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나 혼자 역대급 수련 079화
20장 넘어오시죠(7)
문이 닫히고 나는 뒤로 돌아 김세아를 바라보았다. 울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 하나는 심각해 보였다.
김세아는 땅이 꺼져라 한숨만 푹 쉬며, 애꿎은 바닥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나는 등을 기대며 말했다.
“너 무슨 죄라도 지었냐?”
“아니…….”
김세아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듣자니 꽤나 색달랐다. 헌터 학교에서도 아이리스 길드에서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강한수 선배에게도 대들었던 애가 아무런 말도 없이 이러고 있으니 답답했다.
“근데 왜 그러고 있냐?”
김세아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는 7층에 도착했다.
띠링!
문이 열리고 김세아는 도망치듯 먼저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갔다. 나는 붙잡기보다는 천천히 뒤를 따라갔다.
-트라우마가 심한가 보군.
내 귓속으로 발칸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근에 계속 연구 중이던 발칸은 여러 가지를 시도하던 중에 나와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정확한 원리를 설명해 주었지만, 대부분 처음 듣는 단어들이라 흘렸다. 들어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결론적인 것만 얘기하면, 발칸이 얘기하는 것을 나만 들을 수 있었다. 반대로 내가 발칸에게 얘기하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통화를 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트라우마?”
-그래.
“어떤?”
-강한 압박과 강자와의 비교 대상이 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런 일이라면 헌터 학교를 다닐 때 이진수와 함께 그린나래 길드에서 훈련을 받을 때밖에 없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김세아가 성격과 실력을 봐라. 어디 가서 꿀릴 정도인가?
“아니지.”
나와 함께한 만큼 발칸도 김세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진수라는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장난이 아니더군.
“알지.”
항상 마나 탐지를 사용하고 있는 나도 충분히 느꼈다.
이진수의 몸에서 강력한 힘이 느껴졌고, 그 때문에 두 주먹이 떨리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붙어 보고 싶다.’
녀석을 보자마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온몸에서 마나가 들끓었다.
강자와 싸우고 싶은 호승심.
그러나 아직은 아니었다. 길드 대항전이 시작되고 이진수와 붙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호승심과 마나를 가라앉혔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오랜 경험에 의하면 트라우마가 맞다.
“오랜 경험?”
-그래. 예전에 투기장에서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너 정도는 아니었지만 싹이 보이는 녀석이 있었지.
“그래?”
-물론 그 녀석은 다른 스폰서를 선택했다. 나는 옆에서 지켜만 보았지. 근데 하필 그 스폰서 밑에 천재라고 불리는 놈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대기실로 걸어가며, 발칸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둘의 차이는 컸다. 스폰서는 그 둘을 두고 비교했다. 매 층 비교가 되었고, 나중에 위에서 그 둘이 만나게 되었다.
-싹이 있던 놈은 천재라는 놈에게 졌다. 스폰서의 말에서 알게 모르게 생긴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한 거지.
“천재라는 놈이 당연히 더 강한 거 아니냐?”
-아니, 그 당시에는 싹이 있던 놈이 천재라는 놈을 뛰어넘은 상태였다. 그만큼 트라우마라는 것은 위험하다. 뭐 이런 게 다 큰 스폰서들의 단점들이다.
“결국 네 자랑이네?”
그 뒤로 발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어폰을 빼고, 대기실 앞에 섰다. 안에서는 꽤나 밝은 분위기의 목소리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트라우마라…….’
안에서 간간이 들리는 김세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처럼 기어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밝은 목소리였다.
사실 내가 어떻게 해줄 것은 없었다. 김세아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김세아가 힘들다고 한다면, 뒤에서 밀어주는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딸깍.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 * *
대기실 안은 꽤나 넓었다.
길드 대표단 7명에 훈련 코치 2명, 그리고 강한수까지 10명이 누워서 뒹굴거려도 될 정도로 컸다.
푹신한 소파가 깔려 있었고, 옆 테이블에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다과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정면에 보이는 벽 자체가 유리로 되어 있었다. 안에서 밖을 볼 수는 있으나, 밖에서 안을 보는 것은 없었다.
다른 길드들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유리창들은 모두 검은색 유리로 덮여 있었다.
-지금부터 길드 대표 등록을 진행하겠습니다.
