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80화
20장 넘어오시죠(8)
내 기록에 대해서 팀원들은 조금 놀랄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평소 훈련에서 내가 주로 두각을 드러냈던 것은 속도였다. 이형환위를 이용한 속도 중심의 공격으로, 훈련 코치들도 내 속도에 대해선 인정했다.
그래서인지 1분 12초의 기록에 대해서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기자회견까지 모두 끝마치고 나니, 대표단은 모두 녹초가 되어 있었다.
차라리 함정 달리기가 훨씬 수월했다. 기자들의 속사포 같은 질문에 혼이 빠졌다.
대부분의 대답은 훈련코치들이 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양의 심력을 소모했다.
“기사 떴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던 이찬혁이 말했다.
이찬혁의 말에 다들 자신의 폰을 들어 뉴스 기사를 확인했다. 나도 스마트폰을 들어 길드 대항전 관련 항목에 들어갔다.
그곳에는 오늘 길드 대항전을 갔던 기자들이 쓴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역시 이진수는 달랐다.]
[힘을 뺀 이진수 최고 기록!]
[이번 다크호스는 아이리스 길드?]
[그린나래의 선택은 옳았다. -레이나]
기사들 대부분은 그린나래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간간히 아이리스 길드의 대한 내용도 있었지만, 내용의 주인공은 김세아였다.
내 이름은 아예 보기 힘들었다.
이진수와 똑같은 기록을 만들었음에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린나래 측에서 손을 썼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기자를 컨트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이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했다.
대부분의 기자 입장에서는 조회 수가 그들의 수익이기 때문에 이진수를 중심적으로 다루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김세아와 최정환 또한 1분 12초, 1분 14초라는 기록을 세웠기 때문에 내 이름보다는 김세아의 이름이 더 많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어쨌건 내 이름보다는 김세아의 이름이 더욱 알려져 있고, 이진수와 붙여놓아도 꿀릴 게 없었으니까.
“네 이름도 있다.”
이찬혁이 옆으로 다가와, 자신이 찾은 기사를 보여주었다.
[오유성 그는 누구인가.]
이번 길드 대항전에 낯선 얼굴의 헌터가 나타났다. 그의 소속은 아이리스 길드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김세아가 몸을 담고 있는 곳이다.
오유성. 그는 엄청난 기록을 만들어냈다.
1분 12초.
이진수, 김세아와 함께 최고 기록을 갱신한 그는 현재 아이리스 길드의 2군 전투 헌터다.
……
이번 길드 대항전의 다크호스로 주목해도 좋을 것 같다.
-박대식-
그래도 내 칭찬이라 그런지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예 없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막상 기사가 나오니 기분이 좋긴 했다.
‘이제 시작이다.’
길드 대항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이름이 담긴 기사는 많이 나올 것이다.
이번 내 목표는 이름을 알리는 것이니까.
“도착했다.”
강한수의 말에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아이리스 길드에서 많이 준비했는지, 차에서 내리자 꽤나 비싸 보이는 음식점이 보였다.
강한수가 먼저 들어가고, 뒤이어 대표단이 따라 움직였다. 나는 잠시 밖에 남아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익숙하게 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꽤나 지친 듯한 채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수찬이 꽤나 활발하게 행동하고 다닌 모양이었다.
“끝났습니다.”
-보고는 받았어. 그래서 델타가 누군지는 알겠어?
채하나에게만 내가 아는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채하나 또한 나와 의견이 같았다. 비밀을 아는 사람이 적은 게 좋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이 사실에 대해 아는 것은 채하나와 나뿐이었다.
“한소희입니다.”
-그래? 난 박찬영인 줄 알았는데.
나도 박찬영인 줄 알았다. 그러나 박찬영의 주위로 방수찬이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젯밤에 방수찬이 한소희와 만나는 장면을 목격했다.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아마 떠나는 시기와 접선 장소에 관해서가 아닐까 싶었다.
“한소희는 최정환에게 맡기면 됩니다.”
-최정환한테?
“예.”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소희가 방수찬을 따라갈 이유가 없었다. 최정환 또한 한소희는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한소희와 방수찬이 만나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보았다.
‘왜?’
나는 그것에 집중했다.
한소희가 방수찬을 왜 따라가려고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배신을 할 만한 것들을 찾아서 나열해 보았다. 철저하게 한소희의 입장이 되어 생각했다.
실력을 더욱 키우기 위해서?
