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83화
21장 예선전(2)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경기장 가득 퍼졌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대표단은 어색해 하는 것이 보였다. 이런 사람들의 열정과 관심을 직접적으로 받는 것은 처음이니까.
최정환이야 워낙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니 얼굴에서는 티가 나지 않지만, 걷는 폼이 평소와 달랐다.
로봇이 걷는 것처럼 딱딱하고 부자연스러웠다.
한소희는 본인 특유의 미소를 짓지만, 역시나 항상 봐왔던 내 입장에서는 어색해하는 것이 티가 났다.
이찬혁과 김진수는 아예 표정에서부터 드러났다. 그나마 김세아가 가장 자연스럽게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까지 걸어가는 거야…….’
멈춰 서야 할 곳에서 멈추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갔다. 나는 손을 뻗어 김세아를 끌어 당겨 내 옆으로 데려왔다.
그렇게 많이 나간 것은 아니라 크게 티가 나지 않았다.
“모두 양쪽을 보고 서 주시기 바랍니다.”
심판의 말에 아이리스 길드와 메린 길드는 서로를 바라보며 섰다.
왼쪽부터 눈동자를 굴리며 빠르게 쳐다보았다. 동시에 마나 탐지를 사용하여 녀석들의 실력을 파악했다.
‘정면에 있는 놈.’
살벌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녀석이 메린 길드에서 가장 강했다. 그다음이 오른쪽에 있는 노란 머리로 염색한 단발의 여자였다.
어제 김찬익, 이지상과 함께 메린 길드에 대해서 분석했다.
상대 주요 멤버들의 능력과 싸우는 방식 같은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회의를 하며 어떻게 상대하면 좋을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정면에서 나를 보는 남자는 한주태라는 이름을 가졌다. 메린 길드의 에이스이며, 쌍검을 수준급으로 다루는 실력자였다.
옆에 있는 노란 단발머리 여자는 홍주영이며, 몬스터를 소환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외에도 기본적인 실력들은 있으니 방심은 금물이었다.
“인사!”
심판의 말에 양쪽 길드는 서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곤 앞에 있는 상대 길드에게 가서 악수를 나눴다.
나도 앞으로 걸어가 한주태와 악수를 했다. 손아귀에 힘을 잔뜩 주는 것을 느끼며 나도 지지 않을 만큼 힘을 주었다.
기싸움.
본 경기에 들어가기 전, 이런 식의 자잘한 기싸움이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관객석에서 우리를 바라볼 때는 그저 인사를 하고 악수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 서 있는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결투는 시작되었다. 메린 길드 측은 기선제압을 확실하게 하기로 입을 맞춘 모양이었다.
살벌한 눈빛을 날리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양쪽 진영으로 이동.”
심판의 말에 나는 한주태의 손에서 내 손을 뗐다. 한주태가 내가 잡은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나는 한 번 웃어주고는 뒤로 돌아 선수 대기석으로 갔다.
내 쪽으로 다가온 이찬혁이 말했다.
“저것들 눈빛 봤냐? 완전 잡아먹을 기세더라.”
“너도 거의 죽일 듯이 쳐다보더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이찬혁의 목소리는 하이톤이었다. 가뜩이나 말이 많은 편이지만, 오늘은 오버액션까지 장착했다.
나는 그런 이찬혁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아직까지 긴장을 떨쳐 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긴장이나 풀어.”
“긴장은…… 그냥 설레는 거야.”
이찬혁이 잠시 뒤를 돌아보더니, 관객들을 보고는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발걸음도 같이 빨라져 제일 먼저 대기석에 도착했다.
우리가 대기석에 도착했을 때, 대련장 중심에서는 강한수와 메린 길드 감독이 동전 던지기를 하고 있었다.
“이리로 모여봐.”
김찬익의 말에 나는 시선을 돌리고 앞을 보았다. 김찬익의 주위로 대표단 6명이 빙 둘러섰다.
“내가 너희에게 당부해 줄 것들이 있다. 첫 번째 관객들의 환호에 쓸데없이 오버하지 마.”
모든 스포츠들도 그렇고, 관객들의 함성과 응원은 선수들에게 큰 힘을 준다. 이 관객석에는 아이리스 길드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함성과 환호로 인해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면 곧 결투의 패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양날의 검과도 같았다. 잘만 이용하면 평소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지만, 관심에 휘말리면 평소보다 낮은 실력을 보이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주위에서 뭔 소리를 하든 신경 쓰지 마. 특히 야유나 악담, 이런 것에 멘탈 흔들리지 마.”