대기실 안에 있는 스피커에서 굵은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 스크린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홀 중앙에 있는 거대한 스크린.
그곳에서 빛이 들어오면서 영상 하나가 재생되었다.
“재작년과는 좀 다르네.”
김찬익이 다리를 꼰 채, 커피 한잔을 마시며 말했다.
내가 알기론 재작년과 동일하게 길드 대표 등록은 함정 달리기로 진행된다고 들었다.
“뭐가 다릅니까?”
내 질문에 김찬익이 스크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런 게 없었거든.”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에서는 이번 길드 대표 등록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왔다.
영상에 대한 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시작은 헌터 협회장의 인사말로 시작되었다. 그렇게 영상이 진행되다가 길드 대표 등록 진행에 대한 내용이 흘러나왔다.
함정 달리기에 대한 기록이 공개되고, 과정 또한 특수 카메라로 촬영하며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김찬익은 우스갯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카메라 있다고 긴장하지 마라.”
“설마요.”
“그럴 리가…….”
그러나 길드 대표 등록 시험이 시작되고, 김찬익의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홀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한 스크린에서는 함정 달리기를 하는 다른 길드원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정말 카메라를 의식하는지, 잔 실수들이 나왔다. 아직 시험에 탈락한 사람은 나오지 않았지만, 카메라가 영향이 없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꼈다.
“근데 저러면 함정 달리기 코스가 다 노출되는데 뒤에 하는 길드들이 유리한 거 아닙니까?”
김세아의 질문이었다.
그 질문 역시 김찬익이 대답했다.
“그래서 순서가 바뀌거나 공격 루트가 바뀌는 거다.”
“그래도…….”
“애초에 저 정도도 통과 못 하면 길드 대항전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거지.”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어디 길드인지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첫 번째 탈락자가 나왔다.
탈락자의 표정은 정말 울기 직전의 모습이다.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진행요원에 의해 시험 장소에서 끌려 나왔다.
다른 것은 다 괜찮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길드가 참가하다 보니, 루즈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지상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손에 들고 있는 태블릿에 뭔가를 일일이 적고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가서 뭘 하는지 쳐다보았다. 그러자 이지상이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왜?”
“뭐 하시는 겁니까.”
“자료 조사지. 누굴 만날지 모르니까.”
훈련 코치도 할 게 못 되는 것 같았다. 이지상은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고, 나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
그때, 스피커에서 다음 길드를 소개했다.
-이번 차례는 그린나래 길드입니다.
대기실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번 길드 대항전 최강 후보로 불리는 그린나래 길드의 차례였다.
스크린에서 가장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자였다.
금발 머리의 단발을 하고 있으며, 귀여운 얼굴로 웃고 있었다.
“어휴…… 그린나래도 장난 아니네. 이번에 스페인에서 영입한 레이나까지 데려오다니.”
이지상이 허탈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이진수가 있다면, 스페인에는 레이나가 있었다. 그린나래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레이나가 싱긋 웃더니, 정면을 향해 달렸다.
그녀의 주위로 생긴 푸른 막에 모든 공격이 막혔다.
탈락자들이 많이 생긴 파이어볼 구간.
피해야만 하는 파이어볼을 바라보며 레이나는 돌진했다.
콰아앙!
푸른 막에 부딪친 파이어볼과 함께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연기를 뚫고 나온 레이나의 모습은 멀쩡했다.
그녀는 그렇게 달려 함정 달리기를 끝냈다.
“…….”
대기실 안은 조용했다.
처음 보는 레이나의 실력에 놀랐고, 그린나래에서 처음 나온 선수라 더 놀랐다.
레이나가 사용한 방어막의 수준이 상당했다. 만약에 그린나래와 붙게 된다면, 저 방어막을 뚫느냐 뚫지 못하느냐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 뒤로 나온 그린나래 길드 2명의 멤버들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보여주며, 함정 달리기를 마쳤다.
아직 나오지 않은 이진수.
아마 모든 길드에서 주목을 하고 있는 선수일 것이다. 언제 나오나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대기실 안에서도 긴장감이 흘렀다.
똑똑.
긴장감을 깨는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진행자 목걸이를 걸고 있는 사람이 들어와 말했다.