아이리스 길드에 대한 감정이 생겨서?
방수찬에게 약점을 잡혀서?
여러 가지가 떠올랐지만,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은 방수찬에게 약점을 잡힌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최이수의 병실이 떠올랐다.
거기서 한소희와 최이수는 물론 최정환까지 화목한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미소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본다면 웃음이 절로 일어날 듯한 따뜻함이 가득했다.
한소희는 최이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최정환과 방수찬의 관계 또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치료제.
한소희가 방수찬을 따라가려고 했던 이유는 치료제를 얻기 위해서가 분명했다.
이런 포인트를 집을 수 있었던 것은 박영주의 배역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여자.
“한소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케이. 그럼 최정환과 박찬영 쪽에 사람을 붙이도록 하지.
방수찬은 그들을 노릴 것이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사람을 붙이는 것은 당연했다.
“예.”
나는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채하나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가게 안에서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와 함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며 배고픔의 신호를 보냈다.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가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잔들 들어주세요!”
가뜩이나 술을 좋아하는 이찬혁은 물 만난 고기처럼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지상과 김찬익 또한 술을 좋아하는지, 입가가 올라가 있었다.
첫 잔은 다 함께 건배를 하며 시작했다.
“크으으.”
시원한 탄산이 목 안으로 넘어가자, 청량함이 가득 퍼졌다. 거기에 알딸딸한 알코올까지 느껴지니 금상첨화였다.
나는 평소에 이찬혁과 김세아와 마실 때처럼 술을 먹지 않았다. 상황을 보며 목을 축이는 정도로만 마셨다.
박찬영, 최정환, 한소희 또한 나와 비슷했다.
김세아는 평소처럼 마셨고, 이찬혁과 김진수는 훈련 코치들 사이에서 예쁨을 받고 있었다.
평소에 쌓아왔던 여러 가지 기술들을 뽑아내며, 훈련 코치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크으 이런 인재를 이제야 알게 되다니.”
“진작 이런 자리를 마련했어야 된다니까요.”
“영광입니다. 선배님들!”
육해진미가 모두 모인 훌륭한 안주들이 좌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안주가 기가 막히네.”
“너네도 많이 먹어라. 이런 기회 흔치 않으니까.”
술을 강요하는 것은 없었다.
“거기 안 먹을 거면 일로 가져와.”
“여기 술 좀 더 주세요.”
안 먹는 것을 보더니, 아깝다며 김찬익과 이지상이 술을 싹쓸이해 갔다.
점점 빠르게 쌓여가는 병들.
그 사이에서 표정이 안 좋아지는 이찬혁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라면 얼굴 하나 빨개지지 않는 녀석인데, 오늘은 새빨간 홍시처럼 변해 있었다.
술을 마시는 속도도 평소보다 배는 빨랐다.
‘살려줘.’
이찬혁이 텔레파시를 보냈다.
나는 눈을 피하며, 이찬혁의 SOS 신호를 거절했다. 지금 저곳에 휘둘렸다가는 큰일 났다.
결국, 술자리는 이찬혁이 녹다운되면서 끝이 났다. 수 없이 쌓인 병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것은 김찬익뿐이었다.
이지상도 이찬혁의 옆에 누워 힘들어하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최정환과 한소희가 먼저 떠났다.
그다음 김세아가 혼자 집으로 이동했고, 김찬익이 이지상과 이찬혁, 김진수를 챙겨 길드로 돌아갔다.
“전 따로 들를 데가 있어서.”
박찬영은 나의 예상과 다르게 길드로 돌아가지 않았다. 박찬영이 자리를 뜨고 강한수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조금 전, 채하나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예.”
“고맙다. 덕분에 저 맛있는 안주에 술 한 잔 못해보네.”
웬일인지 술에는 입도 대지 않는 것을 보고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었다.
저 말이 진심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다. 저런 농담은 강한수의 전매특허였다.
싸늘한 분위기를 더욱 싸늘하게 만들어버리는 아재 개그보다 심한 재미없는 농담.
“전 갑니다.”
나는 몸을 돌려 박찬영이 사라진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내가 돌아서는 것을 보고 강한수가 머리를 몇 번 긁적이더니 몸을 날리며 빠르게 사라졌다.
“후우…….”
잠시 눈을 감고, 마나 탐지를 활용해 박찬영의 위치를 파악했다. 평소에 마나 탐지로 박찬영을 감시했기 때문에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멀지 않네.’