대표단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첫 번째와 같은 맥락의 이야기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두 번째는 멘탈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현장 분위기는 팬덤 싸움으로 가게 된다. 상대 팀을 향한 야유를 펼치고,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대한 응원을 한다.
그런 것에 휘말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마지막. 괜히 안 하던 거 하지 말고 연습한 대로만 해.”
“옙”
“네!”
“알겠습니다!”
확신에 찬 대답임에도 불구하고, 김찬익의 표정에서는 여전히 불안감이 있었다.
“대답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길 바란다.”
우리는 다시 한번 힘찬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동전 던지기를 마친 강한수가 대기석으로 돌아왔다. 우리를 쭉 돌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쪽에서 먼저 나간다. 첫 번째로 나갈 사람은 한소희다. 준비해.”
한소희는 결투용 펜던트를 목에 걸었다. 고개를 내려 펜던트를 바라보더니, 숨을 크게 쉬고는 대련장 중심으로 걸어 나갔다.
나머지는 대기석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한소희가 걸어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아이리스 길드의 첫 번째 주자는 한소희 입니다!”
“이 선수는 전격 마법을 사용하는 선수죠. 과연 한소희 헌터는 아이리스 길드에게 첫승을 안겨 줄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설진들의 소리를 들으며, 메린 길드에서 헌터가 나오길 기다렸다. 태블릿을 보던 이지상이 김찬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유일이 나올 것 같죠?”
“그럴 확률이 높지.”
나는 어제 나눴던 전략 회의의 내용을 떠올렸다. 이유일은 대지 계열의 마법사였다.
같은 실력이라면 상성으로 따졌을 때, 한소희가 많이 불리했다. 그런걸 다 알고 있음에도 한소희를 먼저 보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유일의 마법은 근접형에게 까다로웠다.
아이리스 길드에서는 이찬혁, 최정환과 함께 나까지 총 3명이 근접형이었다.
김세아도 있지만, 먼저 내보내기에는 아까울 것이다. 아이리스 길드에서는 그래도 에이스 자리를 담당하고 있으니까.
나중에 한주태나 홍주영이 나왔을 때가 김세아가 나갈 차례일 것이다.
한소희가 이기면 좋겠지만, 지더라도 원하는 사람을 끌어냈으니 감독진에 전략에서는 이득이었다.
그리고 감독진의 의견은 딱 맞아떨어졌다.
“메린 길드에서는 이유일 헌터가 나왔습니다!”
“아, 이거 제대로 저격을 해서 나왔군요. 상성에서 보면 한소희 헌터가 밀릴 것은 당연해 보이는데. 이걸 어떻게 극복할지도 한번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과연 아이리스 대 메린, 메린 대 아이리스의 첫 번째 경기에서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 지금 시작하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고, 심판의 오른손이 올라갔다. 올라간 오른손이 내려가며, 심판의 입에 물려 있던 휘슬이 크게 울렸다.
휘이이이이이!
“와아아아아아아!”
“한소희 이쁘다!”
“이유일 너만 믿는다!”
“아무나 이겨라! 난 멋진 경기를 보고 싶다!”
관객들의 환호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초반 분위기는 팽팽했다. 누구 하나 먼저 움직이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며 분위기를 살폈다.
내 눈에 이유일은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유일의 입장에서는 한소희의 공격을 방어하기만 해도 충분하기 때문에 먼저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아마도 먼저 움직이는 것은 한소희가 될 것이다.
파지직!
한소희의 손에 어린 전격과 함께 스파크가 튀겼다. 작은 구의 형태를 이룬 라이트닝 볼트가 이유일 향해 날아갔다.
그것을 본 이유일이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돌로 된 벽이 나타나 이유일의 몸을 가려주었다.
라이트닝 볼트는 벽에 막혀 그 힘을 다해 소멸했다.
“그냥 항복하는 게 어때?”
이유일의 말에 한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대답은 하지 않고 손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파지지지직!
아까보다 더욱 강렬한 전격이 한소희의 손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이유일도 마법을 준비하려 하고 있었다.
“이번 한 번에 승부가 나겠네요.”
“이왕이면 한소희가 이겼으면 좋겠는데.”
코치진의 말을 들으며, 나는 한소희가 준비 중인 마법을 쳐다보았다. 훈련 기간 동안 한소희는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마법들을 익혔다.