“아이리스 길드 대표단은 지금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나를 비롯한 대표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진수를 보지 못해 아쉽지만, 우리가 볼 시험이 먼저였다. 우리는 진행자를 따라 이동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3층까지 내려갔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니, 대기실로 보이는 곳이 나왔다. 넓은 공간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진행자가 우리의 앞에 와서 섰다.
“그린나래 마지막인 이진수 선수가 끝나면 바로 시작할 겁니다. 누가 먼저 하실 겁니까?”
다들 이진수와 비교가 되는 것이 싫은지 선뜻 손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손을 들었다.
“저요.”
“저를 따라오세요.”
나는 뒤를 돌아, 대표단을 보며 말했다.
“다들 파이팅.”
그러고는 진행자를 따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느 정도 걸어가니 스크린에서 보았던 출발 지점이 보였다.
이진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인이어를 통해 상황 파악을 하던 진행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준비되셨습니까?”
“예.”
“그럼 출반 선에 서주세요.”
나는 그쪽으로 걸어가며, 진행자에게 물었다.
“저 이진수 기록이 어떻게 되나요?”
“이진수 헌터요? 잠시만요.”
잠시 뒤에 진행자가 나를 보며 말했다.
“1분 12초. 현재 최고 기록이네요.”
나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표현하고 출반선 앞에 섰다. 옆에는 타이머의 버튼이 보였다.
“후우…….”
숨을 고르게 쉬며, 마나를 넓게 퍼뜨렸다. 많이 익숙해진 마나 탐지로 인해 넓은 공간까지 느낄 수 있었다.
중간중간 느껴지는 마나.
함정 달리기의 대략적인 구조들이 머릿속에 새겨지고 있었다.
충분히 좋은 기록을 만들 수 있지만, 지금 나를 알리기에는 무대가 너무 작았다.
길드 대항전을 지켜보는 사람도 없었고, 겨우 대표 등록 시험이었다.
‘맛보기 정도는 괜찮겠지.’
“갑니다.”
나는 버튼을 누르고, 함정 달리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 *
“그린나래다!”
“레이나? 이거 대박인데.”
주변 기자들의 웅성거림에 박대식의 눈이 떠졌다.
‘이제 나오나?’
중간중간 기록을 갱신하는 헌터들이 있었는데 크게 와닿는 사람은 없었다.
오늘의 메인은 그린나래의 이진수였으니까.
“호오…….”
그린 나래에서 가장 처음 나온 레이나가 기록을 갱신했다.
1분 18초.
이진수와 더불어 그린나래에서 공을 들여 영입한 헌터였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 뒤로 나온 5명의 그린 나래 헌터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이진수.
그의 모습은 시작과 함께 사라졌다. 진행자 측에서 이진수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뭐야!”
“이진수 어디 있어?”
이진수만을 기다린 기자들의 불만이 흘러나왔다. 진행자 측에서는 모든 카메라를 띄웠다.
그제야 이진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나마도 1초에 한 번씩 카메라에 모습을 보이는 게 다였다.
어느샌가 이진수의 모습은 도착지점에 가 있었다. 잠시 뒤, 이진수의 기록이 뜨고, 기자단이 있는 곳에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1분 12초.
오늘 나온 최고의 기록이었다.
“이번에도 그린나래가 우승하겠네.”
“역대급 라인 업이네…….”
박대식은 옆자리에 있는 가방을 챙겼다. 더 이상 봐봤자 볼 것도 없었다.
-다음은 아이리스 길드입니다.
“아이리스?”
잠시 고민을 하다 박대식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이리스 길드에 들어간 김세아가 떠올랐다.
이진수와 더불어 이름이 거론되곤 했던 헌터.
딱, 아이리스 길드만 보고 돌아갈 생각을 하며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아이리스 길드에서 처음 나온 헌터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스피커에서 그 헌터의 이름이 오유성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박대식은 준비해온 아이리스 길드 예상 명단을 펼쳤다. 그러나 지금 서 있는 오유성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어?”
“어디 갔어?”
“뭐야!”
시작과 함께 오유성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진수 때처럼, 스크린에 모든 카메라 화면이 잡혔다.
그 후.
기자단이 있는 곳은 조용했다.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1분 12초.
오유성이라는 헌터가 만들어낸 결과물.
현 유망주 중 최고라고 불리는 이진수와 똑같은 기록이었다.