나는 앞에 보이는 차를 가볍게 밟으며 건물 위로 점프했다. 중간중간 창문 난간을 거쳐 옥상에 도착했다.
그때 박찬영이 속도를 올렸다. 내가 있는 위치에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지면을 박차며 건물을 뛰어넘었다.
온몸에 마나를 퍼뜨리며, 속도를 끌어올렸다. 박찬영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빠르게 이동했다.
‘저기 있다.’
박찬영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마법을 사용하며 미끄러지듯 지면을 타고 빠르게 이동 중이었다.
나는 그와 조금 거리를 벌리고 일정 거리를 벌어지지 않으며 뒤를 쫓았다.
‘어딜 가는 거지?’
예상대로라면 박찬영은 길드 숙소로 돌아갔어야 했다. 그곳에서 채하나의 보호를 받으며, 방수찬의 위협에서 벗어나야 했다.
그런데 지금 박찬영은 모습은 많이 수상했다.
박찬영은 그렇게 골목길을 따라 이동하다가, 뒤에 보이는 큰 야산으로 몸을 옮겼다.
나는 나무 위로 올라가며, 소리를 죽인 채 박찬영의 뒤를 쫓았다.
산봉우리 하나를 넘고, 두 번째 봉우리에 올라가기 전 중턱에서 박찬영이 멈춰 섰다.
주위를 탐색하듯 몸을 움직였다. 두 눈을 깜빡이며 사방을 모두 확인하고 나서야, 뒤에 있는 돌에 기대어 휴식을 취했다.
‘웃어?’
박찬영의 모습은 여유로웠다. 심지어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문자가 왔다.
내 귓속으로 발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무 위에서 완벽하게 몸을 숨기고 난 다음, 입을 막고 조용히 얘기했다.
“누구한테.”
-‘채하나’라고 적혀 있다.
“내용 좀 알려줘.”
-방수찬 사망.
내 머릿속에 있던 생각들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 염두에 두고 있었던 스토리가 떠올랐다.
‘기다려 보자.’
그때, 박찬영의 곁으로 검은 옷을 두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총 다섯 명으로 각자의 손에 무기가 들려 있었다.
그들은 박찬영을 포위하듯 사방에서 천천히 공간을 줄이며, 다가가고 있었다.
박찬영에게 다가간 그들은 무기를 먼저 들이밀지 않았다.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나는 나무를 밟으며 몸을 날렸다.
[암살자의 영약을 구매하셨습니다.]
포인트 상점에서 구매한 아이템을 섭취했다. 마나를 없애지 않고도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 해주는 아이템이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곳에 도착했다.
“왜 갑자기 선택을 바꾼 거지?”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의 말에 박찬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난 답을 하지 않았을 뿐 선택을 바꾸지는 않았어. 오늘 선택을 했을 뿐이지.”
“왜지?”
“너희를 만나려고.”
박찬영의 양손에서 뻗어 나간 마나가 얼음 창이 되어 검은 옷 입을 두 명의 심장에 박혔다.
남은 세 명이 거리를 벌리며 박찬영을 향해 무기를 들었다.
“뭐하는 짓이냐!”
“그러게 왜 일을 이따위로 처리해서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 거야.”
다시 두 개의 얼음 창이 날아가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마지막 남은 검은 옷을 향해 박찬영이 다가갔다.
“이번 계획의 정리 대상은 너희 모두다. 그러니 빨리 끝내자. 나도 다시 대표단에 돌아가서 임무를 해야 하니까.”
검은 옷의 남자가 반격을 해보려 하지만 실력 차이가 너무 컸다. 박찬영의 마법에 하나 남은 검은 옷의 남자 또한 쓰러졌다.
“쯧쯧……. 재미도 없고. 손맛만 버렸네.”
내가 알고 있는 박찬영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본다면, 박찬영은 아마 ‘위’라는 곳에서 심어놓은 감시자가 분명했다.
수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내가 예상했던 인물은 아니었다.
‘김진수인 줄 알았는데…….’
게다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알게 된 이상 가만히 둘 생각은 없었다.
물어볼 것도 있고, 저대로 대표단에 돌려보낼 순 없었다. 뭔지도 모를 위험한 폭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폭탄은 발견하면 그 자리에서 처리하는 게 맞다.
나는 나무에서 뛰어내려 은신 효과를 없앴다.
그렇게 천천히 박찬영을 향해 걸어갔다.
“누구 맘대로 돌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