그중 하나를 사용하려는 모양이었다.
“한소희 헌터가 뭔가를 준비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마나가 강렬한 것을 보니 이번 한 방에 승부를 걸려는 것처럼 보이네요!”
한소희의 손이 움직였다.
손에 모여 있던 강한 전격들이 하늘 위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공중으로 날아간 전격들은 파바밧 하고 터지더니, 증식하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스파크들이 거세지며, 공중에 모인 구체가 점점 커졌다. 그것을 보던 이유일이 마법을 사용했다.
쿠구구궁!
바닥이 갈라지며 거대한 흙들이 튀어나와 이유일의 머리 위로 모여 거대한 방패를 만들어냈다.
점점 커진 구체가 번쩍이더니, 강력한 번개가 이유일의 거대 방패를 향해 떨어졌다.
콰아앙!
한소희의 공격에 거대한 방패 모양의 흙 절반이 파였다. 사방으로 날아간 흙들이 대련장 바닥에 깔렸다.
“자이언트 어스 쉴드!”
이유일의 마법 주문에 사방으로 날아갔던 흙들이 다시 모여 거대한 방패는 원상 복구 되었다.
그러나 한소희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나이었다.
콰아앙!
쾅!
콰아아아앙!
구체에서 연속으로 전격이 일어나 강력한 번개를 만들어냈다. 이유일은 계속해서 흙들을 끌어모아 방패의 형태를 유지했다.
저것에 한 방이라도 맞으면, 이유일은 그대로 탈락 될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한소희는 쉬지 않고 마법을 사용했고, 이유일의 거대 방패를 뚫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방어에 집중한 이유일의 마법을 뚫는 것은 결국 실패했다. 동등한 실력에 상성 차이로 인해, 한소희의 마나가 결국 먼저 소모되고 말았다.
“첫 번째 경기는 메린 길드의 승리입니다!”
“이유일 선수의 강력한 방어 마법이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한소희 헌터는 정말 아쉬운 경기일 것 같습니다. 상성 차이만 아니었어도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아직 길드 대항전이 끝이 난 것은 아니니 분명 다음 기회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습니다.”
한소희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대기석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박수를 쳐주며, 한소희를 격려했다.
전략이라고 하지만, 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고생했습니다!”
“고생했다.”
코치진에서는 메린 길드 쪽을 쳐다보며, 다음에 내보낼 선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메린 길드에서 나온 헌터는 김승곤입니다!”
진행자의 말과 함께 메린 길드 쪽에서 남자 한 명이 대련장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는 김찬익이 강한수와 잠깐 얘기를 나눈 뒤 입을 열었다.
“이찬혁 준비해라.”
“넵!”
이찬혁이 김찬익 쪽으로 가서, 펜던트를 목에 걸었다. 그러곤 자신 있는 걸음으로 대련장을 향해 걸어갔다.
‘그대로네?’
어제 코치진과 얘기를 나누었던 그대로 선수들이 나오고 있었다. 아직 두 번째 이긴 하지만, 코치진의 전략이 먹히고 있다는 것이었다.
메린 길드에서 김승곤이 나오면, 나 아니면 이찬혁이 나가기로 돼 있었다.
김승곤은 그만큼 상대 팀에서 가장 약한 선수였고, 이찬혁이나 내가 나가서 이긴다면, 공짜로 1승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렇게 얘기했는데…… 설마 지겠어?”
김찬익이 툭 하고 내뱉었고, 이지상은 이찬혁의 뒷모습을 보고 대답했다.
“설마가 사람 잡기도 하죠…….”
과도한 긴장으로 인해 뭔가 삐걱거리던 이찬혁은 결국 김찬익의 당부 세 가지를 모두 실행하며 김승곤에게 졌다.
-강한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긴 사람이 강한 것이다.
이런 명제를 누가 남겼는지는 몰라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누가 봐도 초반 공세는 이찬혁이 유리했다. 실력 또한 이찬혁이 높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침착함을 유지한 것은 김승곤이었고, 후반에 이찬혁이 무너지며, 결국 메린 길드가 승리를 가져갔다.
2패.
남은 3경기를 모두 승리로 가져가야 아이리스 길드가 첫 승을 가져 갈 수 있었다. 한 번이라도 지면 끝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걱정되는 건 없었다.
남은 멤버는 김세아, 최정환, 그리고 나.
가만히 우리를 응시하고 있던, 강한수의 입이 열렸다.
“이번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