. 홍주영은 소환사니까 소환물만 정리하면 네가 이긴거나 다름없다.”

“예.”

나는 대답과 함께 강한수를 쳐다보았다. 무슨 조언이라도 해줄까 싶어 봤지만, 강한수는 턱으로 대련장을 가리켰다.

“아이리스 길드에서 나올 헌터는 오유성입니다!”

진행자의 말을 들으며, 나는 대련장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에 대한 부연 설명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에 반해 내 앞에서 걸어 나오고 있는 홍주영에 대한 설명은 어마어마했다.

희귀 특성이라느니.

강한 소화수를 가지고 있다느니.

사실상 메린의 승산이 높다느니.

나는 그런 소리를 듣고 있으니 웃음이 흘렀다. 그리고 내 웃음을 봤는지 홍주영의 눈매가 꽤나 둥그레져 있었다.

“웃어?”

홍주영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안 될 이유라도?”

내 말에 홍주영이 고개까지 꺾어가며 웃었다. 옆에 있던 심판이 다가왔고, 휘슬을 불며 시작을 알렸다.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을 쥐었다. 왼발을 앞으로 내밀며 언제든 움직일 준비를 했다.

홍주영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소환할 수 있는 소환수는 다섯. 그걸 모두 쓰러뜨리면 네 승리야.”

나는 손을 까딱거리며 덤비라는 신호를 보냈다.

홍주영이 손이 움직이고, 바닥에 마법진이 생겼다. 푸른빛이 번쩍이며 소환수가 머리부터 나타났다.

귀엽게 생긴 토끼였다.

그러나 귀여운 토끼는 이내 사납게 변했다. 나만 한 덩치로 커졌으며, 눈이 시뻘겋게 변하고, 털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블랙 래빗! 저 녀석을 죽여!”

쿵쿵거리며 도약을 한 블랙 래빗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마나 탐지로 느껴지는 블랙 래빗은 강한 축에 끼지 못했다. 한마디로 덩치가 산만 할 뿐, 뭣도 없는 소환수였다.

나는 검에 마나를 끌어올려 아래에서 위로 그어 올렸다.

촤아악!

참격과 함께 블랙 래빗이 반으로 잘렸다. 이내 형태가 흐릿해지며 대련장 안에서 사라졌다.

다시 검을 내리고, 나는 홍주영을 보며 말했다.

“이제 네 마리 남았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